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1구간(운봉~주천), 그리고 파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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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1구간(운봉~주천), 그리고 파란 하늘..

by 정산 돌구름 2014. 1. 7.
지리산 둘레길 1코스(운봉~주천), 그리고 파란 하늘..

 

○ 산행일자 : 2014년 1월 5일(일)

○ 기상상황 : 맑음(구름과 바람 없이 맑고 포근한 날씨)

○ 산 행 팀 : 부부

○ 산행코스 : 운봉읍~행정~가장~노치~회덕~구룡치~솔정자~내송마을~주천(전북 남원)

○ 구간별소요시간 : 약 14.3km / 5시간10분소요

  운봉 우체국(09:50)~2코스시작점(10:00~05)~운봉초교(10:10)~양묘장(10:27)~임계교(10:43)~행정마을(10:55~11:05)

  ~가장교(11:20)~가장마을(11:34)~심수정(11:42)~노치마을(11:12~28)~회덕마을(12:42)~회덕쉼터(12:45~13:15)~

  사무락다무락(13:30)~구룡치(13:55)~솔정지(14:15)~개미정지(14:30)~내송마을(14:43~48)~주천치안센터(15:00)

○ 교통상황 : 광주 문흥지구(08:30)~88고속~남원IC~24번~19번~60번~주천면(09:20)

 

 

○ 둘레길 소개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전남․경남 등 3개도, 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 등 5개시․군의 21개읍․면 117개 마을을 잇는

  21개구간 274km로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각종 자원조사와 정비를 통해 지리산 곳곳의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하고 있다.

  지리산 둘레를 잇는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찾아내 잇고 보듬는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전북 남원 46㎞, 경남 함양 23㎞, 산청 60㎞, 하동 68㎞, 전남 구례 77㎞ 등 274km를 숲길(43.8%), 농로(20.8%), 마을길

  (19.9%) 등으로 이어져 있다.

  2008년4월27일 지리산둘레길 시범구간인 남원 산내~함양 휴천의 개통식을 시작으로 2008년10월16일 남원 인월~산내 구간 개통,

  2009년5월22일 남원과 산청구간 총연장 70km를 개통하였다.

  2011년5월, 총 209.3km(남원, 함양, 산청, 구례, 하동) 개통하였고, 2012년 5월 총 274km 환형의 전체구간을 완전 개통하였다.

  제1코스는 전북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과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14.3km 구간으로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면서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의 너른 들판, 6개 마을을 잇는 옛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옛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던 옛길이 지금도 잘 남아있는 구간이다.

  회덕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남원장으로, 노치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운봉장을 보러 다녔던 길이다.

  특히 10km의 옛길 중 구룡치와 솔정지를 잇는 회덕~내송까지의 옛길(4.2km)은 길 폭도 넉넉하고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경사도가 완만하여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솔숲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

 

광주에서 50여분을 달려 주천치안센터 옆 둘레길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09:20 출발하는 버스가 30분이 다되어 도착하여 바로 주천안내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운봉으로 향한다.

 

구비구비 여원재를 넘어 운봉우체국 앞에서 내린다.

주천에서 여기까지오는데 단 한사라도 타지 않아 약 20여분이 소요되었다..(요금은 1인당 1,800원)

 

운봉우체국에서 1코스 종점, 2코스 시작점인 서림공원 입구까지 간다..

 

2구간을 뒤로 하고 1코스시작점인 주천 방향으로 향한다..

 

1907년 설립된 운봉초등학교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운봉초교앞에서 우측으로 돌아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1일과 6일에 서는 운봉장은 각종 잡화, 곡물, 옷 등이 주로 팔리며, 과거에는 목기와 곶감으로 유명하였다.

지리산북부권역장은 1,6일 운봉장, 2,7일 함양장, 3,8일 인월장, 4,9일 남원장, 5,10일 마천장이 서고

각종 장꾼들이 이지역의 장터를 빙빙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고 한다..

 

서북방향으로는 백두대간 고남산이 바라보이고..

 

동남방향으로는 바래봉에서 덕두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하늘금을 긋는다..

 

산림청 양묘사업장 안으로 들어서..

 

소나무 종묘들이 밭에 가득하다..

 

양묘사업장을 지나 람천을 따라 둘레길이 이어진다..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둘레길..

 

람천은 지리산 고리봉에서 발원하여 남원의 운봉·인월·산내 일대를 지나 경남 함양 마천에서 임천에 합류되는 하천이다..

 

람천은 임천과 남강을 거쳐 최종적으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가므로 낙동계 수계에 속하는 하천이다...

 

엄계교를 지나고..

 

행정마을 앞에는 노송들이 즐비하다..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이 서어나무 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은 곳으로..수백년된 서어나무들이 아름드리 줄지어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곳이다.. 

 

서어나무는 한국 원산으로 황해도, 강원도 이남의 산지에서 자생하는 낙엽활엽교목이다.

내조성이 강해 해안지방에서도 잘 자라고 온대림 지역에서 잘 발달되어 있다.

공해에 대한 저항성이 약해 도심지 주변에서는 생육이 불가능하다..

 

멀리 지리산 서북능선..

 

마을앞 효자비..

 

행정마을..

 

다시 람천을 따라간다..

 

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숲..

 

가장교를 건너 가장마을로 향한다... 

 

바로 가도 되지만 좌측 천변으로 이어간다..

 

가장마을 버스정류장.. 주천면과 운봉읍을 거쳐 남원방면으로 갈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건너면 가장마을..

풍수지리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가장리(佳粧里)라 불렀다 한다.

지금은 들녘에 농사짓는 움막터를 뜻하는 농막장(庄) 자를 써 가장리(佳庄里)로 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옥녀봉 아래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의 천하명당이 있다고 믿고 있다.

300여년 전 이곳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동복 오(吳)씨와 강릉 유(劉)씨라고 하며 그 후 창녕 조씨와 김씨, 박씨 등이 입주하게 되었다.

마을이 뱀 형국으로 마을 앞에 입석을 세워 뱀의 기를 눌러 마을의 액 막음을 하고 있다..

 

마을을 올라서면 동복오씨 가족묘가 있는 심수정..

 

심수정 앞 시비.. 

 

심수정에서 바라본 덕산저수지.. 

 

덕산저수지 너머로 멀리 지리산 견두지맥이 우측으로 이어진다..

 

잠시 소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지리산 고리봉에서 세걸산,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지나온 소나무 숲길, 그리고 멀리 바래봉..

 

노치마을에 이른다..

 

액을 막아주는 돌탑..

 

백두대간길의 노치샘..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있는 노치마을 당산..

 

노치마을 당산제의 유래..

옛날 노치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민씨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그들 중에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가난한 거지가 있었다.

추운 겨울에 거지가 죽자, 동네 사람들이 그를 묻어 주려고 하였으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묻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관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눈이 녹아 있는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 묻어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산에 보답하기 위해서 음력 1월 1일 밤 12시에 주산제(主山祭), 곧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노치마을 당산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월 1일에 지냈는데, 몇 년 전 자손이 없던 마을 노인 두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전답을 동네 당산답으로 기증을 하여, 마을 주민들이 두 노인을 위해 해마다 7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다가,

언제부터인가 당산제를 7월 백중으로 옮겨서 지내게 되었다..

 

마을 뒷산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은 소나무와 토석단이 결합된 형태이고, 할머니 당산은 큰 바위이다.

당산제를 지내기 한 달 전에 제주로 축관, 헌관, 밑주비(음식 장만하는 집)를 선정한다.

이들은 먼저 동네 우물물을 퍼낸 후 대나무와 금줄을 둘러서 마을 사람들과 외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당산제를 지낼 때는 오전에 금줄을 쳐놓은 우물물로 음식을 마련하여, 당일 밤 12시에 뒷당산(할아버지 당산)에서

먼저 제를 지내고, 바로 내려와서 우물에 친 금줄을 걷어다가 마을의 조산에 쳤다.

당산제를 지내는 날은 모든 사람이 문밖출입을 삼가고, 비린 것을 먹으면 안 된다.

또 상주집을 제외한 모든 집 대문에 금줄을 치며, 특히 제주들의 집에는 마당에서 부엌까지 황토를 깔아 놓는다.

옛날에는 정성이 부족하면 호랑이가 동네 개를 물어갔다고 한다.

당산제를 지낼 때 불을 켜놓으면 정월 대보름날까지 그대로 놓되, 한밤중에라도 꺼지면 즉시 다시 켜놓았다고 한다..

 

마을 앞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백두대간길..

노치마을은 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위에 있어 비가 내려 빗물이 오른쪽 주천방향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왼쪽 운봉방향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마을이다..

 

백두대간 길이 통과하는 유일한 마을, 노치마을..

 

노치마을은 조선초에 경주 정(鄭)씨가 머물러 살고 이어 경주 이(李)씨가 들어와 살게 되어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랭지로서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가 있다...

 

뒤에는 덕음산이 있고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구룡치를 끼고 있다.

마을에서는 마을 이름을 “갈재”라고 부르는데 이는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수령 500년이 넘는 보호수 느티나무..

 

마을을 빠져나와 도로를 따라가면 회덕마을..

임진왜란 때 밀양 박(朴)씨가 피난하여 살게된 것이 마을을 이룬 시초라고 한다.

원래는 마을 이름을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

그 뜻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 곳에 모아 이 마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기 때문에 짚을 이어 만든 지붕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으며,

현재도 두 가구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덕치리 초가(德峙里 草家,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5호)..

이 초가집은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으로 조선시대 일반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1895년에 박창규씨가 처음지었으나 6.25때 불타 1951년 다시 지었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 등으로 이루어진 이 집은 이지역에서 구석집이라고도 부른다.

집이 있는 자리는 원래 논이었으나 터가 좋다는 한 풍수가의 말을 듣고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집앞 논밭 너머로는 지리산의 줄지은 봉우리가 펼쳐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정자나무 쉼터...

 

도로가의 안내도..

 

지리산둘레길 운봉에서 8.3km.. 주천까지는 6km남았다..

 

회덕쉼터에서 막걸리에 파전을 시켜 간단히 요기를 한다..

 

쉼터에서 나와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소나무숲길이 길게 이어지고..

 

어느덧 사무락다무락.. 

사무락다무락은 사망(事望)다무락(담벼락의 남원말)이 운율에 맞춰 변천된 것으로 보이는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사함을 빌고 액운을 막아 화를 없애고자 지날 때 마다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눈덮인 옹달샘을 지나고..

 

부드러우 소나무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용소나무..

 

소나무 한그루가 용틀임 하듯이 꼬여져 다른 소나무를 휘감는 보기드문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위로 올라가며 다시한번 휘감아 돈다..

 

구룡치..

주천면 여러 마을과 멀리 달궁마을에서 남원 장을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다.

달궁마을 주민들은 거리가 멀어 남원 장에 가려면 2박3일에 걸쳐 다녀와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구룡치를 장길로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백중 (음력 7월15일)이 지나고 마을별로 구간을 나누어서 길을 보수해서

이용해 왔는데 지금도 예전의 보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이어지는 숲길..

 

솔정지라고도 불리는 솔정자는 20여년 전만 해도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가다가 고개를 오르기 전에 땀을 식히고

주천 들녘과 멀리 숙성치와 밤재를 바라보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던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정유재란 당시 숙성치를 넘어 남원성을 향하는 왜군을 향해 조경남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고도 한다..

 

소나무 숲길..

 

내송리 서어나무 숲..

 

개미정지..

 

내송마을이 다가온다.

내송마을(안솔치)으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 한양 조(趙)씨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그 후로 경주 김(金)씨, 서산 류(柳)씨 등

여러 성씨들이 차례로 들어와 30여 호 마을을 이루면서 주위의 비옥한 농토와 산림을 토대로 부유한 마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 출신 조경남(趙慶南)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내송산장..

 

둘레길 쉼터..

 

마을 입구의 안내도..

 

화장실도 갖추고있다..

 

도로가의 정자..

 

도로를 따라 길게 식재된 소나무..

 

비부정..

 

오리들이 헤험치는 하천가..

 

징검다리를 건너..

 

또다시 하천을 건넌다..

 

아름답게 지어진 펜션..

 

다시돌아온 둘레길 1구간 시작점이다..

 

이렇게 맑게 개인 둘레길의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