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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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5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다...

by 정산 돌구름 2015. 6. 15.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다...

 

○ 산행일자 : 2015년 6월 14일(일)

○ 기상상황 : 흐린 후 비(오전에는 구름 조금 낀 맑은 하늘이었으나 점차 흐려져 비. 20~25℃)

○ 산행인원 : 부부

○ 산행코스 : 중산리~(경내버스)~순두류~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유암폭포~칼바위~중산리주차장(경남 산청, 함양)

○ 구간별소요시간 : 약11.8km(GPS 11.2Km), 8시간5분소요(버스이동 10분 제외)

  <중산리주차장(07:30)~셔틀버스(07:30~40)>~순두류(07:45)~휴식(08:25~30)~광덕사교(08:35)~로타리대피소(08:55)

  ~법계사(09:00~20)~전망바위쉼터(09:30~40)~개선문(10:10)~천왕샘(10:30)~천왕봉(10:45~11:10)~통천문(11:30)~

  제석봉(11:50~12:20)~장터목대피소(12:35~45)~휴식(13:15~20)~유암폭포(13:40~14:00)~돌탑지대(14:15)~칼바위

  삼거리(15:05~15)~탐방지원센터(15:40~45)~중산리주차장(15:50)

  <중산리↔셔틀버스/순두류↔천왕봉 4.8km/천왕봉↔장터목 1.7km/장터목↔중산리5.3km> 11.8km

○ 주요봉우리 : 지리산 천왕봉(1,915m), 제석봉(1,808m)

○ 교통상황 : 광주(04:50)~88고속~지리산휴게소(06:00~20)~대전-통영고속~단성IC~20번~59번~중산리주차장(07:15)

 

 

산행지 소개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웅장하고 뛰어난 절경으로 1967년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한국8경, 5대명산 중의 하나로써

  그 넓이가 4백84㎢가 넘는 면적으로 여의도의 52배쯤 된다.

  3개 도, 5개 시․군, 15개면에 걸쳐 서쪽으로는 전남 구례군에 접하고, 북쪽으로 전북 남원에 접하며,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 산청군,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에 접하는 명실공이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 산악지대이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의 주능선은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촛대봉, 천왕봉 등 1,500m가 넘는 봉우리만 16개나 이어진다.

  또, 1백10여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과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개 하천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룬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 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10경은 노고운해,피아골단풍,반야낙조,벽소명월,세석철쭉,불일폭포,연하선경,천왕일출,칠선계곡,섬진청류로 비경을 이룬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방장산은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삼신산의 하나이다.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였으며 일명 방장산(方丈山)이라 일컬어왔다.

  지리산은 또한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 내렸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는데 간혹 남해바다에 이르기 전 잠시 멈추었다 해서

  두류산(頭留山)으로 적기도 한다. 이와 달리 두류산이란 명칭에 관해서는 지리산의 전체적인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고 두루뭉술하며,

  또 사방으로 산들이 첩첩이 둘러쳐 있기 때문에 이를 뜻하는 우리말 '두루', '둘러'가 한자로 표기, 전착되는 과정에서 두류(頭流)로

  되었다는 최근의 새로운 주장도 있다.

  전설에는 태조 이성계가 이씨조선을 개국하려 할 때 전국의 명산에 기도를 올려 자신이 갖고 있는 창업의 뜻을 물었는데 유독 지리산

  만이 반기를 들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지리산은 반역산(反逆山), 불복산(不伏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속시킴은 물론 역적을 지리산록의 전라도 지방으로 귀양 보냈다고 전한다.

  때때로 이 전설에 맞춰서 지리산(智異山)을 '지혜롭고 기이한 산', '지혜와 다른 산'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지리산을 방장산이라고도 했는데, 방장산은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삼신산의 하나이다.

  지리산은 또, 두류산(頭流山), 남악산(南岳山), 방호산(方壺山) 등의 이름을 갖기도 했다.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되는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때로는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칠 때면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정상에서 남원, 진주, 곡성, 구례, 함양 고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행정구역상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고, 함양방면으로 칠선계곡을 빚어내 산청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을

  이뤄 중산리 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 정상에는 지난 82년 경상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다.

  전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정상 바로 아래의 천왕샘은 서부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남감댐의 발원지로서, 이 샘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른다.

  천왕봉은 정상의 신비함과 수려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기라도 하듯 뭇 인간들을 보내지를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天王日出)과 석양낙조(夕陽落照)를 빚어내는 천왕봉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않은 이에게는 천지개벽을

  연상케 하는 일출광경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속설과 함께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산행후기

  지난해 9월 성삼재에서 천왕봉~중산리 당일종주 이후 금년도에는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것이 처음인 것 같다.

  정상이 붐빌 것 같아 5시도 채 되지 않은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지리산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중산리주차장에 도착한다.

  7시 셔틀버스를 타려고 하였으나 10분이 늦어 포기하는데 7시30분 버스가 있다고 하여 탑승하였다.

  1인당 2천원을 지불하고 올라 기다리는데 셔틀버스가 만원이라 몇 명은 입석도 있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맑은 하늘이었으나 정상에 오르니 운무가 산허리를 감돈다.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정상에도 그리 붐비지 않아 정상 인증샷 몇 컷을 하고 정상 아래 헬기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제석봉 아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장터목대피소를 거쳐 법천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가파른 내리막 너덜길이 상당히 속도를 더디게 하여 자주 쉬어가게 만든다.

  쉬어가는 시간이 많아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8시간이 넘어서야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주차장 200m 전방에서 비가 약하게 내려 비를 피하여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7시10분을 지나고 있다.

7시 두류동 출발 버스를 타려고 하였으나 늦어서 칼바위능선을 따라 걸어서 가려고 하였으나 7시30분 버스를 운행하여 버스를 탄다..

 

7시30분에 만차로 출발한 버스는 10여분을 구불구불 달려 순두류에 도착한다..

 

법계사 입구 갈림길..

 

구조활동을 하다가 숨진 소방항공대원과 구조대원들의 위령비가 있다..

 

법계사로 오르는 길..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잠시 오르면 회차장에서 시작되는 순레길..

 

출렁다리를 건너 숲길로 들어선다..

 

순두류에서 1.7km를 왔다..

 

오르는 길목에 잠시 쉬어간다..

 

광덕사교를 지나고..

 

산죽길 계단을 지나 오르면..

 

로타리대피소에 이른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로타리대피소는 한가롭고..

 

몇몇의 사람들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졸졸 흐르는 약수터 한모금을 들이킨다..

 

잠시 하늘 아래 첫 사찰 법계사를 둘러본다..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緣起)조사가 전국을 두루 다녀 본 후 천하의 승지(勝地)가 이곳이라 하여

현재의 터에 법계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는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여 있으니 동틈과 함께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이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이성계에 패배한 왜군에 의해 소실된 법계사는 조선시대 태종 즉위 5년인 1405년에 정심선사가 중창했으나,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다시 소실되어 방치되다 1981년 겨우 절다운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적멸보(寂滅寶宮)...

정면 3칸에 맞배지붕으로 1993년에 조성된 건물이며, 안에는 관음보살상, 아미타후불탱, 신중탱, 범종 등이 봉안되어 있다..

 

법당내에 불상을 모시는 대신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으로 바깥이나 뒷쪽에 사리탑을 봉안하고 있거나 계단을 설치한다..

 

적멸보궁 뒤로 오르면 극락전과 석탑이 있고..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는 보물 제473호인 법계사 3층석탑(三層石塔)...

높이 2.5m이며, 거대한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세웠다..

 

구조는 기단부로 이용된 자연암석에 상면 중앙에 탑신을 받치기 위하여 2단의 굄을 마련하였고, 그 위에다 별석으로 3층탑신을 얹었다.

이 석탑은 규모도 크지 않고, 조형미에도 투박한 감을 주고 있어서 전형적 신라석탑 양식에서 벗어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

 

극락전(極樂殿)..

 

정면 3칸에 맞배지붕으로 1993년에 조성된 건물이다.

 

안에는 관음보살상, 아미타후불탱, 신중탱, 범종 등이 봉안되어 있다..

 

산신각(山神閣)은 정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1993년에 조성된 건물이다..

 

안에는 호랑이와 함께 등장하는 산신이 그려진 산신탱이 걸려 있고, 할머니 산신탱을 모셔놓은 것이 특이하다..

 

새롭게 조성된 범종각, 그리고 범종.. 누구나 울릴 수 있다..

 

법계사를 빠져나와 다시 천왕봉을 향하여 오른다..

 

법계사 나와 옆으로 나있는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올라 널따란 암반 전망대에 이르면 건너편으로 문창대가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문창대는 고운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에 자주 왕래를 하면서 이곳에 올라 멀리 서편에 있는 향적대의 바위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므로 이곳을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라고 하였다.

최치원이 사후에 받은 문창후(文昌候)의 시호를 따서 문창대로 개칭하였다 한다...

문창대는 1617년 조선 중기 진주 선비 부사 성여신(成汝信)의 유두류산시(遊頭流山詩)에 의해 세간에 알려 졌다고한다..

 

다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개선문...

원래 좌우로 두개의 바위기둥이 서있어 위용을 자랑했는데 한쪽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고 하며,

하늘을 여는 문이라 하여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천왕봉 능선이 바라보인다..

 

선바위를 지나고..

 

조망이 트이는 암봉에 오르면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 한눈에 든다..

 

써레봉 뒤로는 황금능선이 희미하고..

 

남강의 발원지 천왕샘.. 이제 정상까지는 300m

 

가물지만 천왕샘은 마르지 않았다..

 

가파른 철계단..

 

또다시 돌계단을 가파르게 올라서면..

 

천왕봉 이정표에 이른다..

 

아!!!! 천왕봉..

드디어 천왕봉에 올라섰다..

 

1.5m 높이의 자연석을 세운 정상 표지석의 전면은「智異山 天王峰 1,915m」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란 글을 새겨 놓았다..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아니면 메르스 탓인지 정상은 참으로 한가하다..

 

정상에서 잠시 여유를 부리며 흔적을 남긴다..

 

지리영봉의 제1봉인 해발1915m 천왕봉, 아래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

 

현재 정상석은 1982년 초여름 당시 이규호 경남도지사와 민정당 실력자였던 권익현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상남도가 세웠다고 한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선명하게 바라보이지만 운무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천왕봉은 거대한 암괴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듯이 외로이 서있는데 옛날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뜻으로

천주(天柱)라고 불렀는지 천왕봉 서쪽 암벽에는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노고단 천왕봉까지 역사현장에서!」라는 안내 표지판 바로 아래 있는데, 언제 누가 새겼는지를 정확한 기록은 없다..

 

헬기장 바로 아래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땀을 식힌다..

 

건너편은 지리 제2봉인 중봉..

 

멀리 주능선은 희미하게 운무가 걷히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서며..

 

가야할 주능선의 제석봉은 운무에 잠겨버렸다..

 

굳게 닫힌 칠선계곡 갈림길,

칠선계곡 비선담~천왕봉에 이르는 구간은 5~6월과 9~10월, 올라오는 길은 월요일, 탐방예약 가이드제를 운영하고 있다...

 

천왕봉을 지켜보며 유구한 세월을 보낸 주목...

 

이렇게 천년의 세월을 지켜오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주능선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지능선도 아름답고..

 

통천문을 지난다..

 

제석봉 정상은 통제되어 오를 수 없다..

 

제석봉 바로 아래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지나온 천왕봉에는 이제 제법 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는 중봉(1,875m) 다음가는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더 한층 유명하다.

이 제단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고사목 지대,

 

그리고 연하봉과 촛대봉, 그 이후 주능선은 희미하다..

 

제석봉은 예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였다는데 지금은『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 군락지가 되어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이다.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있고 바닥은 풀밭일 뿐이다.

 

고사목들이 한두그루도 아니고 10만여평에 걸쳐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이곳은 전나무 구상나무들의 고사목 군락지로 고사목 자체가 귀중한 자연경관이므로 등산로 이외 지역의 출입도 금지한다..

 

곳의 고사목들은 해발 1,700m이상 높은 곳에서도 재질이 뛰어난 나무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50년대의 지리산의 아픔을 50년째 침묵의 증언을 하고 있는 것에도 많은 뜻이 있다..

 

가파르게 내려서면 장터목대피소...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사천주민과 북쪽의 마천주민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한 장터가

섰다는 것은 지리산에 기대하고 삶을 영위했던 옛사람들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

 

백무동까지는 5.8km, 세석대피소까지는 3.4km, 그리고 가야할 중산리까지는 5.3km..

 

법천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곳곳에 교량이 설치되어있다..

 

최근 가뭄 탓인지 법천계곡의 수량은 부족하다..

 

연두빛 푸르름과 운무..

 

유암폭포..

 

수량이 적어 중간부분만 흘러내린다..

 

땀을 씻으며 잠시 쉬어간다..

 

길게 이어지는 데크길..

 

홈바위교..

 

홈바위교에서 바라본 계곡, 메말라 물이 없다..

 

길게 이어지는 데크길이 아름답다..

 

긴 데크를 내려서면..

 

너덜지대에 돌탑이 가득한다..

 

길은 잠시 부드러운 돌길로 이어진다..

 

아직도 중산리까지는 2km..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선다..

 

긴 출렁다리를 건넌다..

 

잠시 오르매리면 칼바위 삼거리, 과일을 먹으며 잠시 휴식, 중산리까지는 1.3km..

 

잠시 내려서면 칼바위..

칼바위는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의 큰바위 밑에서 은거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 자를 찾아서 목을 베어 오라고 명한다. 그 장수가 지리산을 헤매다 지금의 칼바위가 위치한 곳에서 약2km 떨어진 곳에 이르러

큰 바위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내리쳤다. 그런데 바위는 갈라져서 홈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지면서 이곳까지 날아와

꽂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의 바위로 변하여 이름을 칼바위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부드러운 내리막을 따라 내려서면 통천길 들머리..

 

야영장 입구 삼거리에 도착..

 

중산리 계곡은 물이 말라있다..

 

중산리탐방안내소를 지나면 주차장..

 

이렇게 짧지만 긴 산행을 마무리한다..

 

지리산 길에서 만난 야생화..

 

 

 

 

 

 

 

 

 

 

 

 

 

 

 

나는 행복한 사람/이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