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발칸 - 2.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폴리트비체, 오토차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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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동유럽

동유럽 발칸 - 2.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폴리트비체, 오토차츠

by 정산 돌구름 2023. 9. 8.

동유럽 발칸 - 2.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폴리트비체, 오토차츠


○ 동유럽 발칸 5개국 13일 여행(2023년 8월 24일 ~ 9월 5일) 

- 3일차(8월 26일, 토) : 헝가리 부다페스트(페스트지구 - 성 이슈트반 대성당 - 세체니다리) - 크로아디아 자그레브 Hotel Phoenix

- 4일차(8월 27일, 일) : 자그레브( 반 옐라치치광장,  대성당, 성모마리아상, 성 마르크성당) - 플리트비체 - 오토차츠 Hotel Mirjana

○ 크로아티아(Croatia)

유럽 발칸반도 서부의 아드리아해 동부에 있는 나라로서 1918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을 거쳐 제2차세계대전 후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국토가 해안 산지, 남부 구릉 및 동부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구유고슬라비아연방의 해체와 함께 내전을 거쳐 1991년 6월 분리 독립하였다.

정식명칭은 크로아티아공화국(Republic of Croatia)이며 수도는 자그레브이다..

북쪽으로 헝가리, 동쪽으로 세르비아, 서쪽으로 슬로베니아, 남쪽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국경을 접하며 서남쪽으로 길게 아드리아해에 면한다.

독립선언 후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의 학대를 우려하여 연방 탈퇴를 반대함으로써 전쟁상태에 돌입하였고,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인들은 ‘크라이너’라는 공화국을 수립하여 연방군과 함께 크로아티아에 맞서 싸우다가 1995년 11월 데이턴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적인 통합 프로세스에 합의하였다.

크로아티아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2013년에 28번째 유랍연합 회원국으로 가입하였으며, 200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이 되었다.

행정구역은 20개 주(zupanija)와 1개 시(grad)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 행정구역으로 556개의 시(city/municipality)를 가지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선주민은 일루리아족으로 기원전 3세기에 해안지방에서는 로마와 접촉을 가졌고 내륙지방에서는 켈트족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초에 고트족, 5세기 전반에 훈족의 침입을 받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불분명하다.

6세기에는 북쪽에서 슬라브인과 아바르인이 들어왔고, 7세기에는 슬라브인이 대거 이주하여 왔으나 당시 이들에 의한 사회적·정치적 통일은 실현되지 않았다.

9세기에 슬라브라는 이름과 함께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7~9세기에 북부는 프랑크왕국, 동부는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925년 크로아티아의 트미슬라브공(公)이 왕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크로아티아 왕국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102년 헝가리왕을 통치자로 하는 헝가리-크로아티아 국가가 성립되었다.

1202년에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크로아티아의 해안산지인 달마티아의 일부를 차지하였다.

더욱이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이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남 헝가리의 모하치전투에서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연합군이 투르크군에게 패하였다.

러시아-투르크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자 합스부르크가(家)의 페르디난도 1세가 크로아티아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19세기 전반에 이르러 헝가리의 통치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186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결과 오스트리아가 패배하자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에서 벗어나 1918년 이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일명 베오그라드 왕국, 1929년 이후는 유고슬라비아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한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고 연방 내 공화국들 간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위기가 찾아왔다.

이에 더해 1980년대 말부터 동유럽의 자유화 물결이 크로아티아에도 도달하였다.

1990년 4월 크로아티아 공화국 최초의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투즈만이 이끄는 크로아티아민주연합(HDZ)이 승리함에 따라 비공산 민족주의 정권이 탄생하였다.

곧이어 5월에 투즈만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12월 새 헌법이 채택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으로부터 이탈하려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연방 내 최대 공화국인 세르비아와 민족적으로 강하게 대립하였다.

특히 경제적으로 농업 중심의 남부 각 공화국에 비해 경제적 부담을 상대적으로 크게 져야 하는 데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1991년 5월 주민투표에서 ‘주권국가에 의한 국가연합’에 대한 찬성이 94%에 달해 1991년 6월 독립선언을 하였다.

결국 크로아티아는 연방 유지를 지향하는 세르비아 공화국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르비아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국내의 세르비아인들은 따로 ‘크라이너’라는 공화국을 수립하여 크로아티아 측과 맞섰다.

같은 해 6월에는 연방군대가 크로아티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여 내전에 돌입하였고 9월에는 연방군이 크로아티아에 대공세를 가하였다.

12월에 세르비아인의 크라이너 자치구가 크로아티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역시 12월에 독일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1992년 1월 EU도 이들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UN은 3월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 지구인 동·서슬라보니아와 크라이너 세 지구에 30개국 1만 4000명의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정전 감시활동을 전개하였다.

크로아티아는 5월에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함께 UN에 가입하였다.

1993년 1월에는 크로아티아군이 정전을 파기하고 크라이너를 침공하여 발발한 내전으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1994년 1월 신유고 연방 측과 관계정상화 협정에 조인하고, 같은 해 3월 크라이너 지역 세르비아계와 휴전 협정에 서명하였다.

1995년 5월 크로아티아 군대는 서슬라보니아를 점령하였으며, 같은 해 8월 크라이너 지역이 크로아티아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동슬라보니아는 UN의 통제 아래에 있다가 1995년 데이턴에서 체결된 평화협정에 따라 과도 행정부(UNTAES, UN Transitional Administration for Eastern Slavonia)를 설치하였다.

1998년 1월 동슬라보니아에 거주하는 모든 세르비아인은 크로아티아 시민이 되었다.

전쟁 이후 크로아티아는 전쟁에 의한 피해 복구, 경제회복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민족적, 국가적 이슈가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언론, 경찰, 사법체계를 장악하고 통제하던 투즈만 대통령이 1999년 12월에 사망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개혁이 가속화되었다.

헌법개혁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의원내각제로 전환하였으며, 2001년에는 상원을 폐지하고 단원제로 전환하였다.

부패와 행정적 비효율성, 실업 등의 사회 문제 개선을 위한 개혁들도 추진해 왔다.

크로아티아는 1992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고 2000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이 되었으며, 2009년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다.

2000년 평화를 위한 동반자협정(Partnership for Peace)을 체결한 이후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협상을 지속적으로 진행한 결과, 2013년 7월에 유럽연합으로부터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을 승인 받았다.

관광명소

크로아티아에는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천 개가 넘는 섬이 있으며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해안 도시들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 흔적이 남아 있는 관광명소가 무수히 많다.

수도인 자그레브(Zagreb)에서는 12~13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건축된 자그레브 대성당,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과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성 마르코 성당과 같은 종교적, 역사적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작은 도시인 시베니크(Sibenik)에서도 성 바르바라 성당, 성 프란시스코 성당,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 야고보 성당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종교 건축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는 두 곳의 자연보호구역, 8개의 국립공원과 11개의 자연공원을 지정하여 자연유산을 잘 보호하고 있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과 크르크(Krk) 국립공원은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을 자랑하며, 이스트리아 반도의 섬들로 이루어진 브리유니(Brijuni) 국립공원 역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9월 26일, 헝가리를 떠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들어서다.

부다페스트 페스트지구 관광후 중국식 점심식사를 끝으로 헝가리 일정을 마치고 크로아티아로 향한다.
옥수수와 해바라기 들판을 지나 휴게소에서 맥주 한 캔을 하고 화장실을 가는데 사용료가 1유로라고 한다.

이렇게 유럽은 가는 곳마다 화장실이 유료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살기좋은 나라이다.
버스로 5시간을 달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외곽 Hotel Phoenix에 도착, 호텔식에 소맥 한잔으로 피로를 달래며 하루를 마감한다.
여행은 항상 익숙한 것들과 헤어져 낯선 것들과 만나지만 이또한 즐거움이다.

2023년 8월 27일, 크로아티아의 영웅 반 옐라치치 광장(Ban Jelačić Square)..

호텔을 출발하여 버스로 자그레브 중앙역(Zagreb Glavni Kolod Train Station)에 도착하면 토미슬라브(King Tomislav) 광장이 있다.

역에서 전차를 타고 반 엘라치치광장으로 이동한다.

아드리아해의 숨은 보석, 천혜의 자연이 빚은 예술의 땅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는 스펙타클한 크로아티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중세의 분위기와 동유럽 특유의 고혹적 느낌, 현대적 세련미를 동시에 갖춘 도시로 시간이 멈춘 듯 하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중심부에 있는 크로아티아의 영웅 반 옐라치치 광장(Ban Jelačić Square)은 17세기에 건설된 오스트로-헝가리 스타일의 광장이다.

광장 주변에는 클래식양식과 모던양식 등 서로 다른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은 1827년에 지어진 건물이며, 아름다운 파스텔 색상의 오픈 카페와 상점이 여럿 들어서 있다.

또한 주민들의 안식처이며 만남의 장소이자 자그레브 관광의 출발점이다.

도시의 윗마을(Gornji Grad)에 위치하며 구 돌라츠 시장(Old Dolac Market)의 남쪽과 접해 있다.

광장 중앙에는 1866년에 오스트리아 조각가가 만든 동상이 세워졌는데 오스트로-헝가리 점령 당시 총독을 맡았던 반 옐라치치 백작의 상이며 말에 앉아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상은 칼이 뾰족하고 날카로워 마치 보는 이의 눈을 찌를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동상은 여러 번 정치적인 위기를 맞이했는데 1947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1990년에야 그가 국가를 대표하는 민족주의자라는 판단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2023년 8월 27일,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여행자들의 기착지 자그레브(Zagreb)는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해발 122m에 위치한다.

크로아티아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사바강이 시내를 흐흐고, 시내 북쪽에 메드베드니차산이 있다.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 20개 주 외의 특별행정구역으로 주변부를 포함하면 크로아티아 전체 인구의 약 1/4분을 차지한다.

자그레브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851년에 캅톨과 그라데츠가 합쳐져서 하나의 도시가 되었다.

크로아티아 교통의 허브이고 산업과 연구의 중심이며, 또한 거의 모든 정부기구가 자그레브에 있다.

자그레브에는 많은 박물관, 미술관, 스포츠 시설 등이 있고 자그레브성당을 비롯해 오래된 여러 교회가 있다.

메드베드니차산은 인기 있는 스키리조트로 2005년 1월 중순에 월드스키챔피언십 토너먼트가 이곳에서 열렸다.

메드베드니차, 셰스티네, 그라차니, 레메테 등 그림 같이 아름다운 옛 마을들은 민속의상, 셰스티네 우산, 생강쿠키 같은 것을 포함하여 풍부한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자그레브는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지로부터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서 오는 관광객도 늘어나고 있다.

자그레브는 중부유럽 교통의 요지로써 동과 서를 향하는 여행자의 기착지로 이름을 알렸다.

동서양의 가교로 러시아를 횡단해 런던까지 이어지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자그레브를 통과하며 이스탄불과 베오그라드, 빈(비엔나)과 서유럽이 연결되어 있다.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다뉴브강) 지류인 사바강과 도심을 감싼 메드베드니카 산은 흡사 서울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겪게 된 처절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옛 문화재와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냈다는 점도 비슷하다.

자그레브 역사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그라덱(Gradec)과 캅톨(Kaptol)이라고 부르는 두 개의 언덕에 집중돼 있다.

이 도시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중세도시의 품격 있는 건축물이 가득한 올드타운과 크로아티아 경제 중심지임을 실감할 수 있는 상업지구 로워타운, 그리고 고층건물이 늘어선 신도시 신 자그레브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라면 으레 그렇듯 구획 별로 정리된 시간의 흔적들이 마치 문신처럼 도시에 새겨져 있다.

아드리아해의 숨은 보석, 천혜의 자연이 빚은 예술의 땅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는 스펙타클한 크로아티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중세의 분위기와 동유럽 특유의 고혹적 느낌, 현대적 세련미를 동시에 갖춘 도시로 시간이 멈춘 듯 하다.

높이 솟은 두개의 첨탑이 이색적인 자그레브 대성당..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성당( Katedrala Marijina Uznesenja)은 최초 성당을 짓기 시작한 1095년부터 1218년까지 123년 동안 건축한 끝에 비로소 완공이 되었다.

성당은 높이가 77m, 너비가 46.2m이며 두 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데 북쪽 탑이 105m, 남쪽 탑이 104m이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최대 5,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큰 규모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바로크양식의 제단, 신고딕양식의 제단 등이 있고 성당에만 보물급 유물이 10개 이상이 되어 '크로아티아의 보물'이라 부른다.

외관은 로마네스크의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1242년 타타르족의 침공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1264년부터 20년에 걸쳐 고딕 양식으로 복구했고,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초까지 성당 주위에 성벽을 쌓아 또 다른 침입에 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17세기에 발생한 2번의 커다란 화재로 인해 성당은 손상을 입게 되었고 이후 17세기 중반까지 복구했으며 육중한 종탑을 남쪽에 세워 감시대로도 활용했다.

제작 당시 성모마리아를 위해 지어진 성당으로 성모 승천상이 있어 성모 승천 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높운 곳에 자리한 황금빛 성모 마리아상은 믿음, 소망, 순결, 겸손을 상징하는 4명의 황금천사가 호위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정식명칭은 성모마리아와 네 천사의 분수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조각가 안톤 도미니크 페른코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20년 5월 지진으로 인해 철탑 꼭대기 십자가가 훼손되어 지금까지도 보수작업 중이다.

타일로 만든 지붕이 유명한 성 마르크 성당(Crkva Sv. Marka)

크로아티아 성 마르크 성당(Crkva Sv. Marka)은 1256년에 건설된 도시의 교구성당으로 성마르크 광장(구 그라데츠 광장)에 위치한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빨강, 흰색, 파란색 타일로 만든 지붕으로 유명하며 14세기 후반에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고딕 양식으로 변했고 지붕은 3곳으로 구분되었다.

육중한 원형 기둥은 고딕 양식으로 장식한 서까래를 받치고 있고 성당 내부는 3개의 회중석을 가진 삼각구도로 되어 있어 기품 있는 모습이다.

자그레브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미지의 성 마르크성당은 지붕의 모양이 마치 레고를 연상시키는 타일 모양으로 동화 속 성당을 보는 것 같다.

아기자기한 모습 때문에 최고의 결혼식 장소로도 손꼽혀 젊은 크로아티아 남녀에게 가장 결혼하고 싶은 장소로도 선택된 바 있다.

13세기 로마네크 양식으로 지어진 뒤 14세기 후반 고딕 양식과 아치형 천장과 성소가 추가되었다.

건물 남쪽의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현관은 고딕 양식으로 19세기 말 프라하 출신의 건축가가 지었다.

19세기 재건될 때 정면부 로마네크 양식만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성당의 문 위에는 예수 성모마리아, 성 마르코 그리고 12사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체코 출신 조각가의 작품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외부와는 달리 단조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통해 성당의 역사를 볼 수 있다.

현관에는 15개의 조각상이 11개의 벽감(조각상을 놓기 위해 만든 곳)에 놓여있고 맨 꼭대기에는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측면에는 예수의 12제자 조각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들은 예술적 가치가 높아 성당뿐만 아니라 남동유럽에서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겨진다.

북서쪽 측면 외부에는 1499년 제작된 석조작품의 복제품이 있는데 크로아티아·달마티아·슬로베니아 기사들이 문장이 들어간 덧옷을 걸쳐 입은 모습을 표현했으며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원본작품은 자그레브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2시간30분 가량을 달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프리트비체의 맑은 호수에 사는 송어구이 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그릴에 구운 송어에 감자 샐러드를 곁들인 송어구이 정식, 시원한 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배고픈 만큼 맛도 있다.

천혜의 자연 풍경을 자랑하는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Plitvice) 국립공원~

송어구이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인근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이동한다.

주차장을 출발하여 호수공원으로 들어서면 에메랄드빛 호수와 폭포, 자연이 빚어낸 절경을 보며 다시금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에는 아름다운 호수들, 동굴 그리고 폭포들이 많이 있다.

플리트비체의 자연경관은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될 정도로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줄어드는 호수의 땅'이라고 알려진 플리트비체는 카르스트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다른 카르스트 지역과는 풍경이 사뭇 다른데 그것은 물이 지하가 아니라 지표면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수천 년에 걸쳐 강물은 석회석과 백악질 지대를 흐르며 침전물로 이루어진 천연 제방을 형성했다.

그 결과 거대한 호수 16개와 이보다 규모가 작은 호수 몇 개가 형성되었다.

각각의 호수를 연결하는 것은 폭포인데 이 중 가장 높은 폭포는 벨리키슬라프이다.

발원지는 리예스코바크 시내와 블랙리버와 화이트리버이며 이는 프로스칸스코 호수로 들어간 후 옥빛을 띠는 인상적인 호수들을 통과한 후 코라나 강으로 유입된다.

호수와 강물은 수정처럼 맑아서 주변의 녹음이 우거진 산이 그대로 비친다.

사람들은 이곳을 '악마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호수가 말라붙자 사람들은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러자 검은 여왕이 폭풍을 일으켜 호수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194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979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플리트비체 호수는 유럽불곰, 늑대, 멧돼지와 사슴의 서식지이다.

2023년 8월 27일, 오토차츠 호텔 미르자나(Hotel Mirjana Rastoke)에 머물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40분을 달려 크로아티아 오토차츠 호텔 미르자나 & 라스토케에 자리를 잡는다.
오토차츠는 크로아티아 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소맥을 곁들인 호텔식으로 저녁식사 후 주변을 산책하고 잠자리에 든다.

크로아티아 서부에 있는 도시 오토차츠(Otocac)는 벨레비트와 말라카펠라 사이에 카르스트평원의 서쪽에 위치한다.

가츠카강이 시내를 지나고 17세기에 쌓은 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성삼위일체가톨릭교회, 성게오르기야위대한순교자교회 등이 있다.

가츠카박물관은 오토차츠와 가츠카강 유역의 역사와 풍속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