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겨울 날에 담양 금성산성 일주 산행, 그리고 연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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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6

맑은 겨울 날에 담양 금성산성 일주 산행, 그리고 연동사...

by 정산 돌구름 2016. 1. 10.
맑은 겨울 날에 담양 금성산성 일주 산행, 그리고 연동사...

 

 

○ 산행일자 : 2016년 1월 10일(일)

기상상황 : 맑음(구름 한점없이 맑은 날씨였지만 조망은 별로. 3~6℃)

○ 산행인원 : 나홀로

○ 산행코스 : 담양온천~남문~시루봉~동문~운대봉~연대봉~북문~서문~철마봉~남문~연동사~담양온천(전남 담양, 전북 순창)

○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약10.86Km(GPS), 4시간50분소요

  담양온천(09:45)~오방길 능선(10:10)~주능선(10:17)~보국문(10:25~30)~충용문(10:35)~동자암(10:40)~시루봉(11:05

  ~10)~동문(11:18)~운대봉(11:30~35)~산성산(11:50)~구장군폭포 갈림길(12:00)~북문(12:05~10)~서문(12:30~40)~

  철마봉(13:10)~노적봉(13:30)~충용문(13:35)~연동사 갈림길(13:50)~연동사 노천법당(13:55~14:00)~산불감시초소

  (14:10)~임도(14:10)~주차장(14:25)~담양온천(14:35)

○ 주요봉우리 : 시루봉(526m), 운대봉(593m), 산성산 연대봉(603m), 철마봉(484m)

 

 

산행지 소개

  산성산(山城山, 603m)은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용면 산성리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깎아지른 바위 벼랑이 이어진 산세가 서남으로 뻗어 각 봉우리 마다 웅장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은 담양호가 보인다.

  일명 금성산(金城山)이라고도 불리며, 호남정맥 용추봉에서 남쪽으로 향한 산성산 능선이 광덕산을 거쳐 오르면서 평탄면을 이루는 산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금성산에 고성(古城)이 있는데, 둘레는 1,804자이며, 안에는 시내가 1곳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은 금성산의 다른 명칭으로 산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팔도지도>에 순창읍치의 남서쪽에 금성산성이 지명과 함께 여장이 산 능선부에 비교적 상세히 그려져 있다.

  <고려사절요>"1380(고려 우왕 6)에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성산성은 시루봉을 정점으로 남문~노적봉~철마봉~서문, 동문~운대봉~연대봉~북문~서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이다.

  1610년 개축되고, 1622년 내성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케 했다.

  1653년 내성을 수축하였다. 1894년 동학군과 관군의 전투장이 되기도 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격전장이 되었다.

  산성산 연대봉, 운대봉, 시루봉 등 사방 계곡의 능선을 이용하여 축조된 담양 금성산성은 포곡식산성으로 성벽에서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게다가 부근에는 이보다 높은 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산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널찍한 분지 형태로 되어 있어 이곳에 성을 쌓아 두면

  나는 새가 아닌 이상 바깥에서는 결코 성안을 볼 수 없는 지형으로 된 천혜 요새지이다. 

  또한 성안에는 샘이 풍부하여 충분한 식량만 쌓아 놓는다면 매우 오랜 시간동안 성을 지킬 수 있는 훌륭한 조건까지 갖추었다.

  과거 조선은 지역을 지키기 위해 평지에는 읍성, 배후 산에는 산성을 동시에 축조했으며, 평시에는 읍성에서 관리와 백성들이 생활을

  하다가 적이 쳐들어오면 산성으로 옮겨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단단히 지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담양에는 읍성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금성산성은 평시 읍성의 역할도 상당부분 맡았으리라 짐작된다.

  현재 금성산성에는 관아와 민가터가 많이 남아있어 옛날 이곳에 많은 병사들이 주둔하여 주변을 경계했다.

  최초의 축조 시기는 길게는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하지만 실제 역사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고려사절요의 기록이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에 왜구에 대비하며 개축했는데 '금성(金城)'이라 했다 한다.

  비록 성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이보다 이전인 고려 고종 43년(1256년)에는 몽고의 차라대군이 담양에 주둔했다는 기록도 있다.

  금성산성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태종 때로 1410년 전라, 경상도의 12개 산성이 수축된 기록에 나온다고 하며,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추월산에 석벽이 사방을 둘러 둘레가 9,018척, 13천(샘)이 있고, 연동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가까워 오자 조선은 국가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입보농성의 최적지인 산성의 보수를 서두르게 된다.

  이때 금성산성 역시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했으며 계속적인 보강이 이루어져 이때부터 금성산성은 장성 입암산성, 무주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리게 된다.

  금성산성은 그 훌륭한 지정학적 위치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전화를 겪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에 맞서는 항몽의 전적지로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의 거점으로 노령을 넘어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정유재란 때의 전투는 피로 피를 씻는 치열한 격전으로 전투가 끝난 후 외남문인 보국문 오른편 깊은 골짜기로

  전사자를 치우고 보니 시신이 무려 2,000여구에 달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골짜기의 이름을 이천골(二千骨)이라 부른다고 한다.

  개화기에도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학군이 이 곳을 거점으로 삼아 진압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전봉준이 잡혀 죽음을 당한 이후

  이곳 금성산성도 결국 관군에게 점령되어 성 내의 전각과 모든 시설들이 불에 타버리는 참화를 겪게 된다.

  금성산성은 돌로 쌓여진 석성이며, 내성과 외성의 2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길이는 7,345m로 외성이 6,486m, 내성이 859m이다.

  연면적은 1,197,478㎡(362,237평), 내성의 면적은 54,474㎡(16,478평)이다.

  성의 전체 크기를 판가름하는 외성은 연대봉과 철마봉, 시루봉 등의 바위로 된 산봉우리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구간이

  아찔한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방어력을 한껏 높이는 한국의 산성답게 가끔씩 바위 벼랑을 그대로 자연성벽으로 이용한 곳들도 있다.

  바위 능선이 매우 험준한 곳이 많아 지정된 문이 아닌 곳으로는 통행이 어려우며, 심지어 병사 한명 없이도 능히 지켜지는 구간이

  전체 외성의 약 30%에 이른다고 하니 방어요새로서 산성의 가치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특히, 산 아래 담양댐이 건설되며

  서쪽 성벽의 바위벼랑 아래로는 인공 호수의 깊고 푸른 물결마저 넘실거리게 되어서 풍경의 아스라함을 한껏 더한다.

  1991년 사적 제35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지금의 모습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 산행개요

  맑게 개인 겨울 하늘의 일요일, 모처럼 담양 산성산에 올라 금성산성을 일주하였다.

  담양온천 입구에 주차를 하고 온천 뒤편의 등산로를 따라 산성에 접어들어 시루봉을 올라 산성을 일주하고 하산길에 연동사 노천법당,

  그리고 동굴법당을 두루 살펴보았다.

  파란 하늘에 구름도 없었지만 미세먼지로 멀리까지는 조망이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오랜만에 금성산성을 일주한 즐거운 산행이었다.

 

 

 

담양리조트호텔 도로가에 주차를 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서 수목원 쪽으로 향한다..

 

수목원 뒤편 농로를 따라 오르면..

 

조그만 연못 뒤편으로 나있는 등산로로 들어선다..

 

잠시 오르면 가파른 통나무계단을 지나고..

 

이어 오방길 능선과 합류하여 능선을 따라 오른다..

 

잠시 가파르게 올라 주능선에 이른다..

 

능선을 따라 오르면 남문인 보국문에 이른다..

 

외남문인 보국문(輔國門), 1994년 성곽복원사업으로 그 형태를 갖추었다..

 

성벽과 충용문..

 

보국문에서 바라본 충용문..

 

보국문 옆 성벽에 앉아 추월산을 배경으로..

 

 

바로 앞 부엉바위산, 좌측의 정각산, 담양호 너머로는 신영골산에서 추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게 이어지는 외남문의 성벽..

금성산성 안에는 조선 말기 130여호의 민가가 있었고, 관군까지 2천여명이 머물렀다고 한다.
성안에 29개의 우물을 파고 2만여석의 군량미를 저장했을 정도였다지만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마을과 관아, 절 등이

소실되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동서남북의 4개의 문과 성곽은 1990년대 들어 복원되었다..

 

외남문의 성벽 뒤로 내남문과 내성..

 

내남문인 충용문(忠勇門)에 이른다..

 

충용문 역시 1994년 복원된 내남문이다..

 

내남문에서 바라본 보국문..

 

안내도를 보며 가야할 길을 가늠해 본다..

 

제단과 1877년 세워진 당시 파견 관리(별장) 불망비를 지나면..

 

직진의 오방길은 보국사터로, 우측으로는 동문으로 가는 길이다..

 

동문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오르면 동자암..

 

돌탑 사이로 바라보이는 동자암은 고요하기만 하다..

 

잠시 오르면 내성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오르면 시루봉 가는 길이다..

 

가파르게 암봉을 올라 시루봉 전위봉에 이른다..

 

운대봉과 산성산 정상이 바라보인다..

 

건너편의 험준한 시루봉..

 

파란 하늘과 어울려 웅장한 모습이다..

 

암벽을 가파르게 올라 시루봉에 이른다..

 

시루봉에서 바라본 추월산 능선..

 

남쪽으로는 담양 금성면 들판, 멀리 무등산은 운무에 보이질 않는다..

 

동쪽으로는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능선, 광덕산이 우뚝 솟아있다...

 

북으로는 가야할 능선, 좌측 끝에 운대봉..

 

광덕산 능선 너머로 강천산 능선이 바라보인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호남정맥길과 이어져 우측으로는 능선을 따라 광덕산 가는 길, 직진은 성벽을 따라 동문으로 이어진다..

 

뒤돌아본 시루봉..

 

소아무 숲 사이로 바라본 시루봉..

 

동문에는 인파가 몰려있다..

 

내성에서 이어지는 우회길과 만나는 곳이 동문이다..

 

동문에서 200m가량 오르면 강천사 갈림길이다..

 

직진하여 성벽을 따라 오르면..

 

북바위로 불리는 운대봉이 솟아있다..

운대봉에서 좌우로 길이 갈리지만 어느쪽으로 가도 성벽과 이어진다..

운대봉을 우측으로 돌아 가파르게 올라서면 운대봉이다..

 

운대봉에서 바라본 금성산성과 산성산..

 

좌측 건너편으로 철마봉..

 

강천사 계곡의 구장군폭포, 강천산(583.7m)..

 

다시 성벽을 따라 이어간다.

능선봉에서 뒤돌아본 운대봉, 그 뒤로 광덕산..

 

지나온 능선, 그 뒤로 순창 아미산..

 

성벽에 삼각점(순창446/1981재설)이 있고 그 너머로 산성산이 바라보인다..

 

성벽, 그리고 산성산..

 

지나온 능선..

 

산성산 정상이다..

 

일명 금성산(金城山)이라고도 불리는 산성산(山城山)은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용면 산성리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의 경계에 있다..

 

정상에서 질퍽한 내리막을 내려서면 구장군폭포 갈림길..

 

아래로는 강천저수지와 구장군폭포 암벽, 건너편으로 강천산 왕자봉이 바라보인다..

 

널따란 공터를 지나고..

 

잠시 후 북문터가 나타난다..

 

북문터..

 

2012년에 복원된 북문..

 

북문터에서 담양호, 그리고 추월산 능선을 배경으로..

 

날은 희뿌옇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담양호와 추월산..

 

길게 이어지는 추월산 보리암정상~추월산 상봉~수리봉~심적산~북추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너편의 호남정맥 형제봉 능선..

 

호남정맥은 강천산을 지나 이어간다..

 

북문에서 시루봉 이후 함께 이어온 호남정맥을 마루금을 정자 아래로 보내고 산성벽을 따라 서문으로 내려선다..

 

성벽을 따라 내려서면서 바라본 추월산..

 

서문으로 내려서는 성벽에서 바라본 건너편 성벽..

 

가파르게 내려서면 서문터이다. 성벽에서 잠시 쉬어간다..

 

서문 갈림길, 문을 나서면 오방길로 이어져 담양호로 내려서고 좌측은 오방길 보국사터, 직진은 철마봉으로 이어진다..

 

작은 계곡을 건너 길은 이어진다..

 

옛 성터 그대로 간직된 곳이다..

 

오방길 중 산성길..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지나온 성벽..

 

서문에서 북문까지 길게 복원되어 이어진다..

 

 

성벽에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지키고 있다..

 

지나온 성벽과 산성산..

 

철마봉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담양호와 추월산..

 

1976년 9월에 축조된 담양호는 추월산과 가마골 생태공원, 금성산성이 삼면을 감싸고 있어 담양 제일의 관광지로 꼽힌다.

담양호 빙어는 영산강 발원지인 추월산 가마골 용소에서 흘러내린 차가운 물과 깨끗한 수질에 맛이 으뜸이어서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좋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

 

철마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능선,

 

노적봉까지 길게 이어지는 능선, 좌측은 보국사터....

 

427봉 너머로 노적봉..

 

427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철마봉 능선, 그 좌측으로 담양호와 추월산이 어울어져 아름답다..

 

다시 가파르게 올라선 노적봉..

 

 

노적봉 아래서 바라본 보국문..

 

에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화백회의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보국문과 연동저수지..

 

 

성벽을 따라 내려서면 다시 돌아온 충용문..

 

충용문에서 외남문을 지나 내려서면 암벽에 새겨진 불망비..

 

잠시 내려서면 좌측으로 연동사로 들어서는 희미한 길이 있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면 대나무숲길..

 

연동사(烟洞寺)에 내려선다.

연동사는 누가 무슨 연유로 지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고 다만 연기가 많은 마을에 있는 절이라는 뜻에서 절이름에 대한 유래가 전해 내려온다..

정유재란 때는 금성산성에서 죽은 시체를 절과 가까운 골짜기에 쌓아 두었는데 그 수가 2천명에 이르렀다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왔으나 수많은 유골더미 속에서 가족을 찾을 길이 없어 체념한 유족들이 유골더미 위에

향불을 하나씩 피웠는데 그 향 연기가 안개처럼 온 산을 뒤덮었다고 한다.

절은 고려시대부터 그곳에 있었으나 그때부터 연기 연(煙) 자에 마을 동(洞) 자를 써 연동사라 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추성지에 고려 문종 때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이영간이 어렸을 때 연동사에서 공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200(1997715)로 지정된 담양연동사지3층석탑..

연동사라는 절터에 석불 1구와 함께 보존되어 있는 이 석탑은 원래 폐탑되어 각 부재들이 흩어져 있던 것을 1996년 새로 복원하였다.

탑의 기법은 백제계 석탑에 속한 고려시대 석탑으로 조성 연대는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88(19921130)로 지정된 연동사지 지장보살입상..

이 석불은 금성산성 남쪽 20m 정도 높이의 암벽 바로 밑에 석탑과 함께 서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범우고> 등에 따르면, 연동사는 17세기 이후 폐찰된 사찰로 추정된다.

사각 석주형(石柱形)에 앞뒤 면을 약간 다듬어 머리부분은 어느 정도 사실적인 기법으로 조각하였고,

신체부분은 손과 형식화된 옷주름만 나타내었으며 전혀 균형이 맞지 않게 간략화 하였다..

 

석벽 아래 노천법당의 석탑과 석불을 뒤로 하고 오르면..

 

동굴법당..

 

다시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지능선에 이른다..

 

능선 암봉에서 바라본 산성산..

 

잠시 내려서면 임도가 끝나는 곳에 포장마차가 있다..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주차장, 그 옆으로 새롭게 신축되는 건축물들..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담양온천리조트가 바라보이고, 담양댐을 사이에 두고 좌측의 정각산, 우측의 부엉바위산, 그 뒤로 추월산이 보인다..

 

담양댐에서 흘러내리는 영산강, 다시 돌아온 담양지로트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담양리조트는 예전에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이 즐겨 이용하였다고 한다...

담양온천은 게르마늄, 스트론튬, 황산이온 등의 물질이 함유돼 있고 특히 스트론튬이 다량 함유돼 뇌졸중, 신경쇠약 등에 효과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