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행] 원당영각(元堂影閣)과 시기재(始基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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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행] 원당영각(元堂影閣)과 시기재(始基齋)

by 정산 돌구름 2013. 9. 20.
[광주기행] 원당영각(元堂影閣)과 시기재(始基齋)..

 

○ 탐방일 : 2013년 9월 18일

○ 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원당영각(元堂影閣) 소개

  보물 제1190호로 지정되어 있는 '전오자치영정(傳吳自治影幀)'을 모셨던 영각(影閣)으로, 나주오씨 문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현재 영정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전시하고 있다.

  원당영각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기둥을 세운 정면 4칸·측면 1칸 규모의 한식기와 맞배지붕 건물이다.

  1892년 나주오씨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이 건립하였으며, 1975년과 1976년에 걸쳐 지붕과 대문을 보수하였다.

  오자치(吳自治)는 조선 초기의 무신으로,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나 그 밖의 인명사전에도 그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지 않으며

  <세조실록>과 <성종실록>에 약간의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기록에 의하면 오지치는 활을 아주 잘 쏘았고, 세조 13년(1467년)에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책록되었다고 한다. 그의 영정은 세조가 하사한 것이라 전해졌지만 표현양식을 보아 성종 7년(1476)에 모든 공신들의 영정을 그렸을

  때 함께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근처에 오자치를 제향하는 재실(齋室)인 시기재(始基齋)가 있다.

○ 시기재(始基齋)

  양평공(襄平公) 오자치(吳自治)를 배향하고 있으며, 나주오씨 문중에서 소유·관리한다.

  재실은 정면 4칸·측면 2칸의 구조로,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건물 앞에는 툇마루가 있고 뒤쪽에는 쪽마루가 있다. 내부 전면에 재실 건립에 대한 기록을 적은 시기재중건사실기가 걸려 있다.

  근처 원당마을에는 오자치의 묘가 있는데, 나라에 슬픈 일이 있을 때 묘 옆에 심은 백일홍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오자치와 관련된 또 하나의 유적인 용마암은 광산구 지평동 용강골마을에 있으며, 이 바위에는 그의 애마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야생마 한마리가 마을 일대의 들을 쏘아다니며 곡식을 망쳐놓아 마을 사람들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에 오자치가 야생마를 잡아 준마로 길들이고 말과 더불어 무술을 닦었다.

  하루는 오자치가 마을에서 복룡산을 향해 활을 쏘며 말에게 화살보다 앞서 달리라 명을 하였다.

  화살과의 경주 후 산위에 올라 화살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성미가 급한 오자치는 말의 목을 베어 죽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화살이 날아와 말의 허벅지에 박혔다고 한다. 오자치는 자신의 경솔함이 말을 죽였음을 자책하며 말과 함께 달리던

  황룡강변 부근의 바위에 앉아 애마에게 용서를 빌고 그 바위를 손으로 깎아 석마를 만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