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기행] 주왕산 계곡의 천년사찰,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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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기행] 주왕산 계곡의 천년사찰,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by 정산 돌구름 2016. 8. 16.

주왕산 계곡의 천년사찰, 청송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2016년 8월 14일, 하계휴가를 맞아 주왕산 산행을 하면서 찾은 곳은 청송 주왕산 대전사이다.

산행에 앞서 대전사를 둘러본다.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442-1에 자리한 대전사(大典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672(문무왕 12)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주왕사적(周王寺蹟)에 의하면 892(진성여왕 6) 낭공(郎空)

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또, 919(태조 2)에 눌옹(訥翁)이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 따 중창하였다고도 한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자가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는 설도 있다.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1672(현종 13)에 새로 지어 현재 사찰의 중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1976년에 보광전을 고칠 때 1662년의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을 훈련한 곳이다.

또한 대전사는 최치원,나옹화상, 도선국사, 보조국사, 무학대사. 서거정, 김종직 등이 수도하였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주요 건물로는 보광전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과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보물 제1570호로 지정된 보광전(普光殿)은 정면과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양식으로 천장은 ''자 모양으로 꾸몄다.

공포는 내·2출목을 이루는데 외부에서는 앙서(仰舌)로 되어있고 내부에서는 교두형으로 되어있어 조선 중기이후의 목조건축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로자나불(毘盧子那佛)을 모시고 있다.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경북 문화재 자료 제468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부전 지장탱화는 19세기로 넘어가는 새로운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지장보살의 머리에 원형의 두광, 신체에 키모양에 가까운 신광이 둘러져 있고, 채색이 짙어지고 물감이 두껍게 칠해지는

경향이 현저하다. 따라서 조선시대 후기의 불화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명부전 안에 있는 지장삼존 및 시왕상은 경북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각성이 다소 미흡하고 재질과 제작연대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이나 지장삼존과 시왕상, 권속이 완형으로 잘 보존되어 있어

이 시기 지장삼존을 중심에 두는 명부계 존상의 조각경향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보광전 앞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말기의 2층 기단 3층 석탑으로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 맞추어 복원되었다.

규모는 작지만 모양이 아름답고 조각수법이 정교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삼층석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 1과와 고승사리 3과도 함께 모셨다고 한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淸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그 뒤 성지도사가 와서 이 절의 지세가 배가 바다에 떠서 항해하는 부선형(浮船形) ()인데,

여기에 우물을 파니 배 바닥에 구멍이 뚫어진 격이 되었기에 불이 나서 절이 타게 되었다면서 우물을 메우게 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전사 보광전(普光殿)..

경북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되었다가 보물 제1570호(2008년7월28일)로 변경되었다.

 

대전사의 본당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72년(현종 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화강석 기단 위에 화강석 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다.

공포는 내외 모두 2출목이며, 전면은 앙설형이고 뒷면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다..

 

불단 내부에 높은 기둥 2개를 얹고 그 위에 우물천장을 올렸으며, 불단 상부의 닫집은 없다.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우물천장과 빗천장이다.

중창 당시의 것으로 짐작되는 내부 단청은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조선중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건축연대가 명확한 다포계의 목조건물로 조선 중기 이후의 목조건축 양식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석가모니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보광전석가여래삼존불(釋迦如來三尊佛)은 경북 유형문화재 제356호로 지정되었다.
두꺼운 법의와 구부린 어깨, 큰 두상의 비례미, 원만한 상호() 등 조선시대 중기 불상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특히 주불대좌는 세 마리의 사자상이 두 발을 들어 올려 불상을 떠받친 자세를 취한 특이한 구조이다..

 

석조()로 조성되어 내구성이 뛰어나며 조형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조선시대 석가여래좌상이다..

 

대전사 삼층석탑..

원래 금강탑이라는 쌍탑이 있었는데 파손되고 일부 탑신만 보광전 앞에 쌓여있던 것인데,

2003년 실측에 의해 복원을 시작하였지만 부재가 부족해 원래 쌍탑을 모두 복원하지 못하고 1기만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나마 부족한 부분은 새로운 부재를 섞어 만들게 되었다.

이 탑의 상층 기단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천왕상(四天王像)과 팔부신중(八部神衆)의 일부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삼층석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 1과와 고승사리 3과도 함께 모셨다고 한다..

 

대전사 회연당..

 

탐진당..

 

 

응진전(殿)..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과 가섭()을 협시로 모시고,

다시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끝부분에 범천()과 제석천()을 함께 봉안한다..

 

때로는 아난과 가섭 대신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을 안치하여 삼세불이 이루어지게 배열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함께 안치되는 16나한은 수행이 완성되어 이미 성자의 위치에 오른 수많은 아라한()들 중 말세()의 중생에게

그 복덕을 성취하게 하고 정법()으로 인도하게 하겠다는 원()을 세운 성자들이다..

 

후불탱화()로는 주로 영산회상도()나 16나한도가 많이 봉안된다..

 

명부전(冥府殿)은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殿)이라고도 한다.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고 있다..

 

경북 문화재 자료 제468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부전 지장탱화(冥府殿 地藏幀畵)..

1806년에 제작되었으며, 19세기로 넘어가는 새로운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중앙의 본존인 지장보살상은 통견의 법의()를 입고 손의 모습은 설법 교화의 수인이다.

얼굴은 갸름하고 단아한 외형을 갖추었으며 투명한 두건을 쓰고 있다.

지장보살상 좌우에는 도명존자, 무독귀왕, 6대보살 등 천동·천녀가 등장한다.

특히 신체적 비례미가 8등신으로서 균형을 갖추고 있으며 색채가 선명하다.
지장보살상과 여러 보살상이 입은 가사문양이 화려하고 필선이 세련되었으며 제작기법이 뛰어난 조선후기 대표적인 불화이다.

지장삼존상과 시왕상 등은 조각성이 다소 미흡하고 재질과 제작연대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러나 지장삼존과 시왕상, 권속이 완형으로 잘 보존되어 있어 이 시기 지장삼존을 중심에 두는 명부계 존상을 보여준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판관() 2구, 녹사() 2구, 문 입구에 장군()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을 갖추게 된다.

이들 중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소상()·대상()까지 열 번에 걸쳐

각 왕에게 살아 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을 심판받게 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절에서 재()를 모시게 된다..

 

산령각..

 

산령각의 탱화..

 

 

관음전(觀音殿)..

관음전이 그 사찰의 주불전(殿)일 때에는 관음전이라 하지 않고 원통전(殿)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불탱화()로는 주로 아미타불화로 모신다..

 

관세음보살(薩)이나 아미타삼존불(), 즉 중앙의 아미타불과 좌우의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신다.

 

관음전 안에는 관음상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류()관음·십일면()관음·해수()관음·백의()관음

등을 모신 곳도 있다.

 

천수관음(千手觀音)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또는 천비()천안관음이라고도 한다.

‘천’은 무량 ·원만의 뜻이고, ‘천수’는 자비의 광대함을, ‘천안’은 지혜의 원만 ·자재함을 나타낸다.

천 개의 손바닥 하나하나에 눈이 있어,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그 눈으로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관음전 뒤편의 봉향각(奉香閣)..

 

그 옆으로 수선당(修禪堂)..

 

뒤편으로 4기의 부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