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기행] 육지 최남단의 사찰, 달마산 미황사(美黃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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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기행] 육지 최남단의 사찰, 달마산 미황사(美黃寺)..

by 정산 돌구름 2017. 11. 29.

육지 최남단의 사찰, 해남 달마산 미황사(美黃寺)..

 

2017년 11월 26일, 달마산 등산길에 만난 땅끝 해남의 미황사..

땅끝 해남(海南)은 동쪽으로 강진군, 북쪽으로 영암군·목포시와 접하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남동쪽으로 완도군, 남서쪽으로

진도군, 서쪽으로 신안군에 접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해남을 서울에서 먼 곳에 있으며, 겨울에 초목이 마르지 않고 벌레가 움츠리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별로 없고 아무리 추워도 -2~3℃가 보통이다.

지금은 강원도 고랭지 채소에 밀려 예전만큼 그 명성을 얻지 못하지만 해남은 국내 최대의 배추 산지이다.

겨우내 해풍을 견디고 얼었다 녹았다 하며 튼실하게 자란 배추는 첫맛부터 끝맛까지 달다.

낮은 구릉의 뻘건 황토 밑에는 이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시인 고정희는 남도행이란 시에서 칠월 백중날 고향집 떠올리며/그리운 해남으로 달려가는 길(중략)

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무릎 꿇고 남도 땅에 입 맞추고 싶어라라며 해남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한반도 최남단은 북위 3417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리나라 남쪽 기점을 이곳으로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이천리를 잡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미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사찰로서 749(성덕왕 8) 의조(義照)가 창건하였다.

사적비에 따르면, 7498월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났는데, 의조가 제자 100여 명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40성중, 53선지식, 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을 모실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하여 ‘미()’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를 택했다고 한다.

1264~1294년 사이에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와 관리들이 이 절에 내왕하였다고 하므로 당시 미황사가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1597(선조 30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598년 만선이 중건하였다.

1660(현종 1년) 성간이 3창하였으며, 1751(영조 27년) 덕수가 중건하여 금고각을 짓고 대웅전. 나한전을 중건하였다.

그 뒤 고승 유일이 주석하였고, 1858(철종 9년)에는 의현이 만일회를 열었다.

1996년 만하당을 짓고 누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보전, 달마전, 응진당, 명부전, 세심당, 요사채 등과 석조, 당간지주, 부도군, 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있다.

대웅보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다.

1598년에 중건한 뒤 1754년과 1761년에도 중수되었으며, 1982년의 수리 때 묵서가 발견되어 건물의 연혁을 알 수 있었다.

내부에는 삼존불을 모셨고, 후불탱화가 걸려 있으며, 법당 뒤편의 목궤에 넣어둔 괘불은 오래된 것으로 몹시 상하였다.

응진당은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보물 제1183호로 지정되어 있다. 1598년 만선이 신축하였으며, 1971년 주지 이하덕이 일부 보수하였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16나한 등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미황사 괘불탱(掛佛幀)은 보물 제1342(200272)로 지정되었다.

이 괘불탱은 길이 1,170cm, 486cm로 화면 가득히 본존불을 강조한 뒤, 아랫부분에 용왕과 용녀의 모습을 그렸다.

본존의 얼굴은 귀···코 등이 작으며, 정수리 부분에 상투 모양의 육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윤곽선만 표현되었고,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안에 입은 옷은 가슴을 드러내어 허리부분에서 띠매듭을 묶었고, 옷은 격자무늬를 장식하여 18세기 후반기 그림에서 보이는

문양을 엿볼 수 있다. 이 괘불은 조선 영조 3(1727)에 탁행(琢行설심(雪心희심(喜心임한(任閑민휘(敏輝취상

(就詳명현(明現) 등이 조성한 것으로 본존은 좌상의 그림에서 보이 는 이중윤광(二重輪光)을 지고 있다.

본존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또한 녹색과 적색의 밝은 선염(渲染)과 녹두색·분홍·황토색이 사용되어

은은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작으며 뾰족 솟은 육계에 윤곽선만 표현된 나발 머리칼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승각기는 가슴을 드러내어 허리 부분에서 띠매듭을 묶었고 불의는 격자문을 장식하여 18세기 후반기 그림에서 보이는 문양을

엿볼 수 있다.

이 절의 부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곳은 26기의 부도와 설봉당, 송파, 금하, 낭암, 벽하 등 대사비 5기가 있다.

다른 한 곳에도 5기의 부도가 있으나 전부 도굴되어 흩어져 있다.

미황사 사적비는 1692(숙종 18년) 민암이 세운 것으로서 초서로 된 높이 3m의 비인데, 옥개석위에 용을 얹어 조각하였다.

 

 

 

 

 

 

 

보물 제947(198841)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

정면 3, 측면 3,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749(경덕왕 8) 창건, 17511754년 복원하였다.

막돌로 허튼층쌓기를 한 높은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렸다.

초석 중 전면 4개와 측면 2개는 주좌 옆에 연꽃무늬 등을 양각하여 조각한 둥근 초석이고, 그 외는 자연석으로 된 초석이다.

기둥은 약간의 배흘림을 한 기둥으로, 특히 귓기둥을 굵게 하였고, 평주와 뒤쪽 내고주 2개를 둔 일반적 배열 형식이다.

전면은 빗살창을 달았으며, 측면에는 앞쪽 협칸에 출입문을 각 1장씩 달고 후면에도 각 칸마다 1개소씩 2장의 창문을 달았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짜고 고주 사이에 후불벽을 두어 탱화(幀畵)를 그렸으며, 그 앞에 불단을 두어 불상을 봉안하였다.

천장은 중앙부를 약간 높인 우물천장을 수평으로 짜고 가장자리는 우물천장을 경사지게 짠 빗천장을 하고 있다.

공포(栱包)는 내4출목(內四出目)과 외3출목(外三出目)의 조선 중기 이후의 복잡한 다포계 양식을 보인다.

쇠서 역시 그 외부 끝을 굽어올린 암서와 위에서 굽어내린 수서가 같이 짜여졌고, 그 내부에서는 연꽃봉오리를 조각하여 단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중앙칸 양쪽 기둥 위에는 용머리 장식을 조각해 붙였고, 내부에도 보아지 등의 장식이 화려하다..

 

대웅보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3(201586)로 지정되었으며,

17세기 중엽을 대표할만한 불상으로 보존 상태도 양호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대웅전 추춧돌에는 거북, 게 등 바다 동물들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다..

 

 

 

 

 

 

 

보물 제1183(19931119)로 지정된 미황사 응진당(應眞堂)..

정면 3, 측면 2, 건평 20,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1659(효종10) 중창하였는데 응진당은 1751~1754년 사이 대웅전과 함께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자연석 허튼층쌓기, 초석은 자연석 덤벙주초로 하였다.

평주(平柱) 위에 내4출목(內四出目), 3출목의 포작(包作)을 형성하고 그 위에 대들보를 얹었다.

공포는 외삼출목에 7포작이며 첨차(檐遮)는 교두형인데, 첨차마구리가 거의 정사각형으로 되어 고풍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천장은 모두 우물반자로 하고 칸마다 운각을 주변에 붙여 원형의 느낌을 갖도록 하였다..

 

응진당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및 나한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5(201586)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 제작된 석가여래삼존상과 16나한상을 비롯한 26구의 조각상으로 18세기 중엽을 대표할 만한 상이다..

 

 

 

 

 

 

 

 

 

명부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4호(201586)로 지정된 미황사 목조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조선후기 제작된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시왕, 판관, 녹사 등 36구의 조각상(명부전 봉안)으로 17세기 중엽을 대표할만한

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