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품같이 포근한 무등산 신년산행(서석대~규봉암~의상봉)
○ 산행일자 : 2016년 1월 3일(일)
○ 기상상황 : 맑고 포근함(겨울답지 않게 구름 조금 맑고 포근함 8~11℃)
○ 산행인원 : 부부
○ 산 행 지 : 산장주차장~옛길2구간~서석대~입석대~장불재~규봉암~꼬막재~의상봉~주차장(광주, 전남 담양, 화순)
○ 구간별소요시간 : 약12.83km(GPS), 6시간15분소요
산장주차장(09:00)~공원사무소(09:05)~제철유적지(09:25)~물통거리(09:35~40)~원효계곡 시원지(10:00)~군부대 임도(10:20)
~목교(10:40)~서석대(10:55~11:00)~서석대 정상(11:05~30)~입석대(11:45)~장불재(11:50)~지공너덜(12:25~35)~규봉암
(12:40~50)~시무지기갈림길(13:20)~억새평전(13:35~45)~꼬막재(14:08)~의상봉(14:45~50)~주차장(15:15)
○ 주요 봉우리 : 서석대 정상(1,100m), 장불재(900m), 의상봉(548m)
○ 산행지 소개
무등산(無等山 1,186.8m)은 광주 동쪽과 담양, 화순에 걸쳐 우뚝 솟은 광주와 화순의 진산으로 산세가 유순하고 둥그스름한 모습이다.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등 3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무등산 정상 3봉이라고도 한다.
저녁 노을에 반짝이는 광경이 수정병풍 같다는 서석대(瑞石臺), 자로 잰듯 정교하게 깎아낸 돌기둥들을 세워놓은 듯한 입석대(立石臺),
옥을 깎아 놓은 것 같은 절경의 규봉(圭峰, 광석대), 임금의 옥새를 닮았다는 새인암(璽印岩), 그리고 산사면에 나무 한그루 없이 큼직한
바윗덩어리들만 시원스레 널린 덕산너덜과 지공너덜 등 곳곳의 기암과 너덜이 산을 한층 멋스럽게 꾸며주고 있다.
기암괴석이 아니라도 봄철 원효계곡과 용추계곡 진달래, 여름철 증심사계곡 일원의 녹음, 가을철 장불재와 백마능선의 은빛찬란한 억새물결,
그리고 겨울철 가냘픈 억새 줄기에 피어나는 빙화와 설화 등 무등산은 철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이다.
무등산의 특징은 전체적인 산세는 산줄기와 골짜기가 뚜렷하지 않고, 마치 커다란 둔덕과 같은 홑산이다.
또한, 돌무덤같이 수많은 돌과 바위들이 쌓여있는 너덜지대가 있는데 천왕봉 남쪽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경관이다. 무등산은 완만한 산세로 대부분이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의 철쭉, 여름의 산목련,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등 변화가 많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12월27일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무등산은 그 웅장함으로 인하여 전남도민의 신앙대상이 되어온 신산으로 알려 졌고, 특히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암석미는 대단하다.
무등산 삼대 절경인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를 일컬어 무등산 삼대석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석대는 무등산 정상의 남쪽 아래의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있다.
저녁노을이 들 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서석을 수정병풍이라고도 했다고 전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이 서석대 석경에서 연유한 것으로 서석대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시내에서도 그 수려함을 바라볼 수 있다.
산상의 호수인양 동복호가 물을 가득 담고 있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작은 산 뒤에는 더 높은 산이 중첩되어 파노라마처럼 솟아있다.
정상에서는 모후산, 백아산, 천관산, 팔영산, 조계산 등 전남과 전북의 크고작은 산들이 조망된다.
서석대로 오르는 능선에는 키 작은 관목만이 자라고 있어 무등산 정상이 한 눈에 보이지만 군부대가 있는 정상까지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무등산 옛길은 광주,화순,담양사람들이 신작로가 생기기 이전 광주를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소통하던 길이다.
현재 복원된 무등산 옛길은 산수동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로 이어지는 길로 수지사 입구에서 청암교에 이르는 사색할 수 있는 길,
청풍 쉼터에서 화암마을 옛 주막터까지 시인 김삿갓이 화순 적벽을 찾아 갔던 길, 화암마을에서 충장사까지 담양 화순 사람들이 광주로 장을
보러 다니던 길, 충장사에서 원효사까지 옛 산장을 찾아가는 길 등 이다.
이 길 외에도 화순 이서나 동복 사람들이 광주를 넘나들던 장불재 길이 있다.
○ Epilogue
2016년 신정 연휴 마지막 일요일이다.
날씨는 초봄처럼 맑고 포근하였지만 안개와 미세먼지에 조망이 흐리다.
9시에 산장 주차장을 출발하여 옛길2구간을 따라 오르는데 길이 너무나 질퍽거려 미끄럽기 그지없다.
서석대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막걸리 한잔을 하고 장불재로 내려서 오랜만에 석불암을 거쳐 규봉암을 찾았다.
부드러운 길을 따라 신선대 억새평전에서 잠시 쉬어가며 건너편 북산의 신선대를 조망한다.
꼬막재를 지나 의상봉 갈림길에서 잠시 의상봉에 올랐다가 내려서 산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원효사지구 상가지역을 지나 숲학교로 오르는 길에 차를 두고 산행을 시작한다..
상가지역에 위치한 이정표..
무등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앞에서 바라본 의상봉..
무등산옛길 2구간을 따라 오른다..
부드럽게 산허리를 따라 오르면 제철유적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1호인 금곡동 제철유적지..
무등산에서 철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곳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로 전해져 주검동(鑄劍洞)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제철유적지를 가로지르면 의병길로 이어지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질퍽한 길을 따라 오르면 암각된 바위에는 <萬曆癸巳義兵大將金忠壯公鑄儉洞>이라고 각인되어 있다..
만력의 계사는 1593년(선조 26년)으로 의병으로 활약한 시기를 뜻하며,
충장이란 시호(諡號)를 쓴 것으로 보아 1788년 이후 김덕령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새긴 것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쉼터가 있는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
옛날부터 나뭇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산중길로 이용되어 왔으나,
1960년대는 군부대가 보급품을 나르던 운송길, 1980년 이후는 사용하지 않는 옛길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길을 지나 치마바위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원효계곡 시원지..
무등산 정상 일대의 물이 삼밭실에 고여 산의 북동쪽으로 약 9km나 흘러 충효동에 이르는 골짜기가 원효계곡이다.
계곡이 흘러 풍암정이 있는 곳에 이르러 풍암제가 되어 관개용수로 쓰여지고, 충효동으로 빠져서 광주호의 상류가 된다.
골짜기마다 물이 고여 천연의 소(沼)가 되어 무등산 피서지로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조그만 목교를 지나 널따란 길이 이어진다...
매트가 깔린 널따란 길..
길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져 감시초소가 있는 목교에 이른다.
중봉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군부대 임도길이다..
초소 옆으로 나있는 가파른 돌계단길을 올라서면 조망이 확 트이는 암봉..
중봉에서 청심봉을 지나 동화사터로 이어지는 사양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광주시가지는 희미하다..
원효계곡 너머로 원효봉, 그리고 멀리 병풍산 능선이 구름속에 희미하다..
올려다보면 무등산 정상의 지왕봉, 인왕봉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서석대에 이르러 주상절리에서 바라본 중봉..
서석대는 무등산 정상의 남쪽 아래의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있다.
저녁노을이 들 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서석을 수정병풍이라고도 했다고 전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이 서석대의 석경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 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함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서석대 전망대에서..
잠시 서석대 기운을 받으며..
서석대 전망대와 장불재, 그 아래로 제2수원지..
잠시 올라서면 무등산옛길 종점인 서석대 정상..
서석대정상에 서면 목책 너머로 인왕봉이 솟아있고, 군부대 막사 뒤로 천왕봉이 바라보인다..
해발 1,000m 서석대 정상..
평소 무등산에서 오를 수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정상을 배경으로..
차가운 바람을 피하려 정상에서 막걸리 한잔을 한다..
동북쪽으로는 무등산 정상..
동쪽으로는 동복호 끝자락의 옹성산, 동남쪽은 별산 너머로 모후산 자락..
건너편 남서쪽은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낙타봉과 안양산 능선..
북쪽으로는 무등산 정상 좌측으로 담양의 산하...
북서쪽으로는 원효계곡 우측의 의상봉과 원효봉..
별산 너머로 모후산, 그 너머로 조계산이 아른거린다..
서석대 정상부와 중봉, 그리고 광주시가지..
서남쪽의 용추계곡과 제2수원지, 중앙의 중머리재와 서인봉, 우측 새인봉, 그 너머로 마집봉 능선..
장불재와 KBS송신탑, 백마능선, 그 뒤로 만연산 능선..
백마능선으로 이어지는 낙타봉, 그 뒤로 안양산..
별산일원의 화순풍력발전단지는 풍력발전 전문기업 유니슨이 지난 2015년3월 착공, 2015년11월30일 완공하였다.
2MW급 U93 풍력발전기 8기로 연간 31,000MWh의 전력을 생산해 공급한다..
잠시 내려서면 전설의 바위, 승천암(昇天岩)..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아 승천하지 못했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 먹어야 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난데없이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무기는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입석대 뒤편의 암봉..
무등산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 입석대..
무등산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는 2005년12월16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주상절리란 용암이 밖으로 나와 갑자기 식으면서 수축현상에 의해 표면은 육각형과 같은 다각형이 되고,
또한 그러한 수축이 수직방향으로도 진행되면서 형성된 돌기둥을 말한다.
9천만년전 발생한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으며, 일반적인 주상절리대가 바다에 있는 것과 달리 산 정상에 있어 전 세계에서 유일한 풍경이다.
특히 산비탈에서 볼 수 있는 너덜은 암석의 풍화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무등산만의 독특한 지형이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 온 입석대는 석공이가 먹줄을 퉁겨 깎아 세운 듯, 하늘에 닿을세라 조심스럽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우람하다..
입석대에서 내려서면 억새숲 너머로 KBS송신탑이 있는 장불재가 바라보인다..
해발 900m의 장불재는 광주와 전남 화순의 경계가 되는 고갯길이다.
규봉과 입석대, 서석대로 가는 등산로이며, 예부터 동복, 이서 사람들 이 광주를 오갈 때 지나던 길이기도 하다..
장불재에서 당겨본 서석대..
그리고 입석대..
장불재에서 바라본 무등산..
장불재 쉼터를 지나 규봉암으로 향한다...
석불암으로 가는 길은 석불암 석축의 붕괴로 일시 통제되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석불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석불암이 다가온다..
석불암을 넘어서면 지공너덜..
지공너덜..
이 너덜겅은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수많은 돌들을 깔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덕산너덜과 함께 무등산의 대표적인 너덜이다..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에게 설법을 듣던 라옹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명명한 것으로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을 만들고,
좌선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개의 돌을 깔았다고 전해온다..
지공대사 좌선수도원...
가을의 흔적..
광석대(廣石臺)로도 불리는 규봉(圭峰)..
무등산 3대 석경(石景) 가운데 가장 빼어나다는 규봉(950m)과 어울린 규봉암이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가파른 석축위에 세워진 조그만 사찰이 눈에 들어오고, 사찰 뒤편은 깎아 놓은 듯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규봉암은 창건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은 없지만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또, 고려 초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이 절에는 신라의 명필 김생이 썼다는 규봉암 현판이 전해오다가 절취 당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규봉암은 고려 말에는 왜적들과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였으며..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규봉암으로 도망친 12명의 왜군 패잔병을 생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1739년3월20일 쓴 구봉암 상량문이 발견되어 당시에 규봉암을 재건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여지도서(1759년)에는 폐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6.25전쟁때 사찰이 불에 타 폐허되었다가 1957년 관음전과 요사채를 지어 복구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관음전의 관세음보살좌상은 1992년에 조성한 것으로 규봉암 관음전의 정면에 있는 보살좌상이며, 보관은 화려하고 중앙에 화불이 있다..
규봉을 보지 않고 무등산을 보았다고 말하지말라 할 정도로 한 폭의 한국화를 대하듯 신들이 옥을 깎아 놓은 듯 무등산에서 가장 절경이다..
또 규봉십대가 있는데 광석대, 송하대, 풍혈대, 장추대, 청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 등이 그것이다.
규봉에는 두 바위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어 문바위라 한다.
이곳에는 김덕령장군이 문바위에서 화순 동 면 청궁마을 살바위까지 화살을 쏘고 백마가 먼저 도착하는지를 시험하였다가 화살을 찾지 못하고
백마가 늦었다하여 백마의 목을치니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꽂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무등의 단풍은 규봉의 것을 제일로 친다..
원래 절 입구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돌기둥이 마치 임금앞에 나갈 때 신하가 들고 있는 홀 같이 생겨서 이를 한자로 취하여 규봉이라 한 것이다.
이 바위를 또 삼존석이라 부르는데 여래존석, 관음존석, 미륵존석으로 불리우며 도선국사가 명명했다고 전한다..
무등산 규봉암이라고 쓰인 일주문겸 고루를 지나 내려선다..
길은 영평마을로 내려서는 길과 꼬막재로 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너덜지대를 지나면 산죽길...
질퍽거리던 길도 오솔길처럼 부드러운 길로 이어진다..
시무지기폭포 갈림길..
목장 갈림길을 지나..
부드러운 길을 따라가면 억새능선 너머로 북산이 바라보인다...
신선대 갈림길...
건너편으로 북산과 신선대가 바라보인다..
당겨본 호남정맥이 지나는 북산과 신선대..
억새평전에서 바라본 북봉..
꼬막재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산허리길..
예전의 꼬막재샘은 없어지고 쉼터만 남아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은 어느덧 꼬막재에 이르고..
꼬막재는 옛 선조들이 나들이할 때 지름길로 이용했던 중요한 고갯마루 길목으로 그리 높지 않고 나즈막한 재이어서 꼬막재로 불렸다고 한다.
한편, 길 부근에 꼬막처럼 생긴 작고 앙증맞은 자갈들이 무수히 깔려있어 꼬막재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잠시 내려섰다가 부드러운 길을 따라 편백나무 숲길로 접어들어 내려선다..
잠시 내려서 희미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선다..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희미한 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묘지가 있는 능선봉에서 가야할 의상봉을 바라본다..
다시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서면..
광주중앙초등학교 학교림 표지판을 지나고..
잠시 산죽길을 올라서면 좌측에 널따란 암반위에 신선대 병풍바위..
건너편으로 무등산 천왕봉과 북봉이 바라보인다..
병풍바위에서..
벼루바위..
비마족바위..
전설에 따르면 지왕봉의 뜀바위에서 김덕령장군이 말을 타고 한걸음에 뛰어내린 말의 발자국이라고 한다..
해탈암..
의상봉 표지판이 새롭게 설치되어 있다...
의상봉은 두루뭉술하지만 준수한 경관을 이루고, 이곳은 중생대 후기 백악기의 미문상화강암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잠시 오르면 밋밋한 의상봉 정상..
잠시 내려서면 의상대..
건너편으로 원효봉과 그 아래로 원효사가 바라보인다...
당겨본 원효사..
의상대에서 잠시 쉬어간다..
건너편의 원효봉을 다시한번 바라보며 내려선다..
가파르게 내려서면 묘역에 이르고..
가파른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관리가 되지 않아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선다..
드디어 주등산로와 합류하는 지점에 이른다..
바로 아래에 옛날 산장호텔에 들어선 숲문화학교를 지난다..족
등산로 입구인 자연愛문을 넘어서면 주차장..
의병의길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돌구름의 산행이야기 > 산행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보라 속에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다.. (0) | 2016.01.18 |
---|---|
맑은 겨울 날에 담양 금성산성 일주 산행, 그리고 연동사... (0) | 2016.01.10 |
겨울의 삼각산, 시민의(市民義)솟음길을 따라 오르다.. (0) | 2016.01.09 |
영산강 전망대 나주 가야산, 그리고 영산강길.. (0) | 2016.01.02 |
새해맞이 신년산행, 무안 오룡산(五龍山)에 오르다.. (0) | 2016.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