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 9일(제7일) - 3.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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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유럽(스페인 포르투갈)

스페인-포르투갈 9일(제7일) - 3.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

by 정산 돌구름 2019. 4. 8.


스페인-포르투갈 9일(제7일) - 3.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


 

2019년 4월 4일, 유럽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7일차...

새벽 5시30분에 이른 아침식사 대신 도시락을 받아 호텔을 체크아웃한 후 6시30분, 호텔을 출발한다.

카스테욘을 출발한지 약 5시간 만에 몬세라트에 도착한다.

몬세라트 수도원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기다린다.

케이블카를 타고 상부 수도원 입구에 도착하여 수도원을 둘러보고 12시15분, 몬세라트를 출발한다.

13시,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네타 해변(Platja de la Barceloneta)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식사 후 인근 해변을 잠시 둘러보고 몬주익 언덕으로 이동한다.


*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Barcelona)

스페인 카탈루냐 자치지방(autonomous community) 바르셀로나주의 주도인 바르셀로나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항만규모와 상공업 활동에 있어서는 스페인 제1의 도시이다.

교외지역을 포함한 바르셀로나는 비옥한 해안평야에 펼쳐져 있으며, 천연의 양항과 더불어 스페인 최대의 산업도시를 이룬다.
마르세유와 마찬가지로 페니키아의 도시를 기원으로 하며, BC 3세기 이곳을 지배한 카르타고(Carthage)인이 바르시노(Barcino),

즉 바르카가()의 도시라고 명명하였다.

BC 201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아직도 구()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고딕가(Gothic바리오·고티코스)에는 그 당시의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8세기에는 무어인이 점령하였으나 801년에 샤를마뉴(카를)가 이를 해방하고 지배하였다.
12세기에는 카탈루냐 백작과 아라곤 여왕의 결혼으로 아라곤 왕국이 이루어졌고, 바르셀로나는 그 수도로서 해운·수공업·금융의

중심으로서 번영하였으며, 14세기에는 그 절정에 달하였다.

이 무렵에 지어진 고딕식 대성당(13세기 말)을 비롯하여 역사적 건조물들이 구시가 중앙에 많이 남아 있으며, 당시 바르셀로나의

해양법()인 콘술라도 데 마르(Consolat de Mar)는 오랫동안 그 권위를 유지하였다.

1469년에 아라곤과 카스틸랴의 통일로 지방도시가 되었으나 고유의 카탈루냐어(català)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1550년에 창립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의 선진지역으로서 카탈루냐문화에 대한 긍지와 진보적 시민자치 전통 및 강력한 상공업을 기반으로

번번이 독립을 요구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17∼19세기에는 프랑스군의 침공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북부 카탈루냐 지방을 프랑스에 빼앗기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는 스페인의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1936∼1939년의 에스파냐내란 당시에는 공화정부

(인민전선정부)의 마지막 거점이 되었다가 1939년 1월에 프랑코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시가 중심인 람블라로에는 은행·상사()·고급상품점이 줄지어 서있고, 이 거리의 남단인 항구 부근의 푸에르타데라파스에는

콜럼버스의 기념상이 있다.
이 거리의 서쪽은 19세기까지 건물이 들어찼으며, 동쪽에 있는 중세까지의 도시지역을 포함하여 구시가라 부르는데, 그 주위를 론다스(Rondas)라고 하는 성벽 터전의 대로가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바깥쪽의 직교상()의 시가는 1860년의 도시계획으로 건설된 신시가이다.

바르셀로나의 공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섬유공업(방적업)인데, 19세기 후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그 영향으로 1845년에

14∼15만 명에 지나지 않던 인구가 1931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화학·금속공업도 가세하여 이베리아반도 제1의 도시가

되었다.
내란 후의 중앙집권화에 따라 한때 마드리드에 그 자리를 빼앗겼으나, 그 후 관개시설이 갖추어진 에브로강() 서부의 풍부한

농산물과 피레네의 수력()으로 자동차·항공기 공업, 식품가공업 등이 활발해지면서 번영을 되찾고 있다.

카탈루냐 문화의 중심지답게 인쇄업도 활발하며 지금도 문화·경제의 모든 면에서 카스틸랴 중심인 마드리드에 대한 대항의식이

강하다.
시가는 료브레가트강과 베소스강 방향으로 발전하고, 서부의 티비다보, 남부의 몬트후익 등의 구릉지는 시민들의 행락지이다.

1992년 제25회 하계올림픽대회가 개최되었으며,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12개를 획득, 종합순위 제7위에 올랐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바르셀로나를 다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의 건축물이 가득하다.

처음 그의 건축물을 마주할 때면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는 100년이 넘은 건축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현대적인

그의 감각 때문이다.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딕 지구 구시가지와 현대의 빌딩이 이어져 있는 신시가지까지 상반된 매력을 만날 수 있다.


바르셀로네타 해변(Platja de la Barceloneta) 

바르셀로네따(Barceloneta)는 시우타데야 공원의 남쪽에 있는 해안구역으로 람블라스 거리에서도 멀지 않다.

람블라스 거리가 끝나는 콜론 동상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바르셀로네따 해변이 나온다.

몰 데 라 푸스따(Moll de la Fusta)는 람블라스 거리에서 산책로를 따라 해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자 전용도로가 이어져 바다를 보며 라이딩이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바르셀로나 헤드(Barcelona Head)>를 비롯해 조각상도 설치되어 있다.

1888년 세계박람회를 계기로 바다를 메워 낸 길이다.
몰 데 라 푸스따 거리를 지나면 고급 보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가 나온다.

그 주변으로 고급 시푸드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몰 데 라 바르셀로네따 거리가 이어져 거리 공연을 하는 젊은이들도 볼 수 있다.

카탈루냐 역사박물관도 이 거리에 있다. 웅장한 건물 안에 카탈루냐 지방의 역사가 담긴 자료와 유물, 영상 등을 전시한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바르셀로네따 해변은 일광욕과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바르셀로나에 오는 유럽인들의 주목적이 바다수영과 태닝이라고 할 정도로 바르셀로나해변은 인기가 많은데 특히 바르셀로네따

해변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해변 근처에는 다양한 위락 시설이 들어서 있고,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도 상당수 있다.

해변과 연결된 포르트 올림픽지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조성된 지역으로 쌍둥이 빌딩 사이로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바르셀로네따 해변 끝에는 몬주익 지구까지 연결되는 케이블카 승강장이 자리한다.


























































So Close To You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 ( Francis Goya & Damian Lu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