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산 4박5일(제2일) - 2. 황산 4대 고촌중 하나인 탕모(唐模)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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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중국

중국 황산 4박5일(제2일) - 2. 황산 4대 고촌중 하나인 탕모(唐模)촌

by 정산 돌구름 2016. 5. 9.
중국 황산 4박5일(제2일) - 2. 황산 4대 고촌 중 하나인 탕모(唐模)

 

 

빗속에 잠구민택을 둘러보고 1015분 셔틀버스로 이동, 10여분 후 당모에 도착한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빗줄기는 다시 거세져 장마철을 연상케 한다.

그래도 빗속에 우산을 쓰고 당모마을로 들어선다.

거세게 몰아치는 빗속에 당모촌을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식사 후 다시 호텔로 돌아와 2시간여 휴식을 취하고 4시에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4D예술관을 관람한다.

 

 06:40 아침식사(호텔) / 09:00 호텔 출발 / 09:25 잠구민택 도착(10:15 출발) / 10:25 당모(11:35) / 12:15 점심식사 /

 13:30 식당 출발 / 13:40 호텔도착(16:00 출발) / 16:20 4D예술관(17:30) / 17:35 저녁식사(18:15) / 18:30 호텔도착

 

황산 4대 고촌 중 하나인 탕모촌(唐模村)

 정감팔괘촌 다음으로 발견된 고촌 당모는 당나라 때 형성되어 명나라, 청나라 때 번성했던 마을로 과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고대의 여러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실제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황산 후이저우구(徽州区) 첸커우진(潜口镇)의 촌급 행정구로 중국역사문화명촌(3, 2007)으로 지정되어 있다.

 탕모촌(唐模村)은 원래 서현(歙县) 관할이었으나 현재는 후이저우구(徽州区)에 속해 있다.

 황산의 입구, 서현 패방(牌坊)과 인접하여 있으며, 탄간시(檀干溪)가 경내를 지나고 있다.

 이 촌락은 당대에 건립되어 송원대에 성장하고 명·청대에 번성한 촌락으로 당의 월국공(越国公) 왕화(汪华)의 태증조부(太曾祖

 父) 숙거(叔举)가 창건하였으며, 923년 왕화의 후예가 산천사(山泉寺)에 자리를 잡았다.

 고희에 가까웠던 왕사립(汪思立)은 박학다재하고 천문지리에 능통한 자로 산천사 맞은편의 스쯔산(狮子山)이 길지이며,

 태조(太祖) 숙거(叔举)가 심어놓은 은행나무를 보고 이곳이 가히 자손을 번성시킬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겨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사자산으로 이주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수대에 걸친 노력 끝에 차례로 중왕가(中汪街), 육가원(六家园), 태자당(太子塘) 등의 건축물을 건립하며, 점차 일족들이 모여

 사는 촌락이 형성되었다. 왕사립이 아들과 손자들을 이끌고 휘주로 돌아왔을 때는 마침 오대(五代) 연간으로 후당(后唐)

 건립되고 제후들의 분쟁이 일어났으며 강성했던 당()은 이미 멸망한 뒤였다.

 왕씨자손들은 당이 그들의 선조에게 베풀었던 은덕, 즉 수()의 명장이었던 왕화가 당에 귀순하여 월국공(越国公)에 봉해졌고

 사후에 충열왕(忠烈王)의 시호를 받았던 은덕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촌락을 건립하고 당모(唐模)라는 명칭을 택하였다.

 일설에는 성당(盛唐) 시기의 격식, 풍모, 표준에 따라 건립하였다고 한다.

 1087년 쉬촌(许村)의 허귀일(许贵一), 허귀이(许贵二) 두 형제가 조실부모하자 탕모촌에 와 고모부에 의탁하며 몇 대에 걸쳐

 번창하여 허씨는 이 지역에서 왕(), (), () ()3개 성씨와 함께 번성하며 탕모촌의 명망있는 가문이 되었다.

 그들은 고모부인 왕씨가 키워준 은혜를 잊지 않고 당모(唐模)라는 촌락의 명칭을 같이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탕모촌의 형성과 명칭 등은 고대 휘주(徽州)에 사람을 중시하고 풍수와 충군(忠君) 사상이 결합된 산물이다.

 경내에는 휘파(徽派) 원림(园林)인 단간원(檀干园), 수구(水口), 수가(水街), 경정(镜亭), 동포한림방(同胞翰林坊), 사제정

 (沙堤亭), 고양교(高阳桥) 등 성급 문물보호단위가 있다.

 이외에도 사당 군, 천년 된 은행, 옛 우물, 명대 조상(雕像)과 송원명청의 소황미채(,.,) 18명의 명가진적비각(名家

 真迹碑刻) 등 고적이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청 초기 탕모촌의 허씨 중에 부유한 상인이 쑤저완간(苏浙皖赣) 일대에 36개소의 전당포를 소유하고 있었

 으며 그의 모친이 항저우 서호(西湖)를 유람하고자 하였으나 산이 높고 길이 멀어 연로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 효성이 지극한 아들은 거액을 투자, 촌락 가장자리에 연못을 파고 제방을 쌓아 서호의 경관처럼 조성하여 단간원(檀干园)

 이라 하며 정자와 누각을 지었으며 다리를 놓고 제방 가에 꽃을 심어 모친이 이곳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며 마을의 도움에 보답

 하였다. 단간원(檀干园) 내에는 삼담인월(三潭印月), 호심정(湖心亭), 백제(白堤), 옥대교(玉带桥) 등으로 인해 작은 서호

 (西湖)라는 칭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