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가찰 서천 봉서사(鳳棲寺)와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2017년 10월 25일, 서천여행에 두번째로 찾은 곳은 보물 제1751호가 있는 봉서사이다.
문헌서원에서 1km이내의 충남 서천군 한산면 호암리 189(건지산길 122)의 건지산(乾芝山)에 있는 절이다.
봉서사(鳳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1799년(정조 23년)에 전국의 사찰에 관한 현황을 기록한 『범우고(梵宇攷)』에 이 지역에 봉서암(鳳棲菴)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8세기 후반 경에는 사찰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봉서사의 창건에 대해서는『서천군지』(1989년)에 고려말 기산면 영모리에 있던 영모암(永慕庵)을 1682년(숙종 8) 4월
이곳으로 옮겨 지은 것이 지금의 봉서사라는 창건설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봉서사가 곧 영모암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1899년 이후 편찬된『충청도읍지』한산군조에는 영모암과 봉서사가 함께 소개되어 있으며, 1929년에 편찬된
『서천군지』에도 두 사찰이 나란히 언급되어 있어 이 무렵 두 사찰은 분명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기도 한다.
조선후기 문신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 한말의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충남 서천 출신의 시인 석초(石艸) 신응식(申應植, 1909~1975) 등이 머물며 공부하였다고 한다.
현재 사찰에는 극락전, 삼성각, 심검당, 종무소 등이 있다.
1999년 중건된 극락전에는 보물 제1751호로 지정된 조선 중기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불은 17세기에 활동한 조각승 수연(守衍)스님이 1619년(광해군 11년)에 조성한 것이다.
수연스님은 1615년(광해군 7년)에 태전(太顚)스님을 도와 김제 금산사 독성상을 제작하였고,
1622년(광해군 14년)에는 현진(玄眞)스님을 도와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상을 제작하였다.
이후 1623년(인조 1년)에 강화 전등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1624년(인조 2년)에 익산 숭림사 영원전 지장시왕상,
1639년(인조 17년년)에 예산 수덕사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을 조성하는데도 참여하였다.
봉서사가 있는 건지산에는 백제 말기에서 통일신라 전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적 제60호인 건지산성(乾芝山城)이 있다.
보물 제1751호(2012.2.22.)로 지정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은 17세기 초에 조성되었다.
1618년(광해군 10년) 8월 불사를 시작하여 1619년 1월 완성한 삼존상이다.
현진(玄眞), 무염과 더불어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대표적 조각승인 수연(守衍)이 성옥(性玉), 영초(靈招, 또는 영철 靈哲),
응인(應仁), 보희(寶熙) 등과 함께 조성하였다.
대웅(大雄)스님을 비롯한 승려들과 김순일(金恂日) 등 여러 사람들이 불상 조성에 필요한 물목들을 시주하였고,
수조각승 수연은 작업을 최종 감수하는 증명(證明) 역할도 함께 맡았다.
중앙의 아미타여래의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한 전형적인 아미타여래삼존상이다.
세 구 모두 좌상(坐像)으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상체가 매우 커서 상대적으로 얼굴이 작고 하체가 빈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상은 높이 103㎝, 무릎 폭 72㎝이다.
넓고 두꺼운 어깨와 가슴, 길고 굵은 허리가 당당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고, 사각의 얼굴형과 두툼하게 살이 오른 얼굴,
짧은 턱, 넓은 코와 짧은 인중을 지녀 중후한 인상을 준다.
법의는 이중으로 착용하였는데,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 자락을 새의 날개처럼 도식적으로 처리한 점이 인상적이다.
무릎 아래로는 옷주름이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고, 넓은 소맷자락이 왼쪽 무릎 앞을 덮고 있다.
관음보살상은 높이 101.5㎝, 무릎 폭 66㎝이다. 얼굴, 신체 비례, 손 모양, 착의 방식이 아미타여래와 거의 동일하지만
양 다리 사이를 덮고 있는 옷주름과 왼쪽 무릎 위로 흘러내린 옷자락 표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대세지보살상은 높이 102.5㎝, 무릎 폭 65.3㎝이다. 대세지보살 역시 아미타여래·관음보살과 거의 동일한 모습이지만
손 모양과 하체의 옷주름이 두 불보살상과 다르다.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높게 상투를 틀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머리에는 최근 제작된 보관을 썼고, 귀에는 귀걸이를 달았다.
‘X’자 형태의 구슬 장식이 가슴에 드리워져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보살상에서 보기 드문 양식이다.
세 구의 불보살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제작연대, 조각가, 시주자 등 조성 관련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도움을 준다. 또, 현존하는 수연의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그의 초기작이 지닌 조각적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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