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풍경,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있는 지리산 둘레길 2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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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지리산둘레길

가을 풍경,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있는 지리산 둘레길 2구간

by 정산 돌구름 2015. 10. 18.
가을 풍경,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있는 지리산 둘레길 2구간..

 

○ 산행일자 : 2015년 10월 17일 (토)

○ 기상상황 : 맑음(아침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으나 점차 맑아져 파란 가을 하늘 15~25℃)

○ 산행코스 : 지리산둘레길 2코스(운봉~인월)

○ 거리 및 소요시간 : 10.01km / 3시간20분 소요

  운봉읍초교(10:00)~2코스 시작지점(10:05)~서림공원(10:10)~협동교(10:15)~신기교(10:20)~사반교(10:35)~비전마을

  (11:00~20)~군화동(11:35)~다이어트 하우스(11:45)~옥계호 둑(11:50)~흥부골자연휴양림(12:20)~월평(13:00)~영월정

  (13:10)~인월전통시장(13:15)~구인월교(13:20)

○ 교통상황 : 광주 문흥(08:30)~88고속~지리산IC~37번~구인월교(09:40), 인월터미널(09:47)~버스~운봉초교(09:57)

 

 

○ 지리산 둘레길 소개

  지리산 둘레길 제2코스는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10km의 지리산길..

  이 구간은 오른쪽으로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운봉~인월구간은 너른 운봉들녘을 따라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을 조망하며 호쾌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10km 전 구간이 제방길과 임도로 되어 있어 길 폭이 충분히 넓어 여럿이 함께 걷기에 좋은 평지길이고, 황산대첩비, 국악의성지,

  송흥록 생가 등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을 골고루 즐기면서 걷기에 좋은 곳이다.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전남․경남 등 3개도, 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 등 5개시․군의 21개읍․면 117개 마을을 잇는

  21개구간 274km로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형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전북 남원 46km, 경남 함양 23km, 산청 60km, 하동 68km, 전남 구례 77km 등 274km를 숲길(43.8%), 농로(20.8%),

  마을길(19.9%) 등으로 이어져 있다.

○ Prologue

  광주에서 차를 몰고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지리산IC를 빠져나와 구인월교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걸어 인월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운봉으로 가는 버스(09:47)가 있다.

  버스로 10분도 채 달리지 않아 운봉초교 앞에서 내려 둘레길을 시작한다.

  자욱한 안개는 어느덧 걷히고 맑고 파란 가을 하늘이 드러난다.

  둘레길 2구간 입구에는 인파들로 붐비고 2구간의 둑방길은 중장비를 동원하여 길을 넓히고 있어 공사장을 방불케 하였다.

  그러나 자연은 가을로 물들어가는 풍경이 아름다운 하루였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운봉초등학교가 나타난다..

 

1995년 3월 면에서 읍으로 승격된 운봉읍..

동쪽으로 동면·산내면, 서쪽으로 산동면·이백면, 남쪽으로 주천면, 북쪽으로 아영면·장수군 번암면과 접한다.

동쪽에 덕두산(1,150m)·바래봉(1,165m)·세걸산(1,207m) 등 1,000m 이상의 지리산 자락이 서북능선,

서쪽에 고남산(846m)·여원치 등이 솟아 있다.

지형적 영향으로 고랭지 기후를 나타내어 눈도 많이 내리고 여름철도 서늘하여 25℃ 이상의 기온이 드물다.

운봉이라는 지명은 소백산맥의 동쪽 사면에 위치한 이곳에서 구름에 가려진 지리산의 많은 봉우리를 보게 된 데서 생긴 것이다.

또, 고을의 지형이 중국 송나라의 ‘운봉’이라는 고을과 비슷하여 그곳의 지명, 하천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고 한다.

옛날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국경 요새지였고, 운봉이 행정상 군(郡)이었던 1913년까지만 해도 서천리는 군청소재지였던 곳이다..

 

운봉초교에서 2구간의 시작점으로 이동한다..

 

제2구간은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10.3km 구간으로 오른쪽은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너른 운봉 들녘을 따라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을 조망하며 호쾌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2코스 시작점을 지나 서림공원을 향해 출발한다..

 

가을로 물들어가는 서림공원의 풍경이 아름답다.. 

 

서천리당산이 있는 서림공원에 이른다..

 

‘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뜻의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이라는 글을 새겨 놓았는데, 남·여 모두 수염이 달린 것이 특이하다.

마을 수호의 신앙적 의미 외에도 서민들의 소박한 표정이 사실적이어서 연구자료로 가치가 있다..

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돌장승인 진서대장군..

 

길 건너편의 방어대장군이 마주하고 있다. 이 여장승은 키가 작고 귀가 없다..

 

서림공원의 물들어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서림교 옆 둑방길을 따라 이어진다..

 

서림공원 안내판에서..

 

람천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둑방길..

 

멀리 고남산이 고개를 내민다..

 

둑방을 따라 벚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길..

 

동남쪽으로는 지리산 바래봉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협동교를 지나고..

 

벚나무길은 둑방을 따라 한없이 이어진다..

 

가을의 향연, 코스모스..

 

코스모스도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다..

 

아직도 자태를 뽐내고 있는 코스모스를 찾아본다..

 

람천을 가로지르는 신기교를 건넌다..

 

신기마을이 다가온다..

 

길가의 조그만 동산.. 무덤만한 크기의 작은 동산이 제법 거창한 이름과 유래를 가지고 있다..

 

원래는 거북바위가 있어 귀암(龜巖)이라 불렀는데 풍수지리상 이 마을이 와우혈이라 소가 먹는 풀(밥구시)을 의미하는 초봉으로

바꾸었다 한다. 초봉(草峯)이라는 표석이 각인되어 있다..

 

숲속의 신기마을회관..

 

신기마을로 들어서는 사반교..

 

서림공원에서 비전마을로 이어지는 5km의 제방길은 너른 운봉 들녘을 적시는 젖줄인 람천을 따라 걷는 길로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외에 여러 종류의 동식물을 볼 수 있다..

 

길게 이어지는 둑방길을 따라간다..

 

유유히 헤엄치는 철새들..

 

람천은 지리산 고리봉에서 발원하여 남원시 운봉읍·인월면·산내면에서 흐르다가 경남 함양군의 임천으로 이어지는 지방 2급 하천이다..

 

람천을 파헤친 흙들을 처치하기 곤란하여 길위에 덮고 있다...

 

비전마을 입구의 동편제 쉼터..

 

다리를 건너면 황산대첩비가 바라보인다..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는 1380년(우왕6년) 이성계, 이두란장군이 황산에서 왜적 아지발도(阿只拔都)군을 물리친 황산대첩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1577년(선조10년)에 세운 승전비로 높이 4.25m이다.

김귀영(金貴榮)이 비문을 짓고, 송인(宋寅)이 글을 쓰고, 남응운(南應雲)이 글을 새겼으며, 박광옥(朴光玉)이 세웠다.

비각은 1667년(현종8)에 현감 허제(許濟)가 건립하였으나 비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파편만 남아있는 정도였다.

1957년에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그대로 이용하여 본래의 좌대를 세우고, 1973년 보호각을 세웠다.

중건된 비는 쌍귀(雙龜)를 떠서 새겨진 듯하며, 본래 모양의 높이·너비·두께 등은 정확히 고찰할 수 없다.

비문에는 당시의 전라도관찰사 박계현(朴啓賢)이 옛날 태조가 승전한 황산이 시대가 흐르고 지명이 바뀌어 잊혀져가니 비석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청에 따라 왕명으로 건립하였음을 비롯, 이성계가 10배의 적을 대파함으로써 만세에 평안함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성계의 업적을 기려 이 비를 세운다는 명문 등이 실려 있다.

글씨는 오로지 조맹부(趙孟頫)의 글씨체를 닮은 것으로 결구에 허한 곳이 많고 필력도 주경하지 못하다.

<동국금석평 東國金石評>에 그의 글씨를 비(肥)와 속(俗)으로 평하였는데 이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비전마을 황산대첩비지 표지판..

 

비전마을은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고, 또한 마을 5리 전에 하마정이 있어 말을 탄 관리가

황산대첩비를 지날 때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는 이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와 비 앞에서 절을 하였다고한다..

 

마을 앞 쉼터에서 쉬어간다..

 

잠시 송흥록과 박초월 생가터..

 

잠시 안으로 들어선다..

 

이곳에는 구한 말까지 2층 정자가 있어 주변의 주막과 기녀(기생)와 소리꾼, 가마꾼(轎軍)이 상주하던 곳이었다고..

 

그래서 비전을 역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말 동편제의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이 태어난 곳이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곳으로

동편제의 고향으로 국악의성지가 있는 곳이다...

 

 

 

국창 박초월의 생가터..

박초월(朴初月)은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으로서 김소희, 박록주와 함께 1930년대부터 우리나라 여류 판소리를 대표해 온 인물이다.

서슬과 구성이 있는 목으로 서민적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김소희와는 다른 여창 판소리의 경지를 개척했다.

창극과 여성 국극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춘향가」의 월매 역으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성준 바디 「수궁가」

중요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현재 박초월 바디 「수궁가」「흥보가」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박초월은 순천시(승주군) 주암면 봉암리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남원으로 이사하였으며, 아영면과 운봉읍에서 생활하면서

판소리를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12살 때부터 김정문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 15살 때부터는 송만갑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20살 무렵에는 오수암으로부터 서편제「흥보가」를 배웠고, 25살 무렵에는 정광수로부터 유성준 바디「수궁가」를 배웠다.

박초월은 임방울에게도 소리를 배운 적이 있다. 16살 때 전주에서 개최된 전국남녀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여 이름을 얻었다.

18살 때부터 폴리돌(Polydol)에서「육자배기」,「흥타령」,「춘향가」 등을 녹음하였다.

17살 때에는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했고, 이후 대동가극단, 동일창극단 등에서 활동했다.

동일창극단에서는 극단의 대 성공작인「일목장군」에서 여주인공인 아리주공주 역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해방 후「춘향전」의 월매 역으로는 당대 제일인자라는 평을, 1976년에는 서베를린 국제현대음악제에 참가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1955년 박귀희와 함께‘대한민속예술원’을 창립하여 초대 이사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후에 국악예술학교로 발전하였다. 51살 때인 1967년에는 유성준 바디「수궁가」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해성, 최난수, 최승희, 김수연, 조통달, 박양덕, 전정민, 왕기창 등은 박초월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남원 운봉 출생인 송흥록(宋興錄)동편제 판소리의 시조로 19세기 판소리 전기 8명창 중 한 사람이며 가왕()으로 일컬어졌다.

모든 가조(歌調)를 집대성하는 한편, 매부인 김성옥이 시작한 진양조를 자신의 노래에 도입, 완성하였다.

그의 창법은 발성초가 극히 신중하였고, 웅건·청담한 창법을 가진 동편제(東便制)를 이룩하였다.

산유화조는 경상도 민요의 선율형인데, 송흥록은 진양조의 완성을 통해 양반들의 음악적 요소를 판소리 속에 도입하고,

산유화조의 개발을 통해 다른 지역의 음악적 요소를 판소리 속에 도입함으로써 판소리가 계급적,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민족의 음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선창극사>는 송흥록이 매부인 “김성옥에게 진양조를 처음 듣고 다년간 연마하여 그 완성이 극치에 이르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송흥록이 진양조를 완성한 데에는 대구감영의 명기였던 맹렬이란 기생과 관련이 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송흥록의 소리에 반해 같이 살던 맹렬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그를 떠나자 슬픈 마음을 노래로 불렀는데 그것이 바로 진양조였다는 것이다.

안민영이 쓴 <금옥총부>에 송흥록의 집에 가니 맹렬이가 집에 있어서 같이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송흥록은 귀곡성을 잘했는데, 진주 촉석루에서 <춘향가> 중 ‘옥중가’를 부를 때 귀곡성을 내자 촛불이 꺼지며 공중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나는 듯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송흥록은 <변강쇠타령>, <춘향가> 중 ‘옥중가’, ‘<적벽가>’를 잘 불렀으며, 더늠으로는 <조선창극사>에 단가 한 편이 전한다
..

 

생가터를 나와 다시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람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

 

어느덧 가을은 우리 곁에 찾아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아름다운 가을 길..

 

풍성한 가을의 향연을 느끼며..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비전마을 앞을 지난다..

 

황산과 군화마을..

해발 698.4m의 황산은 동부의 인월 및 아영분지와 서부의 운봉분지를 연결하는 길목의 산정부로 전망과 목이 좋은 전략적 위치에 있다.

덕두산과의 구조선이 동서로 통과하면서 운봉의 물줄기인 남천이 빠져나가는 목이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아름다운 길을 따라간다..

 

둑방을 따라가면 군화마을..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며서 13가구를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마을 이름을 ‘군인들이 지은 화수 마을’이란 뜻으로 군화동(軍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

 

길가에 남무대각세존 석가모니불이 있다..

 

24번 국도에서 바라본 다이어드하우스, 예전에는 대덕리조트 였는데 이름이 바뀌었다..

 

옥계호 둑길을 따라 오른다..

 

옥계호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축조한 저수지로, 1991년 착공하여 1997년 준공되었다..

 

총저수량 103만 3,000t, 유역면적 410만㎡, 만수면적 9만 2,000㎡, 수혜면적 117만㎡에 이른다.

댐의 길이 261m, 높이 41.8m, 체적 1만 4,80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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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을 지나면 길은 임도로 이어진다..

 

둘레길 표지목에서..

 

잠시 숲길로 이어져 재 하나를 넘는다..

 

도로 반사경에서..

 

능선 마루를 넘어서면 흥부골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

 

자연휴양림 아래의 조그만 펜션이 아름답다...

 

흥부골 자연휴양림 안내도...

 

자연휴양림에 내려서면 박을 타는 석상...

 

 

 

흥부골 자연휴양림은 1997년 조성되기 시작하여 약 1㎢에 2002년 개장하였다.

단체수련동(2동)·숲속의집(7동)·방갈로(3동)·취사장·공동샤워장·급수대를 비롯하여 향토민속놀이마당·교육자료관 등 총17동의 건물이 있다.

덕두산(德頭山, 1,150m)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휴양림에서 덕두산 정상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산자락에 수령 약 55년의 잣나무 군락이 있어 삼림욕을 하기에 좋고, 경관 또한 뛰어나다..

 

잠시 도로를 따라 내려서다가..

 

우측 숲길로 접어든다..

 

다시 도로에 내려서면..

 

길가의 다오름마을 민박집 안내..

 

사과나무 농장 앞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부드러운 숲길을 따라가면..

 

 

오솔길처럼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고사리밭을 지나 내려서면 월평마을로 들어선다..

 

 

월평마을..

운봉에서 박씨가 처음 입주하고 새마을 신촌으로 불리다가 후에 마을 형국이 반월형이라 월평(月坪)이라 불렀다.

또는 마을 터가 동쪽 팔랑치를 마주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

 

월평(月坪)이란 마을 이름이 말하여 주듯이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월평이라 하였다..

 

1800년대 후반 천석꾼이 운봉 박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람을 모아 살기 시작하였다..

 

 

 

 

2코스의 종점이자 3코스 시작점인 인월면에 이른다...

 

인월면은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서울, 남원, 함양 등지에서 접근이 쉽다.

인월에서 비전마을로 가는 길은 조선시대의 7대 대로중 하나인 통영별로의 일부로 이 길은 비전에서는 여원재를 거쳐

남원, 오수, 전주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고, 인월에서는 팔랑치, 함양을 거쳐 진주로 이어지던 옛길이다.

 

 

 

 

월평마을 람천변 구 인월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월정(迎月亭)..

 

이 정자를 짓게 된 유래는 1380(우왕 6년)에 당시 3도 도원수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섬멸할 때,

어느 날 밤 너무 어두워 적을 탐지하기 어렵자 하늘을 우러러 달뜨기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밝은 달이 떠올라 적을 물리칠 수 있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이 정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상량문에 의하면 단기 1960년 정월에 중건하였다. 팔작지붕으로 겹처마 양식의 동향이며, 규모는 정면 3, 측면 2칸이다.

 

인월리를 가로지르는 람천에 영월대(迎月臺)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있다고 전해오는데 이를 두고 인월 8경이라고 한다.

 

인월8경은 황강폭포(荒崗瀑浦), 고역연람(古驛煙嵐), 층층괴석(層層怪石), 뇌뢰반암(磊磊盤岩), 풍천어적(楓川漁笛),

월평농가(月坪農歌), 삼봉낙조(三峰落照), 백장효종(百丈曉鐘) 등이다.

 

인월 시가지풍경..

 

인월전통시장은 멀리 경상도 함양에서부터 인근의 마천, 산내, 아영, 운봉, 인월 등 6개면 사람들이 모여 장을 이루는 곳이다.

매주 토요장터가 열리며, 문화공연행사와 체험마당, 먹거리, 해발 500m이상 지리산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남원 흑돼지와 포도,사과 등

농특산물 판매코너를 함께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