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포항 내연산 보경사, 문수암과 보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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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포항 내연산 보경사, 문수암과 보현암

by 정산 돌구름 2024. 10. 30.

천년고찰 포항 내연산 보경사, 문수암과 보현암


2024년 10월 29일, 포항 내연산 산행길에 찾은 보경사, 그리고 산내암자 문수암과 보현암 ~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 말사인 보경사(寶鏡寺)는 신라 진평왕 24년(602년)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지명법사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도인에게 받은 팔명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입도 받지 않으며 삼국통일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진평왕이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내연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보경사라 하였다.

성덕왕 22년(723년)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경덕왕 4년(745년) 철민(哲敏)이 중창하였고, 고려 고종 1년(1214년) 주지 원진국사(圓眞國師) 승형(承逈)이 승방 4동과 정문 등을 중수하고 종·경(磬)·법고(法鼓) 등도 완비하였다.

숙종 3년(1677년)에는 도인(道仁) 등이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 가을에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靈山殿)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

그때 초한(草閑)이 시주를 얻어 금당을 중건하였고 관음전은 도의(道儀)가, 명부전은 석일(釋一)이, 응향전(凝香殿)은 국헌(國軒)이, 향적전(香積殿)과 국사전(國師殿)은 학열(學悅)이, 열반당은 신특(信特)이, 국사전 정문과 사천왕각 및 식당은 비구니 총지(摠持)와 신원(信遠)이, 팔상전은 지총(志聰)이, 종각은 영원(靈遠)이 각기 분담하여 중건, 중수하였다.

또한, 그와 동시에 도인은 청련암(靑蓮庵)을 창건하고 탁근(卓根)은 서운암(瑞雲庵)을 창건하였다.

영조 1년(1725년) 성희(性熙)와 관신(寬信)이 명부전을 이건하고 단청하였으며, 성희는 괘불을 중수하였는데 이때의 사세가 가장 컸다고 전한다.

1916년부터 1922년까지는 장욱(壯旭)이 많은 사재를 내어 전당(殿堂)과 탑을 중수하였고 홍수로 파손된 제방을 쌓았으며, 교량을 시설하고 전답을 사찰에 헌납하였다.

1917년 10월에는 태인(泰仁)이 명부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대웅전과 상지전(上持殿)을 중수하였으며, 1975년 이후 약간의 단청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신 대적광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와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16나한 등을 배열한 영산전, 석가모니의 팔상시현(八相示顯)을 나타낸 팔상전이 중심 당우로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도 명부전·산신각·원진각(圓眞閣)·일로향각(一爐香閣)·동로각(東爐閣)·누각·수월당(水月堂)·천왕문·일주문·원진국사비각·설산당비각(雪山堂碑閣)·창고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52호로 지정된 보경사 원진국사비와 보물 제430호로 지정된 보경사 부도가 있다.

조선 숙종이 이곳의 12폭포를 유람하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시를 지어 남겼다는 어필의 각판이 있다.

그밖에 경북 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되었다가 보물로 승격된 오층석탑, 경북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다.

부도로는 동봉(東峯)·청심당(淸心堂)·심진당(心眞堂) 등 11기가 있다.

보경사 오층석탑은 적광전 앞에 위치한 높이 약 4.6m 규모의 석탑이다.

1985년10월15일 경북 유형문화재(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2024년10월16일 보물로 승격되었다.

이 석탑은 고려 현종 14년(1023년)에 건립된 5층석탑으로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한다.

《보경사금당탑기》에 의하면 1023년 3월에 도인(道人)과 각인(覺仁), 문원(文遠)이 절이 있는데 탑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서로 의논하고 발원하여 시주를 얻어서 세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층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5층석탑으로 기단과 옥신(屋身)에는 목조 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귀기둥이 있다.

옥신과 옥개(屋蓋)는 각 1매석(枚石)으로 만들어져 있다.

처마끝은 수평을 이루고, 처마선은 끝에서 약간 들려 경쾌한 곡선을 이룬다.

옥개석의 상부에는 2단의 탑신받침이 있지만 상륜부는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 있다.

기단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 1.5m 이고, 탑의 높이는 5m로, 탑신의 체감률이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高峻)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보경사 원진국사비는 비신 높이 183㎝, 너비 104㎝, 두께 17㎝로 이수가 없는 형식으로 비신 상단 양 끝을 귀접이 한 규수형(圭首形)이다.

귀부의 머리는 용머리와 한 형태이고, 6각형의 귀갑(龜甲) 안에는 ‘王(왕)’자가 정연하게 새겨져 있다.

비신 상단에는 해서(楷書)로 된 제액(題額)이 있고, 비신 둘레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당초문과 비신 상단의 귀접이는 고려 중기 이후부터 나타나는 형식의 하나이다.

원진국사 승형(承逈)이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圓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입적 3년 뒤인 1224년(고종 11년)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신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김효인은 충렬왕 때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아버지로 글씨에 뛰어났다.

이 비문은 구양순체의 글씨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활달함을 잘 살렸다.

1965년 보물로 지정된 보경사 승탑(부도)는 높이 4.5m로 단면 8각을 기본으로 삼은 전형적인 8각원당형 부도이다.

크고 긴 돌을 놓아 만든 넓고 네모난 탑구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아래받침돌은 3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맨 아래의 2단은 아무런 조각이 없지만 맨 위의 1단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승탑은 몸돌이 지나치게 길고 커서 높다란 느낌을 받으며, 폭이 좁아서 안정감도 적어 보인다.

또한 간략화 경향이 뚜렷하여 각 세부의 조각이 가늘고 약한 편이다.

보경사 경내에 있는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의 비명에 의하면 건립 시기는 1224년(고종 11년)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산내암자로는 동쪽 50m 지점의 청련암과 서쪽 100여m 지점의 서운암, 보경사 창건과 동시에 건립되었다는 문수암(文殊庵)과 보현암(普賢庵) 등이 있다.

그밖에도 이 절의 주변에는 상태사(常泰寺)·성도암(成道庵)·계조암(繼祖庵)·내원암(內院庵)·대비암(大悲庵) 등의 유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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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암

 

 

보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