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기행] 임진왜란 의병 김천일 사당, 나주 정렬사(旌烈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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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기행] 임진왜란 의병 김천일 사당, 나주 정렬사(旌烈祠)

by 정산 돌구름 2016. 7. 20.

임진왜란 의병 김천일 사당, 나주 정렬사(旌烈祠)

 

○ 탐방일 : 2016년 7월 17일

○ 소재지 : 전남 나주시 대호동 646-1

○ 정열사 소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金千鎰)과 그의 아들 상건(象乾), 양산숙(梁山璹),

  임회(林檜), 이용재 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606(선조 39) 현 나주고등학교 뒤편 월정봉 아래(교동)에 창건하였으며, 1607년 정렬사로 사액되면서 사우를 나주

  읍내(현 나주잠사공장터) 부근으로 옮겼다.

  이후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으며, 1953년 문열공사업추진회가 조직되고,

  1963년 송월동에 신실(神室)을 마련하면서 복원을 시작하였다.

  1966년 사우를 남산공원으로 옮겼다가 1984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으며, 1986년 정렬사비와 건재동상을 옮겨 세웠다.

  사당은 정면 3, 측면 2칸 반의 규모로서 팔작지붕이고, 내삼문과 외삼문은 정면 3, 측면 1칸의 맞배 평대문이다.

  정렬사비는 전라남도기념물 제48호로서 인조 4(1626)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장유가 지었으며, 김천일의 활약과 당시의 국내 상황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 비는 창의사 문열공 김천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순국 34년 뒤인 인조 4(1626)에 나주 선비들이 공의 사우에 세운 것으로 신풍군 장유가 비문을 썼다.

  “나는 의병을 일으키는 날 죽기로 각오했었다. 다만 너희들이 가련하구나라고 한 최후의 한마디가 우국충정을 잘 나타낸다.

  김천일은 1537년 나주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진사 김언침(金彦琛)이고, 어머니는 양성이씨이다.

  본관은 언양이고, 자 사중(士重), 호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호남에서 명망이 높았던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573(선조 6) 그의 학행이 알려지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관직에 나아갔으며,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6년 경상도 도사,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이후 낙향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즉시 의병을 일으켜 선조가 피란간 평안도로 향하다 강화도에 웅거 수차에 걸쳐 왜군을

  무찔렀으며, 이듬해 진주성 싸움에서 98야간의 혈전 끝에 성이 함락되자 큰아들 상전과 촉석루에서 투신, 순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