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기행] 전남 문화재자료 제62호, 동복 독상리 석등(獨上里石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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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기행] 전남 문화재자료 제62호, 동복 독상리 석등(獨上里石燈)

by 정산 돌구름 2014. 11. 2.
전남 문화재자료 제62호, 화순 동복 독상리 석등(獨上里石燈)

 

○ 탐방일 : 2014년 11월 1일

○ 소재지 : 전남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320

○ 독상리석등 소개

 전남문화재자료 제62호(1984년2월29일)로 고려시대 시중(侍中) 문헌공 오대승이 1267년(원종 8년)에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대승은 동복오씨의 비조로 이곳 모후산 아래 동복에 살면서 이 석등에 48개의 불을 켜놓고 밤마다 하늘에 예를 올렸는데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였다고 하는 내용이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복조에서 나타나며,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복조에는 오대승이 이곳 모후산 아래 동복지역에 머물면서 석등에 48개 불을 피워두고 밤마다 하늘에 기도를

 올리니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1670년(현종 11년)에 세워둔 ‘석등기’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석등은 홍살문이 있고 팔작지붕 겹처마로 된 비각 안에 있는데, 사찰이나 민묘 앞에 있는 전형적인 석등이 아니라 약간 손질을 가한

 자연 암반 위에 48개의 구멍(실제로는 54개의 구멍)을 파놓은 상태이며 구멍에 재래식 심지에 기름을 부어 불을 켰던 것이다.

 48등은 불교에서 말하는 48원을 의미하며, 이 48원은 불교의 아미타불과 관련되어 있는데, 아미타불 최고의 이상은 극락정토이다.

 즉 생로병사가 없는 안락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이 석등은 고려 민간신앙이 불교와 융합하여 나타나는 현상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 석등은 <문헌공묘정사적비문>에 따르면 원위치에서 한번 옮겼던 것으로 보이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잡초에 묻혀 있는 것을

 수리하고 여기에 축대를 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만들어진 연대는 조선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석등은 야외에서 불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석조물이다.

 <불설시등공덕경>에서는 죽은 이를 위하여 탑묘 앞에 등불을 밝히면 33천에 다시 태어나 다섯 가지의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석등의 시주를 권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석등은 대개 사찰의 중앙에 불탑과 함께 배치되는데, 법당이나 불탑 앞에 설치하여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광명등이라고 불러왔다. 나중에는 승려들의 무덤인 부도 앞에도 세워지게 되었으며, 고려시대부터는 왕이나

 정승의 무덤 앞에도 모습을 보이고 불교가 쇠퇴한 조선시대에는 무덤 앞에 주로 석등을 세워 장명등이라 일컬었다.

 석등의 기본적인 형식은 기단을 이루는 하대와, 간석 또는 간주라고도 불리는 중대 및 상대, 그 위에 등불을 앉히는 화사석과 옥개석

 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윗부분은 보륜과 보개, 보주 등으로 장식하였다.

 이와 같은 석등의 형태는 시대와 지방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여 많은 시대적, 지방적 특징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