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안개속, 유유자적 걷는 지리산 둘레길 2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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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트레킹/지리산둘레길

자욱한 안개속, 유유자적 걷는 지리산 둘레길 2구간....

by 정산 돌구름 2011. 12. 9.

 

자욱한 안개속, 유유자적 걷는 지리산 둘레길 2구간....

 

 

여행일자 : 2011. 11. 19 (토)

 기상상황 : 흐리고 자욱한 안개(아침부터 짙은 안개 속에 시정이 100m도 되지 않고 쌀쌀함)

여행코스 : 둘레길 2코스(운봉읍~인월면) 9.4km / 4시간5분

  운봉읍(10:05)~서림공원(10:10)~북천마을(10:20)~신기마을(10:40)~비전마을(11:26)~군화동(11:47)~옥계호(12:05)~흥부골자연휴양림

  (12:43)~구인월(13:00)~월평마을(13:15)~인월면(13:20)

 

 

지리산둘레길 제2코스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9.4km의 지리산 둘레길.

  구간은 오른쪽으로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운봉-인월 구간은 너른 운봉들녘을 따라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을 조망하며 호쾌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10km 가까이 되는 전 구간이 제방길과 임도로 되어 있어 길 폭이 충분히 넓어 여럿이 함께 걷기에 좋은 평지길이고,

  황산대첩비, 국악의성지, 송흥록 생가 등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을 골고루 즐기면서 걷기에 좋은 곳이다.


간밤에 내린 비로 아침부터 자욱한 안개속에 오리무중이다.

어제밤은 집 떠나 한적한 첩첩산중의 지리산 산골마을인 달궁에서의 나홀로 하룻밤... 평생을 두고 잊지못할 밤이다.

컵라면에 소줏잔을 기울이며 홀로 지샌 긴~ 밤..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긴 여행이 시작된다.

 

달궁계곡 물이 불어나 철철 흐르고...

 

이른 아침의 지리산식당 민박... 2층 4칸의 민박에서 나홀로...

 

자욱한 안개..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올라 운무에 잠긴 지리산 자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올랐지만...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짙은 안개...

성삼재로 오르는 길목의 심원마을...

하늘 아래 첫동네라고 불리는 곳으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칠선계곡·문수계곡과 함께 지리산 3대 계곡 가운데 하나인 심원계곡 부근,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 사이에 있습니다.. 

 

마한의 별궁터가 있는 달궁계곡에서 계곡을 따라 도로가 뚫리면서 쉽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발고도가 750m에 이르며, 노고단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마을 앞을 흐르는데, 일제강점기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터를 닦은 이후로 2004년 28가구 100여 명이 거주아였고, 관광농원과 송어양식장이 있어 휴식장소로 인기가 있습니다..

 

운무에 잠겨 고요한 산줄기...

 

성삼재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정령치에 이르지만 역시 짙은 안개...

 

차를 몰아 운봉읍사무소에 주차하고 둘레길 제2구간 시작점에 이릅니다...

 

서천리 당산이 있는 서림공원...

 

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돌장승인 진서대장군과.. 

 

건너편의 방어대장군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거진 방풍림....

 

잠시 숲속에 들렀다가 나옵니다...

 

둑방길을 따라 본격적인 둘레길이 시작됩니다...

 

비전마을~서림공원으로 이어지는 5km의 제방길은 너른 운봉 들녘을 적시는 젖줄인 람천을 따라 걷는 길로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외에 여러 종류의 동식물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협동교가 있는 북천마을...

읍내의 북쪽 냇가 마을로 소나무가 우거진 마을이라 벽송동(碧松洞), 객사가 있는 마을이라 객사마을로도 불리었고...

석장승 2개가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람천 건너편에 우거진 소나무숲...

 

신기교를 건너고...

 

아무런 제약도 없이 나홀로 유유히 걷는 길....

 

길...

문득 프로스트의 가지않는 길이 생각났습니다...

 

길가의 초봉..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기마을... 선조28년(1595) 임진왜란이 휴전상태에 접어들어 왜적이 잠시 철수하고, 영남이 아직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런 때 이곳에 터를 잡은 입향조는 인동 장씨 장덕복(長德福)이었다고 합니다.

영남의 전란에 고통을 받다가 지리산이 바라보이고 우뚝 솟은 운봉 고원이 마을을 보호하고 만복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명당터인지라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새터(신기,新基)’라 하였다고....

소(牛)형국인 마을 북쪽 쇠잔등이가 잘려 마을의 쇠한 기운을 막고자 주민들이 직접 토성(土城)을 쌓았다고 합니다..

 

사반교를 건너 다시 둑길의 오른쪽 길을 걷습니다...

 

억새들의 행렬...

 

왕벚나무 숲길이 조성되어 나무마다 명패가 있습니다...

 

전촌마을 어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쉼터와 화장실이 있습니다...

 

동편제 쉼터...

 

다리를 건너면 황산대첩비지가 있습니다...

 

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고...

 

대첩비각...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우왕6년(1380년)에 이곳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10년(1577년) 왕명을 받아

이곳 에 황산대첩비를 세우게 하였다고 합니다. 현종8년(1677) 비각을 세운 뒤, 고종19년(1882년) 다시 고쳐 지었으며 이때 어휘각을

창건하였다고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비문을 쪼아 대첩비를 파괴하였고, 1957년에 비문을 다시 새겨 본래의 좌대에

세우고 1973년 보호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황산대첩사적비...

고종19년(1882년) 운봉현감 이두현이 화수산비각비를 1958년에 중건한 비로 일제강점기 때 황산대첩비와 비각 등이 함께 파괴...

비문에는 황산대첩 전황과 비각 건립취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옆으로 파비각도 있습니다..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 선조 때 세운 비석...

일제강점기인 1943년11월, 조선총독부를 비문을 쪼고 비신을 파괴하였다고... 1977년 비각을 건립하고 파괴된 비석 조각들을 안치...

 

황산대첩기념비도 있고...

 

어휘각을 둘러봅니다..  

 

어휘각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1380년) 다음해 본 석벽에 8웡수 4종사관의 명단을 새기게 하여 자기 혼자만의

공이라기보다는  여러사람의 공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성지를 표현했던 유일한 유적...

6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뚜렸하였던 그 성적이 1945년 일제의 한민족 문화말살정책에 따라 본 비전을 폭파하고

철정으로 쪼아버려 현재 그 잔영만이 남아있는 것을 1973년 어휘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전마을...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합니다...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고, 또한 마을 5리 전에 하마정이 있어 말을 탄 관리가

황산대첩비를 지날 때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는 이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와 비 앞에서 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구한 말까지 2층 정자가 있어 주변의 주막과 기녀(기생)와 소리꾼, 가마꾼(轎軍)이 상주하던 곳이었다고...  

 

그래서 비전을 역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답니다...

또한 조선말 동편제의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이 태어난 곳이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곳으로

동편제의 고향으로 국악의성지가 있는 곳이다...

비전 마을이 동편제의 발상지가 된 것은 이곳 하마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가왕 송흥록의 생가터... 

남원시 운봉 출생인 송흥록은 8명창의 한 사람으로 가왕(歌王)의 칭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판소리의 중시조(中始祖)로서 모든 가조(歌調)를 집대성하는 한편, 매부인 김성옥이 시작한 진양조를 자신의 노래에 도입, 완성...

그의 창법은 발성초가 극히 신중하였고, 웅건·청담한 창법을 가진 동편제(東便制)를 이룩하였습니다...

특히, 춘향가 중의 옥중가(獄中歌)와 변강쇠타령, 적벽가(赤壁歌) 등을 잘 불렀다고...

 

그 옆으로 국창 박초월의 생가터가 있습니다..

  

박초월은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으로서, 김소희, 박록주와 함께 1930년대부터 우리나라 여류 판소리를 대표해 온 인물이다.

서슬과 구성이 있는 목으로 서민적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김소희와는 다른 여창 판소리의 경지를 개척했다.

창극과 여성 국극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춘향가」의 월매 역으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성준 바디 「수궁가」

중요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현재 박초월 바디 「수궁가」「흥보가」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박초월은 순천시(승주군) 주암면 봉암리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남원으로 이사하였으며, 아영면과 운봉읍에서 생활하면서

판소리를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12살 때부터 김정문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 15살 때부터는 송만갑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20살 무렵에는 오수암으로부터 서편제「흥보가」를 배웠고, 25살 무렵에는 정광수로부터 유성준 바디「수궁가」를 배웠다.

박초월은 임방울에게도 소리를 배운 적이 있다.  16살 때 전주에서 개최된 전국남녀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여 이름을 얻었다.

18살 때부터 폴리돌(Polydol)에서「육자배기」,「흥타령」,「춘향가」 등을 녹음하였다.

17살 때에는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했고, 이후 대동가극단, 동일창극단 등에서 활동했다.

동일창극단에서는 극단의 대 성공작인「일목장군」에서 여주인공인 아리주공주 역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해방 후「춘향전」의 월매 역으로는 당대 제일인자라는 평을, 1976년에는 서베를린 국제현대음악제에 참가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1955년 박귀희와 함께‘대한민속예술원’을 창립하여 초대 이사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후에 국악예술학교로 발전하였다. 51살 때인 1967년에는 유성준 바디「수궁가」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해성, 최난수, 최승희, 김수연, 조통달, 박양덕, 전정민, 왕기창 등은 박초월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다시 끝없는 둑방길을 따르고...

 

군화마을...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며서 13가구를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마을 이름을 ‘군인들이 지은 화수 마을’이란 뜻으로 군화동(軍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쉼터를 지나고...

 

 

길가에 남무대각세존 석가모니불이 있습니다...

 

24번 국도를 가로질러...

 

대덕리조트로 들어섭니다...

 

한가로운 대덕리조트...

 

바로 뒤로는 거대한 둑의 옥계호가 있습니다...

 

길은 아래로 나 있지만, 한참을 올라야 하는 옥계호둑에 올라섭니다...

 

떨고있는 구절초...

 

노란빛을 뽐내는 야생화도 아름답습니다...

 

안개송의 옥계호 둑을 거닐고....

 

다시 둑을 지나 내려섭니다...

 

도로를 따라 우회하니 굳게 닫힌 둑방길이 눈앞에... 바로 나와도 되는 것을...

 

둑방길을 바라보고 다시 숲길로 들어섭니다...

 

널따란 임도에 포장마차도 있고...

 

계속 이어지는 한적한 숲길...

 

깊은 산속 옹달샘도 보입니다...

 

능선길로 이어지는 달오름 방문센터길...

 

잠시 내려서면 흥부골자연휴양림...

 

휴양림 앞을 지나 내려섭니다...

 

철이 지나서인지 한가롭기만하고...

 

월동준비를 마친 민박집...

 

민박집들의 모임...

 

잠시 내려서 구인월마을 앞의 영월사...

 

아담한 대웅전...

 

몇년전에 왔을 때보다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절 앞의 비구니운영당...

 

「구인월마을」유래비에 의하면 고려 제23대 우왕6년(1380년)9월 삼도순찰사 이성계장군이 이끄는 고려토벌군과 인월에 본거지를 

왜장 아지발도가 황산에서 대전투를 벌였다. 긴박한 전투가 진행하는 동안 날이 어두워지자 적의 행동을 탐지하기 위하여

이성계장군이 하늘을 우러러 달뜨기를 기원하니 동쪽에서 밝은 달이 떠 올라 아지발도의 목을 쏘아 대승하였다고 전한다.

이 황산대첩에서 달을 끌어 앞당겨 뜨게 하였다는 유래가 전하여져 마을 이름을 끌 인(引)자와 달 월(月)자를 써서 인월(引月)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후 인월보다 먼저 생긴 마을이라 하여 옛 구(舊)자를 써서 구인월이라 전해지고 있다.

 

 

지리산 서북능선의 종착지...

 

함평모씨 모자효자비도 있고...

 

벽화 가득한 월평마을에 들어섭니다...

 

 

월평마을...

운봉에서 박씨가 처음 입주하고 새마을 신촌으로 불리다가 후에 마을 형국이 반월형이라 월평(月坪)이라 불렀다고... 

 

또는 마을 터가 동쪽 팔랑치를 마주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고...

월평(月坪)이란 마을 이름이 말하여 주듯이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월평이라 하였다 합니다...

 

1800년대 후반 천석꾼이 운봉 박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람을 모아 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마을회관을 지나고...

 

마을 앞 도로로 나오면 천변...

 

제3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마무리합니다...

 

달오름마을 표지석..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정자인 영월정....

 

이 정자를 짓게 된 유래는 1380년(우왕 6)에 당시 3도 도원수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섬멸할 때,

어느 날 밤 너무 어두워 적을 탐지하기 어렵자 하늘을 우러러 달뜨기를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밝은 달이 떠올라 적을 물리칠 수 있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이 정자를 지었다고 전하는데, 

상량문에 의하면 단기 1960년 정월에 중건하였다고....

 

유유히 흐르는 람천, 바로 위에서 광천과 풍천이 만나 람천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리 건너의 어탕전문의 두꺼비집...

 

예전에는 7,000원이었는데 어느새 8,000원으로 올랐습니다.. 어탕 한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남원으로 향합니다..

  Tommaso Giordani / Caro mio ben(나의 다정한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