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에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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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6

눈보라 속에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다..

by 정산 돌구름 2016. 1. 18.

눈보라 속에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다..

 

산행일자 : 2016117()

기상상황 : 흐리고 눈보라(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에 법계사 이후 눈보라. 2~-5)

산행인원 : 광주한길산악회(42) - 회비 35,000

산행코스 : 중산리회차장~중산리~칼바위~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유암폭포~칼바위~중산리~주차장(경남 산청, 함양)

구간별소요시간 : 14.23km(GPS), 7시간30분소요

  중산리회차장(09:30)~탐방지원센터(09:40)~칼바위삼거리(10:10~15)~망바위(10:50)~로터리대피소(11:20~30)~개선문(12:20)

  ~점심(12:30~55)~천왕샘(13:05)~천왕봉(13:20~30)~통천문(13:45)~제석봉(14:00)~장터목대피소(14:15~30)~유암폭포

  (15:15~25)~돌탑지대(15:30)~칼바위 삼거리(16:10~15)~탐방지원센터(16:40)~중산리정류장(17:00)

  <회차장야영장 1.0km/야영장천왕봉 5.2km/천왕봉장터목 1.7km/장터목야영장 5.1km/야영장중산리 1.9km> 13.9km

주요봉우리 : 지리산 천왕봉(1,915.4m), 제석봉(1,808m)

교통상황

  동광주홈플러스(07:10)~88고속~지리산휴게소~대전-통영고속~단성IC~20~59~거림(09:05)~중산리회차장(09:25)

  중산리주차장(17:40)~59~20~단성IC(18:10)~35번고속~88고속~인월황토사우나(18:40~20:50)~88고속~홈플러스(21:35)

 

 

산행지 소개

  민족의 영산 지리산(智異山, 1915.4m)은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알려져 왔으며, 웅장하고 뛰어난 절경으로

  19671229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서쪽으로는 전남 구례군에 접하고, 북쪽으로 전북 남원에,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산청군,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에 접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 산악지대로 3개 도, 5개 시, 15개 읍·면에 걸쳐 그 면적이 440.517(13천평)에 이르러 이는 계룡산국립공원의

  7배이고, 여의도 면적의 52배에 해당된다.

  지리산은 신라 5악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愚者)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려왔다.

  또, 지리산은 백두산의 맥이 한반도를 타고 내려와 이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에서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불가(佛家)에서 깨달음을 얻은 높은 스님의 처소를 가리키는 '방장'의 그 깊은 의미를 빌어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하였다.

  지리산은 남한에서 두번째로 높은 천왕봉(天王峰)을 비롯하여 제석봉(帝釋峰 1,806m), 촛대봉, 칠선봉, 반야봉(盤若峰 1,732m),

  노고단(老姑壇 1,507m)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활처럼 굽은 25.5km의 주능선은 1,500m가 넘는 봉우리만도 16개나 이어진다.

  또, 110여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지리산은 주능선을 중심으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과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개천인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개의 하천이 있으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 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10경은 노고운해, 피아골단풍, 반야낙조, 벽소명월, 세석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천왕일출, 칠선계곡, 섬진청류로 비경을 이룬다.

  예로부터 방장산으로 일컬어 온 지리산은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 속 삼신산의 하나이다.

  백두산이 뻗어 내렸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는데 남해바다에 이르기 전 잠시 멈추었다 해서 두류산(頭留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설에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하려 할 때 전국 명산에 기도를 올려 자신이 갖고 있는 창업의 뜻을 물었는데

  유독 지리산만이 반기를 들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지리산은 반역산(反逆山), 불복산(不伏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속시킴은 물론 역적을 지리산록의 전라도 지방으로 귀양 보냈다고 전한다.

  때때로 이 전설에 맞춰서 지리산(智異山)'지혜롭고 기이한 산', '지혜와 다른 산'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지리산은 또, 남악산(南岳山), 방호산(方壺山) 등의 이름을 갖기도 했다.

Prologue

  지난해 6월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오른 이후 7개월여 만에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다.

  아침부터 금방 쏟아질 듯한 잔뜩 흐린 날씨에 한길을 따라 7시에 홈플러스를 출발, 4차선으로 확장된 88고속도로와 35번고속도로를

  타고 단성IC를 거림에서 1차로 A팀을 내려주고 중산리로 들어서 주차장에서 500m 가량 올라선 회차지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흐리리지만 포근한 느낌이 드는 날씨에 땀을 흘리며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로타리대피소에 이른다.

  셔틀버스를 타고 오른 님들과 만나 잠시 여유를 보이고 개선문을 지나 천왕샘에 오르기 전에 점심식사를 하고 떠난다.

  점심 식사후 눈발이 날리더니 점점 더 거세 천왕샘 이후부터는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쳤다.

  정상에서 잠깐 인증샷을 날리고 장터목으로 내려선다.

  눈보라와 함께 운무에 잠겨 조망은 없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겨울날씨 답지않게 포근함과 얼어붙은 유암폭포의 아름다움,

  그리고 산행 후의 뜨끈한 온천욕과 삼계탕으로의 뒷풀이는 산행의 참맛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중산리 주차장을 지나 500m가량 오르면 대형버스 회차지에 이른다.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남기고 오른다..

 

숲속으로 들었다가 도로를 따라 오르면 승용차 주차장이 있는 주차장에 이른다..

 

탐방안내센터를 지나 오르면 순두류로 오르는 길과 등산로 갈림길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등산로 입구의 지리산 산신령으로 널리 알려진 우천(宇天) 허만수(許萬壽) 추모비..

그는 1916년생으로 그의 나이 33살때 지리산 세석고원에 들어와 초막을 짓고 살면서 지리산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샘터를 개발, 보수하는가 하면 숱한 사람들을 안내하고, 구조하는데 반평 생을 바친 사람이다..

 

산이 좋아 처자식도 버리고 산에 들어와 홀로 살면서 산에서 여생을 마친 전형적인 산악인이었던 그가 설치한 나무계단 등이

제석봉~천왕봉 중간에 가끔씩 눈에 띈다.

수만명을 헤아리는 많은 사람을 안내, 구조한 허우천씨는 1976년6월 어느날 정든 세석의 철쭉꽃을 뒤로 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그의 나이 60살이 되던 해였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은 그가 칠선계곡 혹은 도장골, 또는 신선너덜에서 숨을 거두었으리라는 말만 무성할 뿐

지리산과 늘 벗하던 그의 최후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잠시 오르면 통천길, 두류동에서 오르는 순례길과 비교되는 길이다..

 

돌계단길을 오르면 칼바위..

 

출렁다리를 건너면 갈림길..

 

좌측으로는 법천계곡을 따라 장터목으로 오르고 직진은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올라서면 망바위..

 

목교가 있는 너덜지대..

 

가파른 돌계단길은 계속되고..

 

헬기장을 지나면 순두류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로타리대피소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순두류에서 오른 님들과 합류한다...

 

대피소에는 인파들이 몰려있고..

 

꽁꽁 얼어붙은 샘물..

 

하늘아래 첫 사찰,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緣起)조사가 전국을 두루 다녀 본 후 천하의 승지(勝地)가 이곳이라 하여

현재의 터에 법계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는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여 있으니 동틈과 함께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이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이성계에 패배한 왜군에 의해 소실된 법계사는 조선 태종 5년(1405년)에 정심선사가 중창했으나,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다시 소실되어 방치되다 1981년 겨우 절다운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2013년 태풍에 쓰러진 일주문을 다시 세웠다..

 

법계사에서 천왕봉까지는 2km..

 

가파르게 올라선 개선문...

개선문은 원래 좌우로 두개의 바위기둥이 서있어 위용을 자랑했는데 한쪽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고 한다.

하늘을 여는 문이라 하여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통천문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으로 "하늘을 오르는 문"다운 위엄이 있지만 개천문은 통천문에 비해 위엄은 부족하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선문(개천문), 남서쪽으로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는 곳이다..

 

얼어붙은 능선을 따라 오른다..

 

능선을 넘어서며..

 

입석바위를 지나면 잠시 부드러운 길..

 

정상에서의 눈보라를 생각하며 점심식사를 한다..

 

남강의 발원지 천왕샘..

 

곳 천왕샘은 서부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로 이곳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르게 된다..

 

가파른 철계단..

 

눈보라속에 조망도 희미하다..

 

그래도 정상이 가까워져 마음은 가볍다...

 

이제 천왕봉에 이르는 마지막 가파름..

 

드디어 천왕봉에 올라선다..

 

천왕봉 해발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

 

현재의 정상석은 1982년 초여름 당시 이규호 경남도지사와 민정당 실력자였던 권익현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상남도가 세웠다고 한다..

 

1.5m의 자연석을 세운 이 표지석의 전면은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란 글을 새겨 놓았다..

 

정상 바로 옆의 표지만..

 

 

천왕봉은 어떤 이유에서 언제부터 불려진 이름일까? 아직 밝혀진 바 없고, 문헌상 기록도 없다.

천왕봉은 거대한 암괴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듯이 외로이 서있다.

이 암괴를 옛날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뜻으로 천주(天柱)라고 불렀는지 천왕봉 서쪽 암벽에는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천주란 하늘을 받히고 있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정상석옆 안내판노고단 천왕봉까지 역사현장에서!라는 안내 표지판 바로 아래에 있지만 언제 누가 새겼는지를 정확한 기록은 없다..

 

정상의 흔적을 남기려는 인파와 눈보라 속에 정상을 내려선다..

 

굳게 닫힌 칠선계곡 하산길..

칠선계곡 비선담~천왕봉에 이르는 구간은 5~6월과 9~10월, 올라오는 길은 월요일, 탐방예약 가이드제를 운영하고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나무와 고사목..

 

몰아치는 눈보라..

 

얼어붙은 주목나무..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잠시 내려서면 통천문..

통천문은 자체가 천연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금은 철제사다리를 놓아 등반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통천문의 위용은 시인 고은의 말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신선들조차도 이 관문을 거쳐야 할 정도이니 우리 인간들은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비탈길과 대원사에서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으나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으니 천왕봉은 쉽게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면 장터목대피소 1km이정표가 있는 지점..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는 중봉(1,875m) 다음가는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더 한층 유명하다.

이 제단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제석봉은 예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였다는데

지금은『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 군락지가 되어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으로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있고 바닥은 풀밭일 뿐이다.

 

 

고사목들이 한두그루도 아니고 10만여평에 걸쳐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이곳은 전나무 구상나무들의 고사목 군락지로 고사목 자체가 귀중한 자연경관이다.

고사목의 훼손은 물론 이곳에서 야영과 취사행위, 그리고 등산로 이외 지역의 출입도 금지한다.

곳의 고사목들은 해발 1,700m이상 높은 곳에서도 재질이 뛰어난 나무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50년대의 지리산의 아픔을 50년째 침묵의 증언을 하고 있는 것에도 많은 뜻이 있다..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잣나무·구상나무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정권말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리고 거목들을 무단으로 베어냈고, 이 도벌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불을 질러 현재의 고사목 군락이 생겼다고 한다..

 

잠시 가파르게 내려서면..

 

장터목대피소가 다가온다..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사천주민과 북쪽의 마천주민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한 장터가

섰다는 것은 지리산에 기대하고 삶을 영위했던 옛사람들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

곳은 남쪽 중산리에서 약 6km, 북쪽의 백무동에서 약 6km의 거리이다..

 

장터목대피소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많은 등산객이 모이는 종주 능선의 마지막 산장이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중산리 방향으로 내려선다..

 

가파른 법천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얼어붙은 법천계곡..

 

얼어붙은 유암폭포에 이른다..

 

 

 

 

 

 

 

 

 

유암폭포에서 잠시 쉬었다가 내려선다. 중산리까지는 아직도 3.7km..

 

해발 1,750m의 장터목 바로 아래에 있는 산희샘에서 시작된 법천계곡은 중산리 계곡으로 합류한다..

 

홈바위교에서 바라본 계곡, 돌탑들이 무성하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지난다..

 

 

이어 잠시 오르내리면 법계사에서 내려오는 갈림길에 이른다..

 

다시 칼바위를 지나..

 

통천길 입구..

 

중산리야영장 도로에 내려선다..

 

국립공원 탐방안내센터를 지나 주차장..

 

도로를 따라 1.7km를 내려선다..

 

가는 빗줄기 속에 주차장에 이르러 산행을 마무리한다..

 

후미가 내려와 17시40분, 중산리를 출발하여 인월 황토사우나에서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로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서 뒤풀이..

 

모두가 모여 한잔 술로 오늘의 피로를 날려보낸다..

  <사랑앓이/조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