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탐방, 남원 고남산(여원치~고남산~유치재)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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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9

백두대간 탐방, 남원 고남산(여원치~고남산~유치재)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9. 1. 24.

 

백두대간 탐방, 남원 고남산(여원치~고남산~유치재) 산행..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서 시내버스를 타고 말바우시장에서 뉴서석산악회 버스에 몸을 싣는다.

810, 말바우시장을 출발한 버스는 문화예술회관을 거쳐 호남고속도로와 광주-대구고속도로를 따라 달린다.

순창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남원IC를 빠져나와 남원 여원치에 도착한다.

10, 여원치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잠시 여원치 마애불을 보고 돌아와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대간길을 따라간다.

고남산에 오르는 길은 크고작은 능선봉을 오르내리는데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따스한 날씨에 고남산 아래 헬기장에서 모두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고남산을 지나면 임도를 가로지르며 내려서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매요리에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유치재까지 갔다가 돌아와 산행을 마무리한다.

7년여만에 다시 찾은 백두대간 고남산, 파란 하늘의 맑고 포근한 날씨에 조망이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산행일자 : 2019124()

기상상황 : 맑음(파란 하늘에 미세먼지도 없이 맑고 포근한 날씨에 사방으로 조망이 트임 0~7)

산행인원 : 광주뉴서석산악회 45- 회비 25,000

산행코스 : 여원재~562m~595m~785m~고남산~통안재~573.2m~매요마을~유치재~매요마을회관(전북 남원)

거리 및 소요시간 : 11.89Km(트랭글GPS), 4시간15분소요

  여원재(10:00)~여원치 마애불(10:05)~여원재(10:10)~562m(10:30)~방아산 갈림길(10:45)~785m(11:20)~고남산(11:40)~

  정상표지석(11:40~50)~헬기장(점심 12:55~13:25)~통안재(12:45)~573.2m(삼각점 13:25)~매요마을회관(13:55)~유치삼거리

  (14:05~10)~매요마을회관(14:15)

교통상황

 - 말바우(08:10)~문예회관(08:20)~호남고속~광주-대구고속~순창휴게소(08:55~09:15)~남원IC~19~24번국도~여원치(09:55)

 - 매요리(16:05)~24~19번국도~남원IC~광주-대구고속~순창휴게소~호남고속~문예회관(17:40)

산행지 소개

  백두대간 고남산(高南山 846.8m)은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 경계에 있어 운봉 북서쪽을 지키는 산으로 운봉분지, 산동과 남원 쪽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전북의 백두대간 산줄기는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시작되어 대덕산~삼봉산~덕유산~육십령~깃대봉을 지나 장수군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나누어 놓고, 백운산~봉화산을 지나 고남산을 솟구쳐 놓고, 지리산 방향으로 뻗어간다.

  고남산은 백두대간 주맥의 분수계로 남동쪽 물줄기는 운봉천과 남천을 지나 경호강을 통해서 낙동강으로 유입되지만 북서쪽은 산동면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으로 합류된다.

  남원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면 운봉 여원재에서 북쪽 끝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로 고남산이다.

  그리고 남원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를 달리다 지리산휴게소 중간쯤이나 남원에서 운봉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정상에 거대한 중계탑이 서있는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 산은 또 운봉평야에 우뚝 솟아올라서 예부터 위치상으로 전쟁의 요충지와 방어선이 되었다.

  고려 말 우왕 6(1380)에 왜구 2천명을 이끌고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阿只抜都)에 맞선 이성계장군이 무학(無學)대사와 변안렬(邊安烈)을 참모로 삼고, 퉁두란(佟豆蘭, 이지란)을 아장으로 삼아 1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양을 출발하여 전주 한벽당에 잠시 쉬었다가 대오를 정비한 뒤, 남원에 도착하였다.

  이때 멀리 운봉쪽을 바라보니 고남산이 유난히 뾰족하여 이곳에 올라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계하고 3일간의 산신제를 올려 천지신명께 승리를 기원하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고 왜장 아지발도를 사살하였다.

  왜장 아지발도는 일본에서 출발할 때 애첩이 조선 황산의 산신이 크게 노하여 불길하다 하여 출정을 만류하였으나 애첩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지발도가 황산에서 죄값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고남산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민들에 의하면 고남산을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를 때 이곳에 제단을 쌓아 제를 올렸기 때문이다.

  고남산 주변에는 이성계와 관련한 지명이 많이 전해오는데 여원치에서 고남산 초입은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지세를 보고 고남산의 산줄기가 이 마을까지 뻗어내린 모습이 마치 긴 다리를 이어놓은 것 같다하여 장교리(長橋里)라 하였다.

  고남산 아래에서 산신제를 올릴 때 주둔하던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일가의 권세가 크다 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

  그 여인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로 인해 그 아래 마을 밭에서 자라는 풀이 쪽빛()으로 변하였다고 하여 지금도 그 곳 지명이 남평리(藍坪里)로 되어 있다.

~^^~

 

 

 

 

 

 

운성대장군(雲城大將軍)이 서있는 여원치(女院峙)..

 

 

기원전 삼한시대 마한 별궁이 있었다는 전설, 그 궁터가 남아있는 계곡, 여원치 마애여래불에 얽힌 여인의 정절에 대한 이야기, 호국혼의 전설을 간직한 아흔아홉 구비 고개, 정상 주지봉 산신단에 소원을 빌면 한가지는 들어준다는 등 많은 전설이 전해진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이 고개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 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 한다.

한편으로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이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개마루 암벽에 여인상을 암각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女院)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연으로 여원치(女院峙)라 불렀는데 현지 주민들은 이 여원치를 연재라고도 부른다..

 

 

운봉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100가량을 내려서면 여원치 마애불(磨崖佛)..

1998년11월27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여원재 낭떠러지에 병풍처럼 둘러진 바위 가운데 양각되었는데, 높이 230cm, 어깨 너비 120cm이다.

 

 

 

왼쪽에는 가로와 세로 각 150cm 크기의 명문이 있는데 후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상호(相好)는 원형감이 풍부하며 미소를 머금었는데 눈·코·입은 형태가 뚜렷하다.

다소 두꺼운 가사, 신체 표현에 육감적인 면이 부족한 점 등으로 미루어 고려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가사는 통견으로 옷주름은 완만한 원형 형태지만 선이 굵어 무거워 보인다. 가사가 두껍고 광배는 음각으로 형식적으로 표현했으며 상체만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두상과 손목 등 일부는 훼손된 상태이다..

 

여원치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여원낙조(女院落照)라고 하여 ‘운봉팔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리산 연봉을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남원의 10경’에 선정되어 있다.


들녘에 지리산 산줄기에서 뻗어 나온 부운치와 팔랑치, 바래봉의 장엄한 능선이 펼쳐진다.고개 남쪽에는 국도 24번 도로가 이백면과 운봉읍을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여원재에서 대간길을 따라간다..

 

부드러운 소나무 숲길로 이어지는 대간길..

 

 

숲속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장화리 장동마을..

 

 

고남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마을로 지난다..

 

 

마을 뒤로 들어서면 고갯마루에서 우측으로 길이 이어진다..

 

 

숲길로 들어 가파르게 올라서면 긴해김씨 묘지가 있는 562m봉..

 

 

다시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진다..

 

 

부드러운 길을 따라 오르면..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

 

 

방아산 산성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이어진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

 

 

다시 묘역이 있는 능선봉을 넘어선다..

 

 

이제 정상까지는 750m..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묘역 뒤로 소나무 숲 능선이 이어진다..

 

 

거대한 입석을 지나면 가파른 나무계단..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계단을 오르면 고남산 전위봉인 785m봉.

조망이 트여 남원시가지가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좌측으로는 요천을 따라 88고속도로가 이어지고, 대성산 머머로 멀리 덕유산 줄기가 고개를 내민다..

 

 

건너편의 상투바위..

 

 

요천이 흐르는 산동면소재지 너머로는 만행산 천황봉이 우뚝 솟아있다..

 

 

바로 아래로는 권포리 들판, 그리고 멀리 지리산 능선..

태조 이성계가 산신제를 올릴 때 주둔하던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일가의 권세가 크다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고 한다...

 

 

지나온 능선과 남원시가지..

 

 

고남산 정상에 선다..

 

 

고남산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주민들에 의하면 고남산을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를 때 이곳에 제단을 쌓아 제를 올렸기 때문이다..

 

 

고남산은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 경계에 있어 운봉의 북서쪽을 지키는 산으로 운봉분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요천이 흘러내리는 산동과 남원 쪽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정상 바로 아래 공터에는 커다란 표지석..

 

 

백두대간 주맥의 분수계로 고남산의 물줄기는 동쪽으로는 운봉천과 남천을 지나 경호강을 통해서 낙동강으로 유입되지만, 북서쪽의 산동면으로는 요천을 통해서 섬진강으로 합류된다..

 

 

백두대간 고남산..

 

 

고남산은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백두대간의 끝자락 지리산 자락에 속한다..

 

 

고남산에 잠시 머무르다가 내려선다..

 

 

잠시 내려서면 무선중계소와 헬기장..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내려선다..

 

 

고남산에서 내려서는 길은 온통 얼어붙어 있다..

 

 

임도를 지나다가 다시 산길로 들기를 반복한다..

 

 

통안재에서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간다..

 

 

임도가 지나는 능선을 넘어서 다시 숲길이 이어진다..

 

 

삼각점이 있는 573.2m봉, 일부 지도에는 유치재로도 표기되어 있다..

 

 

계속되는 소나무 숲길..

 

 

좌측으로는 광주-대구간 고속도로 교각이 바라보인다..

 

 

밭둑길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이제 매요리도 가까워지고..

 

 

마을 뒤편에는 쓰러진 이정표.

 

 

고갯마루에서 매요리로 내려선다..

 

 

마을의 돌담길을 따라간다..

 

 

매요리(梅要里)는 운봉읍소재지로부터 4km지점이며, 군도 8호선이 마을앞을 지나고, 마을 뒤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를 지난다.

지세가 말의 형국을 닮았다 하여 「말 마(馬)」자와 「허리 요(腰)」자를 합하여「마요리(馬腰里)」라 칭하게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7년만에 끝나자 고승 사명당[유정(惟政)]이 산천을 두루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였다.

사명당은 매화의 꿋꿋한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니 지형과 인심에 맞게 매요리로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하여 매요리(梅要里)로 부르게 되었다.

고남산과 황산의 날줄기로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날줄기가 마을을 포옹하듯 휘감고 있다.

북쪽 뒷산이 구릉을 이루어 방풍 구실을 하니 풍해와 수해가 없는 곳일 뿐만 아니라, 농사에 더없이 좋은 환경으로 알려져 있다..

 

 

매요휴게소 앞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좌측으로 뾰족한 십자가 탑이 있는 교회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743번 지방도를 만나고..

 

 

도로를 따라가면 동학농민혁명유적지 유치(柳峙) 표지석이 있는 유치재..

 

 

다시 도로를 따라 50m가량을 가면 좌측 숲속에 유치삼거리 표지판이 서있다..

 

 

이곳에서 백두대간 인증샷을 하고..

 

 

다시 매요마을회관 앞으로 돌아와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 후 차가운 날씨지만 오손도손 모여 맛있는 뒤풀이, 뜨근한 국물과 소맥, 환상의 조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