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기행] 충남유형문화재 제36호, 공산성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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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기행] 충남유형문화재 제36호, 공산성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by 정산 돌구름 2018. 1. 25.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 공주 공산성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충남유형문화재 제36(197618)로 지정된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는 공산성 내의 임류각 아래 비각 안에 위치한다.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군기를 엄히 단속하고, 주민을 정성껏 보살핌

으로써 왜군의 위협 하에서도 안전하게 생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하였던 명나라의 장수 제독(提督) 이공(李公), 위관(委官) 임제

(林濟), 유격장(遊擊將) 남방위(藍芳威)의 업적을 기리는 사은송덕비(謝恩頌德碑)이다.

명국삼장비의 처음 건립 시기는 이들이 공주에 주둔하였던 이듬해인 1599(선조 32)이었다고 한다.

원래 비석은 금강변 남안에 세워졌었는데, 그 후 홍수로 물속에 매몰되어 자취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임제의 비문 추기에 의하면, 고을 아전의 꿈에 홀연히 백발노인이 나타나 간곡하게 비를 다시 세우도록 부탁하였으며, 이를

전해들은 당시 관찰사 송정명(宋正明)이 적극 지원하여 1713(숙종 39) 옛 비에 의거하여 새 비석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이들 비석은 다시 일본인들에 의하여 공주 읍사무소 뒤뜰에 매몰당하는 운명에 처해졌다가 1945

해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복원되었다.

비의 지붕돌은 지붕[옥개(屋蓋)] 모양이나 대형의 보주(寶珠)를 올려 높게 처리하였다.

비신(碑身)은 박리 현상으로 인해 비문이 선명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왜구(倭寇) 등의 글자를 훼손하였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으로 비면에 탄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망일사은비(忘日謝恩碑)는 총 높이 172, 비신의 높이 163, 너비 60, 두께 32, 자경 3×4이다.

1713(숙종 39) 관찰사 송정명이 3비의 건립 내력과 경위를 밝힌 것으로 삼장비문의 서론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비에는 1599(선조 32) 당시 공주에 주둔한 제독 이공을 칭송하는 원비문이 적혀 있다.

성균진사 이식(李拭)이 찬하였고 관찰사 송정명이 서하였다. 제천현감 이진유(李眞儒)가 전을 썼다.

위관임제비(衛官林濟碑)는 총 높이 173, 비신의 높이 154, 너비 48, 자경 3×4이다.

이 비는 성균진사 이식이 찬하였고 숙종조 개수 시에 김위성(金渭聖)이 서하였으며 제천현감 이진유가 전을 썼다.

유격장 남공종덕비(遊擊將 藍公種德碑)는 총 높이 168, 비신의 높이 157, 두께 15, 너비 70, 자경 3×4이다.

 

공산성 임류각(臨流閣)

백제 동성왕 22년(500년)에 지어진 건물로 공산성 정상부에 위치하며 주변은 편평한 대지로 다듬어져 있다.

누각의 높이는 15m, 2층 구조로 이루어진 대형의 건축물이며 백제시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누각의 용도는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었던 장소로 추정된다.

1980년 공산성을 발굴하면서 임류각 터를 알게 되었고 1993년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