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지리산 화엄사(華嚴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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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지리산 화엄사(華嚴寺)..

by 정산 돌구름 2024. 10. 21.

 

천년고찰, 지리산 화엄사(華嚴寺)..


2024년 10월 20일, 천년고찰 지리산 화엄사에서..

지리산 화엄사(華嚴寺)는 사적 제505호(2009년12월21일)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조사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한다.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또,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연기조사께서 창건 후, 백제 법왕(599년)때 3천여명의 스님들이 계시면서 화엄사상을 백제 땅에 꽃피웠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웠다.

원효성사는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677년에 의상조사는 2층 4면7칸의 사상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 법당(각황전)과 석등을 조성하였다.

경덕왕때 이르러 8원 81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세계의 면모를 갖추었다.

헌강왕(875년)때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조성과 더불어 화엄사 중흥조가 되시면서 화엄사가 대총림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태조 26년(943년)에 왕명으로 고려 최초로 화엄사를 중수하였고, 홍경선사가 퇴락한 당우와 암자를 중수하였다.

문종때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중수, 인종때 정인왕사가 중수, 명종 2년(1172년)에 도선국사비 건립, 충렬왕때 원소암 중건, 충숙왕때 조형왕사에 의한 전면적인 보수를 하였다.

세종 6년(1426년)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배불의 와중에도 설응, 숭인, 부휴, 중관, 무렴 등의 고승대덕들에 의해 법석의 요람을 이루었다.

임진왜란때는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키기에 이르렀다.

인조때 벽암선사와 문도들이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였다.

숙종때 계파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규모로 웅장한 각황전 건립과 더불어 선교 양종대가람이 되었다.

근세에 이르러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중수에 힘입어 지금의 화엄사로 중흥할 수 있었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로 공양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다.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국보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는 각황전(覺皇殿)은 본래 이름은 장육전이었다.

부처님의 몸을 가리켜 장육금신(丈六金身)이라고 해서 본래 장육전에는 석가여래의 모습만한 금색의 불상을 모셔놓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본래 이 건물은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의상대사가 3층, 사면 7칸의 장육전을 건립하고 사방벽에 화엄석경을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장육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당시의 모습이나 불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화엄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30년 만인 인조 14년(1636년) 벽암선사가 복구했으나 각황전만은 복구되지 못했다가 숙종 25년(1699년) 계파대사가 중건했다.

현재의 건물은 1643년(인조 12년)에 재건한 것이다.

성층으로 높이 쌓은 석단 위에 서향하여 정면 7칸(26.8m), 측면 5칸(18.3m), 높이 15m로 내부 전체가 한 칸의 방으로 만들어졌다.

중층의 웅대한 건축물로써 그 내부에는 청판을 깔아 중앙의 5칸 3면에 기둥을 세웠다.

기둥 하나 하나는 한 그루의 나무로만 만들어져 있다.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여 거대한 불상을 안치하고 천장을 우물정자 모양으로 주변이 경사지게 한 것은 한국에서 그 예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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