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4년 11월 1일
○ 소재지 : 전남 화순군 동복면 연월리 864번지
○ 동복향교 소개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1985월2일25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복현의 관아터였던 동복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약2km 떨어진
월송마을의 향교산이라는 얕은 구릉 위에 정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복은 백제 때 두부구현(豆夫口縣)이었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동복현으로 개칭되었고 곡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1405년(태종 5년)에 화순현에 합쳐졌고, 1407년에는 복순현(福順縣)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뒤 1445년(세종 27년)에 동복현감 하강지가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현위치에 창건하였다.
1543년(중종 38년)에 중수하고 1564년(명종 19년)에 교리(校里)로 이전하였다.
1655년(효종 6년) 관아에 불이 나서 객사에 모셔진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가 소실되는 사건이 일어나 동복현은 현이 없어지고
화순과 합쳐지고 이에 따라 동복향교도 성현의 위패를 매안(埋安)하고 폐교되었다.
그후 1664년(현종 5년)에 동복현이 복현되어 향교도 복교되었다.
이후 동복향교는 1701년(숙종 40년)에 현의 남쪽 독상리로 이건되었다.
1756년(영조 32년)에 독상리에서 다시 처음의 위치인 연월리의 구릉으로 이건되었다.
이때의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교직사, 사마재, 고고재 등이 있었다.
창건 이래 한번의 폐교와 세번의 이건을 거듭한 동복향교는 1903년 동복군수 김기중의 주선으로 중수하였고, 1935년 중건하는 등
다른 향교와 같이 중수와 보수를 거듭하면서 학교기관으로서, 향유들의 집결지로서 활동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대성전, 객사 등이 소실되었으며, 1959년 정부보조와 조병의 전교를 중심으로 대성전과 내삼문이 복원되었다.
이후 1988년 동재인 경모재, 서재인 양사재가 복원되었고 1996년 내삼문 계단, 1997년 담장, 외삼문, 계단, 1998년 대성전 보수,
1999년 명륜당을 복원하였다.
대성전은 1959년에 새로 중건된 건물로 현재 막돌한식 담장으로 둘러진 약 150평의 직사각형 대지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으며,
앞면의 담장 중앙에는 최근에 건립된 삼문이 서 있다.
문묘인 대성전은 전퇴를 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양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았으며, 처마는 홑처마로 꾸몄다.
향교에는 대성전 외에 동재, 서재 및 내삼문이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유일하게 대성전만 갖추고 있는 향교로서, 1986년에 삼문(三門)이 건립되었다.
대성전의 내부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 등 27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대성전은 전면으로 약 50㎝ 높이의 막돌석축 위에 다시 막돌허튼층 기단을 쌓았으며, 기단 윗부분은 진흙다짐으로 마감하였다.
평평한 자연석 주초위에 원통형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고 그 위로는 소루를 4구씩(중앙칸은 5구) 배치하였다.
주두 및 기둥 윗몸에는 보머리 밑으로 면이 직선으로 잘린 보아지만을 두어 주상(柱上) 부분을 간단하게 처리하였다.
가구는 전방 퇴주와 후방 평주 사이에 내고주를 세워 퇴량과 대량을 걸고 다시 고주 상부와 대량 위에 놓인 동자주 위로 종량을 걸어
놓은 5량가로 되어 있다. 종량 위에 놓은 마루대공은 하부가 삼각형으로 짜여진 원형대공을 놓았으며 도리는 퇴주 위로만 굴도리를
걸쳤고 나머지는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창호는 전면 주간에만 쌍여닫이 띠살문을 설치하였다.
내삼문은 문묘의 정면으로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솟을대문으로, 막돌초석 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납도리를 걸어 놓은 3량
구조로서 중앙칸 판장문 위로는 홍살을 꽂았다.
동재인 경모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서재인 양사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6·25전쟁 때 전소되어 전적과 현판은 남아 있지 않으며,
최근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지방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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