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기행]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그리고 국내 최고의 동종(銅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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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기행]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그리고 국내 최고의 동종(銅鐘)..

by 정산 돌구름 2013. 10. 15.
[평창기행]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그리고 국내 최고의 동종(銅鐘)..

 

탐방일 : 2013년 10월 12일

○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 상원사 소개

  상원사는 705년(신라 성덕왕4년)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라는 신라의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었는데,

  옛이름은 진여원(眞如院)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724년(성덕왕 23년) 신라의 대국통이었고 통도사 등을 창건한 자장(慈藏)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성지로서 그 이름을 빛냈다.

  지금은 현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제36호)이 있는 종각만 남고 오늘날 건물은 1947년에 금강산에 있는 마하연 건물을

  본 떠 지은 것이지만, 이름 높은 범종이나 석등은 이미 그때 마련된 것들이다.

  문수신앙의 중심지이며,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어 중대의 적멸보궁을 참배하러 오는 납자승려들의 경유지일

  뿐만 아니라 전국 선승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오대산을 일명 청량산이라고 이름 하는데서 청량선원이라고도 하는 이 선원에는 석가소상을 비롯해서 문수보살, 문수동자 그 외의

  소형 동자상등 3구의 동자상이 있다.

  이곳 상원사에는 세조에 얽힌 일화가 있다.

  단종을 폐위하고 임금에 오른 세조는 얼마 못 가 괴질에 걸렸는데,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세조가 월정사에 들러 참배하고

  상원사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물이 맑은 계곡에 이른 세조는 몸에 난 종기를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몸을 씻고 있었는데, 동자승 하나가 가까운 숲에서 놀고 있었다.

  세조는 그 아이를 불러 등을 씻어달라고 부탁하며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임금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직접 보았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깜짝 놀란 세조가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의 몸을 괴롭히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이다.

  감격한 세조는 화공을 불러 기억을 더듬어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고, 그것을 표본으로 하여 나무를 조각하였다.

  이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을 상원사의 법당인 청량선원에 모셨다.

  다음 해에 상원사를 다시 찾은 세조는 다시한번 기적을 경험했다.

  상원사 불전으로 올라가 예불을 드리려는 세조의 옷소매를 고양이가 나타나 물고 못 들어가게 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세조가 밖으로 나와 법당 안을 샅샅이 뒤지게 하자, 탁자 밑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이 숨어 있었다.

  고양이 때문에 목숨을 건진 세조는 상원사에 ‘고양이의 밭’이라는 뜻의 묘전(猫田)을 내렸다.

  세조는 한양 인근 여러 곳에 묘전을 두어 고양이를 키웠는데, 봉은사에도 묘전 50경을 내려 고양이를 키우는 비용에 쓰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겪은 세조는 그 뒤에 상원사를 다시 일으키고 소원을 비는 원찰로 삼았다.

 

 

관대걸이..

조선초 세조가 목욕을 할 때 의관을 걸어 두었던 곳..

 

상원사 부도전.. 3기의 승탑이 세워져 있다..

 

한암당(漢巖堂) 중원(重遠) 대종사 사리탑..

 

한암당 중원..

법명은 중원(重遠), 법호는 한암(漢巖), 속성은 방(方)씨로 1876년 강원도 화천군에서 태어났다.

1897년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기암절벽의 바위 하나하나가 부처와 보살의 얼굴을 닮은 것을 보고 감격하여 출가했다.

금강산 장안사에서 수도를 시작하였고 금강산 신계사 보운강회에서 수도하던 중 지눌의 <수심결(修心訣)>을 읽고 깨달음을 얻은 후

전국의 고승을 찾아 구도의 길에 올랐다. 1899년 정암사 수도암에서 경허(鏡虛)로부터 <금강경> 사구게를 듣고 도를 깨달았다.

1905년 통도사 내원선원 조실로 추대되어 후학을 지도하였고 1910년 평북 맹산군 우두암(牛頭庵)에 들어가 수행에 정진하였다.

1925년 봉은사 조실을 그만두고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간 이후 27년 동안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1941년 조계종이 출범하자 초대종정으로 추대되어 4년간 종단을 이끌었다.

한암에 얽힌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6.25전쟁 때 상원사를 지켜낸 일이다.

1.4후퇴로 국군이 남쪽으로 퇴각하면서 절을 불태우려 하자 법당에 머무른 채 불을 지를 것을 권하였다. 이에 감명을 받은 국군은

문짝만 떼내어 불태운 뒤 절을 떠났다. 그리하여 오대산 입구에 있는 월정사는 소실되었으나 상원사만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탄허당(呑虛堂) 택성(宅成) 대종사..

법명은 택성(宅成), 법호는 탄허(呑虛), 속명은 김금택(金金宅)이다.

1913년 전북 김제군 만경읍 대동리에서 출생, 기호학파 최익현 계통의 이극종으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도학에도 상당히 밝았다.

15세부터 도(道)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고승 한암과 서신문답을 주고받은 뒤 1934년 22세의 나이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출가하였다.

이후 한암의 밑에서 15년 동안 수행하였으며, 오대산 월정사 조실과 연수원장을 지냈다.

1964~1971년까지 동국대학교 대학선원 원장을 지냈고, 1967년 조계종 중앙역경원 초대원장이 되어 불경 번역에 공헌하였다.

동양철학에도 해박하여 일본·대만 등 해외에서 열린 동양학세미나에서 화엄학 등을 강의하였으며, 특히 대만대학교에서 비교종교에

대한 특강을 하여 세계적인 석학으로 추앙받았다. 1983년 월정사 방산굴에서 나이 71세, 법랍 49세로 입적하였다.

<화엄론(華嚴論> 40권과 <보조법어(普照法語)>,<사교(四敎)>,<사집(四集)>,<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반야경(般若經>,

<능엄경(楞嚴經)>등 많은 불전을 번역하였다. 인촌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입적 후 국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만화당 희찬 스님..

법명은 희찬(喜贊·喜燦), 법호는 만화(萬化), 속명은 장인찬(張寅燦)이다.

1922년7월1일 평남 덕천군 풍덕면에서 출생, 향리에서 서당 공부를 하고, 풍덕간이학교를 졸업하였다.

1939년(18세) 오대산 상원사에 입산 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그해 8월22일 한암(漢岩)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이후 한암·탄허대종사 회상에서 수행하였다.

1945년 상원사 원주, 1949년 노사인 한암스님 시봉을 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 상원사에서 한암스님을 모시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1951년 한암선사가 열반하자 시자(侍者)로서 열반을 목도하였다.

1953년 상원사 주지, 1955년 월정사 주지에 취임하였으며, 1956년 탄허스님을 도와서 오대산에 수도원을 개설하였다.

1965년 월정사 대웅전 중창 목재 벌채로 수차례 입건 구속되는 진통을 겪으며, 1969년 월정사 대웅전이 준공되었다.

1970년 다시 세 번째 월정사 주지에 취임하여 보장각, 천왕문, 진영각, 서당, 용금루, 해행당, 설선당 등을 준공하였다.

1981년 월정사 회주로 추대되었으며, 1982년 상원사에서 수행정진하다가 1983년12월11일 세수 62세, 법랍 44세로 입적하였다..

 

상원사 오르는 길..

 

상원사 청풍루..

 

 

 

 

상원사 문수전..

 

상원사 고양이석상..

상원사 문수전 계단 아래쪽에 있는 고양이 석상 1쌍으로, 이 석상에는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담겨 있다.

세조가 상원사를 찾아 법당으로 들어서려 할 때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세조의 옷자락을 물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알고 보니 법당 안에 자객이 숨어들어 있었다 한다.

고양이로 인해 목숨을 건진 세조는 사찰에 전답을 내려 치하하였는데 그 전답은 묘답(猫畓), 묘전(猫田)이라 불렸다.

이후 세조는 고양이를 잡아 죽이지 말라는 왕명을 내리기도 했는데, 상원사 고양이석상은 이 일을 기리기 위해 사찰에서 세운 것이다.. 

 

지난해 세웠다는 높이 5.7m의 오대보탑...

 

문수전..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木彫文殊童子坐像)..

1466년(세조 12년)에 제작된 높이 98cm의 목조 문수동자좌상으로 1984년10월15일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었다.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큰 문화재이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맡은 보살로서, 석가모니불의 왼쪽에 있는 것이 통례이다.

그 모양도 여러가지이나 보통은 사자를 타고 오른손에 지검(智劍)을, 왼손에 연꽃을 가지고 있으며, 머리털은 다섯 뭉치로 맺고있다.

수인(手印)·법의, 가슴의 달개(瓔珞) 등은 다른 보살상과 비슷하지만 앉아있는 모습과 머리털을 두 뭉치로 맺고 있는 점 등이 다르다.

이 불상은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직후, 몸에 난 종기를 불력(佛力)을 빌려 고치고자 상원사로 가던 길에, 동자(童子)처럼 생긴 문수보살을

만나 씻은 듯이 나았으므로 그때의 영검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또, 이 보살상 뱃속에서 당시 중수발원문·불경·명주적삼·사리 등의 불교관계 유물 23종이 나와 일괄하여 보물 제793호로 지정되었다.

상원사 문수동자상은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전기의 불상 가운데 조각이 가장 우수하고 아름다운 불상이다.

문수보살의 지혜는 어린아이처럼 청순하여 집착이 없고 소박하다고 하여 이처럼 독립된 어린아이 모습의 동자상으로 널리 조성되었는데

상원사가 위치한 오대산은 신라시대부터 문수신앙이 크게 발달하였던 곳이다..

 

복장 발원문에 의하면 세조 12년(1466년)에 세조의 둘째딸인 의숙공주 부부가 득남을 기원하며 이 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머리 양쪽으로 앙증맞은 동자머리를 튼 복스러운 얼굴은 입가에 천진스러운 미소를 머금어 청순한 동심의 이미지가 가득 묻어 난다.

오른 다리를 밖으로 하고 발등을 바닥에 둔 편안한 자세, 잘록한 허리와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가 빚어내는 안정된 비례, 손가락마다

서로 다른 곡선을 그리는 여성적인 섬세한 수인, 최대한 장식을 절제하면서도 마치 그림을 보는 듯 정교하게 묘사한 목걸이,

그리고 신체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사실적인 옷자락 표현에는 귀족적이면서도 우아한 기품이 배어 있다.

단지 옷주름의 억양이 지나쳐서 다소 번잡한 느낌을 주고 당당한 기품을 강조한 나머지 동자 특유의 소박한 분위기가 부족하다..

 

문수전 외벽에는 세조가 목욕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소원성취 연등..

 

상원사 영산전(靈山殿)..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집으로 1946년 화재시 유일하게 화마를 면한 오대산 안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이다.

세조가 희사한 39합의 고려대장경이 이곳에 모셔져 있었으나 현재는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옮겨져 보관하고 있다.

이 대장경은 본래 다섯 본을 인행하여 삼보사찰과 오세암, 그리고 이곳에 봉안한 것인데 오세암의 대장경은 소실되었다..

 

안에는 석가산존상과 16나한상을 봉안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서 영산전이라 한다.

영산전 전각과 석가삼존상, 16나한상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 석탑..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층석탑으로 기단부터 상층부에 이르기까지 탑 전체가 여러가지 불상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심하게 파손되어 탑신의 형체, 탑의 층수를 알 수 없다. 가장 오래된 자료로는 일제 때 영산전 앞에 서 있는 사진뿐이라고 한다.

이 석탑은 해체되어 영산전 우측에 서 있었으나 상원사를 새로 단장할 때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기단부는 구름과 용, 연꽃 등의 무늬가 새겨지고, 탑신부에는 삼존불을 비롯하여 불보살을 가득 새겨, 호화롭게 치장하였다.

옥개석은 파손된 상태로 1층만 남아있다..

 

청량선원..

 

 

 

소림초당..

 

 

만화루..

 

만화루 아래의 달마상.. 

 

요사..

 

동정각(動政閣)..

 

동정각 동종..

신라 성덕왕 24년에 평사 피각군이 명하여 만들어진 동종으로 높이가 167cm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종으로 음향이 낭랑하기가 비할 데 없다... 

 

종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벽으로 구획하여 출입과 타종을 금하고 있다.. 

 

종신(鐘身)에 새겨진 당초문이나 보살상의 유려한 조각은 한국종의 특징을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상하대(上下帶)와 어깨, 구연대에는 당초문으로 가득 차 있으며, 드문드문 한사람 내지 4사람의 주악천(奏樂天)을 양각하였다..

 

또한, 상대에는 두 곳에 주악비천상이 주조되어 있다.

하늘에 날리는 천의(天衣)와 영락(瓔樂)의 표현은 이를 데 없이 경쾌하며 비천상 사이에는 원형의 당좌(幢座)가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에 조각된 용뉴의 용두(龍頭)을 크게 표현했으며 발톱이나 비늘 등의 조각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용 두 좌우에는 종명(鐘銘)이 음각돼 있어 조성연대를 나타내고 있다..

 

바로 옆에 같은 크기의 모조품을 설치하였다..

 

비천상의 모형..

 

상원사 지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