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15구간(대야산) 기암괴석의 명산 대아산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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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백두대간

백두대간 제15구간(대야산) 기암괴석의 명산 대아산을 넘어

by 정산 돌구름 2010. 2. 10.

백두대간 제15구간(대야산), 기암괴석의 명산 대야산을 넘어..

(늘재~청화산~조항산~밀재~대야산~버리기미재)


○ 일시 : 2006. 4. 30(일) 09:15~17:00

○ 기상 : 맑은 날씨였으나 심한 황사

○ 구간 : 17.49km (대간구간) - 경북 상주 문경, 충북 괴산 

  버리기미재~4.55km~대야산~1.25km~밀재~4.35km~조항산~1.15km~갓바위재~3.7km~청화산~2.49km~늘재

○ 소요시간 : 7시간45분 

  버리기미재(09:15)~곰넘이봉(09:56)~블란치재(10:11)~촛대봉(10:26)~촛대재(10:35)~대야산(11:18)~밀치

  (11:52)~고모치(13:15)~조항산(14:00)~갓바위재~청화산(16:03)~늘재(17:00)

○ 주요봉우리 : 곰넘이봉(733m),촛대봉(668m),대야산(930.7m),밀재(665m),조항산(951m),청화산(970m),늘재(380m)

○ 산행팀 : 광주나사모산우회 (50명) - 회비 25,000원

○ 교통

  광주역(06:00)~서광주IC~호남~경부~중부고속~증평IC~32(49)번국도~517번~922번(가은읍)~버리기미재(09:10)

  눌재(17:10)~옥량폭포~문경온천(18:50~20:20)~3번~34번~증평IC~중부고속~경부고속~호남고속~문예회관(23:10)

○ 구간소개

  이번 구간은「늘재~버리기미재」로써 경북 상주시 화북면 늘재에서 문경시 농암면, 가은읍 및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구간의 대야산, 조항산, 청화산은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하며 험난한 암벽지형으로 이루어져 암릉 및 암벽지대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종주시간이 좌우되는데 위험하고 힘든 구간이 많아 안전에도 각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대야산은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이 일품이며 정상에서는 용추계곡으로 떨어지는 길과 대간길로 나누어지는데 대간길은 직벽

  구간이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직벽의 급경사 지대와 오르막 능선길을 가게 된다.

  조항산을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대야산과 남쪽으로 청화산을 곧추 세우고 속리산을 향하여 남하하고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

  인 늘재는  32번지방도로써 북쪽으로 흘러내린 빗물은 화양천을 따라 남한강으로 흘러가고 남쪽으로 흘러내린 빗물은 장암리

   의 농암천을 따라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북진은 늘재에서 버리기미재로 이어지지만「버리기미재~대야산~버리기미재~장성봉~악휘봉」까지 통제구간이기 때문에

  버리기미재에서 시작된다. 

  전국적으로 소문난 장수마을인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농바위마을은 동으로 백두대간의 분수령인 밀재를,

  남으로 속리산자락, 서쪽으로 화양계곡, 북으로 쌍곡계곡을 이웃하고 있다.

  마을의 형상은 소가 누워있는 듯한 우복형(牛腹刑)을 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장수마을답게 8~90대 노인들이 집집마다 있을

  정도였다..

 

 

  청화산은 속리산을 서쪽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기암괴석의 속리산이 남성미를 상징한다면 청화산은 부드러운 여성미를 가진

  산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소의 뱃속을 닮았다고 하여 우복동(牛腹洞)이라고 하는 조선제일의 명당터가 남쪽으로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어 더욱 빛을 발한다.

  청화산의 초입인 늘재는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으로 북서쪽의 물줄기는 화양천을 따라 한강으로 흘러들고 동남쪽의 물줄기

  는 병천과 용암천을 따라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환형을 따라 안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용암천이 유일한 수문이며 도명산과 시루봉의 산줄기가 만나는 쌍용계곡은 우복동의

  관문임을 알리는 「동천(洞天)」이라는 글귀가 계곡암반에 새겨져 있는데 이 글은 전설적인 도승「개운조사」가 맨손으로

  쓴 것이라 한다.

  괴산군과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는 대야산은 두 개의 선유동이 있는데 괴산쪽을 내선유동, 문경쪽을 외선유동이라 하고 양쪽

  모두 구곡을 갖추고있다. 대야산에서 북동쪽으로 조망되는 희양산과 백화산의 암릉미가 발길을 붙잡고 촛대재에서 올라서는

  직벽에 가까운 대야산 북사면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 산행개요

 나사모산우회와 다섯번째 산행이며 백두대간은 소백산에 이어 두번째 산행이다.

 백두대간중 체력소모가 가장 많다고 하여 약간 망설였지만 그래도 나사모 산행에 합류하였다.

 가다가 안되면 B코스를 선택하려는 마음으로...

 버리기미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급경사 산행길로 접어들었다.

 입산금지기간이라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바로 오름의 길을 택하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오르막이라 힘이 들고 백두대간이라지만 오르막길에 표지하나 없는 산중이다.

 

09:15, 버리기미재

922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버리미기재에서 경방기간중에는 동작을 빨리 움직여야 한다.

도로가에 잔뜩 쌓인 폐타이어 옆을 지나 곧게 뻗은 전나무 숲 조림지 나무사이를 따라 오른다.. 

 

헬기장이 있는 552봉에 올라 초입지에서 하지 못한 준비체조하고 이어간다...

 

초입부터가 급경사 오르막이더니만 다시 급경사로 내려서다가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르게 올라서면 675봉이 건너편으로 바라보인다.(09:43) 

 

675봉 넘어가면(09:42) 처음으로 로프가 달린 암벽을 대하고... 

 

연속적으로 암릉구간이 이어진다. 

 

암릉을 내려서면 부드러운 능선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다시 사파르게 오른다.. 

 

안부를 지나 올라서면 암릉코스이며 733봉인 곰넘이봉에 이른다.(09:56) 건너편에 지나온 675봉이 바라보인다..

 

연이어 733봉 내려서면 나타나는 미륵바위..

 

멀리 대야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10:11, 불란치재(510m)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헬기장이 있는 679m봉을 지나 급경사의 내리막을 따라 내려서면 널따란 공터가 있는「불란치재」이다.

불란치재는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의 고개로 버리미기재를 넘는 2차선 포장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와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를 이어주던 옛길로 통행량이 제법 많았던 고개이다.

상주 화북의 늘재를 넘어 청천과 괴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남북방향이라면, 문경 가은에서「불란치재」를 넘어 청천과 청주로

이어지는 길은 동서방향이다. 「불란치재」는 버리미기재에 포장도로를 넘겨주고 지금은 통행이 거의 없는 쓰이지 않는 옛길이

되고 말았으나 지금도 뚜렷한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불란치재와 버리미기재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시대에서 문명의 시대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변천과정을 가장 잘 나타내 보여주는 곳이 바로 문경지방의 고갯길들이다.

그 중「계립령」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새재(조령)」는 조선시대에,「이화령」은 일제시대 이후에 각각 그 역할을

담당해 온 고개들이다.

옛 문헌에는 불란치재를 「불한령(弗寒嶺)」,「불원치(佛院峙)」,「불한현(弗寒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대야산의 허리로

괴산 경계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뜻을 풀어보면 춥지 않은 고개라는 의미로 이곳의 지형을 보면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의 깊은 계곡길로 두 봉우리 양쪽으로

다시 대야산과 장성봉이 가로막고 있어 한겨울 찬 바람에도 포근하다고 하여「불한령」으로 불린 것으로 생각된다.

또「불란치재」는「불이 났던 고개」라는 뜻으로 전해지고 있다..

 

10:26, 촛대봉(668m)

다시 가파른 오르막 사면길이 시작되고 우회도로를 지나쳐 계속 오르면 촛대봉에 이른다..

 

촛대봉에는 이정표 「버리기미재 소요시간 1시간20분/대야산 소요시간 1시간30분」가 있다..

 

멀리 대야산이 우람하게 바라다 보이는데 올라갈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10:35, 촛대재

가파르게 내려서 부드러운 능선을 따르면 이정표「월영대 1시간20분/버리기미재/대야산정상 1시간」가 있는 촛대재이다.

촛대재에서 좌측으로는 피아골을 따라 월영대로 내려서고 대간길은 능선을 따라 직진한다..

 

키가 큰 진달래가 피어있는 봉우리를 지나 내려선다.

 

촛대재를 지나 대야산 정상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해발 700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급경사 암릉구간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경사가 더욱 심해지고 로프길도 그 길이가 차츰 길어진다..

 

로프 하나에 몸을 의지하며 긴 직벽을 오르는데 정말 아찔하다. 우회도로도 없다..

 

직벽 수준의 오르막길이 계속되고 널따란 바위위를 가로질러 가야하는 길도 있다.

 

한참을 올라도 끝이 없는 듯한 오르막은 계속된다

이젠 완전히 직벽이고 중간쯤에서 왔던 길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하게 멀리 보인다..

 

이제 마지막 직벽 하나만 오르면 정상이다.

 

멀리 가야할 능선이 황사에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마지막 직벽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조망이 트이며 대야산 정상이다.

이정표「밀재 40분/촛대봉 1시간30분/피아골 1시간20분」가 있다.

 

11:18, 대야산(930.7m)

정상에는「속리305/2003재설] 삼각점과 정상석「白頭大幹 大耶山 930.7m」이 세워져 있으며, 

정상에서는 지나온 촛대봉 방향을 제외하고도 중대봉, 피아골, 농바위골, 그리고 대간길인 밀재로 가는 길이 있다.

대야산(大耶山)은 경북과 충북의 도계 이루고 「대하산, 대화산, 대산, 상대산」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것은 경상도와 충청도

사투리에서 자연스럽게 발달되어진 언어의 특징이라 한다..

 

화산과 희양산을 지나 속리산 사이에 솟은 대야산은 속리산국립공원내에 포함된다.

경북과 충북 양쪽에 내외 선유동을 두고 있을 정도로 계곡이 특히 유명하다.

대야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은 용추계곡을 형성, 문경 8경의 하나가 된다.

용추골은 대야산과 이웃한 둔덕산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류하여 넓은 암반이 아름다운 선유동 계곡을 빚어 놓았다..

 

깎아지른 암봉과 기암괴석이 산세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문경 8경중의 하나인 용추의 모습은 대야산 제일의 명소로 친다.

거대한 화강암반을 뚫고 쏟아지는 폭포 아래에 하트형으로 패인 소가 매끈한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여러 소를 만들었다.

또한 달이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 해서 월영대(月影臺), 숙종 때의 학자인 이재를 기리기 위해 1906년 세운

선유동계곡의 정자인 학천정 등이 대야산을 더욱 기기묘묘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한다.. 

 

정상부는 급경사의 암벽과 기암괴석들이 좀처럼 인간의 공격을 허락치 않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암벽과 기암들

사이에 불가사의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소나무와 고사목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바로 옆으로는 아름다운 중대봉 바라보이고 멀리 장성봉이 희뿌옇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밀재로 향한다.. 

 

대야산을 지나면 암릉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중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선명하다.

중대봉은 바로 이웃인 대야산(상대봉)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대야산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치며 달아나다

선유동으로 맥을 가라앉힌 줄기의 최고봉이다.. 

 

산전체가 하나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워킹코스가 없어 전인미답의 산으로 남아 있었지만

최근 암벽을 이용한 코스가 개발되고 위험한 곳에는 로프를 매놓아 완벽한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중대봉을 가기 위하여는 청천면 소재지, 화양동, 송면 소재지를 지나 상주시 화북면으로 가는 592번 지방도를 따라 삼송3구

마을까지 가야하는데, 이 마을은 농바위마을이라 불리어진다..

 

전국적으로 소문난 장수마을인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농바위마을..

농바위마을의 마지막 집 담장에는 500여년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노쇠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마을에서 동으로는 백두대간 분수령인 밀재를, 남으로 속리산자락, 서쪽으로 화양계곡, 북으로 쌍곡계곡을 이웃하고 있다.

마을 형상은 소가 누워있는 듯한 우복형을 하며, 예로부터 장수마을답게 8~90대 노인들이 집집마다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손꼽히는 장수마을로 마을지반 전체가 신비의 돌이라는 맥반석이 깔려 있고 여기서 솟는 물을 먹고 장수한다고 믿고 있다..

 

능선을 따라 가다가 중대봉 갈림길을 지나면서 다시 내리막은 시작된다. 

잠시 후 능선갈림길에는 이정표「현위치 능선/용추 1시간30분/밀재 25분」가 있다.(11:43)

 

진달래 잡목 사이로 지나온 능선이 바라보인다. 바위능선길을 따라가다가 대야산을 바라보니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코키리바위, 거북바위, 대문바위 등을 지나면서 암릉 구간은 계속된다..  

 

11:52, 밀재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좌우로 길이 뚜렷하며 많은 발길에 반질반질한 공터가 있는 665m안부인 밀재에 도착한다.

 

예전에 밀재는 문경의 가은과 괴산을 이어주는 고갯길이었으며,

좌측으로는 문경시로써 다래골을 지나 월영대에 이르고, 우측은 괴산군으로써 농바위골로 내려서게 된다..

 

대간길은 직진하여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701봉을 넘어서면 675안부에 이른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한참을 오르면 고도차 없이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지고 849봉을 내려서면 사면길로 우회하면서

좌측으로 급히 휘어진다. 크고작은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면 전망이 좋은 바위지대를 지나 854봉에 이른다..

 

잠시 내려서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길가에 앉아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하였다.(12:35~13:00)

  

부드러운 오르막을 따라가다가 둔덕산 갈림길인 889봉에서 대간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좌측으로 마귀할미통시바위를 지나 둔덕산으로 이어진다..

13:15, 고모치(675m)

내리막이 계속되고 한참을 내려서면 고모샘이 있고 서낭당 흔적인 돌무더기가 있는「고모재」에 이른다. 

하얀판에 검은 글씨의 이정표「조항산1.2km/고모샘10m/대야산3.8km」가 있다.

대야산과 조항산 사이의 「고모재」는 대간꾼들의 목을 추겨주는 고모샘(석간수)이 있는데 물맛은 꿀맛보다 더욱 맛있지만

여기에 슬픈 전설이 서려있다..

 

고모재의 전설을 생각하며 석간수 한모금을 들이킨다.

옛날 고모와 부모 없는 질녀가 오두막에서 가난하나 정답게 살았는데, 질녀가 우연히 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

고모는 슬픔에 겨워 식음을 전폐하고 재상봉에 올라 질녀의 이름을 부르며 수일을 지내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한다.

후세 사람들이 이 고모의 애처러운 넋을 달래기 위해 고모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고모재」에서 리본이 매달린 흙길을 따라 오르면 이정표「백두대간등산로/고모치0.3km/조항산1.1km」가 있는 734봉을

지나고(13:29) 잠시 내려섰다가 흙길로 오르는 급경사가 시작된다..

 

한참을 오르면 능선길은 편안히 이어지고 이정표 「백두대간등산로/고모치0.9km/조항산0.5km」가 나오는데(13:49)

갈림길로써 우측은 의상저수지로 내려서는 길이다.. 

 

잠시 오르막을 따라 905봉을 지나면 지나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오른다. 멀리 장성봉과 악휘봉이 우뚝 솟아있다..

 

14:00, 조항산(951m)

정상에 서면 정상표지석 「白頭大幹 鳥項山 951m」이 있고 조금 옆에 글씨가 없는 삼각점이 있다.

조항산(鳥項山)은 대야산에서 청화산으로 이어가면서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와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사이에 우뚝 솟아있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대야산과 둔덕산 줄기너머로 군자산, 장성봉, 희양산이 보이고, 장성봉, 희양산 너머로는 월악산과

주흘산이 겹겹이 들어온다. 남으로는 청화산 능선너머로 속리산 주능선이 마치 톱니처럼 날카롭게 오르내린다.

동으로는 문경시 농암면의 높고 낮은 산과 골짜기가 어우러져 마치 주름치마를 보는 듯 하고 서쪽으로는 백악산 줄기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조항산 아래의 삼송리에는 천연기념물 제290호로 지정된「용송(龍松)」이라고 불리는 소나무가 있는데 밑둥 둘레가 5m나

되는데다 높이 15m, 가지를 드리운 폭이 20m가 넘는다.

수령 600여년으로 추정되는 이 노거수는 줄기 모습이 용이 꿈틀거리는듯 보인다하여 용송이라 이름 붙였다하며 또 주변에

아름드리 노송 20여그루를 부하처럼 거느리고 있어 왕소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조항산에서 암릉을 지나 급경사로 내려서면 커다란 암릉지대를 지나고 고도를 낮추며 내려선다..

 

잠시 후 갓바위재에 내려서면(14:24) 좌측으로 궁기리 상궁마을, 우측은 삼송리 의상저수지로 내려서게 되며, 

대간길은 직진으로 헬기장을 지나 오르면 769봉이다.(14:29)

 

진달래가 곱게 핀 곳을 능선을 지나고..

 

801봉에서 우측으로 휘어지고 뒤돌라보면 지나온 길이 훤히 조망된다..

 

고도차 없는 능선이 이어지고..

 

전망바위를 지나 886봉에 오르면 사방이 조망되고 고도를 높이며 오르는 능선길도 보인다..

 

858봉에서 좌측으로 틀어진 대간길은 좁은 공터가 있는 865봉을 지난다.

청화산 전위봉격인 976봉에서 좌측으로 가는 길은 시루봉으로 가는 길이며 대간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16:03, 청화산(970m)

잠시 내려서다가 오르면 청화산 정상에 이르고 암봉위에 「白頭大幹 靑華山 970m」정상석이 있다.

청화산(靑華山)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경북 상주시 화북면과 문경시 농암면 등 3개 시군의 중앙에 우뚝 이 솟아있으며,

경북과 충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세의 수려함이 속리산보다 더 낫고 산죽 군락지와 소나무의 자생지로 사시사철 푸르다하여 청화산이라 하는데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의 부드러움은 솔잎 때문에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청화산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견훤산 성터가 있어 이곳에서 후삼국 통일을 원했던 견훤의 호령이 들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중환’은 청화산이 좋아 기슭에서 여러 해 머무르면서 호까지 ‘청화산인’이라 지었다고 하며,「복거총론 산수편」에서

‘청화산은 등뒤에 내외 선유동을 두고 앞으로는 용유동에 임해있다. 앞 뒤편의 경치가 기이하고 아름다움은 속리산보다 낫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 같이 험준한 곳이 없고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이 모두 밝고 깨끗하여

살기가 적다.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이 가리운 것 없이 드러나니 복지라 일컬을 만하다.’고 하였다..

 

다시 고도를 낮추어 급경사를 내려서고 계속되는 내리막을 내려서면 600m 고도에 정국기원단의 대리석비가 있다.(16:43)

「白衣民族(民族中興)聖地 不失其祖 三巴水 埥國祈願壇 白頭大幹 中元地」라 쓰여 있다..

 

조망이 트이지만 황사에 가려 희미하고 바로 아래에 늘치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17:00, 늘재(380m)

다시 고도를 낮추며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계단길을 내려서면 늘재..

속리산과 청화산 사이의 고갯마루로서 32번과 49번 지방도인 늘재는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와 용유리를 지나는 도로다.

길가에는 「분수령 한강/낙동강」표지판이 있다..

 

청화산 초입지에는 최근 새로 세운 성황당이 있다.

성황당의 내력을 밝힌 비문에는 아예 「백두대간 성황당」이라고 새겨두고 있다.

「백두대간의 정기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래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혼성한 서낭

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때는 횡액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

(洞祭)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란을 당하면서 국태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백신(白神)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

신앙으로 승화되어 단(堂)도 지지(地誌)에 등재되어 왔다. 이러한 유서를 지닌 신당이므로 그 위치가 환경유적과 사실(史實)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면 이 늘재는 낙한(落漢) 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의 원류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長程)의 기점이며 고대에 라제(羅濟)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성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鄭起龍)장군의 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니신 문장대와 용화온천을 비롯하여 고승과

명장이 수련한 유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후에 의사들이 창의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창의

대장 이강년(李康秊)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그리고 때맞추어 늘티에 전상석(全相錫)처사가 우국일념으로 이 성황당을

창건하여 동민과 함께 지성기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백여년이 지난 이제 그의 증손 충환(充煥)이 유지를 받들고 이상배 국회

의원과 김근수 상주시장이 산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당(堂)을 중창하여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수범하고 후진의 교육장

이 되게 하여 백두대간의 영기(靈氣) 실감나게 하였다. 에 그간의 유래와 성황당 중창의 경위를 약기하여 비를 세워 영원히

념하는 바이다.」

이곳 늘재가 한강과 낙동강수계를 가르는 남쪽 최초의 분수령이라는 점도 허름했던 옛 성황당을 허물고 새롭게 짓게 된 이유인

듯하다..

 

17:00까지 도착하기로 시간을 정하여서인지 모두 다 내려와 있고 나머지도 10분 이내에 도착하였다.

 

18:20, 옥량폭포 출발

늘재에서 B코스 내려오는 옥량폭포 방향으로 차를 옮긴다.

오늘의 B코스가 조항산 아래에서 의상저수지를 거쳐 삼송리 큰말로 내려섰기 때문이다..

 

옥량폭포(玉樑瀑布)는 해발 858m의 백악산 기슭인 상주시 화북면 입석1리 옥양동의 석문사 깊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구름다리 사이로 무지개빛 옥수를 토해내니 옥량폭포이다.

마치 옥으로 다듬어진 대들보같은 천연 돌다리 아래로 폭포수가 떨어져 내린다고 해서 옥량폭포로 불린다고 한다. 

옥량은 길이 약 20m, 넓이 2m, 암석이 대들보와 같이 또는 교량과 같이 폭포위에 걸쳐져 있는 천상작품으로 처음은 둥글고

가늘다가 갈수록 모나고 넓고 커졌다. 밑으로 물이 흐르니 하나의 돌다리이나 다시 보면 백포(白布)와 같이 폭포를 매어 단

대들보이다..

 

문경종합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뒷풀이 후 광주로 향하였다.

문경종합온천은 1995년말 경상북도로부터 온천지구로 지정 고시되어 지난 2001.3.24 개장한 1,000여대의 넓은 주차시설과

2,500명이 동시에 입욕할 수 있는 현대식 대형종합온천이다..

지하 900m 화강암층과 석회암층 사이에서 분출한 칼슘중탄산천과 지하 750m 화강암층에서 분출한 알칼리성 온천수를

공급하여 한번의 입장으로 두가지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전국유일의 복합보양온천이다.

특히, 황토색 빛깔을 띠고 있는 칼슘, 중탄산천은 만성질환 류마티스, 만성피부염, 알레르기성피부염, 심장병 치료에 효능이

있고 또한, 알카리성 온천은 만성질환, 상처회복, 호흡작용 촉진효과, 병후 회복기능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