동유럽 발칸 - 5. 오스트리아 비엔나, 멜크, 잘츠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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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동유럽

동유럽 발칸 - 5. 오스트리아 비엔나, 멜크, 잘츠부르크

by 정산 돌구름 2023. 9. 8.

동유럽 발칸 - 5. 오스트리아 비엔나, 멜크, 잘츠부르크


○ 동유럽 발칸 5개국 13일 여행(2023년 8월 24일 ~ 9월 5일)

-  8일차(8월 31일, 목) : 오스트리아 그라츠 -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 , 쇤브룬 궁전 및 정원, 게른트너 거리, 슈테판 대성당, 링 거리) - 비엔나 Hotel Lenas West 

-  9일차(9월 1일, 금) : 비엔나 - 멜크(멜크수도원) - 잘츠부르크(마카르트 다리, 미라벨 정원, 호엔잘츠부르크 성, 모차르트 생가, 게트라이데 거리) - 독일 Styles Hotel Piding

~^^~

2023년 8월 31일,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된 벨베데레 궁전..

그라츠에서 2시간10여분을 달려 도착한 비엔나, 첫번째 여정은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된 벨베데레 궁전 내부 관광이다.

빈의 남동쪽에 위치한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은 사보이 왕가의 프린츠 오이겐을 위해서 세워졌다.

벨베데레 궁전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먼저 지어진 아래쪽은 단층 파빌리온으로 마르티노 알타몬테의 프레스코로 장식한 대리석 홀이 있는 중앙부는 땅에서 높이를 올리고 망사르 지붕을 덮었다.

위쪽은 그보다 약 10년 후에 세워졌는데 남쪽으로 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며, 건물 중심에는 다락방을, 양쪽 윙에는 팔각형 파빌리온을 배치한 3층짜리 건물로 그 구조가 훨씬 복잡하다.

이 두 궁전은 잘 정돈된 정원을 축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로마에서 카를로 폰타나와 함께 수학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는 오스트리아에서는 피셔 폰 에를라흐의 수제자로 프랑스 풍이 가미된 바로크 양식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군사기술자로 프린츠 오이겐의 북부 이탈리아 원정 당시 그의 휘하에서 일했는데 이때의 경험에서 많은 건축학적 매너리즘이 유래했다.

힐데브란트는 그러나 공간을 다루는 데에 거장이었으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공간을 빚어냈다.

상부 벨베데레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특히 현관에서 층계를 올라가 정원을 내려다보는 살라 테레나로 이르는 시퀀스가 돋보인다.

스투코는 상부와 하부 모두 베네치아에서 온 조반니 스타네티가 그의 문하생들과 함께 완성하였다.

양쪽 모두 이탈리아 화가의 솜씨인 우의적인 혹은 환각적인 천장화이다.

상부 벨베데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복원 과정을 거쳐 2008년 재개장하였다.

벨베데레 궁전은 귀족들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설계해 유명해졌고 바로크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상궁과 하궁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궁전과 광활한 정원을 가진 벨베데레 궁전은 1716년 하궁이, 1723년 연회장으로 사용하는 상궁이 완공되었다.
1752년 궁전이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게 팔리면서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의 벨베데레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오스트리아 바로크양식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상궁은 오스트리아 현대 미술품, 하궁은 중세, 바로크 미술품 미술관으로 사용중이다.

오늘날 상궁은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어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실레, 한스 마카르트 등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벨베데레 미술관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24점에 달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거장인 구스타프 크림트의 ‘키스’와 ‘유디트’도 이곳에 소장하고 있다.
300년을 기념하는 숫자가 입구에 세워져 있고 클림트의 걸작 '키스'를 전시하고 있다.

300주년을 맞은 전망 좋은 벨베데레 궁전 풍경..

빈의 남동쪽에 위치한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은 사보이 왕가의 프린츠 오이겐을 위해서 세워졌다.

‘좋은(Bel)’ ‘전망(Vedere)’이라는 뜻을 가진 이 궁전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하던 사보이 왕가의 궁전으로 1723년 건립됐다.

먼저 지어진 아래쪽은 단층 파빌리온으로 마르티노 알타몬테의 프레스코로 장식한 대리석 홀이 있는 중앙부는 땅에서 높이를 올리고 망사르 지붕을 덮었다.

위쪽은 그보다 약 10년 후에 세워졌는데 남쪽으로 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며, 건물 중심에는 다락방을, 양쪽 윙에는 팔각형 파빌리온을 배치한 3층짜리 건물로 그 구조가 훨씬 복잡하다.

이 두 궁전은 잘 정돈된 정원을 축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로마에서 카를로 폰타나와 함께 수학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는 오스트리아에서는 피셔 폰 에를라흐의 수제자로 프랑스 풍이 가미된 바로크 양식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군사기술자로 프린츠 오이겐의 북부 이탈리아 원정 당시 그의 휘하에서 일했는데 이때의 경험에서 많은 건축학적 매너리즘이 유래했다.

힐데브란트는 그러나 공간을 다루는 데에 거장이었으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공간을 빚어냈다.

상부 벨베데레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특히 현관에서 층계를 올라가 정원을 내려다보는 살라 테레나로 이르는 시퀀스가 돋보인다.

스투코는 상부와 하부 모두 베네치아에서 온 조반니 스타네티가 그의 문하생들과 함께 완성하였다.

양쪽 모두 이탈리아 화가의 솜씨인 우의적인 혹은 환각적인 천장화이다.

상부 벨베데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복원 과정을 거쳐 2008년 재개장하였다.

벨베데레 궁전은 귀족들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설계해 유명해졌고 바로크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상궁과 하궁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궁전과 광활한 정원을 가진 벨베데레 궁전은 1716년 하궁이, 1723년 연회장으로 사용하는 상궁이 완공되었다.
1752년 궁전이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게 팔리면서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의 벨베데레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오스트리아 바로크양식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오늘날 상궁은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어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실레, 한스 마카르트 등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300년을 기념하는 숫자가 입구에 세워져 있고 클림트의 걸작 '키스'를 전시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쇤브룬궁전과 정원..

벨베데레 궁전 관광을 마치고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쇤브룬 궁전으로 이동한다.

쇤브룬(Schönbrunn)은 18세기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었다.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와 니콜라우스 파카시(Nicolaus Pacassi)가 설계했으며, 뛰어난 장식 예술품이 가득하다.

세계 최초의 동물원(1752)이 있는 쇤브룬 궁전과 정원(Palace and Gardens of Schönbrunn)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유산이다.

17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기까지 유럽 역사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강력한 위력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원과 궁전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여러 예술 사조가 유기적으로 연결 표현된 종합예술 개념을 보여 주는 훌륭한 예이다.
1683년 튀르키예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던 사냥용 오두막과 후기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은 재건된 것이다.

이 궁전은 합스부르크제국의 번영과 우월함을 상징한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절정을 이룬 18세기 초기에 튀르키예 식으로 새로 개발된 쇤브룬은 바로크 양식의 극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빈 왕실에게 쇤브룬은 왕도(王都)의 의미와 거주의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 사업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넓은 정원에는 글로리에테(Gloriette, 작은 정자), 로마 유적 등 수많은 건물과 조각상이 있는데 이는 왕실의 궁전 규모와 그 기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상징한다.

원래 이 궁전은 18세기에 합스부르크가에 경의를 표하고 자연을 찬미하기 위해 건축된 것이었다.
궁전 동쪽에 있는 오랑제리(Orangery 열대식물이 겨울을 나도록 설치한 온실)은 186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궁전의 그레이트 팜 하우스(Great Palm House)는 1880년 영국에서 개발된 건축 기술을 사용하여 철골로 세운 인상적인 건물이며, 길이가 114m이고 3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으로 꼽히며 1996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내부 각 방에 수집한 각종 가구, 자기제품의 왕가의 컬렉션을 볼 수 있으나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내부를 둘러보고 뒤편의 정원을 산책하고 떠난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시가지에서..

오스트리아 북동부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빈은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로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며, 삶의 질 1위의 도시로 선정된 살기 좋은 도시이다.
베토벤, 모차르트 등 유명 음악가들이 활동하였고, 세계적인 관현악단의 연주와 오페라단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 음악의 도시이며, 합스부르크 왕가가 자리 잡은 역사의 도시이자 관광의 중심지이다.
최대의 번화가 게른트너 거리, 유럽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 국립 오페라극장,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거행 된 슈테판 대성당,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성 페터 성당 등이 있다.
옛 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한 슈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성당으로 비엔나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슈테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남탑은 137m로 성당의 탑으로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며, 시민들은 매년 12월 31일 슈테판 대성당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는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성 페터 성당은 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추측하며 가장 처음으로 돔 모양의 구조를 갖춘 건물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슈테판 대성당..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로서 장크트 슈테판(Sankt Stephan) 대성당이라고도 한다.

1147년 로마테스크 양식으로 건설을 시작하였고, 1258년 빈을 휩쓸었던 대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263년 보헤미아 왕에 의해 재건되었다.

1359년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헐어버리고 고딕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1683년에는 튀르키예군, 1945년에는 독일군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복구를 시작하여 대부분 옛 모습을 찾았다.

성당 이름은 그리스트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 슈테판에서 딴 것이다.

옛 건물이 가득 들어찬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있으며, '빈의 혼(魂)’이라고 부를 정도로 빈의 상징으로 꼽힌다.

공사기간이 65년이나 걸렸으며 건물의 길이가 107m, 천정 높이가 39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이다.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과 25만 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 눈에 띈다.

보헤미아 왕이 세웠던 '거인의 문'과 '이교도의 탑'도 남아 있다.

내부에는 16세기 조각가 안톤 필그람이 만든 석조 부조의 설교대와 15세기 말에 만들어진 프리드리히 3세의 대리석 석관이 있다.

그밖에 마리아와 예수상이 있고,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지하에는 1450년에 만든 지하유골 안치소 카타콤이 있는데 페스트로 죽은 사람의 유골 약 2,000구와 합스부르크 왕가 황제들의 유해 가운데 심장 등의 내장을 담은 항아리 및 백골이 쌓여 있다.

모차르트의 결혼식(1782년)과 장례식(1791년)이 치러진 곳이며, 빈 시민들은 매년 12월 31일 슈테판대성당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는다. 

2023년 8월 3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Hotel Lenas West에 머물다.

비엔나 시가지를 둘러보고 한식집 밥이다(BABIDA)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1시간을 달려 Hotel Lenas West에 도착하여 여정을 풀고 8월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호텔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Melk로 떠난다.

2023년 9월 1일, 바로크양식 건축물의 극치, 오스트리아 멜크수도원(Melk Abbey)..

7시50분, 오스트리아 비엔나 Hotel Lenad West를 출발하여 1시간여를 달려 멜크수도원에 도착한다.

멜크수도원(Melk Abbey, Stift Melk)은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으로 옴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의 무대이기도 하다. 

바벤베르크 왕가(1076~1106년)가 1106년에 베네딕토회에 왕궁을 기증한 이 후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점을 이용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새로 개축된 것이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 보면 천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밖에는 많은 회화 조각들이 보관되어 있다.

특히, 9만 여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과 한눈에 화려함을 자랑하는 성당 등 볼거리가 많다.

900년 넘는 세월 동안 멜크 수도원은 로마 가톨릭의 본거지였으며, 때로는 종교개혁에 대항하는 요새이기도 했다.

멜크 시가지위 절벽에 자리한 이 대건축물은 건축가 야콥 프란타우어(1660~1726년)의 작품이다.

젊은 수도원장 베르톨트 디트마이어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옛 수도원 자리에 새 건물을 세우도록 의뢰하였다.

철저한 조사 끝에 그 자리에 수도원과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원래 조각가로 교육을 받았던 프란타우어의 재능은 무엇보다 설계상의 구성과 비례에서 빛난다.

다른 바로크 수도원과는 달리 멜크의 성당은 다른 건물들을 지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궁전과도 같은 별채 건물들의 배경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길이 320m의 중앙축을 중심으로 남쪽 윙과 그 빛나는 대리석 홀만도 길이가 240m에 달한다.

멜크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통틀어 가장 큰 바로크 수도원이다.

그러나 이 건물의 진정 뛰어난 점은 그 디테일이다.

장식을 담당한 사람은 프란타우어의 조카인 요셉 뭉게나스트(1680~1741년)로 프란타우어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작업을 계속하였다.

장식의 일부는 빈 출신의 안토니오 베두치(1675~1735년)에게 맡겨졌으며, 프레스코와 도금은 파울 트로거(1698~1762년)가 오스트리아 바로크 스타일로 제작했다.

건물 자체는 1736년에 완공되었으나 1738년 화재로 지붕 전체와 탑, 그리고 몇몇 방이 파괴되어 버렸다.

복구 작업은 마침내 성당이 축성된 1746년까지 계속되었다.
오늘날 멜크 수도원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으며, 새로운 신앙이 옛 핏줄로 흘러드는 살아 있는 수도원이다.

그러나 야콥 프란타우어의 멋진 창조물이 수천 명의 관광객을 멜크로 끌어들이면서 21세기에도 이 도시에 재정적인 생명줄이 되어 주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멜크 수도원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포함됨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멜크(Melk)는 도나우 강과 멜크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하우 계곡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로마제국 군사주둔지였으며, 976~1106년 바벤베르크왕조의 수도가 있었다.
1106년 바벤베르크 왕조가 왕궁과 주위 땅을 베네딕투스 수도회에 기증하였고 1702~1726년 개축을 통해 웅장한 베네딕트 수도원(멜크 수도원)이 탄생하였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의 극치인 멜크수도원은 유럽 최대의 화려하고 멋진 바로크 건축물로 꼽힌다.
바벤베르크 왕조의 왕궁으로 처음 지어진 건물로 12세기 초부터 수도원으로 사용 되었다. 
왕궁으로 지어진 건물답게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오스트리아 황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도원 내부에는 황실 가족들이 사용할수 있는 방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며 갖가지 보물과 9만여점의 장서들이 보관 되어 있다.
수도원의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외부에서는 촬영이 가능하다.

사랑의 자물쇠가 있는 잘츠부르크 마카르트 다리와 잘차흐강..

멜크수도원을 보고 2시간30분을 달려 잘츠부르크로 이동한다.

중국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잘츠부르크 잘차흐강을 가로지르는 마카르트 다리에 들어선다.

잘차흐강(Salzach R)은 호에타우에른 산맥에서 발원하여 그 북쪽 기슭을 동류하며,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찰츠부르크를 지난 다음 도나우강의 지류인 인강과 합류한다.

상류부는 관광지로서 유명하며, 하류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이룬다.

마카르트 다리(Makartsteg)는 화가 마카르트 이름을 딴 보행자용 다리이다.
잘차흐강 여러 다리 중 사랑의 자물쇠로 유명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창문 커텐으로 만든 옷을 입고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호엔잘츠부르크성과 반대편 강변을 배경으로 사진찍기 좋은 곳이다.

잘츠부르크 대성당(Salzburg Cathedral)과 모차르트 광장(Mozart Plaza)..
자츠부르크 대성당(Salzburg Cathedral)은 유럽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7세기에 세워져 독일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역사적인 성당이기도 하다.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영세를 받았고, 어린시절 미사에 참석하여 파이프 오르간과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그의 몇 작품이 이 곳에서 초연되는 등 모차르트와는 인연이 깊은 곳이다.

성당의 실내는 대리석과 그림들로 장식되어 우아함과 고급스러운 분위를 자아낸다.

성당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1959년에 복구되었다.

모차르트 광장(Mozart Plaza)은 잘츠부르크 구시가지 한가운데 호엔잘츠부르크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17세기 초 이곳에 있던 많은 집들을 없애버리라는 볼프 디트리히 폰 라이테나우(Wolf Dietrich von Raitenau) 대주교의 명으로 광장이 만들어졌다.

광장 중앙에 모차르트동상이 서 있는데 모차르트를 열광적으로 숭배한 바바리아의 왕 루드비히 1세(Ludwig I)가 거액의 돈을 기부해 뮌헨의 조각가 루드비히 슈반탈러(Ludwig Schwanthaler)가 만들었으며 1842년 모차르트의 두 아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성 미하엘의 동상이 있는 바로크식 분수대가 성미하엘교회(ST. Michael Church)를 마주하며 서 있었는데, 모차르트동상을 세우면서 없어졌다.

광장 가장자리에 위치한 분홍색 건물의 탑에서는 하루 3차례씩 정해진 시간에 17세기의 차임벨이 울리며 시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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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도레미송'을 부른 곳,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미라벨 궁전(Mirabell garten)은 원래 이름은 알테나우 궁전이다.

1606년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는 사랑하는 여인 잘로메 알트를 위해 이 궁전을 지었으며, 그가 대주교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대주교의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궁전은 18세기 초 힐데브란트(Johann Lukas von Hildebrandt)라는 건축가가 개축한 뒤 ‘미라벨 궁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세기에 화재가 일어난 이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1959년 이후에는 시청사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하였으나 화재 이후 건물 외부의 섬세한 무늬가 모두 소실되었으며, 1818년에는 단순한 고전파 양식의 건축물로 바뀌었다.

건물 내부에는 모차르트가 6세 때 대주교를 위해 연주를 했다는 ‘대리석의 방(Marmorsaal)’이 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내악 연주회가 열린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이 펼쳐져 있어 낭만적인 결혼식 장소로도 명성이 높다.

정원은 1690년 바로크 건축의 대가인 요한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Fischer von Erlach)가 조성하였고, 18세기에 건축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Johann Lukas von Hildebrandt)가 개조하였으나 1818년 화재로 파괴된 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예전에는 궁전에 속해 있어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완전 개방하고 있다.

전체적인 조화를 중시하여 조성하였으며, 분수와 연못, 대리석 조각물과 많은 꽃들로 잘 장식되어 있다.

중앙분수 주위에는 1690년 모스트(Most)가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을 조각한 작품이 늘어서 있고 그 옆에는 유럽의 많은 바로크 예술품들을 전시해 놓은 바로크 박물관이 있다.

정원 서쪽에는 1704~1718년에 만든 울타리로 주위를 두른 극장이 있고, 북쪽 문 앞에는 정교한 청동조각으로 꾸민 패가수스 분수가 있다.
영화 『Sound of Music』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곳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멀리 보이는 호헨잘츠부르크 성의 모습이 아름답다.

미라벨 궁전은 규모는 작아도 콘서트가 많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궁전 내 대리석 홀에서 대주교를 위해 연주를 하였으며, 지금도 실내악 연주회가 자주 열린다.

또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으로도 인기 있는데 결혼식이 끝나면 꽃 장식 마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다.

잘츠부르크의 호엔잘츠부르크성(Festung Hohensalzburg) 투어..

선택관광으로 산악열차 푸니쿨라(Festungbahn)를 타고 호엔잘츠부르크성에 오른다.

해발 542m 산 위에 위치한 호엔잘츠부르크성(Festung Hohensalzburg)은 방어용 성으로 중부 유럽의 성채 중 완벽한 규모로 현존하는 최대의 성이다.

구시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이기 때문에 구시가 어디에서든 보이는 요새이다.

1077년 건축한 철옹성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 사이에 주교 서임권 투쟁(1075~1122년)을 벌이던 시기에 잘츠부르크 대주교 게프하르트가 남부 독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매우 견고하게 지어진 덕분에 한 번도 점령당하지 않아 지금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은 요새와 대주교의 거주 공간이었지만 군대 막사와 감옥 시설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5년간 조카 마르쿠스 시티쿠스에게 감금되어 1617년 숨을 거둔 장소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15세기에 설치된 무기고와 대포 설치대가 여전히 남아 있다.

1500년 경 대주교 레오나르드에 의해 증축되었고 1618년에 이르러 대주교 막스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당시 대주교들이 기거하던 황금의 방과 의식의 방, 중세 고문기구가 전시되어 있는 방, 200개의 파이프 소리가 엄청나 ‘잘츠부르크의 불(황소)’이라 부르는 오르간 등 볼거리가 많다.

화려한 금으로 장식한 거실과 조각품을 통해 당시 대주교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성의 전망대에서는 돔 광장과 잘자흐 강 등 잘츠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성에서 밑의 논베르크 수도원은 714년에 세워진 독일권에서 가장 오래된 수녀원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수녀 생활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성은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도시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잘츠부르크의 상징이다.

성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전경 또한 멋지다.

잘차흐강을 중심으로 신, 구시가지로 나누어져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또한, 멀리 알프스산맥이 흰구름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개성있는 간판이 인상적인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에서~
잘츠부르크는 중세 로마시대의 도시로 근처에 소금광산이 있어 '소금(Salz)의 성(burg)'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역사보다는 음악 천재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으로 더 유명하다.
개성 있는 간판이 인상적인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는 아름다운 쇼핑가를 이루고 있으며, 잘츠부르크의 문화적 특성과 매력이 함축되어 있다.
보석가게, 꽃집, 옷가게 등과 레스토랑, 커피숍 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며 모차르트생가와 15세기에 건축된 구시청, 대성당과 레지덴츠성, 미카엘 교회, 프란치스카너 교회, 화랑,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다.
건물마다 가게의 특징을 철에 표현한 예술적인 수공간판들이 많이 달려 있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로 알려지게 만든 철제간판들은 문맹이 많은 중세시대에 무슨 가게인지를 알리려고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200년 이상이나 된 것도 있으며 거리 분위기에 맞추어 현대의 패스트푸드 상점들도 철제간판을 매달아 놓은 것이 재미 있다.
해마다 열리는 음악제는 모차르트를 기리기 위한 것이며 거리 곳곳에 모차르트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기념품들이 넘친다.

1756년1월27일에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은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번화한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에 있다.

모차르트는 12세기 지어진 이 건물 3층에서 태어나 17세이던 1773년까지 살았다.

잘츠부르크 시내 중심인 슈타츠(Staats) 다리를 지나 동서로 뻗어 있다.

도시의 상징인 호엔잘츠부르크성을 향하여 아름다운 쇼핑가를 이루고 있으며, 잘츠부르크의 문화적 특성과 매력이 함축되어 있다.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생가..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번화한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 9번지에 있는 모차르트 생가(Mozarts Geburtshaus)는 1756년 1월 27일에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12세기 무렵 지어진 이 건물 3층에서 태어나 17세이던 1773년까지 살았다.

1917년 국제모차르테움(Mozarteum)협회에서 인수한 후 모차르트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며, 전시품들을 통해 당시 중산층의 전형적인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로 1층에는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침대, 피아노, 바이올린, 자필 악보, 서신 등이 있다.

2층에는 유명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초연할 당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과 4층에서는 모차르트의 가족들과 잘츠부르크에서 생활하던 당시의 모습을 각각 소개하고 있다.

건물 안에는 모차르트 CD와 각종 기념품을 파는 기념품 판매점과 카페가 있다.

관람시간은 9~6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7~8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이다.
모차르트 생가 뒤에 있는 대학광장에서는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꽃, 약초, 채소, 과일 등이 거래되는 그린시장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