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문화재자료 제125호, 서천 문헌서원(文獻書院)
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맑은 날씨지만 약간의 미세먼지로 하늘이 맑지는 않다.
세종시에 출장을 다녀오다가 시간이 있어 잠깐 들러본 서천지역, 그 중에서도 목은 이색의 얼이 담긴 문헌서원을 찾았다.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영모리 10)에 있는 문헌서원은 가을이 찾아와 있었다.
입구에 널따란 주차장이 갖추어져 있었고, 우측에는 관광안내소, 좌측에는 문헌전통호텔이 자리한다.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호텔이며, 서천의 대표 숙박지라고 한다.
전통적인 한옥에서 하루 평균 10만원에서 15만원이면 하루를 머무를 수 있고, 2인실은 5만원 정도라고 한다.
조금 들어서면 조그만 연목과 정자가 있는데 박보검이 출연했던 <구르미 그린 달빛>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문헌서원은 한산이씨 명조 선현 8위를 제향하는 서원으로 충남 문화재자료 제125호(1984년5월17일)로 지정되었다.
가정(稼亭) 이곡(李穀)과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최초 창건연대는 이성중(李誠中)이 재임하던 1580년대 초라고 보여지나 기록상으로는 1594년(선조 27년)으로 전해진다.
처음 이름은 ‘효정사(孝靖祠)’이다.
이 효정사는 그 후 정유왜란으로 소진되어 겨우 사우만이 남아 있었는데 1610년(광해군 2년)에 관찰사 정엽(鄭曄)과
정언 이경탁(李慶倬, 명곡 이산보의 아들)등이 이를 애석하게 여기고 이건을 계획하여 이듬해에 동재, 다음해에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서원의 재건과 때를 같이하여 1611년(광해군 3년)에는 ‘문헌(文獻)’으로 사액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 이종학(李種學)과 이자(李耔) 2위를 추배하여 모두 4위를 제향하게 되었다.
문헌서원지에 의하면 창건 후 원장으로 송준길(宋浚吉), 윤증(尹拯), 남구만(南九萬), 권변(權) 등이 기록되고 있으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은 ‘문헌서원(文獻書院)’이라는 액호를, 진수당(강당), 존양재(동재), 석척재(서재) 글씨는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썼다고 한다.
1713년(숙종 39년)에는 백옥헌(白玉軒) 이개(李塏)를 추가로 추배하여 모두 5현을 제향하게 된다.
문헌서원은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고, 1891년 옛 터에 단을 설치하고 제향 하였다.
서원구지(書院舊誌)에 의하면 이 설단 당시 한산 향현사에 제향되던 ‘한산 6군자(현암 이종덕, 어성 신담, 남강 이임, 과묵당
홍미, 복천 강학련, 지족당 권양)’를 함께 제향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967년에 종족들에 의하여 중건이 발론되고 후손들의 합력으로 영모리 동쪽의 현재위치로 1969년에 이건하게 된다.
이 해에 현암(玄巖) 이종덕(李種德)을 추배하여 모두 6현을 제향하게 되었다.
문헌서원은 1969년 현위치로 이건 된 이후, 정부와 서천군의 전통역사마을 조성사업계획에 따라 2007년부터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 일대 1만9,847㎡부지에 약 5년간의 재정비 절차를 거쳐 2013년에 기와 색감이 아름답고 곡선이 부드러워 볼수록
아름다운 전통한옥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2013년 4월 이맹균, 이종선 2위를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의 제향인물은 가정(稼亭) 이곡(李穀), 목은(牧隱) 이색(李穡),
현암(玄岩) 이종덕(李種德), 인재(麟齋) 이종학(李種學), 양경공(良景公) 이종선(李種善), 문혜공(文惠公) 이맹균(李孟畇),
백옥헌(白玉軒) 이개(李塏), 음애(陰崖) 이자(李耔) 등 8현이다.
경내에 3칸의 사우(祠宇), 2층 누각으로 된 6칸의 강당, 4칸의 진수당(進修堂), 3칸의 목은영당(牧隱影堂), 5칸의 재실(齋室),
3칸의 전사청(典祀廳), 3칸의 수호사(守護舍), 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이색 신도비·이종덕 효행비각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색·이곡을 주벽(主壁)으로 이종학·이자·이개·이종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인 진수당은 유림의 회합 및 학문토론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전사청은 제구(祭具)를 보관하는 장소로, 수호사는 관리인의 숙소로 사용하며, 목은영당에는 이색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색 초상은 보물 제1215호로, 가정목은선생문집판은 충남 유형문화재 제77호, 이색 신도비는 충남 문화재자료 제127호로 지정되어 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으로 부친은 찬성사 이곡(李穀)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 2년)에 진사(進士)가 되고, 1348년(충목왕 4년)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生員)이 되었다.
1351년(충정왕 3년) 아버지 상을 당해 귀국하였다. 1352년(공민왕 1년) 전제의 개혁, 국방계획, 교육의 진흥, 불교의 억제 등
당면한 여러 정책의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이듬해 향시(鄕試)와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해 서장관(書狀官)이 되었다.
원나라에 가서 1354년 제과(制科)의 회시(會試)에 1등, 전시(殿試)에 2등으로 합격해 원나라에서 응봉 한림문자 승사랑
동지제고 겸국사원편수관(應奉翰林文字承事郎同知制誥兼國史院編修官)을 지냈다.
귀국해 전리정랑 겸 사관편수관지제교겸예문응교(典理正郎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藝文應敎)·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원나라에 가서 한림원에 등용되었으며, 다음 해 귀국해 이부시랑 한림직학사 겸사관편수관 지제교겸병부낭중(吏部侍郎
翰林直學士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兵部郎中)이 되어 인사행정을 주관하고 개혁을 건의해 정방(政房)을 폐지하게 하였다.
1357년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어 유학에 의거한 삼년상제도를 건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어 추밀원우부승선(樞密院右副承宣)·지공부사(知工部事)·지예부사(知禮部事) 등을 지내고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남행할 때 호종해 1등공신이 되었다.
그 뒤 좌승선(左承宣)·지병부사(知兵部事)·우대언(右代言)·지군부사사(知軍簿司事)·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보문각
(寶文閣)과 예관(禮官)의 대제학(大提學) 및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등을 지냈다.
1367년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국학의 중영(重營)과 더불어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등을 학관으로 채용해 신유학(주자학·정주학·성리학의 이칭)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였다.
1373년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지고, 이듬해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지춘추관사 겸 성균관대사성(知春秋館事兼成均館
大司成)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였다.
1375년(우왕 1년) 왕의 요청으로 다시 벼슬에 나아가 정당문학(政堂文學)·판삼사사(判三司事)를 역임하였다.
1377년에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의 호를 받고 우왕(禑王)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1388년 철령위문제(鐵嶺衛問題)가 일어나자 화평을 주장하였다.
1389년(공양왕 1년)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강화로 쫓겨나자 조민수(曺敏修)와 함께 창왕(昌王)을 옹립, 즉위하게 하였다.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창왕의 입조와 명나라의 고려에 대한 감국(監國)을 주청해 이성계
일파의 세력을 억제하려 하였다.
이성계 일파가 세력을 잡자 오사충(吳思忠)의 상소로 장단(長湍)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함창(咸昌)으로 옮겨졌다가 이초(彛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청주의 옥에 갇혔는데 수재(水災)가 발생해 함창으로
다시 옮겨 안치(安置)되었다.
1391년에 석방되어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봉해졌으나, 1392년 정몽주가 피살되자 이에 연루되어 금주(衿州 시흥)로
추방되었다가 여흥(驪興 여주)·장흥(長興) 등지로 유배된 뒤 석방되었다. 1395년(태조 4년)에 한산백(韓山伯)에 봉해지고,
이성계의 출사(出仕) 종용이 있었으나 끝내 고사하고 이듬해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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