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발칸 - 1. 두바이, 헝가리 센텐드레,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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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동유럽

동유럽 발칸 - 1. 두바이, 헝가리 센텐드레, 부다페스트

by 정산 돌구름 2023. 9. 8.

동유럽 발칸 - 1. 두바이, 헝가리 센텐드레, 부다페스트


○ 동유럽 발칸 5개국 13일 여행(2023년 8월 24일 ~ 9월 5일)

- 1일차(8월 24일, 목) : 광주~고속버스~인천국제공항~두바이

- 2일차(8월 25일, 금) : 두바이 - 헝가리(부다페스트 - 센텐드레 - 영웅광장 - 부다지구 - 어부의 요새 야경 - Hotel Queen Elizabeth

○ 헝가리(Hungary)

헝가리공화국(Republic of Hungary)은 유럽 중앙의 동부도나우강 중류에 있는 내륙국으로 수도는 부다페스트(Budapest)이다.

행정구역은 19개의 주(Megye)로 구분되며, 인구는 유럽연합(EU)에서 13번째로 많다.

기후는 대륙성기후와 서안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연평균 기온은 9.7°C, 강우량은 약600mm이다.

헝가리의 공식적인 역사는 9세기 아르파드(Árpád) 왕조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몽골제국,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1867년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편입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분열되어 헝가리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공산주의 진영에 속하여 공산주의 독재정권이 유지되었다.

1989년 동구권 공산주의 진영이 붕괴되자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체제를 전환하였으며 2004년에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 되었다.

헝가리는 카르파티아 분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총 7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남쪽으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남쪽으로 루마니아, 북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북쪽으로 슬로바키아와 접한다.

국토의 3분의 2 이상이 해발고도 200m 미만의 저평원 지대이며, 해발 300m 이상의 산악지대는 2% 미만이다.

지리학적으로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는데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트랜스다뉴비아(Transdanubia), 동쪽은 티산툴(Tiszántúl), 도나우강과 티서강의 중부인 도나우-티서 하간지(Duna-Tisza köze)로 구분한다.

트랜스다뉴비아지역 북부에는 헝가리 소평원(Kisalföld)이 위치하며, 총면적은 598km²로 중부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인 벌러톤 호수(Lake Balaton)와 세계에서 가장 큰 온천 호수인 헤비즈 호수(Lake Hévíz)가 있다.

특히 벌러톤 호수는 '헝가리의 바다(Hungarian Sea)'라고도 불리는 헝가리의 주요 수산물 생산지이자 관광 휴양지이다.

티산툴지역과 도나우-티서 하 간지(Duna-Tisza köze)에는 헝가리 대평원(Alföld)이 걸쳐져 있고 헝가리에서 가장 긴 티서강이 대평원을 가로지른다.

헝가리에서 가장 높은 지역은 북동부 마트라산맥(Mátra Mountains)에 위치한 케케스산(Mountain Kékes)으로 해발 1,014m이며, 가장 낮은 지역은 남부 세게드(Szeged) 지역에 위치하고 해발 77.5m이다.

헝가리는 전반적으로 대륙성기후의 영향을 받으나 서안해양성기후가 결합하여 기온이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남부의 일부지역은 지중해성기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추운 겨울과 따뜻하고 더운 여름 기후를 보이며, 여름철 평균기온은 23~28°C, 겨울철 평균기온은 –3~7°C, 연평균 기온은 약 9.7°C이다.

습도는 낮지만 비가 자주 내리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여름에는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기도 한다.

연평균 강우량은 약 600mm이며, 서풍의 영향을 받는 서부 지역이 동부지역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린다.

~^^~

 

2023년 8월 24일, 13일간의 동유럽여행을 위하여 광주유스퀘어에서 14시 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한다.

17시55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먼저, 얼큰한 한국음식이 그리울 것 같아 공항에서 육개장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오후 7시30분, 14번 출입구 앞 N카운터에서 참좋은여행 인솔자 석길주팀장을 만나 일정을 시작한다.

출국수속을 한 후 면세점을 둘러보고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두바이로 향하는 에미레이트항공 여객기를 기다린다.

지난해 10월 이후 오랜만에 부부가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 이번 여행도 즐겁고 행복한 여행길이 되기를 바라며 ~~~

 46번 탑승구에서 에미레트항공 에 탑승하여 두바이로 향한다. 

23시55분, 중동최대 에미레이트항공(A380) EK-323은 인천을 출발하여 9시간30분을 비행하여 두바이에 도착한다.
두바이는 아라비아반도 동쪽에 있는 아랍 에미리트연방의 7개 토후국 중의 하나다.
메뚜기’를 뜻하는 두바이는 중동의 막대한 오일달러를 앞세워 중동의 금융중심지로 발전하였고, 세계 각 대륙과 나라를 연결하는 허브공항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바다를 매립하여 인공섬을 만들고 새로운 개념의 인공 도시인 팜 아일랜드를 건설하였다.

4시25분(현지시간) 도착하여 간단한 수속을 하고 기다리며 면세점을 둘러본다.

기나긴 비행과 대기시간이 힘들지만 이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즐거움이 아닌가?

에미레이트항공(Emirates Airlines)은 아랍에미리트의 국영 항공회사로 본사가 두바이에 있으며, 1985년 설립되었다.

매주 3,400편 이상의 항공편이 두바이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운항한다.

매출, 보유항공기, 여객수 부문에서 중동 지역 최대 항공사이다.

보유기종은 보잉 777-200, 777-200LR, 777-300, 777-300ER, 777-F, 747-400F, 747-400ER F, 에어버스 A300-200, A310-300, A340-500, A350-900, A350-1000, A380-800 등이며, 비행기 수는 총 173대이다.

A380-800은 복층 구조의 초대형 여객기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는 기종이다.

우수한 기내 서비스, 빠른 성장세, 지속적인 흑자경영으로 항공업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허브 공항은 두바이국제공항이다.9시50분(현지시간) 탑승수속, 10시30분 두바이공항을 출발한 에미레이트항공 EK-0111은 5시간30분을 비행하여 14시25분 헝가리 부다페스트공항에 도착한다.

이제는 본격적인 동유럽 여행의 시작이다.

2023년 8월 2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공항에 도착하여 동유럽 여행 첫 여정은 예술가의 도시, 센텐드레로 향한다.
센텐드레(szentendre)는 부다페스트에서 약 2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두나강(도나우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중세의 모습인 붉은색 기와로 만들어진 오래된 집들은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네모난 작은 자갈돌로 포장된 골목길은 지금도 예전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중심부에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으며 음식을 파는 식당 등이 골목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다.

포도주가 많이 생산되며 나무, 가죽 등을 이용한 공예품이 발달되어 있다.

두나강 주변 풍광이 아름답고 부다페스트에서 철도나 배를 이용해서 강변으로의 접근성이 뛰어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역사적으로는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을 때에는 ‘늑대성(Ulcisia Castra)’으로 불렸으며 군사적인 요충지로 역할했다.

약 10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9세기에 마자르 인(헝가리인)들이 이주해와 로마시대 요새와 건축물을 기반으로 거주했다.

이후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인구가 대폭 감소하였다.

17세기 말 신성동맹과 벌어진 16년간의 대 튀르크 전쟁(1683~1699)에서 패배한 오스만투르크는 헝가리에서 철수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관할이 되었고 세르비아 인들이 센텐드레로 다시 이주해와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바로크 스타일의 집과 지중해 풍의 교회와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16세기에는 헝가리-세르비아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1700년대 튀르키예로부터 독립한 이후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등 지중해연안 사람들이 모여 살아 왔다.

20세기 초부터 다양한 세대의 헝가리 예술가들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화가, 음악가, 시인, 문학가들이 이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에 박물관과 비주얼 아트의 풍요로운 전통을 표현하는 현대화랑,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점과 상점들이 많다.

센텐드레 관광을 마치고 30여분을 이동하여 부다페스트 시내로 들어서 굴라쉬로 저녁식사를 한다.

굴라쉬(GOULACHE)는 소를 모는 목동(gulyás)’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헝가리의 스튜 요리다(굴라시, 구야시).

소고기를 주재료로 하고, 양파와 파프리카(헝가리 고추)를 넣어 끓인 이 스튜는 주로 감자를 곁들여 먹는다.

이 음식의 기원은 헝가리라는 국가가 결성되기 전, 마자르족 유목민들이 자신들의 생활방식에 따라 음식을 만들어 먹던 시절인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얄팍하게 썬 고기에 양파를 넣고 국물이 완전히 졸아들 때까지 끓인 후 햇볕에 말린 음식이었으며 가죽 부대에 담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야영지에서 유목민들은 이 고기에 물을 붓고 순무를 넣어 끓인 스튜 또는 수프를 만들어 먹었다.

이 요리에 파프리카를 추가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웅광장(Heroes' Square)은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에 지어진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36m 높이의 기둥이 있는데 꼭대기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조각상이 있다.

기둥 옆에는 마자르의 7개 부족장들의 동상이 있다.

이 기둥을 기준으로 반원의 형태로 주랑이 2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에는 헝가리의 역대 왕과 영웅들이 연대순으로 조각되어 있다.

내일 마라톤대회가 있다고 출입이 통제되어 내부에 들어갈 수 앖아서 외부에서만 간단히 둘러보고 떠난다.

다뉴브강의 진주,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다지구 관광~

헝가리(Hungary)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헝가리 평야의 북서부 도나우강 양안에 걸쳐 있다,

부다페스트는 우안의 부다(Buda)와 좌안의 페스트(Pest)로 이루어져 있다.

1873년 부다와 페스트는 Óbuda지역과 같이 통합되어 오늘날 알려진 부다페스트로 탄생했다.

부다페스트는 총 23개의 지구로 나뉘는데 6개 지구가 부다, 16개 지구가 페스트, 그리고 1개 지구가 이들 사이에 위치한 세펠 섬(Csepel Island)에 속한다.

기원전 1세기부터 시작되어 이후 로마인들이 정착했고 군사정착지로 도시가 발전했다가 점차 상업중심지로 변모했다.

9세기 말, 마자르(Magyar) 부족의 수장 아르파드(Árpád)가 이 곳에 헝가리 왕국을 건설했다.

이후 13세기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당시 헝가리 왕이었던 벨라(Béla) 4세는 부다의 언덕에 왕궁을 세웠으며 부다는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국왕이었던 마차시 1세(Matthias Corvinus) 재임 시절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문화운동이 도시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 시기에 도서관과 대학이 설립되기도 했다.

16세기 오트만 제국에 점령당하며 150년 이상 통치가 지속되었으며, 일부 점령당하지 않은 서부지역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에 편입되었다.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Treaty of Karlowitz)으로 오스만제국의 통치가 끝났고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탄생 이후 부다페스트는 이중 제국의 수도 역할을 담당했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헝가리는 독립공화국을 선언했지만 1920년 트리아농 조약(Treaty of Trianon)으로 영토와 인구의 2/3를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부다페스트는 도시가 파괴되기도 했으며 38,000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 후 독일 나치에서 벗어나 공산주의정권이 들어섰을 때 부다페스트에서는 1956년10월23일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1960년대부터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데 힘썼으며 1970년대에는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1990년 말,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으며 과거 공산주의시절 잔재들은 메멘토공원(Memento Park)으로 옮겨졌고 오늘날의 민주주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다뉴브강을 중심으로 서쪽의 부다지구는 2세기경 로마의 군 주둔지였으며 14세기에는 헝가리의 수도 역할을 했다.

페스트와 한 도시로 합병 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오랜 기간 페스트가 서민들의 삶터였던데 반해 부다는 귀족과 부호들의 영역이었다.

언덕 위, 요새 같은 공간에서는 지켜야 할 것도 많았고 외부인들의 가벼운 접근도 꺼렸다.

부다페스트를 상징하는 오랜 유물들이 부다 지구에 밀집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부다페스트를 상징하는 오랜 유물들인 왕궁, 어부의 요새, 마챠시 교회 등 도나우 강변을 수놓는 언덕 위 명물들은 나란히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부다페스트가 '도나우강의 진주'라는 별칭을 얻게 된 데는 부다 지구의 유적들이 큰 몫을 했다.

오랜 기간 페스트가 서민들의 삶터였던데 반해 부다는 귀족과 부호들의 영역이었다.
언덕 위, 요새 같은 공간에서는 지켜야 할 것도 많았고 외부인들의 가벼운 접근도 꺼렸다.

왕궁의 언덕으로 불리는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 부다의 깊숙한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해질 무렵 도나우강과 함께 펼쳐지는 야경을 감상해도 훌륭하다.

동유럽하면 프라하 프라하성과 카를교의 야경이 떠오르지만 부다 지구를 배경으로 한 도나우강변의 야경도 결코 뒤지지는 않는다.

부다 지구에서 가장 이색적인 명물은 어부의 요새,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도나우강과 페스트 지역의 풍광은 유독 빼어나다.

요새를 잇는 성벽에 걸터앉은 채 감동에 취해 사랑을 표현하는 연인들의 모습도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방어한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 Halaszbastya)는 왕궁 언덕의 동쪽에 우뚝 서있는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된 건물로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지어졌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원래 중세 때부터 이 부근에 어부들이 많이 살았으며 큰 어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네오 고딕 양식과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되어 독특한 모양의 뾰족탑을 가지고 있다.

위로 올라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두나강과 어우러진 페스트 지구의 전경은 매우 아름답다.

중세에는 어부들이 도나우강에서 왕궁 지구에 있는 어시장으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동양적인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건국 당시의 7부족을 상징한다.

전체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얀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교회까지 뻗어있는 계단이 아름답다.

왕궁 언덕의 동쪽 면을 따라 180m 길이로 뻗어 있는 전망 좋은 성채로 도나우 강 건너 국회 의사당 건물과 부다페스트의 19세기 페슈트 지역이 내다보이는 훌륭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건물은 헝가리 건축가 프리제스 슐레크가 디자인했는데 그는 근처에 있는 고딕양식의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 교회'(마차스 교회)를 창조적으로 보수하고 재건축한 인물이기도 하다.

어부의 요새라는 이상한 이름은 현대적인 테라스가 건축되어 있는 오래된 성벽에서 유래했다.

이 성벽은 중세의 생선시장이 있는 곳 가까이 까지 뻗어 있었으며, 따라서 어부 길드 조직원들이 이 성을 방어했던 것이다.

일곱개의 탑에도 역시 각각 역사적인 의미가 있으며, 896년 카르파티아 분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광활한 평원에 정착했던 일곱 헝가리 부족을 나타낸다고 한다.

낮 동안에는 테라스로 올라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계단마다 약간의 요금이 부과된다.

해가 진 이후부터는 무료로 도시의 불빛들을 감상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변과 부다 성 구역, 안드라시 대로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헝가리 왕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마차시 성당(Matyas templom)은 1269년 벨러 4세 왕에 의해 초기 고딕양식으로 처음 지어졌고 15세기 마차시 1세 왕에 의해 성당의 첨탑이 증축되면서 그의 이름이 성당에 붙여졌다.

오스만투르크가 헝가리를 지배하였을 때는 이슬람교의 사원인 모스크로 바뀌기도 하였다.

투르크에서 해방된 이후 다시 성당으로 환원되어 바로크양식으로 재건되었다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시대 때 고딕양식으로 개축되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인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당이다.

내부 스테인드글라스와 프레스코화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성당 옆에 있는 기마상은 성 이슈트반 1세이다.

언덕 위에 세워진 거대 왕궁, 부다페스트 부다 왕궁(Kiralyi palota)은 3세기 몽고 침입 이후에 에스테르곰에서 이곳으로 피난 온 벨라 4세가 방어를 위해 높이 솟은 부다의 언덕 남쪽 끝에 최초로 왕궁을 지었다.

이후 마차시 왕 시절에 모든 건물들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변형되었고, 궁전은 중부 유럽의 문화, 예술,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투르크에 의해 파괴당했다가 17세기 때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 현재 크기의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후 전쟁과 화재 등으로 다시 훼손되어 19세기 후반부터 대규모의 보수를 하였으나 정작 공사가 끝나 왕궁이 제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은 이미 공화국이 되어 왕이 없어진 1950년이었다.

지금은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현장을 복구하면서 수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노동운동박물관에는 헝가리 투쟁운동과 사회주의 하의 헝가리 모습을 담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국립미술관에는 11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강 건너 페스트 쪽에서 바라보는 왕궁의 야경은 세체니 다리와 어우러져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  황금빛 야경..
어둠이 내린 어부의 요새, 내려다보이는 황금빛 국회의사당과 다뉴브강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왕궁의 언덕에 올라서면 왕궁, 마차시성당, 어부의 요새가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방어한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 Halaszbastya)는 왕궁 언덕의 동쪽에 우뚝 서있는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된 건물로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지어졌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원래 중세 때부터 이 부근에 어부들이 많이 살았으며 큰 어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네오 고딕 양식과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되어 독특한 모양의 뾰족탑을 가지고 있다.

위로 올라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두나강과 어우러진 페스트 지구의 전경은 매우 아름답다.

중세에는 어부들이 도나우강에서 왕궁 지구에 있는 어시장으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동양적인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건국 당시의 7부족을 상징한다.

전체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얀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교회까지 뻗어있는 계단이 아름답다.

왕궁 언덕의 동쪽 면을 따라 180m 길이로 뻗어 있는 전망 좋은 성채로 도나우 강 건너 국회 의사당 건물과 부다페스트의 19세기 페슈트 지역이 내다보이는 훌륭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건물은 헝가리 건축가 프리제스 슐레크가 디자인했는데 그는 근처에 있는 고딕양식의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 교회'(마차스 교회)를 창조적으로 보수하고 재건축한 인물이기도 하다.

어부의 요새라는 이상한 이름은 현대적인 테라스가 건축되어 있는 오래된 성벽에서 유래했다.

이 성벽은 중세의 생선시장이 있는 곳 가까이 까지 뻗어 있었으며, 따라서 어부 길드 조직원들이 이 성을 방어했던 것이다.

일곱개의 탑에도 역시 각각 역사적인 의미가 있으며, 896년 카르파티아 분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광활한 평원에 정착했던 일곱 헝가리 부족을 나타낸다고 한다.

낮 동안에는 테라스로 올라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계단마다 약간의 요금이 부과된다.

해가 진 이후부터는 무료로 도시의 불빛들을 감상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변과 부다 성 구역, 안드라시 대로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헝가리 왕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마차시 성당(Matyas templom)은 1269년 벨러 4세 왕에 의해 초기 고딕양식으로 처음 지어졌고 15세기 마차시 1세 왕에 의해 성당의 첨탑이 증축되면서 그의 이름이 성당에 붙여졌다.

오스만투르크가 헝가리를 지배하였을 때는 이슬람교의 사원인 모스크로 바뀌기도 하였다.

투르크에서 해방된 이후 다시 성당으로 환원되어 바로크양식으로 재건되었다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시대 때 고딕양식으로 개축되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인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당이다.

내부 스테인드글라스와 프레스코화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성당 옆에 있는 기마상은 성 이슈트반 1세이다.

언덕 위에 세워진 거대 왕궁, 부다페스트 부다 왕궁(Kiralyi palota)은 3세기 몽고 침입 이후에 에스테르곰에서 이곳으로 피난 온 벨라 4세가 방어를 위해 높이 솟은 부다의 언덕 남쪽 끝에 최초로 왕궁을 지었다.

이후 마차시 왕 시절에 모든 건물들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변형되었고, 궁전은 중부 유럽의 문화, 예술,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투르크에 의해 파괴당했다가 17세기 때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 현재 크기의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후 전쟁과 화재 등으로 다시 훼손되어 19세기 후반부터 대규모의 보수를 하였으나 정작 공사가 끝나 왕궁이 제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은 이미 공화국이 되어 왕이 없어진 1950년이었다.

지금은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현장을 복구하면서 수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노동운동박물관에는 헝가리 투쟁운동과 사회주의 하의 헝가리 모습을 담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국립미술관에는 11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강 건너 페스트 쪽에서 바라보는 왕궁의 야경은 세체니 다리와 어우러져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2023년 8월 26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아침을~
7시간 차의 시차적응도 되지않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Hotel Queen Elizabeth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는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인근 산책, 피곤하지만 오늘 하루도 즐겁게~

다뉴브강 동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페스트지구..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트지구는 국회의사당, 국립극장, 과학아카데미 등이 핵을 이루고 국가중요기관이 집결하고 있어 정치행정지역을 이루고 있다.
또한 19세기 이래의 유서 깊은 건물도 많이 있고 1896년에 건설되어 유럽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이 달리고 있다.
부다페스트 내 가장 큰 성당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기독교의 성인으로 추대된 이슈트반 성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으로 5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탑은 96m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으며 이 숫자는 헝가리의 건국된 해인 896년의 96을 의미한다.
다뉴브강변 모든 건축물은 도시미관을 위해 이보다 높이 지을수 없게 규제되어 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오른손에 홀을, 왼손에 구슬을 들고 있는 성이슈트반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또한, 최대 번화가이자 쇼핑거리인 바치거리가 있다.

부다페스트 내 가장 큰 성당성 이슈트반 대성당(St. Stephen Basilica)

부다페스트 제1의 성당인 성 이슈트반 대성당(Szent lstvan bazilika)은 로마로부터 왕관을 받고 이 나라를 건국한 초대 왕 성 이슈트반 1세를 기려 1905년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성된 성당이다.

기독교를 헝가리에 전파한 위업으로 기독교의 성인으로 추대된 이슈트반 성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성당으로 5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내부 기둥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기둥이 지탱하는 아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돔의 높이는 국회의사당과 같이 896년을 기념하여 96m에 맞추어져 있으며,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다.

도나우 강변의 모든 건축물은 도시 미관을 위해 이보다 높이 지을 수 없게 규제되어 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오른손에 홀을, 왼손에 구슬을 들고 있는 성이슈트반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제단의 뒤쪽에 가면 성이슈트반의 오른손이 유리관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신성한 오른손 예배당’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 보면 정면에 성 이슈트반이 가로줄이 두 개인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상이 보인다.

이 십자가는 교황청으로부터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부여받은 성 이슈트반의 십자가이며 헝가리만이 이 십자가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 성당의 돔으로 올라가면 부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부다페스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 세체니 다리(Szecheny lanchid)

세체니 다리(Szecheny lanchid)는 도나우강의 진주로 알려진 부다페스트 상징물로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로써 1849년 개통되었다.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인 클라크 아담에 의해 건설된 이 다리는 경제와 사회 발전의 상징이었다.

이후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폭파되었으나 다리를 만든 지 100년이 되던 1949년에 다시 개통되었다.

세체니라는 이름은 이 다리에 공헌한 세체니 백작을 일컫기도 하지만 밤을 밝히는 전구의 모습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졌다.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다리로 자리하고 있다.

이 다리의 양쪽 입구를 지키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상은 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하여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하였으나 한 시민이 혀가 없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울지 못하는 사자'라고 불리며 헝가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자가 울면'이라는 표현은 불가능한 일을 일컫는 농담의 소재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나 부다와 페스트 사이의 계층 간의 불화가 생길 것을 우려해 말을 삼가고 언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으로 조각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