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소금강 영암 월출산 산성대, 천황봉, 구정봉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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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8

호남의 소금강 영암 월출산 산성대, 천황봉, 구정봉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8. 3. 18.

호남의 소금강 영암 월출산 산성대, 천황봉, 구정봉 산행..


맑고 화창한 날씨라는 기상청의 예보, 아침에는 쌀쌀하고 안개가 끼어 조망이 시원찮다.

7시가 채 되지않은 시간 집을 나서 영암실내체육관 건너편의 산성대 주차장에 이르니 7시50분이 되지 않았다.

아침은 차가운 날씨다. 14명의 직원들이 함께 하였고, 차량 3대는 하산지인 도갑사에 두고 8시10분 출발한다.

산성대 코스를 따라 오르는데 가파른 오르막에 금방 땀이 베이고 귀뜰바위에 올라서니 영암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산성대에 올라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가야할 능선을 바라본다.

이어지는 암릉구간이지만 잘 정비된 등산로와 계단이 있어 위험은 없고 광암터삼거리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계단이 힘겹다.

정상에 올라서니 이른 시간이라서 인지 10여명도 죄지 않은 인파만 있고 한가하다.

정상에서 내려서 조망이 트이는 능선봉에서 잠시 쉬어간다.

바람재를 지나 구정봉에 올라섰다가 향로봉 옆을 지나 미왕재에 이른다.

이제부터는 가파른 내리막, 동백나무 숲 지대를 지나면 가파름도 없이 부드러운 내리막이 이어지고 계곡을 건기를 반복한다.

도갑사 경내를 둘러보고 미리 대기한 차를 타고 군서면에 있는 고향산천에서 닭요리와 함께 소맥으로 마무리한다..

 

산행일자 : 2018317()

기상상황 : 맑음(구름 조금 낀 맑고 포근한 날씨였으나 옅은 안개 3~12)

산행인원 : 직원 14

산행코스 : 주차장~산성대~통천문~천황봉~바람재~구정봉~향로봉~미왕재~도갑사(전남 영암, 강진)

구간별소요시간 : 10.1km(트랭글 GPS), 6시간 5분소요

  주차장(08:10)~산성대입구(08:15)~귀뜰바위(08:30)~월출제일관(09:00)~산성대(09:10~20)~고인돌바위(09:40)~

  광암터 삼거리(10:10)~통천문삼거리(10:20)~천황봉(10:30~50)~능선봉(11:05~30)~남근바위(11:40)~바람재(11:50)

  ~베틀굴(12:00)~구정봉(12:10~20)~향로봉 능선(12:30)~미왕재(13:00~05)~계곡(13:20~25)~도선국사비(13:50~

  55)~도갑사(14:00~10)~주차장(14:15)

주요 봉우리 : 천황봉(810.7m), 향로봉(743.9m), 구정봉(738m), 산성대(486m)

교통상황 : 광주(06:40)~순환도로~남평~1번국도~13~춘양교차로~819지방도~산성대주차장(07:40)

산행지 소개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리는 출산(月出山 810.7m) 설악산 및 주왕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꼽힌다.

  , 지리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 정읍 내장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도 불린다.

  삼국시대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부터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렸다.

  월출산은 “달뜨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수한 문화자원, 그리고 남도의 향토적 정서가 골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형국립공원이다.

  호남정맥 노적봉에서 분지한 땅끝지맥 중간에 솟아, 천황봉을 중심으로 장군봉, 사자봉, 구정봉, 향로봉 등이 연봉을 이룬다.

  첩첩 산줄기 위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일출과 서해를 진홍빛으로 물들이는 일몰광경은 호남 제일의 장관으로 손꼽힌다.

  천황봉 동쪽의 바람골 일대는 경사가 매우 급하며, 그 밖의 사면은 비교적 완만하다.

  이곳에서 영산강과 탐진강의 지류들이 발원해 사방으로 흘러내리며, 곳곳에 깊은 계곡과 폭포를 형성했다.

  산세가 매우 크고 수려하며, 기암괴봉과 비폭(飛瀑),벽담(碧潭), 많은 유물유적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월출산은 삼국사기에 월나군(月奈郡)의 월내악(月奈岳)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지리지에 영암에 월출산이 있다. 신라는 월내악(月奈岳)이라고 부르고 소사(小祀)에 올랐으며, 고려 초에 월생산

  (月生山)이라고 불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영암군 남쪽 5리에 있다. 신라 때 월나(月奈)산이라 불렀고, 고려 때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불렀다.

  속설에 본국의 외화개산(外華蓋山)이라 칭하기도 하고, 작은 금강산 또는 조계산(曹溪山)이라고도 한다.”라고 나온다.

  또한  여지도서나주 쌍계산(雙溪山)에서 뻗어 나와 고을의 으뜸이 되는 산줄기가 된다. 관아의 남쪽 5리에 있다.”라고

  월출산을 소개하였다.

  월출산은 주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향로봉(744m), 구정봉(738m), 양자봉(571m), 장군봉(510m), 주지봉(490.7m),

  문필봉(450m), 노적봉(586m), 사자봉(668m), 사리봉(391m)과 월각산(458.3m), 도갑산(400.9m)이 있다.

  기암은 산성대, 경포대를 비롯하여 삼동석, 어사둔병, 월대암, 만물상, 귀뜰바위, 연천바위, 구멍바위, 사자바위, 말바위,

  돼지바위, 봉바위, 미사일바위, 칼바위, 방바위, 책바위, 탕건바위, 문바위, 가세바위, 범바위, 해암바위, 시루바위, 거북바위,

  남근바위, 불상바위, 해골바위, 동물바위, 병풍바위, 곰바위, 신선바위가 있다. 큰 계곡으로는 도갑사계곡, 무위사계곡, 금릉

  경포대계곡, 바람(천황사)계곡, 큰골계곡, 은천계곡, 구절계곡이 있다.

  동쪽 사면의 구절계곡은 공원내 최고의 풍치지구로 천태만상의 기암괴석 사이로 7단계의 폭포와 바위가 있는 칠치폭포,

  구절폭포 등이 있다. 북쪽 사면의 은천계곡은 용추폭포를 비롯해 황치폭포, 대동폭포, 은천폭포, 용수폭포 등이 있다.

  그밖에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의 남쪽 경포대계곡에는 월출산 명소인 금릉경포대가 있다.

  고개는 노루재(黃峙), 불티재, 바람재, 미왕재 등이 있다.

  남서쪽으로 내려가는 길목 미왕재 일대에는 억새가 우거진 갈대밭으로 유명하다.

  월출산 기암인 산성대(山城臺 486m)는 천황봉 북쪽으로 뻗은 능선상 봉우리로 행정구역상 영암읍 용흥리에 속한다.

  산성대라는 명칭은 예전에 영암산성 봉화대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이 구간을 산성대능선이라고 부른다.

  산성대 구간은 그 동안 안전문제로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20151029일 안전시설을 갖추고 30년만에 개방하였다.

  구정봉(九井峰 738m)은 월출산 제2봉으로 동굴 같은 좁은 길을 타고 올라서면 장정 20명이 앉을 수 있는 널찍한 암반이다.

  정상에 오르면 깎아지른 듯 수천 척의 절벽이 눈앞에 전개되어 월출산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봉우리의 능선을 경계로 북쪽은 영암군 영암읍, 남쪽은 강진군 성전면이 되며, 구정봉 남쪽으로는 도갑산·월각산 등이 있다.

  『고려사지리지에 “월출산에 구정봉(九井峯)이 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해 그 이전부터 지명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등에 “꼭대기에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높이가 2길이나 되고

  옆에 구멍이 1곳이 있어 한 사람 정도는 드나들만하다. 그 구멍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가면 20명이 앉을 수 있다.”라고 기록

  하고 있다.

  봉우리 꼭대기의 평평한 곳에 '()'모양처럼 움푹 들어가 물이 담겨 있는, 마치 동이 같은 곳이 아홉 군데가 있기 때문에

  ‘구정봉’이라 하였다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전한다.

  세조 때 수미선사(守眉禪師)가 온 나라에 가뭄이 들어서 월출산 구정봉의 물을 가져다 도갑사 법당에서 기우제를 지낸 후에

  가뭄을 극복했다는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편평한 바위 위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9개의 웅덩이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과 함께 하여 선녀와 마을 총각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온다.

  한편, 옛날 구림에 살던 동차진이란 사람이 이곳에서 하늘을 향해 오만과 만용을 부리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아홉번의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월출산은 자연경관과 많은 문화유적을 보호하고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했고, 19886월에

  20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기기묘묘한 암봉으로 거대한 수석 전시장 같은 월출산은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10012위로 산행코스가 만만치 않지만

  3월의 봄맞이 동백산행, 4월의 도갑사에 이르는 도로에 벚꽃이 만발하는 벚꽃산행, 가을산행 순으로 인기가 있다.

  또한, 월출산은 경관이 아름다우며 난대림과 온대림이 혼생하여 생태적 가치가 크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다..

 

 

 

 

 

 

무료주차장인 산성대 주차장,  도로 건너편의 영암실내체육관..

 


주차장에서 기찬묏길을 따라 오른다..

()찬묏길은 2005년 걷기코스 개통 당시에는 기 웰빙산책로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20099월 탑동 약수터에서 월출산 기찬랜드를 거쳐 용추폭포에 이르는 5.5구간을 조성한 기찬묏길 사업은 2015년까지

7년에 걸쳐 약 180억원을 투입해 천황사지 주차장부터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까지 총 다섯 구간 40에 달하는 코스이다.

1구간(7.5)은 천황사 주차장에서 월출산 기찬랜드로 영암의 기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구간이다.

2구간(7.9)은 기찬랜드에서 월암마을로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와 월출산 12대 기암, 한옥과 장승, 영암 도기를 체험

  하는 문화체험구간이다.

3구간(7.8)은 월암마을에서 학산 용산마을로 왕인박사와 도선국사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역사체험구간이다.

4구간(8.9)은 용산마을에서 학산마을로 월출산과 영암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생태 체험 구간이다.

5구간(8.2)은 학계마을에서 미암면 미암리로 삼림욕과 영암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오감체험의 구간이다..

 


기찬묏길을 따라오르다가,

 


기찬묏길을 좌우로 보내고 산성대 탐방로 입구로 들어선다..

 


산죽길을 지나 오르면 귀뜰바위와 가야할 능선이 바라보인다..

 


조망이 트이며 영암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성대가 올려다보이고,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하얀 줄기를 남기며 날아가고 있다..

 


능선봉에 올라서면 가야할 능선너머로 월출산 천황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월출제일관에 올라선다..

 


월출제일관(月出第一關)은 ‘월출산을 오르는 첫번째 입구’라는 뜻과 ‘월출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산성대 봉화(烽火)시설을 통제하는 성문으로 ‘문바위’라고도 불렀다.

예전에는 산성대에 군사를 주둔시켜 왜적이 침략하거나 급한 변란이 일어나면 봉화로 나주 금성산 봉수대로 연락하였다..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 산성대에 이른다..

 


산성대에서 바라본 월출산 천황봉..

 


그 옆으로는 구정봉에서 뻗어내린 지능선.. 

 


산성대에서..

 


구정봉 지능선을 배경으로..

 


산성치를 지나 놀라서 바라본 산성대와 영암시가지..

 


우측으로 귀달바위, 영암시가지와 영암천, 그리고 넓은 들판..

 


다시 가파르게 올라선 능선봉..

 


또다른 능선..

 


바로 앞 고인돌 바위가 고개를 내밀고, 멀리 천황봉..

 


고인돌바위를 들어선다..

 


고인돌바위를 지나 올라선 능선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능선봉에서..

 


지나온 능선..

 


천황봉의 또다른 모습이다..

 


지나온 산성대 능선이 아름답다..

 


건너편 장군봉과 육형제 바위..

 

 

가야할 능선 건너편으로 오뚝 솟은 사자봉도 고개를 내민다..

 


건너편의 장군봉 능선..

 


지나온 산성대 능선..

 


광암터 삼거리를 지난다..

 


사자봉 아래로는 월출산 구름다리와 사자저수지..

 

 

월출산 구름다리는 월출산의 매봉과 사자봉을 연결할 목적으로 19781211일에 개통하였다.

개통을 위해 도비 300만 원, 군비 770만 원, 산악회 성금 200만 원이 들었으며, 길이 51m, 너비 60cm 였다.

이로 인해 기존에는 3, 4시간 걸리던 매봉에서 사자봉까지의 시간이 불과 5분으로 단축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후화와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되자 2005510일 철거되었다.

새로운 구름다리는 2005년 말에 완공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등의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4개월이 늦어진 2006512일에 재개통되었다.

지금의 구름다리는 길이 54m, 너비 1m로 최대 200명이 양방향 통행을 할 수 있으며 흔들림도 크게 줄었다.

해발 510m, 지상 120m 높이의 허공에 설치된 월출산 구름다리는 당시 산악 지역 구름다리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아찔하면서도 빼어난 경관을 지녀 월출산의 대표적 명물로 꼽힌다..

 


경포대와 구름다리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통천문 삼거리..

 


통천문으로 오른 긴 오르막 계단..

 


통천문을 끼어 넘는다..

 


잠시 내려섰다가 오르면 월출산 천황봉..

 

 

남원 지리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 정읍 내장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꼽힌다..

 


삼국시대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부터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렸다고 한다..

 


호남정맥 노적봉에서 분지한 땅끝지맥 중간에 솟아 천황봉을 중심으로 장군봉, 사자봉, 구정봉, 향로봉 등이 연봉을 이룬다..

 


호남의 소금강 답게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월출산 소사지(小祀址) 표지석이 있다.

소사지는 천신이 산에 깃들었다하여 신라가 통일을 이룬 뒤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국가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전국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제사 터로 대사지 3, 중사지 24, 소사지 23곳 중 유일하게 유적이 확인된 곳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소사처(小祀處)인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산 23-3번지에서는 1994년에 토제 향로,

토우 조각, 고려 시대의 녹십자 접시, 청자 조각이 발굴되었다.

특히, 신라 때 구림 포구의 안전 항해와 풍요를 기원하던 철마제도 함께 출토되었다..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동으로는 사자봉과 출렁다리, 그 아래로 사자저수지가 바라보인다..

 


동북으로는 장군봉 능선 너머로 영암읍들판과 쌍정제, 그리고 풍력발전단지인 활성산이 희미하다..

 


북으로는 산성대 능선 너머로 영암읍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서쪽으로는 은천계곡과 춸출산 지능선..

 


서쪽으로는 구정봉에서 뻗어내린 지능선, 그 뒤로 노적봉~시리봉 능선이 하얗게 바라보인다..

 


남서쪽으로는 가야할 바람재가 발 아래 있고, 능선따라 향호봉이 솟아있다..

 


한가로운 천황봉에서 후미가 오기를 기다린다..

 


마지막 한사람을 기다리며..

 


최후의 1인이 도착하여 모두 모여 한 컷..

 


가야할 구정봉을 배경으로..

 


구정봉을 향해 긴 내리막을 따라 내려선다..

 


한참을 내려서 부드러운 길을 지나 올라서면 널따란 암봉에서 잠시 쉬어간다.

암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천황봉..

 


가야할 장군바위가 있는 구정봉과 향로봉..

 


푸짐한 간식거리와 맥주로 목을 축인다..

 


천황봉에는 이제 사람들로 붐빈 모습이 바라보인다..

 


잠시 내려서면 돼지바위를 지난다..

 

 

구정봉과 향로봉..

 


큰바위 얼굴도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

 


남근바위를 지난다.

남자의 성기를 닮은 데서 유래하였으며, 봄이 되면 바위 꼭대기에 철쭉꽃이 피어 생명의 탄생을 나타낸다고 한다.

구정봉 아래에 있는 여성의 성기를 닮은 베틀굴과 함께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하여 월출산국립공원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우람한 남근바위는 만지거나 껴안으면 젊어진다는 속설이 있으며, 베틀굴과 함께 음양을 상징한다..

남근바위 끝에 있는 산철쭉은 지난 2012년 고사하였으나 2014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남근바위를 넘어서면 바로 앞 장군바위가 다가온다..

 


구정봉을 이루는 장군바위의 큰바위 얼굴..

큰 바위 얼굴’1850년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thorne)의 단편소설로 우리나라에서 피천득이 번역하였다.

어니스트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동경하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미국 뉴햄프셔주 프랑코니아 주립공원 내 화이트 마운틴의 큰 바위 얼굴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 보다도 10배 정도 큰 월출산 큰바위 얼굴은 머리부터 이마, , , , 수염까지도 선명하여 생김새가 영락없는 사람이다.

얼굴의 길이가 자그마치 100m나 된다...

 


각양각색의 바위군상..

 


강진 금릉 경포대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바람재를 지난다..

 


큰바위 얼굴의 또다른 모습..

 


사람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베틀굴 갈림길에서 베틀굴로 향한다..

 


구정봉 암반에 있는 베틀굴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베틀굴은 임진왜란 당시 이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전쟁을 피해 이곳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구정봉 아래 해발 고도 약 670m이며, 굴속에는 물이 고여 있지만 바닥이 흙이라서 음용수로는 적당하지 않다.

베틀굴의 깊이는 10m에 이르고, 베틀굴 속에는 항상 음수(陰水)가 고여 있어 음혈(陰穴)이라 부른다.

이는 굴 내부의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와 같은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굴은 천왕봉 쪽에 있는 남근석을 향하고 있다..

 


음혈에서 가파르게 올라서면 구정봉 능선에 이른다. 좌측으로는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으로 내려선다..

 


직진하여 바위 틈으로 나있는 조그만 공간을 따라 올라선다..

 


구정봉에서 바라본 향로봉..

 


구정봉에서 바라본 천황봉..

 


천황봉에서 땅끝지맥 불치재로 이어지는 지능선..

 


지나온 천황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성대 능선 너머로 영암들판..

 


모두 모여 천황봉을 배경으로..

 

 

천황봉 남서쪽에 위치한 구정봉(九井峯)은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도갑산·월각산 등이 있다.

고려사지리지에 “월출산에 구정봉(九井峯)이 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해 그 이전부터 지명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등에 “꼭대기에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높이가 2길이나

되고 옆에 구멍이 1곳이 있어 한 사람 정도는 드나들만하다. 그 구멍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가면 20명이 앉을 수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봉우리 꼭대기의 평평한 곳에 ‘()’모양처럼 움푹 들어가 물이 담겨 있는 마치 동이 같은 곳이 아홉 군데가 있기 때문에

구정봉(九井峰)이라 하였다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전한다.

편평한 바위 위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직경 2~3m 안팎의 큰 웅덩이 9개가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서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과 함께 선녀와 마을 총각에 얽힌 이야기도전해온다.

세조 때 수미선사(守眉禪師)가 온 나라에 가뭄이 들어서 구정봉의 물을 가져다 도갑사 법당에서 기우제를 지낸 후에 가뭄을

극복했다는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구정봉은 장정 50명이 앉을 만큼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암반을 신령암이라고 한다..

 


한편, 옛날 구림(鳩林)에 살던 동차진이란 사람이 이곳에서 하늘을 향해 오만과 만용을 부리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아홉번의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동차진은 구림에 유배된 한 장군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 동차진은 겨드랑이에 깃털을 달고 있었는데 백일이 되자 이가 나고 세 살이 되자 맷돌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일곱 살에는 어른처럼 나뭇짐을 지고 다녀 구림에서 장사 났다.는 소문이 났다.

동차진의 어머니는 동차진이 비뚤어질까 봐 걱정하다가 집에 들른 노인에게 아들을 맡겼다.

그리하여 동차진은 노인을 따라 금강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무술을 익히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동차진을 시험하기 위해 밥을 지을 동안 산봉우리에 올라가 석성(石城)을 쌓으라고 하였다.

이 시합에서 어머니가 이기자 동차진은 화를 내며 돌을 내던졌다.

때마침 오랑캐가 쳐들어오자 어머니는 동차진을 타이르며 오랑캐가 쳐들어왔으니 나가서 싸우라고 하였다.

동차진이 구정봉에 올라 도술을 부리자 노략질을 일삼던 오랑캐들의 머리 위로 돌멩이들이 떨어져 단번에 몰살되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그릇된 공명심이나 만용으로 오만방자하게 도술을 쓰는 동차진에 화가 나 벼락을 아홉번 내려 동차진을 죽였다.

이렇게 죽은 동차진은 구정봉에 사람들이 올라오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신령암을 세 번 움직여 경계를 시켰다.

바위가 세 번 움직인다 하여 삼동석(三動石)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정봉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내려선다..

 


헬기장, 그리고 향로봉..

 


헬기장을 지나면 천황봉, 도갑사, 구정봉 삼거리에서 산죽길로 들어서 도갑사 방향으로 이어간다..  

 


향로봉을 우회하여 올라서면 능선에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위험하여 포기하고 억새밭으로 향한다..

 


멀리 억새밭 너머로 주지봉, 문필봉 능선이 바라보인다..

 


미왕재에서 뻗어내린 노적봉 능선..

 


뒤돌아본 풍경..

 


다시 능선을 넘어서고..

 


큰골 너머로 노적봉..

 


헬기장을 지나 내려서면..

 


미왕재가 다가온다..

 


바위 위에서..

 

 

미왕재(尾旺嶺)는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서 월곡리로 넘어가는 해발 540m 고개로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명 억새밭, 억새 삼거리로 더 많이 알려져 가을에 관광객이 많고, 초본식생을 보호를 위해 특별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다.

미왕재는 과거 숲이었으나 산불이 나면서 나무가 불에 타고 억새가 들어와 군락을 이루었다.

월출산의 주봉인 천황봉을 지나 주능선을 따라 구정봉, 향로봉을 거쳐 도갑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억새밭으로 유명하다..

 


긴 내리막 계단길이 이어진다..

 


가파른 내리막길..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며 경사가 완만해진다..

 


계곡을 만나 잠시 땀을 씻어낸다...

 


엊그제 내린 비로 계곡에는 제법 많은 물이 흘러내린다..

 


활짝 핀 동백꽃, 동백 숲에 비해 꽃은 그다지 많이 피지 않았다..

 


부드러운 편벡 숲길을 지나면..

 


수미교를 건너고..

 

 

보물 제1395(2004126)로 지정된 도갑사 도선수미비(道詵守眉碑)..

통일신라시대의 선승인 도선국사와 도갑사를 중창한 조선시대 수미왕사를 추모하는 비이..

 

 

비문의 비의 뒷면에 새긴 음기(陰記)에 따르면,

건립 동기는 옛날의 비가 마모되어 글자를 알 수 없자 승 옥습(玉習)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발원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건립연대는 1636(인조 14)에 시작하여 1653(효종 4)에 완성하였다.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가 구비된 석비로 도갑사의 부도전(浮屠田)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517이며, 귀부는 방형의 대좌 위에 머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틀고 있다. 머리는 용두가 아닌 거북 머리 모양이나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위에서 송곳니가 날카롭게 뻗어 있고 앞발은 다섯 개의 발가락을 내었다.

비신은 화강암이며, 전후면에 글씨가 음각되고 측면에는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두마리 용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전면 상단에는 전서체로 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이라 제액을 만들었고

당시 형조판서인 김광욱(金光煜)이 썼다.

비의 좌측 비문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이 지었으며, 글씨는 예조판서 오준(吳竣)이 썼다.

이 비문은 총 16714(자경 45)이며 비제(碑題)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병서(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

守眉大禪師碑銘幷序)”이다.

전면 우측의 비문은 총 10512(자경 23)로서 비면 상하를 모두 채운 것이 아니고 비면 중간에서 시작하였다.

찬자는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인 이경석(李景奭)이며, 글씨는 홍문관 제학 오준(吳竣)이 썼다.

좌면의 비문과 음기의 찬자는 각각 홍문관 부수찬 이수인(李壽仁), 홍문관 교리 정두경(鄭斗卿)이다.

보통 비는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이 비는 비명이 도선국사와 수미선사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다.

비문 내용은 주로 도선국사에 관한 것이며, 수미선사에 대해서는 천순 원년(1457)에 도갑사를 중창한 내용이 전하고 있다..

 


도갑사 미륵전..

안에는 보물 제89(1963121)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불상 도갑사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모셔져 있다..

 

 

 

불상과 광배를 하나의 긴 석재에 조각한 불상으로 사각 대좌 위에 안치되었으며 마손이 적어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 덩어리의 석재를 배 모양으로 다듬고, 다시 불좌상을 새겼다.

광배와 불상이 한 덩어리이며, 대좌는 또 다른 석재를 깎아서 만들어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든 조각으로는 상당히 고부조이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螺髮)을 붙인 불상의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肉髻)를 높게 표현했다.

신라 하대의 불상에서 육계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낮게 만들어진 것과 대조를 이룬다.

얼굴은 타원형이며 눈썹이 깊고, 가늘게 뜬 눈은 눈꼬리가 귀 쪽으로 길게 파였다.

콧날이 뚜렷하면서 넓적한 코, 두툼한 입술은 신체에 비해 이목구비의 인상을 강해 보이게 한다.

얼굴에 비하여 신체는 입체감이 없고, 허리가 긴 상체는 평면적으로 처리되었으며, 가슴과 배의 구분이 없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은 항마촉지인의 불상이지만 경직되고 형식화된 수법을 보여주지만, 투박하고 소략한 세부묘사,

높이 솟은 육계, 좁고 길쭉한 배 모양의 광배는 고려 초기 석불의 특징이다.

3m에 이르는 대형의 석상이라는 점과 단순하고 장식이 없는 사각형의 대좌 역시 고려 전기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도갑사를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창건했다는 사찰의 연혁에 비추어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년이라 할 수 있다..

 


잠시 내려서면 최근에 세운 도갑사 대웅보전, 바로 앞에 도갑사 오층석탑(五層石塔)이 있다.

이 오층석탑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51(198761)로 지정되었다가 2005613일 보물 제1433호로 승격되었다.

이 석탑은 5층의 탑신과 옥개석을 갖추었고 상륜부(相輪部)에 노반(露盤)이 있고 꼭대기에는 보주(寶珠)를 얹었다.

탑의 기단부 지대석은 지하에 매몰되어 확인할 수 없으나 단층 기단인 듯하다.

탑의 조성 양식으로 보아 지역적 특색을 살린 고려시대의 석탑 양식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갑사 대웅보전은 1974924일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한국전쟁에도 소실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였으나 1977년 참배객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전소되었다.

바로 중창불사를 하여 1981년 복원하였으나 추녀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2004년 복원불사를 시작하였다.

4년간의 공사로 2009년 기존의 1층 건물에서 고증에 따라 2층의 다포식 팔작지붕의 조선초기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정면 5칸에 측면 4, 바닥 면적이 250인 이 대웅보전은 외부 중층에 내부 통층, 온칸몰림 방식으로 팔작지붕을 얹었다.

대웅보전 복원을 위해 전남도와 영암군에서 약24억원을 지원하였다고 한다..

 


낙성식과 함께 삼존불 점안법회를 봉행하였다.

홍송으로 된 삼존불의 높이는 약 4m에 달하며, 후불탱화도 홍송으로 만들었는데 높이가 6m에 이른다..

 


국보 제50(19621220)로 지정된 해탈문(解脫門)은 정면 3, 옆면 2, 단층 맞배지붕의 주심포(柱心包) 형식이다.

석조기단(石造基壇) 위에 선 규모가 작은 문으로, 중앙 칸은 통로로 되어 있다.

원래 금강역사상을 안치하였다고 하나 없어지고, 뒤쪽 좌우 칸에 보물 제1134호인 2구의 목조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구조는 약한 배흘림을 지닌 둥근기둥 위에 이출목(二出目)의 공포(栱包)를 올렸고, 그 위에 대들보를 올렸다.

이 문의 특이한 점은 공포가 구조적으로는 고출목 같으나 형태는 출목으로 보이고, 또 대들보나 마루보 위에서 마루도리나

대들보를 지탱하는 포대공의 양식이 기둥머리에 있는 공포와 전혀 달라 마치 다포집 양식의 공포와 같은 형태로 된 점이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산문(山門) 건축으로 매우 중요하다..

 


해탈문을 나서면 도갑사 일주문, 國中第一禪宗大刹(국중제일선종대찰) 현판과 세로로 덕해문(德海門) 현판이 걸려있다..

 


전면으로는 월출산 도갑사 편액..

 

 

사찰을 나서면 다리를 건너면 500년을 넘긴 팽나무 보호수가 서있다.. 

 

The Saddest 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