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기행] 조선시대의 관아문, 정수루(正綏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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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기행] 조선시대의 관아문, 정수루(正綏樓)

by 정산 돌구름 2016. 7. 19.

조선시대의 관아문, 나주 정수루(正綏樓)

 

○ 탐방일 : 2016년 7월 17일

○ 소재지 : 전남 나주시 금계동 13-18

○ 정수루 소개

  전남문화재자료 제86(1984229)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관문이다.

  나주의 여러 지지류(地誌類)관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정완루(樓)는 정수루라고도 부르는 나주의 관아문이다.

  1603(선조 36)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우복룡(禹伏龍)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지도서>에는 목사 민백남(閔百男)이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영수루(永綏樓)로 나타나 있다.

  현재의 건물은 구조나 양식 등으로 보아 19세기에 크게 중수된 건물로 여겨진다.

  이곳을 지나면 나주목 관아인 동헌으로 들어가며 외동헌과 내동헌이 위치하였으나 현재는 내동헌인 목사내아만 남아있다.

  정수루 주변으로는 목사를 보좌하던 향리들의 집무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동쪽으로는 나주목의 궁실인 나주객사 금성관과 금성관의 정문인 망화루 등의 건물이 있었다.

  최근까지 정수루 아래로 사람과 차량이 왕래하였으나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지금은 우회시키고 있다.

  현재의 매일시장에 나주목사의 동헌인 제금헌(制錦軒)이 있었는데, 정완루는 이 동헌의 정문으로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기도 하고 관아에 들어가기 전에 의관을 단정하게 고쳐 입었다고도 전해진다.

  정면 3, 측면 2칸의 2층 겹처마 팔작지붕 누각으로 1층의 양 측면만 벽체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낮은 원형의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고, 2층 바닥에 장마루를 깔았다.

  2층의 기둥 위에 주두를 놓아 창방을 걸었으며, 그 위로는 기둥 사이마다 1구씩의 꽃받침을 배치하였다.

  공포는 행공첨차를 두어 외목도리의 장여를 받게 한 2익공식으로 쇠서에는 연꽃봉우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가구는 대량을 걸고 그 위로 종량을 얹힌 5량 구조이며종량 위로만 우물천장을 설치하고 나머지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양 옆의 중심 기둥으로부터 대량 위로 걸은 충량의 머리는 화려한 용머리 장식으로 치장하였다.

  왼쪽 용은 여의주가 없고 오른쪽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2층 누각에는 큰 북과 가로 158, 세로 55크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으며, 6·25전쟁 때 북이 분실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북은 198611월에 김영호가 다시 설치한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완루 누문이 통로로 사용되어 왔다.

  명절 때는 행사의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바로 앞 의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