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기행] 충남도 문화재자료 제51호, 공산성 영은사(靈隱寺)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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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기행] 충남도 문화재자료 제51호, 공산성 영은사(靈隱寺) 대웅전

by 정산 돌구름 2018. 1. 25.

충남도 문화재자료 제51호, 공주 공산성 영은사(靈隱寺) 대웅전..

 

공산성 안에 있는 영은사(靈隱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19세기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절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석탑 재료가 고려 초기의 유물이므로 그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일설에는 1458(세조 4) 세조의 명으로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세조 때에는 묘은사(妙隱寺)라고 하였다.

1592(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들이 모여 훈련을 받고 승병장 영규(靈圭)의 지휘 아래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

1616(광해군 8) 이 절에 승병장을 두고 도내 사찰을 관리하게 하였다.

특히 1624(인조 2) 이괄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인조가 이 절로 피난을 오기도 하였으며, 이때 절 이름을 영은사로 고쳤다.

인조가 이 절이 국방의 요지임을 깨닫고 승병을 계속 주둔하게 함으로써 호서의 대표적 호국사찰이 되었다.

건물로 원통보전과 관일루(觀日樓) 등이 있다.

이중 원통보전(대웅전)은 충남도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된 전각이다.

정면 3, 측면 2칸의 약 6평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뒤에는 아미타후불탱화와 칠성탱화, 신중탱화·산신탱화·독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이중 아미타 후불탱화는 1888(고종 25) 약효(若效)가 그린 것이고, 나머지는 최근 제작된 것이다.

영은사 원통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 79㎝이며,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2001년6월30일)로 지정되어 있다.

약간 움츠린 듯한 자세로 팔각의 대좌() 위에 앉아 머리에는 극락조()가 새겨진 보관을 쓰고 있다.

17세기 중엽의 불상 양식으로 보살상이면서 불상과 같은 법의()의 표현과 불신()의 자세 등은 원통전 주존으로서 

불격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신체의 비례가 적당하고, 자애로운 얼굴 표정과 눈·코·입·귀의

표현,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 각 부분의 표현이 자연스럽고 빼어나며 목조 보관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충남문화재자료 제376호(2001년6월30일)인 아미타후불탱화는 원통전 관음보살좌상 후불탱화로 가로180㎝, 세로166㎝이다.

아미타불은 청련좌 위에 결가부좌()한 채 하품중생인()을 짓고 있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무릎 아래쪽 좌우의 협시보살은 연꽃가지와 여의()를 들고 서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로 표현하였다. 전체적으로 큰 신체에 긴 얼굴과 작게 표현된 눈·코·입 등은 18세기 이후 불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림의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석가모니의 십대제자들도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같은 특징을 나타낸다. 사천왕은()은 부리부리한 눈에 긴 수염이 났으며 강인하고 분노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 불화의 색채는 적색·녹색과 강렬한 청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충남문화재자료 제377호(2001년6월30일) 영은사 칠성탱화(畵)는 원통전 뒷벽 왼쪽에 있다.

가로 141㎝, 세로 142㎝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크기의 패널 형태이다.

1888년(고종 25년)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화는 민간 전래의 칠성신앙을 흡수하여 나타난 칠성탱화로,

얼굴은 살지고 긴데 눈·코·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은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청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중앙의 치성광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한 일광보살()·월광보살()은 해와 달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으며, 왕의 모습을 한 칠원성군(), 녹색머리 광배를 한 부처 모습의 칠성()과 동자·동녀 등이

빙둘러 있다.

일루는 자형 맞배지붕 건물로,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합숙소로 쓰이던 건물이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유물로 1715(숙종 41) 서산의 문수사(文殊寺)에서 제작된 동종이 전해진다.

경내에는 석탑 부재와 초석·장대석 등이 남아 있다.

이중 석탑 부재는 옥개석으로 가로 80cm, 세로 80cm, 높이 21cm 규모이며, 우물의 뚜껑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대석은 요사 기단부와 관일루 기단부, 원통보전 계단 등에 끼어 있다.

초석은 관일루 초석의 일부로 쓰인 것으로 미루어 고려 초기의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절 부근에서 불상 6구가 발굴되었으나 이 절과 관계있는 유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