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가 있는 지리산둘레길 2구간(운봉~인월), 봄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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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지리산둘레길

역사와 문화가 있는 지리산둘레길 2구간(운봉~인월), 봄의 향연..

by 정산 돌구름 2017. 4. 16.

역사와 문화가 있는 지리산둘레길 2구간(운봉~인월), 그리고 봄의 향연..

 

○ 산행일자 : 2017년 4월 16일 (일)

○ 기상상황 : 맑음(구름 조금 맑고 약간 더운 날씨 12~28℃)

○ 트레킹코스 : 지리산둘레길 제2구간(운봉~인월)

○ 구간별소요시간 : 10.45km(트랭글 GPS), 3시간50분소요

  운봉초교(09:25)~2구간 시작점(09:30~35)~서림공원(09:38~45)~협동교(10:00)~신기교(10:05)~황산대첩비&

  비전마을(11:50~12:20)~군화동(12:35)~다이어트하우스(12:45)~옥계호 둑(12:53)~방문자센터 갈림길(12:15~25)~

  흥부골자연휴양림(12:30)~도로(12:40)~월평(13:00)~구인월교(13:05)~인월전통시장(13:15)

○ 교통상황 : 광주 문흥(08:00)~88고속~인월IC~37번~인월전통시장(09:00), 인월터미널(09:10)~버스~운봉초교(09:20)

○ 지리산 둘레길 2구간 소개

  제2구간은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10km의 지리산길이다.

  이 구간은 오른쪽으로는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

  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운봉~인월구간은 너른 운봉들녘을 따라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을 조망하며 호쾌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10km 전 구간이 제방길과 임도로 되어 있어 길 폭이 충분히 넓어 여럿이 함께 걷기에 좋은 평지길이고, 황산대첩비, 국악의

  성지, 송흥록 생가 등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을 골고루 즐기면서 걷기에 좋은 곳이다.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 전남, 경남 등 3개도, 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 등 5개 시·군의 21개 읍·면, 117개

  마을을 잇는 21개 구간 274km로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형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전북 남원 46km, 경남 함양 23km, 산청 60km, 하동 68km, 전남 구례 77km 등 274km를 숲길(43.8%), 농로(20.8%),

  마을길(19.9%) 등으로 이어져 있다.

 

 

○ Prologue

  지난해 4월 13일, 지리산둘레길 2구간을 왔을 때에 벚꽃이 만발하여 다시 1년이 지나 둘레길에 왔다.

  아침 8시, 집을 나서 인월전통시장에 도착하니 9시, 주차장에 차를 두고 바로 옆 버스터미널에서 운봉행 버스를 탄다.

  10여분을 달리면 운봉초등학교 앞에 도착하고, 학교 앞에서 2구간이 시작되는 서림공원입구로 향한다.

  2구간 시작 표지판이 있는 서림공원입구에서 람천이 흐르는 서림공원에 이르면 만개한 벚꽃이 반긴다.

  2구간은 람천을 따라 이어지고, 천변을 따라 벚꽃이 만발하여 봄을 만끽할 수 있다.

  황산대첩비지를 둘러보고 나서면 비전마을에는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생가터가 있고 벚꽃 만발한 둑방을 따라가면

  군화동마을을 지나 24번 국도를 건너면 지금까지의 운봉읍을 지나 인월면으로 들어선다.

  다이어트하우스를 지나 오르면 옥계호가 있고 숲길 임도를 따라 흥부공자연휴양림을 지나 월평마을에 내려선다.

  민박과 펜션으로 가득한 월평마을을 지나 구인월교를 건너면 인월전통시장에 도착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람천 둑방길을 포장을 하거나 석분을 깔아 너무나 인공적이어서 지난해만 못하였지만 활짝 핀 벚꽃과 야생화가 좋았다.

 

 

 

인월 전통시장 주차장에 차를 두고 시장통으로 들어선다..

 

인월전통시장은 멀리 경상도 함양에서부터 인근의 마천, 산내, 아영, 운봉, 인월 등 6개면 사람들이 모여 장을 이루는 곳이다..

 

인월전통시장은 조선시대 말부터 농축산물 판매는 물론 생활필수품 물물교환이 행해졌던 5일장이다.

예로부터 산채·약초·한봉(토종)·한지·죽제품이 주로 거래되었다.

19653월 장옥을 건립하면서 정식 시장으로 개장하였으며, 3일과 8일에 장이 열린다.

인월·운봉·아영·산내·마천을 비롯하여 장수군 번암면, 함양군 함양읍의 주민들도 이용한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약초와 산채, 지리산 토종 흑돼지가 유명하여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지역 특산품인 질그릇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다..

 

매주 토요장터가 열리며, 문화공연행사와 체험마당, 먹거리, 해발 500m이상 지리산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남원 흑돼지와 포도,

사과 등 농특산물 판매코너를 함께 연다고 한다..

 

남원시의 동부에 위치한 인월면(引月面), 동쪽은 운봉읍,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산내면, 북쪽은 아영면과 접해 있다.

남쪽으로는 지리산 연맥이 크게 솟아 있고, 관내의 주요 하천은 풍천으로 모여 남쪽 방향으로 흐르다가 만수천과 합수한다.

인월면은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서울, 남원, 함양 등지에서 접근이 쉽다..

 

인월에서 비전마을로 가는 길은 조선시대의 7대 대로중 하나인 통영별로의 일부로 이 길은 비전에서는 여원재를 거쳐 남원,

오수, 전주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고, 인월에서는 팔랑치, 함양을 거쳐 진주로 이어지던 옛길이다.

인월’ 지명은 고려 우왕 6(1380) 이성계가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와의 황산싸움에서 달()을 끌어() 승전하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1998년까지는 남원군 동면을 인월면으로 개칭하면서 면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고려 태조 23(940)에 역원(驛院)이 설치되어 인월역(引月驛)이라 하였다.

대동여지도에 운봉현 동쪽, 식치(食峙) 서쪽에 인월(引月)이 역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운봉), 청구도등에서도 인월역이 기재되어 있다..

 

 

전통시장에서 100여m 떨어진 인월 지리산 공용터미널에서 운봉행 버스를 탄다..

 

군내버스를 타고 10여분 달려 운봉초등학교에서 내린다..

 

운봉읍(雲峰邑)은 동쪽으로 동면·산내면, 서쪽으로 산동면·이백면, 남쪽으로 주천면, 북쪽으로 아영면·장수군 번암면과 접한다.

동쪽에 덕두산(德頭山 1,151.5m)·바래(1,165m)·세걸산(世傑山 1,220m) 1,000m 이상의 지리산 자락과,

서쪽에 고남산(古南山 846.8m)·여원치(女院峙 410m) 등이 솟아 있다.

지형적 영향으로 고랭지 기후를 나타내어 눈도 많이 내리고 여름철도 서늘하여 25이상의 기온이 드물다.

동쪽의 높은 산에서 넓은 분지로 용산천·동천 등이 흘러 개석하면서 골짜기를 만들고 퇴적물이 그 주변에 엷게 덮여 있다.

풍부한 수원으로 벼농사가 발달하여 전북에서 추수량이 가장 많아 그해 작황의 예상지표가 되나 냉해가 잦다.

산기슭의 완사면에는 면양 목장이 있고, 마늘·고추·배추 등의 고랭지 채소가 생산된다.

광주대구간 고속도로가 통과하며, 동쪽의 팔량치(八良峙)가 전북과 경남의 교통로가 되어 양도의 문화적 접촉지역을 이룬다.

목기(木器)가 특산품으로, 1994년 장교리(長橋里)에 목기특산단지가 조성되어 10여 개 업체가 가동중에 있다.

운봉은 1, 6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서는데 2,7 함양장, 3,8일 인월장, 4,9 남원장, 5,10마천장으로 이어져

각종 장꾼들이 이지역의 장터를 빙빙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주로 운봉과 주천에서 많이 오며 각종 잡화, 곡물, 옷 등이 주로 팔리며 과거에는 목기와 곶감으로 유명하였다.

고을의 지형이 중국 송나라의 운봉이라는 고을과 비슷하여 그곳의 지명, 하천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고 한다.

운봉이 행정상 군()이었던 1913년까지만 해도 서천리는 군청소재지였던 곳이며, 19953월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었다.

운봉이라는 지명은 백두대간 동쪽 사면에 위치한 이곳에서 구름에 가려진 지리산의 많은 봉우리를 보게 된 데서 생긴 것이다.

당시에는 인월역(引月驛)이 있어 함양과 연결되었고, 남원·구례·곡성 등지와 이어지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운봉초등학교..

1907년8월23일 사립 운봉만성학교를 설립하여 1911년 3월 27일 사립 운봉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다가

1912년3월27일 운봉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13년5월1일 운봉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역사가 있는 학교이다..

 

철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길목의 꽃잔디도 아름답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길건너 지리산둘레길 제2구간이 시작되는 곳..

 

2구간은 운봉읍 동천리와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10.3km로 오른쪽은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너른 운봉 들녘을 따라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을 조망하며 호쾌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서천리당산이 있는 서림공원에 이른다..

1970년 중요민속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으며,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장승 앞에서 제를 지냈는데

1977년 당산나무를 심은 이후로 그 앞에서 먼저 지내고 나서 돌장승에게도 간단하게 올린다.

당산나무는 귀목나무이며, 그 둘레가 126cm이다.

보통 음력 정월 초하룻날 제를 지냈는데 당산나무를 심고부터는 음력 2월 초하루에 지내면서 마을총회를 겸하고 있다고 한다..

 

서림숲은 마을휴식처로 이용되었으며 마을을 수호하는 석장승 2기와 각종 비석군도 있어 서천의 과거 역사와 전통을 말해준다.

 

북쪽에 서 있는 방어대장군은 남신상이며, 남쪽에 서 있는 진서대장군은 여신상이다.

두 장승 모두 재질은 화강석이며, 벙거지를 쓰고 있다.

얼굴 형태는 둘 다 눈이 불거지고 코가 뭉뚱그려져 있으며 이를 드러내 보이는 전형적인 귀면형(鬼面形)이다.

방어대장군은 높이 220cm, 둘레 126cm, 너비 45cm이고 귀가 없으며 수염이 한 가닥 있다.

 

반면 진서대장군은 높이 207cm, 둘레 141cm, 너비 53cm로 수염과 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방어대장군에 비하여 얼굴 모습이 좀더 사실적이고 수수한 노인의 얼굴 표정이 살아 있는 듯 잘 표현된 진서대장군은

여신상이면서도 수염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장승들은 서로 마주 보며 서 있기는 하지만 벙거지의 모양과

얼굴 표현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점 때문에 이것을 만든 사람이 서로 다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둘 다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떨어진 것을 이어 붙였는데 여기에는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인가 가정불화가 있어 잦은 충돌 끝에 방어대장군이 진서대장군에게 귀를 물어 뜯겼고,

진서대장군은 목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솟대가 서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공원 천변에는 정자쉼터가 있다..

 

서림공원~비전마을로 이어지는 5km의 제방길은 너른 운봉 들녘을 적시는 젖줄인 람천을 따라 걷는 길로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외에 여러 종류의 동식물을 볼 수 있다..

 

람천 둑방길을 따라 식재된 벚나무의 벚꽃이 만개하였다..

 

이곳의 벚꽃은 남도의 벚꽃보다 10여일 늦게 핀다..

 

 

람천을 따라 핀 벚꽃 때문에 눈이 황홀하다..

 

 

 

 

 

 

 

 

벚꽃에 취해 가다보면 협동교를 지난다. 우측으로는 북천리로 가는 길이다..

 

벚꽃길은 둑방을 따라 한없이 이어진다..

 

 

 

람천을 가로지르는 신기교를 건넌다..

 

하천공사가 한창인 람천..

람천은 남원 운봉읍·인월면·산내면 일대를 지나 경남 함양 마천면에서 임천에 합류되는 하천이다.

지리산 북서 고리봉 사면에서 발원되는 주촌천, 운봉천, 준향천 등의 소하천이 합쳐져 람천이 형성된다.

이외에 시의 아영면·인월면 일대를 흐르는 풍천과 산내면 일대를 흐르는 만수천도 람천에 합쳐진다.

람천은 임천과 남강을 거쳐 최종적으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가므로 낙동계 수계에 속하는 하천이다..

 

신기교를 건너 람천을 따라가면 신기마을이 다가온다..

선조 28(1595년) 임진왜란이 휴전상태에 접어들어 왜적이 잠시 철수하고, 영남이 아직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때 이곳에 터를 잡은 입향조는 인동 장씨 장덕복(長德福)이었다고 한다.

영남의 전란에 고통을 받다가 지리산이 바라보이고 우뚝 솟은 운봉 고원이 마을을 보호하고 만복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명당터인지라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 새터(신기,新基)’라 하였다.

() 형국인 마을 북쪽 쇠잔등이가 잘려 마을의 쇠한 기운을 막고자 주민들이 직접 토성(土城)을 쌓았다..

 

조그만 동산에 석벽을 깎아 초봉(草峯)이란 글씨가 적혀 있다.

원래는 거북바위가 있어 귀암(龜巖)이라 불렀는데,

풍수지리상 이 마을이 와우혈이라 소가 먹는 풀(밥구시)을 의미하는 초봉으로 바꾸었다 한다.

무덤만한 크기의 작은 동산이 제법 거창한 이름과 유래를 가지고 있다..

 

람천 건너편으로는 백두대간 고남산이 바라보인다..

 

신기마을로 들어서는 사반교, 다시 람천을 가로지르는 사반교를 건넌다..

 

사반교에서 바라본 람천..

 

길가의 지리산둘레길 이정표..

 

다시 둑방을 따라가면..

 

비전마을로 들어서는 다리 뒤로 황산이 솟아있다.

남원시 운봉읍·아영면·인월면에 걸쳐 있는 황산은 고려 말 황산대첩의 현장이었다..

 

비전마을 입구의 동편제 쉼터..

 

민들레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판소리는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 중고제(中高制) 등 크게 세가지 유파로 구분한다고 한다.

동편제는 섬진강 잔수(전남 구례)의 동쪽지역 명창들에 의해 완성되어 구례, 남원, 순창, 곡성, 고창 등지에서 성행하였고,

명창 가왕 송흥록()이 발전시켜 국창 송만갑이 완성시켰다.

웅장하면서 호탕한 소리인 우조를 많이 사용하고 발성초(입을 열어 처음 내는 소리)가 진중하다.

통성을 쓰며 소리끝을 짧게 끊는 등 대마디 대장단의 특징이 있다..

 

동편제의 명창으로는 가왕 송흥록을 비롯해 송광록, 박만순, 송우룡, 송만갑, 유성준, 박봉래, 박초월, 김소희, 김정문, 임방울,

정광수, 박봉술 등이 유명하다..

 

사적 제104호로 지정된 황산대첩비지..

고려말 이성계(李成桂)가 황산에서 왜구를 섬멸한 사실을 기록한 승전비가 서 있던 곳이다.

황산(荒山 698.7m)의 협곡에서 1380(우왕 6년) 삼도순찰사의 임무를 띠고 온 이성계는 배극렴·이두란 등 휘하의 여덟

원수를 거느리고 함양에서 공격해오는 왜구들과 일대격전을 벌여 적장 아지발도(阿只拔都)를 사살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이 대첩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명하여 그 내용이 용비어천가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당시의 승전사실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1577(선조 10년)에는 호조판서 김귀영이 글을 짓고 여성군 송인(宋寅)의 글씨로 새겨진 황산대첩비가 서게 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비각·별장청 등의 건물을 지어 그 수호에 임하게 하였는데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다.

그러나 19451월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따라 남원경찰은 소방대를 동원하여 비를 폭파하고 비문의 글자를 말소시키는

등 야만적인 행동을 저질러 옛 비석은 없어지게 되었다.

그 뒤 정부수립 이후에 이곳을 사적으로 지정하고 깨어진 거북돌을 다시 맞추고 오석(烏石)으로 비신을 재건하였으며,

1973년 비전(碑殿홍살문·삼문·담장, 그리고 부속건물 등을 새로이 정비하고 단장하였다.

지금 새로 세워진 대첩비는 높이 4.25m에 용을 새긴 이수(螭首)1.20m의 귀부(龜趺)를 갖추고 있다..

 

람천..

 

어휘각(御諱閣)..

운봉읍 화수리 석벽(石壁)에 도원수가 본인과 8원수 4종사의 명단을 새기게 하여 황산대첩이 자신만의 공로가 아니라

여러 충신들의 공로임을 알리는 내용의 어휘(御諱)를 새겨 만든 비전(碑殿)이다.

 

1945117일 일제가 비전(碑殿)을 폭파하고 어휘 새긴 내용을 철정으로 쪼아버려 그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1973년 다시 어휘각을 건립하여 비록 훼손되었지만 글씨가 새겨진 돌을 보존하고 있다.

어휘각은 정면 4, 측면 1칸 맛배지붕 형태에 두리기둥이다.

특이한 것은 절벽에 새긴 글씨를 보존해야 하였기 때문에 어휘각은 정면 앞 기둥 네 개는 길고 뒷면 기둥 네 개는 짧다..

 

 

 

 

 

 

 

송흥록 생가터 표지석..

 

비전마을 황산대첩비지 표지판..

비전마을은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고, 또한 마을 5리 전에 하마정이 있어 말을 탄 관리가

황산대첩비를 지날 때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는 이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와 비 앞에서 절을 하였다고 한다..

 

쉼터에서 바라본 송홍록 생가터..

 

소리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파란 하늘과 벚꽃..

 

만개한 벚꽃과 람천..

 

잠시 송홍록생가로 들어선다..

 

이곳에는 구한 말까지 2층 정자가 있어 주변의 주막과 기녀(기생)와 소리꾼, 가마꾼(轎軍)이 상주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전을 역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말 동편제의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이 태어난 곳이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곳으로

동편제의 고향으로 국악의 성지가 있는 곳이다..

 

 

가왕 송흥록(宋興錄) 생가터..

남원 운봉 출생인 송흥록동편제 판소리의 시조로 19세기 판소리 전기 8명창 중 한 사람이며, 가왕()으로 일컬어졌다.

모든 가조(歌調)를 집대성하는 한편, 매부인 김성옥이 시작한 진양조를 자신의 노래에 도입, 완성하였다.

그의 창법은 발성초가 극히 신중하였고, 웅건·청담한 창법을 가진 동편제(東便制)를 이룩하였다.

산유화조는 경상도 민요의 선율형인데, 송흥록은 진양조의 완성을 통해 양반들의 음악적 요소를 판소리 속에 도입하고,

산유화조의 개발을 통해 다른 지역의 음악적 요소를 판소리 속에 도입함으로써 판소리가 계급적,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민족의 음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선창극사는 송흥록이 매부인 “김성옥에게 진양조를 처음 듣고 다년간 연마하여 그 완성이 극치에 이르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한편 송흥록이 진양조를 완성한 데에는 대구감영의 명기였던 맹렬이란 기생과 관련이 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송흥록의 소리에 반해 같이 살던 맹렬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그를 떠나자 슬픈 마음을 노래로 불렀는데 그것이 바로 진양조

였다는 것이다. 안민영이 쓴 <금옥총부>에 송흥록의 집에 가니 맹렬이가 집에 있어서 같이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송흥록은 귀곡성을 잘했는데, 진주 촉석루에서 <춘향가> 중 ‘옥중가’를 부를 때 귀곡성을 내자 촛불이 꺼지며 공중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나는 듯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송흥록은 <변강쇠타령>, <춘향가> 중 ‘옥중가’, ‘<적벽가>’를 잘 불렀으며, 더늠으로 <조선창극사>에 단가 한 편이 전한다.

 

국창 박초월(朴初月)의 생가터..

박초월은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으로서 김소희, 박록주와 함께 1930년대부터 우리나라 여류 판소리를 대표해 온 인물이다.

서슬과 구성이 있는 목으로 서민적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김소희와는 다른 여창 판소리의 경지를 개척했다.

창극과 여성 국극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춘향가」의 월매 역으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성준 「수궁가」중요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현재 박초월 「수궁가」「흥보가」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박초월은 순천시(승주군) 주암면 봉암리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남원으로 이사하였으며,

아영면과 운봉읍에서 생활하면서 판소리를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12살 때부터 김정문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 15살 때부터는 송만갑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20살 무렵에는 오수암으로부터 서편제「흥보가」를 배웠고, 25살 무렵에는 정광수로부터 유성준「수궁가」를 배웠다.

박초월은 임방울에게도 소리를 배운 적이 있고, 16살 때 전주에서 개최된 전국남녀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18살 때부터 폴리돌(Polydol)에서「육자배기」,「흥타령」,「춘향가」 등을 녹음하였다.

17살 때에는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했고, 이후 대동가극단, 동일창극단 등에서 활동했다.

동일창극단에서는 극단의 대 성공작인「일목장군」에서 여주인공인 아리주공주 역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해방 후 춘향전의 월매역으로는 당대 제일인자라는 평을, 1976년에는 서베를린 국제현대음악제에 참가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1955년 박귀희와 함께‘대한민속예술원’을 창립하여 초대 이사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후에 국악예술학교로 발전하였다. 51살 때인 1967년에는 유성준 「수궁가」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해성, 최난수, 최승희, 김수연, 조통달, 박양덕, 전정민, 왕기창 등은 박초월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생가터 앞 둑방길은 벚꽃이 가득하다..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예전의 흙길이 좋았는데 이제 길을 정비하여 운치가 덜 하다..

 

비전마을 뒤편의 보호수도 새싹이 트고, 국악의 성지가 있는 황산이 올려다 보인다..

 

황산교를 지난다..

 

황산(698.7m)과 군화마을이 다가온다..

황산은 동부의 인월 및 아영분지와 서부의 운봉분지를 연결하는 길목의 산정부로 전망과 목이 좋은 전략적 위치에 있다.

덕두산과의 구조선이 동서로 통과하면서 운봉의 물줄기인 남천이 빠져나가는 목이다..

 

군화마을은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며서 13가구를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마을 이름을 ‘군인들이 지은 화수 마을’이란 뜻으로 군화동(軍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느티나무를 지나면 길가에 남무대각세존 석가모니불이 있다..

 

24번 국도에서 바라본 람천과 다이어트하우스, 예전에는 대덕리조트 였는데 이름이 바뀌었다. 운봉과 인월의 경계를 지난다..

 

24번 국도를 가로 질러 다이어트 하우스로 들어선다..

 

옥계호 둑길을 바라보며 오른다..

 

옥계호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축조한 저수지로, 1991년 착공하여 1997년 준공되었다.

총저수량 1033,000t, 유역면적 410, 만수면적 92,000, 수혜면적 117에 이른다.

댐의 길이 261m, 높이 41.8m, 체적 14,802이다..

 

임도를 따라 오르면 호젓한 숲길이 이어지고 곳곳에 반사경이 있다..

 

오리나무 숲길..

 

지리산둘레길 표지목이 새롭게 세워져 있다.. 

 

임도 정상 쉼터..

 

아직도 진달래가 지지않고 있다..

 

흥부골자연휴양림이 내려다보인다..

 

흥부골자연휴양림에 내려서면 박을 타는 석상..

 

흥부골 자연휴양림은 1997년 조성되기 시작하여 약 1㎢에 2002년 개장하였다.

단체수련동(2동)·숲속의집(7동)·방갈로(3동)·취사장·공동샤워장·급수대를 비롯하여 교육자료관 등 총17동의 건물이 있다.

덕두산(1,151.5m) 정상까지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휴양림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산자락에 수령 약 55년의 잣나무 군락이 있어 삼림욕을 하기에 좋고, 경관 또한 뛰어나다..

 

잠시 도로를 따라 내려서다가 우측으로 들어서면 개울을 건너 길이 이어진다..

 

호젓한 숲길을 따라간다..

 

이정표가 있고..

 

바로 앞 도로에서 다시 길을 건넌다..

 

농장 뒤편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이어 인월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월평마을에 내려서면 조그만 카페..

 

마을은 온통 민박집이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을길을 따라가면..

 

월평(月坪)이란 마을 이름이 말하여 주듯이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월평이라 하였다.

1800년대 후반 천석꾼이 운봉 박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람을 모아 살기 시작하였다.

민박집 앞에서 다시 도로로 나선다..

 

구인월교 옆에서 지리산둘레길 제3구간이 시작된다..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서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를 잇는 22.4km의 이구간은 지리산북부의 남원과 함양을 잇는 옛고갯길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고,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6개의 산촌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구비구비 이어온 람천과 다시 만난다..

 

월평마을 람천변 구 인월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월정(迎月亭)..

이 정자를 짓게 된 유래는 1380(우왕 6년)에 당시 3도 도원수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섬멸할 때,

어느 날 밤 너무 어두워 적을 탐지하기 어렵자 하늘을 우러러 달뜨기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밝은 달이 떠올라 적을 물리칠 수 있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이 정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상량문에 의하면 단기 1960년 정월에 중건하였다. 팔작지붕으로 겹처마 양식의 동향이며, 규모는 정면 3, 측면 2칸이다..

 

인월리를 가로지르는 람천에 영월대(迎月臺)..

이 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있다고 전해오는데 이를 두고 인월 8경이라고 한다.

인월8경은 황강폭포(荒崗瀑浦), 고역연람(古驛煙嵐), 층층괴석(層層怪石), 뇌뢰반암(磊磊盤岩), 풍천어적(楓川漁笛),

월평농가(月坪農歌), 삼봉낙조(三峰落照), 백장효종(百丈曉鐘) 등이다..

 

 

다시 돌아온 인월전통시장, 이렇게 지리산둘레길 2구간을 마무리한다..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난 봄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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