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기행] 만연선사의 설화를 간직한 나한산 만연사(萬淵寺)
본문 바로가기
길따라 트레킹/역사, 문화, 그리고 여행

[화순기행] 만연선사의 설화를 간직한 나한산 만연사(萬淵寺)

by 정산 돌구름 2017. 2. 4.

만연선사의 설화를 간직한 화순 나한산 만연사(萬淵寺)

 

2017년 2월 4일(토), 화순 만연산 산행을 마치고 둘러본 만연사(萬淵寺)..

 

전남 화순군 화순읍 동구리 179 만연산 자락에 위치한 만연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만연산은 나한산(羅漢山)이라고도 불려 나한산 만연사로 표기되어 있다.

고려 희종4(1208년)에 만연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만연선사(萬淵禪師)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무등의 주봉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다가 만연사 중턱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가고자 앉은 사이 언뜻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1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를 하고 있는 꿈이었다.

잠을 깨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백색인데 신기하게도 선사가 누운 자리 주변만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길로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6.25 이전까지 대웅전, 시왕전. 나한전, 승당, 선당, 동상실. 서상실. 동병실. 서별실. 수정료, 송월료 등 38방과 대웅전

앞의 큰 설루, 설루 아래 사천왕문과 삼청각이 있던 대찰이었다. 또 부속암자로는 학당암, 침계암, 동림암, 연혈암이 있었다.

6.25로 전소되었다가 1978년 이후 대웅전, 나한전, 명부전, 한산전, 요사채가 복원되었고 암자로는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경내에는 보물 제1345호로 지정된 만연사 괘불탱은 조선시대 후기 1783년(건륭 48년)년 3월에 영산회상탱으로 조성되어

화순 나한산 만연사에 봉안되었다는 화기를 가지고 있다.

제작에 비현(丕賢)스님이 참여하였는데 비현은 선암사 괘불 봉안에서는 대화주로, 흥국사 괘불 제작에서는 금어로 활약하였다.

괘불의 크기는 가로 586cm, 세로 760cm이고, 괘불함은 길이 674cm, 너비 34 cm, 높이 31cm 이다.

푸른색이 화면 전반을 휩싸고 있는 이 괘불은 천의 일부와 가사를 붉은 색으로 채색했으며 바탕은 삼베이다.

적녹색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임진왜란 이후 강희, 건륭 연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조선후기의 특징이다.

본존불은 아미타여래입상으로 육계와 나발을 갖추고 눈은 정안으로 약간 아래를 내려다보는 전형적인 불타의 모습을 하고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의 옷깃에 화려한 무늬를 더했으며, 몸 주변에 그리는 신광은 없고, 머리주변은 둥글게 표현했다.

두광 내에는 녹색으로 칠하고 노랑, 빨강, 청색으로 돌려 문양을 내었다.

비슷한 크기의 형태로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상을, 오른쪽에는 덕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표현하였다.

두 협시는 지금까지의 삼존도 양식과는 달리 주존의 크기와 대등한 위치에 배치되어 조선 후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괘불 아랫면에는 제작연대와 괘불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한때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젊은시절 부친이 화순현감으로 부임하던때에 만연사 동림암에 거처한 적이 있으며,

국창 임방울선생이 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이곳을 찾아 피나는 연습을 하였던 곳이기도 한다.

높이 1.55m,너비 56cm,두께 23cm 내외 가량의 석조지주 2쌍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좌우에 위치하고 있다.

향좌의 지주는 46cm의 거리를 두고 있고, 향우의 것은 55c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다.

각 지주에는 약 10cm크기의 간공이 위 아래로 2개가 뚫려있는데 간공 사이는 향좌가 60cm, 향우가 68cm가량이다.

하단부에는 약간의 균열이 나 있으며 건립 시기는 괘불을 조성한 시기와 일치할 것으로 추정한다..

 

 

 

나한산 만연사 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꽃비가 내리는 하늘, 화우천(華雨天)..

옛날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시려고 삼매에 드셨을 때 하늘에서 4종의 꽃(만다라화, 마하만다라화, 만수사화, 마하만수사화)이

비오듯 쏟아졌다는데서 유래하였다..

 

 

만연사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웅전 앞의 괘불지주..

높이 1.55m,너비 56cm,두께 23cm 내외 가량의 석조지주 2쌍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좌우에 위치하고 있다.

향좌의 지주는 46cm의 거리를 두고 있고, 향우의 것은 55c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다.

각 지주에는 약 10cm크기의 간공이 위 아래로 2개가 뚫려있는데 간공 사이는 향좌가 60cm, 향우가 68cm가량이다.

하단부에는 약간의 균열이 나 있으며, 건립 시기는 괘불을 조성한 시기와 일치할 것으로 추정한다..

 

대웅전(大雄殿)은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하며 항상 사찰의 중심에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脇侍)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에는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또한 삼세불(三世佛)과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삼세불로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彌勒菩薩)과 갈라보살(羯羅菩薩)이 협시하게 되며,

다시 그 좌우에 석가의 제자인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의 상을 모시기도 한다.

갈라보살은 정광여래(定光如來)로서 과거불이며, 미륵보살은 미래에 성불하여 미륵불이 될 미래불이므로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삼세불을 봉안하는 것이다.

삼신불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으로 구별하며, 일반적으로 법신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보신은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화신은 석가모니불을 지칭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웅전에 봉안하고 있는 삼신불은 선종(禪宗)의 삼신설을 따라

비로자나불·노사나불(盧舍那佛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대웅전의 중심에 불상을 안치하고 있는 불단을 수미단(須彌壇)이라고 한다.

이는 불교에서 그 중심에 위치한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부처님이 앉아 자비와 지혜의 빛을 발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대웅전 내에는 많은 탱화들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의 후불탱화로는 주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봉안되는데 이는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제자들을 모아 설법하는 정경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주존불에 삼신불 또는 삼세불이 봉안될 경우 삼여래탱화(三如來幀畫)를 모시게 된다.

또한, 신중(神衆)을 모신 신중단(神衆壇)과 영가(靈駕)를 모신 영단(靈壇)을 함께 마련하게 되는데, 신중단에는 신중탱화를,

영단에는 감로탱화(甘露幀畫)를 봉안한다.

대웅전의 내부는 다른 어떤 건물보다 화려하고 장엄하게 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목조보개(木造寶蓋 불단 위 천장에 있는

구조물로 닫집이라고도 ) 및 불단의 조각이 매우 섬세하여 목조공예의 진수를 찾을 수 있게 한다.

불단 주변은 여러가지 화문(花文)과 천의(天衣)를 날리는 비천(飛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주불 위에는 닫집을 만들어 화엄의 여의주(如意珠)를 입에 문 용과 극락조(極樂鳥) 등을 장식한다.

천장에는 보상화문(寶相華文)과 연화문(蓮華文) 등을 조각하여 불전의 천우보화(天雨寶花)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대웅전에 갖추어지는 불구 중에는 촛대와 향로 외도 중생의 업을 비추어보는 업경대(業鏡臺)가 불단 양편에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업경대는 동판으로 만들어지며 주로 목조사자(木造獅子)가 업고 있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만연사 대웅전에는 목조삼존불상과 산신상을 비롯하여..

 

 

칠성탱화·산신탱화·천룡탱화 등의 탱화와 동종이 있다..

 

 

 

 

 

 

대웅전 옆 명부전..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이 세상이 아닌 어두운 세계인 명부세계(冥府世界)의 왕인 염라대왕(閻羅大王)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이라 하며,

또 지옥에 있어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유명계(幽冥界)의 심판관인 열분의 왕을 모신 곳이라하여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명부전(冥府殿)은 염라대왕 등 10왕을 모신 전각인데 주존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다.

시왕중 제1 진광대왕, 2 초강대왕, 3 송제대왕, 4 오관대왕, 5 염라대왕, 6 변성대왕, 7 태산대왕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각 7대왕이 심판을 맡으며, 그 뒤 백일에는 제8 평등대왕,

소상 때는 제9 도시대왕, 대상 때는 제10 오도전륜대왕이 차례로 생전에 지은 선업과 악업 등 잘잘못을 심판한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로부터 사바세계에 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여 그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토록 하는 부촉(付囑)을 받았다. 지장보살의 하화중생(下化衆生)에 대한 서원(誓願)은 지옥문에까지 이르러 명부시왕의

무서운 심판에서 인간울 구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지장보살의 모습은 일반 불상과는 달리 머리에 두건을 쓰거나 삭발한 승려형의 2가지이며, 한 손에는 석장(錫杖)을 짚고 있다.

명부전은 사찰 내의 불전들 중에서 그 격이 한 단계 떨어지므로 건물의 크기나 양식도 주불전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 보통이다.

전각 내의 배치에서도 차이가 난다.

즉 대웅전 등에는 중앙의 불단 위에 불상을 봉안하나 명부전에서는 중앙에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왼쪽에 도명존자(道明尊者),

오른쪽에는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봉안하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 동자상, 판관(判官) 2, 녹사(錄事) 2, 장군 2인을

자형으로 배치하게 된다..

 

 

 

 

 

 

대웅전 좌측의 나한전(羅漢殿)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으로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약칭으로 그 뜻은 성자(聖者)이다.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자격[應供]을 갖추고 진리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능력(應眞)을 갖춘 사람들이므로 나한전을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한다.

부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 한다.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이 봉안되어 있다.

그 좌우로 16나한이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끝부분에 범천과 제석천을 함께 봉안하는 것이 나한전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16나한은 후불탱화로 그려 봉안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는 불단에 나한상이 없다.

후불탱화에는 16나한도 이외에 영산회상도 역시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 5백 나한을 모신 곳도 있는데 이것은 부처가 열반한 후 가섭이 부처가 생존했을 때의 설법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을 때 모인 비구가 5백 명인데서 비롯된다.

나한전은 대웅전과 달리 좁은 폭의 불단을 자형으로 배치하여 부처와 나한을 차례로 봉안하고, 깨달음의 정도가 낮은 나한을

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불단을 장식하지도 않고 절집을 장엄하지도 않는다.

위치도 주불전에서 떨어진 자리에 두고, 건물의 외양도 주불전보다 격이 낮게 한다.

나한신앙은 중국·일본·한국에서 크게 성행하였는데, 이 때문에 한국의 사찰에도 나한전이 많이 건립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경북 울진군에 있는 불영사 응진전(보물 제730)으로 매우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전북 완주군의 송광사에는 대웅전 후면으로 특이한 양식을 한 오백나한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경북 영천시 은해사(銀海寺) 거조암(居祖庵)에도 오백나한전이 있다..

 

 

 

 

 

 

산신각(山神閣)은 산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사찰에 따라서는 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부른다.

또 삼성각(三聖閣)을 두어 칠성신·독성(獨星)과 함께 모시는 경우도 흔하다.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많이 믿던 토착신이다.

특히 산지가 70%나 되는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산신각이 세워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로 대개 전각의 뒤쪽에 세우며, 크기는 정면과 측면 각 1칸이 보통이다.

산신각 내에는 산신을 그린 탱화를 모시는데 대개 흰수염, 대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손에는 하얀 깃털부채나 파초선·불로초 등을 들고 있고 주로 봉래산·영주산·방장산 등의 삼신산을 배경으로 한다.

한라산이나 속리산·계룡산·지리산 등지의 사찰에는 드물게 여자 산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여자 산신은 트레머리에 댕기를 두르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호랑이에 걸터앉거나 기대고 있는 모습이며, 손에는 대개 불로초를 들고 있다.

이밖에 복건(福巾)이나 유건(儒巾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지팡이를 든 유교적 산신도 있고, 삭발한 스님이 <묘법연화경>

같은 불경을 들고 있는 불교식 산신도 흔하며, 의상은 가사와 비슷하나 적녹색이 주류를 이룬다..

 

 

 

 

 

 

 

 

 

 

 

 

일주문 앞의 보호수로 지정된 젓나무(전나무)..

수령 300년으로 둘레 3.5m, 높이 29m인 이 나무는 조계산 수선사 주지로 있던 진각국사 혜심이 심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