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기행] 충남도 기념물 제42호, 공산성 연지(蓮池)와 만하루(挽河樓)
본문 바로가기
길따라 트레킹/역사, 문화, 그리고 여행

[공주기행] 충남도 기념물 제42호, 공산성 연지(蓮池)와 만하루(挽河樓)

by 정산 돌구름 2018. 1. 25.

충남도 기념물 제42호, 공주 공산성 연지(蓮池)와 만하루(挽河樓)

 

공주 공산성 연지(蓮池)는 충남도기념물 제42(19821231)로 지정되었다.

공산성 내 남쪽 영은사 앞에 있는 연못터로 1982년부터 2년간 공주대학교(공주사범대학)에서 발굴, 유적지임을 확인하였다.단을 둔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동서 양축에 넓은 통로를 둔 것이 특징이다.

동서가 긴 평면 직사각형으로 규모는 최대 길이가 21, 너비는 약 12이다.

호안석축은 단을 두어 전체적으로 위를 넓게 하고 아래를 좁게 쌓아 9층 석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형태와 흡사하다.

서쪽 호안이 남쪽으로 접한 곳에는 다듬은 돌 2개씩을 포개 쌓아 10여 개의 계단을 설치하여 출입 통로를 두었다.

이 통로를 통하면 연지의 바닥까지 출입할 수 있으며, 바닥은 판석으로 깔았고 동서 9m, 남북 4m 규모이다.

연지 둘레의 동서 벽에서 북쪽 금강변 호안으로 너비 40의 배수로가 설치되었고 현재도 석루두(石漏頭)가 남아 있다.

이 연지의 북쪽과 금강 호안 사이의 대지에서 정면 4, 측면 3개의 8각 고주가 발굴되었는데, 측면 중앙에 누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승가대석(昇架臺石)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누각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제시대부터 계속하여 이용되어 왔음을 시사하고 있는 이 연지는 산성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공산성 만하루(挽河樓)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1754(영조 30) 충청감사 김시찬(金時粲)이 공산성 동쪽 연못가에 6칸으로 건립하였다.

박윤원(朴胤源)이 지은 『만하루기』에 따르면, 만하루(挽河樓)라는 명칭은 중국 시인 두보(杜甫)의 시 『세병마(洗兵馬)』

마지막 구절 안득장사 만천하(安得壯士 挽天河)’에서 따왔다고 한다.

1859(철종 10)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1871(고종 8)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도 만하루가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그때까지는 존재하였으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에 홍수로 붕괴되어 매몰되었다.

1980년 공산성 내의 유적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만하루의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1984년 지금의 누각으로 복원되었으며,

2006년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지금의 누각은 정면 3, 측면 2칸의 목조건물이며, 옆에 연못 ‘연지(蓮池)’도 복원되어 있다.

8각으로 다듬어진 초석(礎石)과 주위의 기단석(基壇石) 디딤돌 등은 원형대로 이용하고, 건물은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보통의 누정(樓亭)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강학(講學)을 목적으로 건립된 데 비하여 만학루는 공산성을 방비하는 군사적 기능을

중심으로 하고 경승 관람을 겸하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