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기행] 용진산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과 가학정(駕鶴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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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행] 용진산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과 가학정(駕鶴亭)..

by 정산 돌구름 2013. 9. 20.
용진산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과 가학정(駕鶴亭)...

 

○ 탐방일 : 2013년 9월 18일

○ 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 산136

○ 마애여래좌상 소개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1989.3.20)로 지정되어 있으며, 청룡사와 가학정으로 가는 용진산 북쪽 기슭을 100여m 오르면

 길 왼편의 서쪽을 향한 암벽중앙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이다.

 총높이 117㎝, 무릎높이 28㎝, 무릎너비 98㎝, 머리높이 40㎝, 어깨너비 51㎝이다.

 마애불은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마련하지 않고 불신만을 선으로 새겨 놓았다.

 머리 위에는 넓고 낮으나 뚜렷한 육계(肉계)를 두었고, 머리의 형태는 나발(螺髮)이다.

 얼굴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타원형으로 도톰한 맛이 없어 평면적이다.

 눈썹사이에 백호(白毫)가 있으며 가늘게 뜬 눈과 눈썹사이가 좁아 찡그린 인상을 주고 있다.

 입은 큰 편으로 꽉 다문 입술은 두텁게 표현되었으며, 코는 얼굴에 비해 크고 넓은데, 끝이 파손된 상태이다.

 목에는 삼도가 없고 움츠리고 있는 듯 바로 어깨에 맞닿아 있고, 옷은 왼쪽 어깨에 희미하게 나타나 있을 뿐 거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수인(手印)은 양손을 가슴에 모아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대고 있어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상품중생인(上品中生印)으로 보인다.

 결가부좌한 다리는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린 길상좌(吉祥坐)로 세부표현을 생략된 채 거의 선으로 처리되고 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 위쪽 암벽에는 <佛堂日月(불당일월) 聳珍水石(용진수석)>이라는 글씨가 세로로 뚜렷하게 음각되어 있다.

 글씨는 크기 20㎝내외의 해서체(楷書體)로 가로 28㎝, 세로 87㎝의 직사각형 구획안에 1.0~1.5㎝의 깊이로 새겨져 있다..

 

 

 

 

 

 

 

 

 

 

 

 

가학정(駕鶴亭) - 광산구 임곡 사호동

  이 정자는 전방으로 황룡강(黃龍江)을 바라보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육각정(六角亭)으로 골기와 육모지붕을 취하고 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 53대손이며,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하여 무훈을 세운 죽산박씨의 증시조인 박경(朴璟)은 선조가 벼슬길에 나서기를

  권했으나, 이를 사양하고 여생을 야(野)에 묻혀 충성할 것을 아뢰니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죽림처사(竹林處士) 시호와 궤장을 내리고

  1601년 가을 이곳에 국고금으로 가학정을 건립하였다.

  이곳의 경치를 살펴보면 황룡강이 구비쳐 정자밑을 흐르고 정자에 오르는 길목에는 층암절벽이 솟아있어 소금강을 방불케하고 수림이

  울창하여 학덕이 높은 선비가 시서를 벗삼고 살기에는 더 없이 호적(好適)한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2012년 5월 재건한 것이다.

  400여년의 오랜 풍상을 겪어온 원래의 정자가 2007년 폭우로 허무하게 무너져버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던 중 광산구에서

  남아있는 사진 등을 참고하여 비슷하게 재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