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기행] 반야산 관촉사(灌燭寺)와 은진미륵(恩津彌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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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기행] 반야산 관촉사(灌燭寺)와 은진미륵(恩津彌勒)..

by 정산 돌구름 2012. 7. 20.
논산 반야산 관촉사(灌燭寺)와 은진미륵(恩津彌勒)..

 

탐방일 : 2012년 7월 18일

소재지 :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

관촉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고려시대 최대의 석불입상으로서 일명 은진미륵으로 불리는 석조보살입상이 있다.

  고려 광종19년(968년)에 혜명(慧明)이 불사를 짓기 시작하여 1006년에 완공하였다. 창건 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착공하여 1006년(목종 9년)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비가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옛날 중국의 지안(智安)이라는 명승(名僧)이 이 절에 세워진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을 보고 미간의 옥호에서 발생한 빛이

  “마치 촛불을 보는 것같이 미륵이 빛난다.” 하면서 예배하였다. 이런 연유로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이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 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왕12년(1386년) 법당을 신축하였고, 선조14년(1581년) 거사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현종15년(1674년) 지능(智能)이,

  영조11년(1735년) 성능(性能)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음전과 삼성각·사명각·해탈문·현충각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보물 제218호)과

  석등(보물 제232호), 배례석(拜禮石 충남 유형문화재 제53호), 석문(石門 충남 문화재자료 제79호), 오층석탑·사적비 등이 있다.

  절 입구에는 1914년에 만든 반야교(般若橋)라는 현대식 구름다리도 있다.

  이 가운데 배례석은 너비 40㎝, 길이 150㎝의 장방형 화강암 위에 팔엽연화 3개가 연지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또 해탈문인 석문은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던 것 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절에는 1499년(연산군 5) 가야산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한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몽산법어(蒙山法語)>, <심우십도

  (尋牛十圖)> 등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는 범어사의 영명(永明)이 옮겨 보관한 것이었으나, 그 뒤에 해인사로 옮겨갔다고 한다.

 

 

천왕문(天王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어칸은 통로로 출입을 하며, 협칸에는 사천왕상이 2구씩 모셔져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내부의 천정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 구조이다.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선신(善神)으로 문 양편에 사천왕을 안치하므로 문 이름을 '천왕문'이라고 한다..

 

갑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이 천왕들은 손에 들고 있는 지불만 약간 다를 뿐 거의 유사한 형식이다.

사방을 수호하는 이 천왕들은 무장한 갑옷을 입고 각 지물을 들고 있다.

허리가 잘록한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으로 눈을 부릎떠서 악귀를 위협하고 있다.

용과 여의주를 들고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수미산의 서쪽 서구여니주에 계시면서 나쁜 것을 물리치고 넓은 눈으로 국토를 바라보며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선신(善神)이다. 옆에 탑과 삼지창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북방을 수호하는 선신(善神)으로

재물과 복덕의 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신이다..

 

웃음띈 얼굴에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수미산의 동쪽 동승신주에 주석하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나라를 다스린다.

눈을 크게 부릎뜨고 긴 칼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남쪽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항상 사람을 관찰하고 더욱 이익을 넓게 중생의

이익을 많게 해주는 선신(善神)이다..

 

긴계단의 명곡루...

 

누각 아래로 들어선다..

 

대광명전(大光明殿)..

미륵전 전면 좌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미륵전 축과는 직교되는 위치로 전면에 누각을 지어 미륵전 축과 별도의 불전영역을 조성하였다.

하층 정면 5칸, 측면 4칸, 상층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집인데 보기 드문 중층건물로서 1996년에 지었다.

안에는 배면 가운데 칸을 후불벽으로 삼아 불단과 닫집, 후불탱을 걸어 장식하였다...

 

장대석으로 기단을 조성하고 다듬은 원형 초석을 놓은 다음 원형기둥을 하층기둥을 세웠다.

내부에는 내진주를 모두 고주로 써서 중층가구를 결구하였고, 하층 정면은 꽃살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기둥 상부는 창방과 평방을 짜고 다포계 공포를 올렸는데 외2출목이며, 상층 공포는 외2출목, 내3출목이다.

내부는 상하층이 트인 중층이며 상층은 우물반자를 설치하였으며, 처마는 상하층 모두 서까래와 부연을 썼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팔작으로 만들었고, 내부는 상층만 단청하고 하층 포는 백골로 두었다..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불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은 산스크리트어로 '마하바이로차나(Mahāvairocana)'라고 하며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다. '태양'을 뜻하기도 하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온누리에 함께하길 기원한다.

흔히 대적광명, 대광보전등으로도 불리워지는데, 대적광전의 본졸불은 연화장세계의 교주이신 비로자나불이다.

연화장세계가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의 세계라하여 대적광전이라 불리는데, 소의경전인 '화엄경'을 근거로 화엄전,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뜻에서 비로전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화엄종 계통의 사찰에서는 보통 대적광전을 큰법당으로 삼는다...

 

대적광전에는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보신불인 아미타불,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관촉사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수의 선종사찰에서는 선종의 삼신설에 따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을 모신다..

 

미륵전(彌勒殿)..

미륵보살이나 미륵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을 '미륵전(彌勒殿)' 또는 '용화전(龍華殿)'이라고 한다.

보통 다음 세상에 메시아로 강림하는 미륵부처님을 모시면 용화전, 도솔천에 모셔진 미륵보살을 모시면 미륵전이라고 한다.

'미륵전'이라는 적은 현판 글씨는 연제(蓮齊) 이용현(李鎔泫)이 쓴 것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그림을 신중탱이라 하는데, 많은 신들을 배치하여 그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는 신중탱은 일반적으로 제석(帝釋)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무장을 한 신중들을 배치한다...

 

지장보살은 원래 인도의 지신(地神)에서 유래한 보살로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등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운 분이다. 불단의 오른쪽 벽에는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화면의 중심에는 지장삼존이 배치되어 있고 주위에 시왕, 판관, 인왕 등이 둥글게 에워싼 구도를 하고 있다...

 

삼성각(三聖閣)..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창호는 빗살창으로 짜아 어칸은 2분합, 협칸은 1칸의 문을 달았다.

내부의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며, 안에는 칠성탱을 중심으로 산신탱과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세분의 성인(聖人)을 모시고 있는 전각을 삼성각이라고 하며, 보통 칠성(七星)과 산신(山神), 독성(獨聖) 등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성(獨聖)은 범어로 pindolabharadvaja인데, 빈두로파라수(賓頭盧頗羅隨)로 음역되는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이다.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수도하면서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아라한으로 나반존자(那畔尊者)로 잘 알려져 있다.

흰눈썹이 특징인 나반존자는 지팡이를 잡고 화면중심에 앉아 있고, 뒤의 소나무와 바위 등의 배경은 천태산으로 수묵담채로 그려져있다.

산신탱은 민간에서부터 외경시 되어오던 호랑이를 산의 신령(神靈)으로 존경하였던 호랑이신앙을 불교화하면서 산신(山神)으로

승격시켜 수용해 그린 것을 말한다. 이 산신탱의 도상적인 특징은 호랑의 변화신인 산신을 중심으로 반드시 호랑이와 함께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백발의 산신은 부채와 지팡이를 쥐고 옆에는 항상 따라 다니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하늘의 별인 북두칠성은 하늘의 일월성진(日月星辰)을 다스리고 천재지변을 통솔하는 주제신(主帝神)으로 승격하게 된다.

신으로 숭배되어 온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부처님으로 승격시키고 칠성의 주존을 치성광여래로 모시며 그림으로 도상화한 것이

칠성탱(七星幀)이다. 금륜을 들고있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양쪽 앞에는 해와 달을 들고 있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그 좌우로 성군(星君)과 필성(弼星), 뒤에는 칠여래가 합장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명부전(冥府殿)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는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시왕상, 판관, 인왕 등이 함께 조성된다..

 

나무를 깍아 만든 높은 수미단에는 용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 지장삼존상을 모시고 있다.

중앙에는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이 깍은 머리에 스님 모습으로 한 손에는 육환장(六環杖), 한 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다.

좌우에는 젊은 수도승인 도명존자(道明尊子)와 문인의 모습을 한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뒤에 걸려 있는 후불탱은 지장탱(地藏幀)이다.

시왕은 염라왕이 중국에서 발전, 전개되어 10대왕으로 확대된 것으로 원유관에 문관복을 입고 홀을 든 모습으로 조각된다.

지장삼존상(地藏三尊像)을 중심으로 좌우로 홀수(1.3.5.7.9)대왕과 짝수(2.4.6.8.10)대왕이 늘어져 배치되었다.

제1대왕은 진광왕(秦廣王), 제2대왕은 초강왕(初江王), 제3대왕 송제왕(宋帝王), 제4대왕 오관왕(五官王), 제5대왕 염라왕(閻魔王),

제6대왕 변성왕(變成王), 제7대왕 태산부군(泰山府君), 제8대왕 평등왕(平等王), 제9대왕 도시왕(都市王), 제10대왕 오도전륜왕

(五道轉輪王)이다. 죽은 중생들은 초칠일~칠칠일, 백일, 1주기. 3주기등 10차례에 걸쳐 한 왕씩 앞에 나가 재판을 받게 되는데,

3년 사이에 태어날 세계가 결정된다고 한다..

 

윤장대..

 

종루(鐘樓)..

육각형의 지대석을 2장 깔고 초석을 놓아 원주(圓柱)를 세워 겹처마 모임지붕인 정자식 건물이다.

천정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구조이며, 다수의 현판이 걸려 있고, 중앙에는 해탈의 길로 승화시켜주는 의식구 범종이 매달려 있다.

범종의 장엄한 소리는 중생을 착한 길로 인도하며 해탈의 길로 승화시켜주는 의식구로써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조성된 것이다. 완만한 원통형 곡선의 몸체에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과 당초문 등의 문양이 주조되어 있다.

종의 꼭대기에는 굵은 음통과 용뉴가 조각되어 고리의 기능을 하고 있다...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제218호로 지정되었으며, 보통 '은진미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관촉사의 상징이라할 만큼 매우 중요한 불상으로 전체높이가 18m에 달하는 거대한 고려 초의 불상이다..

'관촉사비명'에 따르면 조성시기는 광종21년(970년)에 시작하여 목종9년(1006년)에 이르기까지 37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의 백호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묵기(墨記)에는 광종19년(968년)이라는 기록이 있다.

'관촉사사적비명'이 조성당시와 거리가 먼 조선후기의 기록임을 감안하고, 묵기가 불상의 조성과 함께 봉안되었을 것이므로

불상의 조성시기는 968년 설이 보다 믿을만하다..

 

절을 찾기 위해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해탈문을 들어서면 눈앞에 거대한 이 미륵보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처음 불상을 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 당당한 위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불상에서 풍기는 인상은 불상이라기 보다는 친근한 이웃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다.

얼굴의 표현이 이마가 좁고 턱이 넓으며 코와 귀, 입을 다소 크게 나타냈기 때문이다.

눈은 양옆으로 길게 새기고, 귀 역시 어깨에까지 닿을 만큼 길다. 미간사이의 백호에는 근래에 가공한 수정을 넣었다...

 

머리에는 간략하게 보발을 나타냈고, 그 위에 방형의 2중 보관을 올렸다.

아래 보관에는 8엽의 연꽃으로 장식하였고, 네 귀퉁이에는 청동방울을 매달았다..

 

목은 무척 굵은데, 거대한 불두를 지탱하기 위한 배려이다. 삼도의 표현이 뚜렷하고, 어깨에는 통견의 법의를 걸쳤다.

오른손을 가슴근처까지 올려 금속으로 만든 연꽃가지를 들었고, 왼손은 가슴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여래의 중품하생인이다.

신체는 별다른 굴곡없이 직선적으로 표현하였고, 법의가 길게 내려와 U자 모양의 주름을 이룬다..

 

불상은 자연암반을 대좌삼아 딛고 서있으며, 투박한 솜씨로 암반위에 불족을 조각하였다.

불상에 사용된 화강암 석재는 크게 네 부분으로 암반대좌, 다리에서 허리까지, 그 위에서 불두까지, 그리고 2매의 보관으로 구분된다.

불상 뒷면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으며, 조성 당시에는 뒤까지 입체적으로 조각하려 했는지 정으로 쪼은 자국만 남아있다...

 

미륵보살입상이 완성된 후 많은 영험담이 있었다. '관촉사사적비명'에 몇가지가 언급되어 있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가 21일 동안 머물렀다.

미간의 옥호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는데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쫓아와 예배하였으며,

그 광명의 빛이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이름을 관촉사라고 하였다...

 

중국에 난이 일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삿갓을 쓴 스님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물이 얕은 줄

알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내리쳤고, 후에 이 흔적은 불상에 나타났다.

현재 한쪽 기퉁이가 깨진 채 남아있는 것은 바로 이 때의 상처라고 한다.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 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도 전한다..

 

석등(石燈)..

보물 제2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석조미륵보살 앞에 세워져 있는 이 석등은 높이가 5.45m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하대석은 각 면에 3개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8잎의 복연문(伏蓮紋)이 조각되어 있다.

간주석(竿柱石)은 둥근 기둥에 마디를 장식하였는데 중앙 마디에는 꽃이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앙련(仰蓮)을 조식하고 그 위에 판석을 올렸으며, 이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워 화사석(火舍石)을 구성하고 있다.

옥개(屋蓋)는 이층으로 귀꽃이 장식되어 있으며, 옥개 정상에는 연꽃 봉우리 형태의 보주가 올려졌다..

 

오층석탑(五層石塔)..

석등과 배례석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탑신(塔身)은 4층을 이룬다.

기단은 지하에 묻혀 단층기단이고 면석에는 안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기단부와 탑신부 사이에 별석을 두어 고려석탑의 특색을 나타낸다.

낙수면과 맨 위의 옥개석 층급 받침 사이는 넓은 편이며, 체감비로 보아서는 3층의 탑신과 옥개석이 없어진 5층석탑으로 보인다.

상륜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고 높이 343cm로 맨 윗층의 옥개와 하단의 갑석(甲石)에 약간 결실이 있지만 비교적 원상을 유지하고 있다..

 

배례석(拜澧石)

충남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길이 204cm, 폭 103cm, 높이 40cm의 장방형으로 2단의 직각 괴임을 하고

그 위의 면석(面石)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는데, 앞부분에는 3개, 측면에는 2개가 새겨져 있다.

윗면에는 단판 8엽의 연꽃 3송이가 있는데, 중앙의 꽃이 좌우의 꽃보다 크며 뛰어난 수법으로 돋을새김 하였다.

연꽃 중앙의 원 안에는 자방(子房)이 연주문처럼 돌려서 음각하고 연꽃의 잎은 뽀족하며 그 사이에 다시 중판의 연꽃잎이 양각되어 있다.

 

 

 

석문(石門)..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폭 47cm, 43cm의 돌을 방형으로 깍아 양쪽에 지주를 세웠다.

앞면의 기둥에는 '관촉사'와 '해탈문(解脫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장대석을 각각 깊이 172cm 가량 연결하여 쌓아 터멀을 이루고 있으며 천정석은 긴 장대석 5개를 걸쳐 얹어 덮고 있다.

문 양옆으로는 높이 86cm, 길이 240cm 정도의 석벽을 연결하여 쌓아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석조미륵보살을 세운후 참배객들이

모여 불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담장을 쌓고 석문을 축조하였으나 담장은 없어지고 석문만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일주문(一柱門)

둥근 기둥을 세워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짜아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불법에 귀의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섬으로써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