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중산리-천왕봉-촛대봉~한신계곡)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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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21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중산리-천왕봉-촛대봉~한신계곡)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21. 9. 23.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중산리-천왕봉-촛대봉~한신계곡) 산행


추석연휴 마지막날,  이른 아침 지리산 천왕봉 산행을 위하여 광주송아산악회를 따라 나선다.

5시55분, 각화동을 출발한 버스는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를 거쳐 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IC를 빠져나와 중산리주차장에 도착한다.

7시55분, 중산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칼바위, 법계사, 개선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오르는데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린다.

잠시 천왕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힘겹게 천왕봉에 올라선다.

빗줄기는 약해 졌지만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거센 바람에 천왕봉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쫒기듯 내려선다.

잠시 내려서니 날이 개어 파란 하늘이 드러나 정상은 물론 단풍이 물든 제석봉 너머로 멀리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통천문,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에 이르러 점심식사를 하고, 주능선을 따라 연하봉, 삼신봉, 촛대봉을 지나 세석대피소에 이른다.

세석대피소에서 한신계곡으로 내려서 한신폭포, 오층폭포, 가내소폭포, 첫나들이폭포를 지나 백무동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추석연휴의 끝자락, 18.8km, 9시간40분의 긴 산행에 힘들었지만 살랑대는 가을바람,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오랜만에 오른 지리산 천왕봉 산행에 기분좋은 발걸음이었다.

○ 산행일자 : 2021년 9월 22일 (수)

○ 기상상황 : 비온 후 맑음(아침에는 구름 조금, 정오 무렵 세찬 비바람 후 맑은 날씨 21~28℃, 정상은 10~13℃)

○ 산행인원 : 광주송아산악회(33명) - 회비 25,000원

○ 산행코스 :  중산리~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대피소~한신계곡~백무동(경남 산청, 함양)

○ 거리 및 소요시간 : 18.81km(트랭글GPS), 9시간40분 소요

중산리(07:55)~탐방지원센터(08:10)~칼바위(08:35)~장터목 갈림길(08:40~45)~망바위(09:15)~로타리대피소(09:45~50)~개선문(10:40)~천왕샘(11:05~15)~천왕봉(11:30~40)~통천문(11:50)~제석봉(12:10)~장터목대피소(12:25~55)~연하봉(13:15)~삼신봉(13:55)~촛대봉(14:15~35)~세석대피소(14:50~55)~쉼터(15:05~15)~한신폭포(15:40)~오층폭포(16:40)~가내소폭포(16:45)~첫나들이폭포(17:05)~백무동주차장(17:35)

○ 주요봉우리 : 지리산 천왕봉(1,915.4m), 제석봉(1,808m), 연하봉(1,723.4m),  촛대봉(1,703.1m)

○ 교통상황

 - 동광주(05:55)~광주-대구고속~지리산휴게소~대전-통영고속~단성IC~20번~59번~중산리주차장(07:50)

 - 백무동(18:00)~1024번~60번~인월황토옹기~지리산IC~광주-대구고속~강천사휴게소~등기국(20:15)~동광주(20:40)

○ 산행지 소개

민족의 영산 지리산(智異山 1,915.4m)은 1967년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산으로 웅장하고 뛰어난 절경은 한국 8경,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힌다.

3개 도, 5개 시․군, 15개면에 걸쳐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산악지대로 그 넓이가 약 1억4천평에 이르러 계룡산의 7배, 여의도의 52배쯤 된다.

서쪽으로는 전남 구례군에 접하고, 북쪽으로 전북 남원에 접하며,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 산청군,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에 접한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활처럼 굽은 25.5km의 주능선은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칠선봉, 촛대봉, 천왕봉 등 1천5백m가 넘는 봉우리만도 16개나 이어진다.

또, 1백10여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과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개 하천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룬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 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10경은 노고운해, 피아골단풍, 반야낙조, 벽소명월, 세석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천왕일출, 칠선계곡, 섬진청류가 그것이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했는데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삼신산의 하나이다.

지리산은 또한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 내렸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는데 간혹 남해바다에 이르기 전 잠시 멈추었다 해서 두류산(頭留山)으로 적기도 한다.

전설에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려 할 때 전국 명산에 기도를 올려 자신이 갖고 있는 창업의 뜻을 물었는데 유독 지리산만이 반기를 들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지리산은 반역산(反逆山), 불복산(不伏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속시킴은 물론 역적을 지리산록의 전라도 지방으로 귀양 보냈다고 전한다.

때때로 이 전설에 맞춰서 지리산(智異山)을 '지혜롭고 기이한 산', '지혜와 다른 산'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지리산은 또, 두류산(頭流山), 남악산(南岳山), 방호산(方壺山) 등의 이름을 갖기도 했다.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되는 해발 1,915.4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때로는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칠 때면 속인들의 분탕질에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고, 화려한 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준다.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며 함양방면으로 칠선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토해내며, 산청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을 이뤄 중산리 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은 세갈래로 헤어졌다가 진양호에서 다시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면서 경남인의 젖줄이 된다.

정상에는 지난 1982년 경상남도가 세운 1.5m 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는데「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우리민족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이곳 정상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신령을 봉안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자취를 감추고 빈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스러운 모습으로 인간을 자연으로 부르는 천왕봉은 나무도 제대로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바위들로 이뤄져 있으면서도 큰 바위 틈새에서 샘물을 빚어내고 있다.

천왕봉은 정상의 신비함과 수려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기라도 하듯 뭇 인간들을 보내지를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과 석양낙조를 빚어내는 천왕봉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 않은 이에게는 천지개벽을 연상케 하는 일출광경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또,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데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이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비탈길과 멀리 대원사에서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험난한 두 길이 있다.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듯 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으니 천왕봉은 쉽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개천문은 법계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다보면 나타나는데 원래 좌우로 두개의 바위기둥이 서 있어 위용을 자랑 했는데 한쪽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한다.

하늘을 여는 문이라 하여 개천문(開天門)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

7시55분, 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의 버스회차지에서 산행을 시작, 15분 정도를 오르면 소형주차장에 이른다.

탐방안내소에서 법계사 버스를 타고 오를 수 있지만 오늘은 걸어서 오르기로 한다.

잠시 오르면 야영장에서 본격적인 천왕봉까지 5.4km 산행이 시작된다. 

칼바위.는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의 큰바위 밑에서 은거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 자를 찾아서 목을 베어 오라고 명한다.

그 장수가 지리산을 헤매다 지금의 칼바위가 위치한 곳에서 약2km 떨어진 곳에 이르러 큰 바위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내리쳤다.

그런데 바위는 갈라져서 홈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지면서 이곳까지 날아와 꽂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의 바위로 변하여 이름을 칼바위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잠시 후 출렁다리를 지나면 장터목 갈림길, 좌측으로는 장터목대피소로, 직진은 법계사로 오르는 길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망바위, 옛날 빨치산이 망을 보았다는 곳이다.

망바위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면 조망이 트이는 헬기장, 멀리 천왕봉이 바라보인다.

붉게 익은 마가목 너머로 지리산 써리봉능선이 바라보인다. 

로타리대피소에 이른다.

순두류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곳이다.

지리산 각 구간별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하늘 아래 첫 사찰로 불리는 법계사..

신라 진흥왕5년(544년) 연기(緣起)조사가 전국을 두루 다녀 본 후 천하의 승지(勝地)가 이곳이라 하여 천왕봉에서 약2㎞ 떨어진 현재의 터에 법계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일주문을 나와 조망이 트이는 암반위에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문창대(文昌臺)..

문창대는 고운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에 자주 왕래를 하면서 이곳에 올라 멀리 서편에 있는 향적대의 바위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므로

이곳을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라고 하였다가 최치원이 사후에 받은 문창후(文昌候)의 시호(諡號)를 따서 문창대로 개칭하였다 한다.

쑥부쟁이와 파란 하늘에 흰구름, 가을의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바위에 새겨진 일출봉..

가파르게 올라선 개선문(凱旋門)..

개선문은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으로 향하다 보면 나타나는데 원래 좌우로 두개의 바위기둥이 서있어 위용을 자랑했는데 한쪽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고 한다.

하늘을 여는 문이라 하여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개천문은 그러나 통천문에 비해 위엄은 부족하다.

통천문은 노고단 쪽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으로 "하늘을 오르는 문"다운 위엄을 갖고 있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선문(원명 개천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는 곳이다.

고갯마루에 서면 천왕봉이 다가온다..

가을의 서정, 쑥부쟁이와 산오이풀의 꽃이 아름답다.

천왕샘에 이르니 빗줄기가 쏟아진다.

남강의 방뤈지로 불리는 천왕샘..

이곳 천왕샘은 서부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로 이곳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르게 된다.

세차게 뿌리던 소나기는 서서히 소강상태를 보이지만 여전히 조망은 흐리다. 

드디어 천왕봉에 올라선다.

천왕봉은 어떤 이유에서 언제부터 불려진 이름인지 아직 밝혀진 바 없고, 문헌상 기록도 없다.

불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사찰에 들어설 때 반드시 통과하는 사천왕문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로는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이를 알리도록 한다.

지금의 정상석은 1982년 초여름, 당시 이규호 경남지사와 민정당 권익현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상남도가 세웠다고 한다.

높이 1.5m의 자연석에 전면은 ‘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란 글을 새겨 놓았다.

표지석을 세우는 날, 경남도내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되어 천왕봉 일대의 쓰레기수거작업을 했고, 도지사 등 일부인사는 헬기로 천왕봉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날은 휴일이어서 등산객들도 많이 몰렸는데 천왕봉에는 일시에 많은 인파로 뒤덮은 것으로는 아마도 최고기록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어 인중샷을 남기고 쫒기듯 내려선다.

한여름이지만 정상의 기온은 13℃, 체감온도는 10℃이하로 추위가 느껴진다. 

뒤돌아본 천왕봉의 풍경, 비는 그치고 서서히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아래로는 멀리 방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굿불긋 물들어가는 제석봉 능선의 풍경, 고사목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제석봉 능선의 아름다운 풍경..

통천문을 지나 내려선다.

제석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정상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는 중봉(1,875m) 다음가는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더 한층 유명하다.

이 제단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제석봉은 예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 군락지가 되어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있고 바닥은 풀밭일 뿐이다

고사목들이 한두그루도 아니고 10만여평에 걸쳐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고사목의 훼손은 물론 이곳에서 야영과 취사행위, 그리고 등산로 이외 지역의 출입도 금지되어 있다.

이곳 고사목들은 해발 1,700m이상 높은 곳에서도 재질이 뛰어난 나무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1950년대 지리산의 아픔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다.

가야할 능선..

제석봉을 지나 가파르게 내려서면 장터목대피소..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사천 주민과 북쪽의 마천 주민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한 장터가 섰다는 것은 지리산에 기대하고 삶을 영위했던 옛사람들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

이곳은 남쪽 중산리에서 9km, 북쪽의 백무동에서 9km의 거리이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떠난다.

이제 날은 완전히 개이고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일출봉 능선..

뒤돌아 본 천왕봉..

연하봉이 다가온다..

지리10경 중 제8경인 연하선경(烟霞仙境)..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과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를 기화요초가 철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

지나온 연하봉, 그 너머로 천왕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멀리 반야봉에 운무에 잠기고..

촛대봉이 다가온다..

삼신봉을 지나면서..

드디어 촛대봉에 이른다.

지나온 능선 너머로 멀리 천왕봉이 아스라하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풍경..

촛대봉 능선..

지리산 남부능선, 낙남정맥이 이어지는 능선이다..

세석대피소와 영신봉..

촛대봉은 봉우리 정상이 촛대처럼 생겼다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해발 1,703m로 설악산 대청봉보다 5m 낮다.

촛대봉에서 보이는 세석의 묘미는 사뭇 대자연의 신비가 느껴지는 듯하다..

천왕봉을 향하여..

세석대피소로 내려서는 길목, 아직 피어있는 산오이풀이 아름답다..

가냘픈 구절초..

세석대피소와 영신봉..

세석대피소에서 바라본 세석평전..

세석대피소는 내부수리가 한창이다. 

이곳은 한신계곡을 통하여 백무동으로 가는 길, 거림이나 남부능선으로 가는 길, 주능선을 따라 천왕봉이나 반야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한신계곡으로 가는 길은 잠시 올랐다가 내려선다. 잠시 쉬어간다.

태고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한신계곡, 여전히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물줄기는 약하지만 그래도 흘러내리는 한신폭포..

오층폭포에 이른다.

가내소폭포, 사철 변함없는 수량을 자랑하는 검푸른 소(沼)를 만들어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 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해서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깊고 넓은 계곡 또는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한신계곡(韓信溪谷)..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산하다고 해서 부르던 이름이 한신이 되었다고도 하고,

옛날에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백무동 위에서 세석까지 흐르는 본류 외에도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과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흐르는 한신지계곡 등 4갈래의 물줄기가 엄천으로 흘러 남강 상류를 이룬다.

본류는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을 흘러 가네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한다.

지리산 계곡 가운데 폭포를 가장 많이 끼고 있으며, 지리산 등반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신계곡 일대는 2010년 8월 18일 명승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첫나들이폭포 위에는 예전에 없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백무동이 다가오면서 꽃무릇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백무동 한신계곡 입구..

언제나 변함없는 느티나무산장을 지나 백무동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