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제16,17구간(송정~오미~방광~난동), 그리고 가을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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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16,17구간(송정~오미~방광~난동), 그리고 가을의 끝자락...

by 정산 돌구름 2013. 11. 25.
지리산 둘레길 제16, 17코스(송정~오미~방광~난동), 그리고 가을의 끝자락..

 

 

○ 산행일자 : 2013년 11월 24일(일)

○ 기상상황 : 맑은 후 차차 흐려져 밤부터 비(11~13℃, 오후에는 강한 바람)

○ 산 행 팀 : 광주알파인클럽(38명) - 회비 30,000원

○ 산행코스 : 지리산둘레길 제16~17코스(전남 구례)

  제16코스(10.5km) : 송정~의승재~오미, 제17코스(12.0km) : 오미~상사~수한~방광, 제18코스(4.4km) : 방광~상대~난동

○ 거리 및 구간별 소요시간 : 표지판 거리 약 26.9km / 6시간40분 소요

  송정마을(08:55)~의승재(09:18~23)~송정계곡(09:54)~팔각정(10:02)~원송계곡(10:18)~노인요양원(10:28)~솔까끔마을

  (10:58)~내죽(11:12)~오미(운조루 11:25~35)~용두갈림길(11:48)~하사마을(12:00)~상사마을~(12:10~40)~종골삼거리

  (12:50)~섬곡농장(13:10)~황전마을(13:32)~지리산탐방안내소(13:37)~당촌(14:00)~길상암(14:08)~수한마을~(14:15)

  ~방광사거리(14:23)~방광마을(14:30~35)~참새미(14:39)~대전리석불입상(15:13)~구례예술인마을(15:20)~난동(15:35)

교통상황

  비엔날레(07:00~15)~호남고속~곡성IC~60번~17번~18번~19번~송정마을(08:50)

  난동(15:55)~지리산온천랜드&산하가든(16:10~17:30)~19번~남원IC(17:50)~88고속~비엔날레(18:40)

 

 

○ 제16코스 및 제17코스 소개

  제16코스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마을과 오미마을을 잇는 10.5km 구간으로 토지면 전경과 섬진강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농로, 임도, 숲길의 다채로운 길들로 이어져 있고, 숲의 모습 또한 다채롭다.

  조림현상과 산불로 깊게 데이고 다친 지리산의 상처를 만난다.

  아름다운 길에서 만나는 상처는 더욱 아프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생각하게 한다.

  남한의 3대 길지 중 한 곳으로 알려진 운조루를 향해 가는 길은 아늑하고 정겹다.

  섬진강 너머 오미리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오봉산이 만드는 풍광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제17코스는 토지면 오미마을과 광의면 방광마을을 잇는 12.2km구간으로 전통마을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구간 중 하나이다.

  오미, 상사, 하사마을에서는 운조루, 쌍산재, 곡전재 등 고택의 정취, 효와 장수의 고장다운 인정을 느낄 수 있다.

  화엄사아래 지리산탐방안내소에서는 지리산의 자원과 역사를 살피고, 종복원센터에 들러 반달곰도 만날 수 있다.

  구례분지를 조망하며 농로와 숲길을 주로 걷는 아기자기함이 재미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전남․경남 등 3개도, 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 등 5개 시․군의 21개 읍․면 117개 마을을

  잇는 21개 구간 274km로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전북 남원 46㎞, 경남 함양 23㎞, 산청 60㎞, 하동 68㎞, 전남 구례 77㎞로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숲길(43.8%), 농로(20.8%), 마을길(19.9%) 등으로 이어져 있다.

 

지난 구간이 끝난 송정마을.. 4주일 만에 다시 찾았다.

 

제16코스인 송정~오미구간은 구례군 토지면 송정마을에서 송정계곡, 원송계곡, 구례노인요양원을 지나 오미마을에 이르는 구간으로

섬진강의 풍경을 보며 걷는다.

토지면은 원래 토지면(吐旨面)으로 표기되었으나 1899년 토지면(土旨面)으로 개칭하였다.

화엄사에 딸려 도자기를 만들어 바치던 토지처(吐旨處)였던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동쪽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서쪽은 마산면, 남쪽은 문척면·간전면, 북쪽은 산동면과 접하여 험준한 산지가 많고 평지는 적다.

동쪽에 반야봉(1,732m)·황장산942m)·촛대봉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등이 경남과 도계를 이룬다.

북쪽에 노고단(1,507m), 서쪽에 월령봉(1,214m)이 솟아 있다. 면의 남쪽 경계인 섬진강을 따라 하동으로 통하는 국도가 지난다

 

단풍이 붉게 물든 수로 옆을 따라 오르막이 시작된다.. 

 

초입부터 오르막..

 

아직은 가을의 기운이 남아있다..

 

한참을 올랐는데 웬 비닐하우스?..

 

앙상한 가지에 이따금 나타나는 아름다운 가을의 흔적..

 

모두가 신선이 되어 오른다..

 

산을 좋아하여 산에 오르는 산 사람들은 모두가 신선...

사람이 산에 가면 신선이 된다는.. 사람 人(인) + 뫼 山(산) = 신선 仙(선) 이 아닐까?

 

의승재..

 

둘레길을 탐방하는 산객 4명이 반갑게 맞이한다.. 한잔의 막걸리도 꿀맛..

 

소나무숲을 따라 내려서는 길..

 

계곡을 건너고.. 

 

석주관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곳에서 우측으로 꺾어돌며,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가 함께 한다..

 

다시 산허리를 감아돈다..

 

조망이 트이고 계족산이 다가온다..

 

왕시리봉에서 뻗어내린 산줄기..

 

송정계곡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임도를 따라가면 정자 쉼터..

 

호젓한 산길을 따라 신선이 되어 터벅터벅 걸어간다..

 

중첩되는 산그리메.. 멀리 호남정맥이 지나고..

 

다시 산줄기 하나를 넘어선다..

 

끝이없는 길..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줄기.. 구례와 광양을 경계지으며 흘러간다.. 

 

목교가 설치된 원송계곡을 지나고..

 

목장길처럼 목책이 드리워진 호젓한 길을 걸어간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아련하고...

 

멀리 오산에서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포장된 농로길을 따라가면 구례읍 시가지가 바라보인다...

 

구례노인요양원.. 국비와 군비를 들여 만든 노인전문 요양병원이다.

치매와 같은 중증 노인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에게 다양한 복지혜택을 주고 있는 곳이다.

 

구례노인요양병원 뒤편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둘레길..

 

길목에는 아직도 가을의 정취가 남아있다..

 

조망이 트이는 쉼터..

 

섬진강 너머로 오산에서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하늘금을 긋는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 

 

곧 사라질 아름다움이 못내 아쉽다..

 

자연의 품속으로 모여든 사람들..

 

이름하여 솔까끔마을.. 

 

지리산 왕시리봉 자락 해발 200m에 자리잡은 마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

 

거대하게 둑높이기사업이 진행중인 문수제..

지리산 노고단 문수대에서 발원한 토지천은 문수제에 유입되었다가 빠져나와 섬진강으로 스며든다..

 

저수지 아래의 내죽마을..

대나무와 문수천의 시냇물을 따서 '대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옛날 문수천의 물을 논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보를 만드는데, 보의 입구를 암석이 있어 뚫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룻밤 사이에 죽순이 암석을 뚫고 올라오면서 암석이 뚫려 물길이 생겼다 해서 대내(죽천)라 칭했다고도 한다..

 

구례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덕천사..

율계 정기선생의 얼을 기리고 애국애족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제자들이 건립하였으며, 매년3월 제향을 올리고 있다.

율계선생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학문에 통달하였으나 일제침략으로 벼슬길이 막히자 1927년 이곳에 덕천정을 세우고

후학들에게 애국사상과 민족정신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호남유림의 종주로 알려져 왔다..

 

내죽마을 석간정.. 그 앞에 280년이 넘는 팽나무 보호수가 서있다.. 

 

토지천을 가로지르는 내죽교...

 

내죽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하죽마을..

일대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竹) 자를 넣은 지명이 많은데 하죽도 그러한 지명이다.

본래 내죽, 하죽, 오미 등을 통틀어 오미리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하죽마을로 독립했다고 한다.. 

 

하죽마을에서 오미리로 가는 길목의 한옥 팬션단지들..

 

오미리 길가의 서어나무..

 

역시 280년을 넘긴 서어나무 보호수이다..

 

16코스가 끝나는 오미리의 운조루에 도착..

 

운조루(雲鳥樓) - 중요민속자료 제8호...

 

운조루란 이름은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칠언율시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에서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나오고, 새는 날다 지치면 돌라올 줄 아네.>

큰사랑채 대청 위의 상량문에 따르면 영조 52년(1776)에 영조 때 유이주(柳爾胄)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건축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이다.

-자형 행랑채, ㅜ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가 그대로 보존되어있고 사당과 연당이 남아 있다.

'운조루' 는 원래 큰사랑채 이름으로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이다.

운조루와 오미동은 이른바 길지(吉地)로 유명한데 길지란 지덕이 있는 좋은 집터란 뜻이다.. 

 

운조루는 1,400평 대지에 건평 273평인 99칸(현재는 70여칸) 저택으로, 문중 문서에 따르면 한때는 883마지기의 농토가 있었고,

대한제국 말에만 해도 농사를 짓기 위해 한 해에 2백~4백여 명의 노동력이 조달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위세를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저택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 마을 일대에 집을 지었던 사람이 몇십명에 이르렀으며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될 무렵에는 3백여 채가 들어섰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400여 평의 대지에 세워진 운조루(주인이 거처하였던 곳)와 손님을 맞았던 귀래정(歸來亭),

그 아랫마을 환동에 금가락지 같은 형국으로 높은 담벼락을 두른 채 대숲에 싸여있는 기와집(박 부잣집) 한 채뿐이다..

 

  

 

타인능해(他人能解)..

쌀 두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나무독에 쌀을 채워놓고 목독에 구멍을 내고 마개에 '他人能解' 라는 글귀를 써두어 가난한 이웃에게 쌀을

꺼내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우리네 조상들의 나눔의 삶, 베품의 정신을 알려주고 있다.

운조루는 각종 민란, 동학, 여순사건, 6.25전쟁 등 힘든 역사적 시간을 보내면서도 지금처럼 건재할 수 있었다..

 

 

 

 

 

오미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볼 때 노고단의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낙지(金環落地)의 형상이다.

이런 곳을 찾아 집을 지으면 자손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 몇백년 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명성이 자자하여 이곳이 한국의 3대 길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위쪽에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의 금구몰니(金龜沒泥), 중간에 금환낙지,

아래쪽에 다섯가지 보석이 모여 있는 형상의 오보교취(五寶交聚)의 명당이 있다.

중간 지대의 명당 금환낙지는 운조루가 이미 차지했지만, 금환낙지와 오보교취의 명당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가 호구조사를 실시한 통계에 따르면 1918년 70호에 350명이었던 인구가 불과 4년 만에 148호에 744명으로 불어났다..

 

제17코스인 오미~방광구간은 토지면 오미마을의 운조루에서 용두갈림길, 하사마을, 상사마을, 당촌마을, 수한마을을 지나

광의면 방광마을에 이르는 섬진강변을 품고 가는 마을 마실길이다.

광의면(光義面)은 북쪽으로 산동면, 남동쪽으로 마산면, 서쪽으로 용방면과 접한다.

남서부에 산기슭의 완사면이 발달되어 경지가 넓고, 쌀·보리를 생산한다.

북동쪽에는 해발 1,507m의 노고단(老姑壇)이 있고, 노고단 서쪽 기슭에 천은사가 있다..

 

오미리는 본래 오동이라 불리다 조선 중기에 유이주가 이주하면서 오미리라 개칭해 지금에 이른다.

오미는 다섯가지 아름다움을 담았는데 그것은 월명산, 방장산, 계족산, 오봉산, 섬진강이다. 곳곳에 산수유 열매로 가득하다..

 

오미마을의 한옥팬션들..

 

오미마을을 지나면 메마른 저수지..

 

도로변으로 나서 섬진강대로를 따라가면 용두골과 토지주유소 앞을 지난다..

 

주유소 옆으로는 삼밭재를 지나 월령봉~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입구..

 

갈림길.. 여기에서 둘레길은 또 다른 지선을 왼쪽으로 보낸다..

 

우측으로 들어서면 하사마을과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

 

하사저수지..

 

하사마을은 신라 흥덕왕 때부터 형성된 오래되고 큰 마을이다.

본래 승려 도선에게 이인이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려 뜻을 전한 곳이라 하여 사도리라 불렸다.

일제 때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구분해 상사리와 하사리가 되었다.

승려 도선은 이인의 삼국통일을 암시하는 그림을 보고 고려 건국을 도왔다고 전한다.

마을 입구에 작은 마을 공동우물이 있어 목을 축이고 가도 좋다..

 

하사저수지를 품고 넓은 들을 바라보는 마을 정경이 아름답고, 저수지 바로 옆과 마을 앞에 당산과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하사마을을 지나면 조선 후기 효자 이규익(李圭翊)의 행적을 기리는 정려...

이규익은 효성이 지극하여 평소에 집안에 연못을 파서 고기를 길러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80세 고령인 부친이 노환으로 병석에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드렸으나 병세는 차도가 없자 그의 허벅지 살을 베어 구워드리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3일간을 더 연명하게 하였다고 한다. 부모님의 연상에 6년동안 시묘살이를 하자 그의 효성이 하늘에 닿은듯

꿩이 묘막에 들어오기도하고 호랑이가 옆에 와서 함께 지내주기도 하였다.

마침내 그의 효행을 알게되어 1881년(고종 18)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고 효자 정려를 받았으며, 정려각이 세워졌다..

 

내부에 '효자 동몽교관 전주이공 규익지려(孝子童蒙敎官全州李公圭翊之閭)'라고 쓰인 정려와 한말의 의병장 기우만(奇宇萬)이 쓴

글귀가 보관되어 있다..  

 

상사마을 입구..

 

마을 입구에서 우측 대나무 숲길로 들어서 밭둑길로 이어진다.

잘 단장된 묘역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마을 뒷편으로 이어지는 산길..

 

다시 숲속으로 들어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다시 임도..

 

조망이 트이는 너덜지대를 지나고..

 

가랑마을 뒤편.. 여기서도 삼밭재로 갈 수 있다..

 

구례읍 시가지와 섬진강이 내려다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산허리를 감돌며..

 

섬곡농장의 표지석..

 

목교가 설치된 계곡을 건넌다..

 

부드러운 소나무숲길..

 

마을 뒷편의 조그만 저수지..

 

마을로 내려서는 길목..

 

아름다운 둠벙의 풍경..

 

화엄사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마산천..

 

황전마을은 화엄사 입구 집단시설지구로 유명하며, 지리산 탐방안내소가 있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민박촌을 포함한 각종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조선시대 형성되어 황둔마을로 불리다가 일제 때 바로 옆 우전마을과 합쳐져 황전마을이 되었다.

현 지리산호텔 자리에 여러 가구가 있었는데, 어느 해 일어난 산사태로 전체가 몰사한 아픈 기억이 있다...

 

마을 옆을 흐르는 계곡..

 

지리산 집단시설지구..

 

지리산남부탐방안내소..

 

다시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 오른다..

 

반복되는 임도..

 

소망동산.. 조그만 소망을 담은 시그널들이 걸려있다..

 

조선 말기에 전주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는 당촌마을...

본래 풍수지리상 사직형국이라 해서 사직동이라 했지만 한자로 바꾸면서 당촌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령이 300년 된 마을 정자나무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삼일에 당산제를 지낸다.

둘레길은 마을 뒷길을 지나는데 길 옆으로 축사가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조그만 암자인 길상암..

 

대나무 숲길을 지나 내려서면.. 

 

수한마을에 이른다..

 

마을 낙서판..

 

수한마을은 선조 25년경에 임진왜란을 피해 남원에서 이주한 경주김씨 3세대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본래 물이 차다하여 물한리로 불리다가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수한마을이 되었다..

 

마을에는 530년된 도나무 당산나무 잎이 일시에 피게 되면 풍년이 들고, 2~3회 나누어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당산에서 매년 당산제를 지내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논 사이로 이어간다..

 

수한마을 입구.. 

 

방광사거리에서 방광마을로..

 

방광마을 가는 길목에 좌측으로 용전마을..

 

나홀로 셀카..

 

방광마을 입구의 표지석..

 

마을입구의 쉼터를 지나고..

 

방광마을에 이른다.

방광마을은 천은사와 지리산 성삼재 길목 마을로 임진왜란 때 남양 홍씨가 피신해 거주한 후 마을이 형성됐다.

이 마을에서 판관이 나왔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판관이 팡괭이로 변했다가 다시 방광으로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지리산 우번대라는 암자에 노승과 사미스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천은사 뒤 계곡을 오르다가 사미승이 남의 밭에서

조 세알을 손에 쥔 것을 본 노승이 ‘너는 주인이 주지 않은 조를 가졌으니 주인집에서 3년간 일을 해 빚을 갚으라.’고 말하면서

사미스님을 소로 변신시켰다. 그 날 밭주인이 소를 발견해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이 소가 여물 대신 밥만 먹었고, 쇠똥이 땅에 떨어지면

빛을 내면서 곡식이 잘 자랐다해서 방광리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방광마을은 들 가운데 형성된 큰 마을로 마을 안에 정미소가 있다...

 

500년을 훨씬 넘긴 보호수로 지정된 도나무가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당산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제17코스가 끝이나고 제18코스인 방광~산동 구간은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에서 상대, 난동, 구리재, 탑동을 지나

산동면사무소에 이르는 구간으로 구례들판을 바라보며 걷는다...

 

골목길을 따라 가며 만나는 아름다운 돌담 풍경....

 

참새미골.. 

 

방광마을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면 곧바로 만나는 작은 유원지다..

 

이곳은 천은사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지나는 곳으로 경치가 제법 수려하다.

 

여름에는 제법 피서객이 많이 찾고, 지리산둘레길 도보여행자에게도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한없이 이어지는 둘레길..

 

소나무 숲길을 내려선다..

 

감나무 농장을 지나고..

 

감나무 농장 사잇길로 이어가면..

 

아름다운 목교를 지나고..

 

구례 대전리 석불입상(大田里石佛立像)..

1994년1월31일 전남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되었으며, 불상의 크기는 전체높이 190cm, 어깨너비 58cm이다.

주변에는 앞에 300여 평의 밭이 있고, 가로 6.2m, 세로 5.5m, 높이 0.7m의 낮은 돌담을 쌓아 석불을 보호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규모가 큰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읍지(邑誌)나 기타 문헌에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돌담 안에는 석불 외에도 주초석 4개와 높이 66cm, 지름 17cm인 석주 2개가 있으며, 전돌·와편 등이 흩어져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곳에 석불을 봉안하던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불 바로 옆에는 높이 80cm의 보살상이 방치되어 있다..

 

어느덧 당동마을..

지리산 남악사당이 이 마을 북쪽에 있었다고 해서 당동마을이란 이름을 얻었다.

고려 때부터 100여호가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봄가을 남악제를 지내기 위해 남원부사와 고을 수령의 발길이 잦고,

이로 인한 피해가 잦아 많은 이들이 이주하면서 마을이 작아졌다.

전설에 의하면 해방 직후 유씨란 사람이 남악사터에 묘를 쓰자 마을에 가뭄이 들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묘를 파내자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큰 비가 내려 모내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지금도 그터는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당동마을은 최근 화가들이 많이 이주해와 ‘화가마을’로도 불린다..

 

지리산둘레길이 지나는 곳에는 화가들이 짓고 있는, 현대적 조형미가 느껴지는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구례 예술인 마을..

 

건너편에도 새롭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을 나서면 다시 도로를 따라 간다..

 

단풍과 어울어진 아름다운 소나무가 바라보인다..

 

수령 500년이 넘는 보호수 소나무..

 

이제 오늘의 둘레길도 끝이나 간다.. 

 

함께 달려온 오늘의 A코스 친구들..

 

다음 구간을 생각하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이제 둘레길도 마지막 한구간만 남아있다..

 

조그만 승합차로 달려간 지리산온천랜드..

 

힘든 하루의 피로를 온천욕으로 날려보낸다..

 

건너편의 산하가든..

 

뜨끈한 김치찌게의 국물이 참맛이다..

 

이렇게 또 한구간을 마무리한다..

  <내마을 갈곳을 잃어/최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