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판서굴과 할미굴의 전설이 서린 산, 동항 8경 진안 천반산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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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9

송판서굴과 할미굴의 전설이 서린 산, 동항 8경 진안 천반산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9. 9. 27.

송판서굴과 할미굴의 전설이 서린 산, 동항 8경 진안 천반산 산행..

 


9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아침, 말바위시장에서 광주뉴서석산악회와 함께 진안 천반산 산행길에 나선다.

7시55분, 말바우시장을 출발한 버스는 문예회관을 거쳐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강천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남원JC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로 들어서 오수IC를 빠져나와 17번, 745번, 30번국도를 타고 진안 동향면 섬계교에 도착한다.

10시35분, 섬계교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부드러운 산허리를 따라가다가 가파르게 올라서 천반산 정상에 올라선다.

울창한 숲 사이로 조망이 트여 진안 마이산과 장수의 산릉, 그리고 용담호로 흘러드는 금강의 물줄기가 한없이 조망된다.

천반산에서 할미굴과 송판서굴을 보고 정여립의 한이 서린 죽도로 내려선다.

죽도에서 금강변을 따라 장전마을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가을이 오는 맑은 날씨에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산길에 조망이 아름다운 기분좋은 산행길이었다. 

○ 산행일자 : 2019년 9월 26일(목)

○ 기상상황 : 구름 많음(구름이 많은 날씨에 바람도 없이 무더운 날씨 21~25℃)

○ 산행인원 : 광주뉴서석산악회 44명 - 회비 25,000원

○ 산행코스 : 섬계교~589봉 갈림길~천반산~성터~전망대~할미굴~송판서굴~뜀바위~병풍바위~죽도~장전마을(전북 진안)

○ 거리 및 소요시간 : 10.81km(트랭글GPS), 4시간55분 소요

  섬티교(10:35)~열원리 갈림길(10:55)~589봉 갈림길(11:10~15)~천반산(11:30~50)~말바위(12:08)~훈련터(12:20~40)~전망대

  (12:45)~할미굴(13:00~10)~훈련터(13:30)~송판서굴 갈림길(13:40)~송판서굴(13:45~50)~뜀바위(14:00)~죽도유원지 입구

  (14:35~15:00)~장전마을 주차장(15:30)

교통상황

  - 말바우(07:55)~광주=대구고속~강천산휴게소~순천-완주고속~오수IC~17번국도~745번지방도~30번국도~섬계교(10:30)

  - 장전마을(15:50)~30번~진안인삼농협(16:10~17:30)~오수IC~순천-완주고속~광주-대구고속~강천산휴게소~문예회관(19:20)

○ 산행지 소개

  전북 진안군 동향면과 장수군 천천면에 있는 천반산(天盤山 647.3m)은 산의 형태가 소반처럼 생겨 지명이 유래되었다.

  무주군 안성면에서 발원하는 양천이 감입곡류하면서 만든 죽도()를 잘 조망할 수 있으며, 동향면의 8경 가운데 하나이다. 
  천반산의 주봉 서쪽 약 1.5km 지점에 옛 성터가 있는데 평평하여 군사가 주둔할 만하고, 그 아래 송판서굴과 할미굴이 있다.

  천반산 성지는 진안읍 가막리와 동향면 성산리, 장수군 천천면 오봉리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며, 산 정상이긴 하지만 넓은 벌이

  형성되고 우물이 있어 농성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특히, 북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따로 성벽이 필요치 않다.

  성벽은 서쪽과 남쪽으로만 축조하였는데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보이는 이 성은 현재 서쪽과 남쪽 일부가 무너진 채 남아있다.

  원래 성의 둘레는 약 2,000m이며, 상당량의 옛 기와편도 수습되었다.
  『광여도』,『해동지도』,『지승』등에는 천반산이 아닌 '천방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천방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천반산의 원래 지명은 천방산으로부터 변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진안군사』에 의하면, 정여립()이 역적으로 몰렸을 때 옛 성터에서 관군과 싸웠고, 은신하기도 한 곳이라고 하며,

  '천반옥저() 하선선인()'이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향토지에 의하면, 성터를 비롯해서 장군바위, 마당바위, 뜀바위, 깃대봉, 시험바위와 대섬 등 정여립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다.

 

 

 

 

 

 

 

 

 

2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천반산 등산로 초입..

 

 

10시35분, 천반산 산행을 시작한다..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져 열원리 갈림길을 지난다..

 

 

진안고원길.

진안고원길은 마을길·고갯길·숲길·옛길·논길·밭길·물길 등을 통해 진안군을 환형으로 이은 도보길이다.

100여 개 마을과 50여개 고개를 지나며, 마을과 마을의 문화를 이어 주는 길이기도 하며, 모두 15개 구간 210㎞로 되어 있다..

 

 

이곳은 진안고원길 13구간으로 동향면사무소에서 상전면사무소에 이르는 16㎞ ‘천반산길’이다.

정여립을 품은 천반산과 금강 상류를 만나는 길로 하향에서 들어서는 천반산 숲길은 아름다운 오솔길의 연속이다..

 

 

산허리를 따라 감도는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589봉을 올랐다가 내려서는 능선에 올라선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고 암릉을 지난다..

 

 

이후 긴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천반산 자연휴양림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한다. 트랭글은 이곳이 정상으로 표기되어 있다..

 

 

좌측으로 조망이 트여 지나온 능선과 589m봉이 내려다보인다.

 

 

천반산 정상..

 

 

삼각점(무주14)이 있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하고..

 

 

후미가 오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머무른다..

 

 

20분이 넘게 기다리다가 뒤늦게 도착한 팀들과 합류한다..

 

 

진안군 동향면과 장수군 천천면에 있는 천반산(647.3m)은 산의 형태가 소반처럼 생겨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천반산에는 산정의 성터를 비롯해서 장군바위, 마당바위, 뜀바위, 깃대봉, 시험바위와 대섬 등 정여림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선조 때 율곡 문하에서 수학한 개혁파 정여립은 보수파에 몰려 낙향한 뒤 대동계를 조직하고 민중을 규합해서 장차 있을지도

모를 외침에 대비하고자 천반산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했다고 한다.

매일같이 깃대봉에 대동(大同)이라는 기를 꽂고 부하 장졸들이 뜀바위를 뛰어넘지 못하면 넘을 때가지 강행하고 시험바위에서는

무예를 어느 정도 익혔는가 시험을 보았다하며 장졸을 마당바위에 모아 놓고 자신은 장군바위에 서서 정신교육을 시켰다한다.

 

 

 

 

죽도방향으로 내려선다..

 

 

가을의 전령, 아름다운 구절초..

 

 

건너편의 독재봉 너머로는 멀리 진안 마이산이 두 귀를 쫑긋 내밀고 있다..

 

 

가야할 능선..

 

 

전망이 트이는 암봉에 올라선다..

 

 

 

 

 

 

구량천이 흐르는 가막리들..

 

 

정여립이 산자락에서 친지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를 지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조망이 트여 지나온 천반산이 바라보이고..

 

 

아래로는 구량천과 장전마을, 그 뒤로 고산(875.8m)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전마을과 구량천..

 

 

 

 

 

 

잠시 후 성터에 이른다.

천반산성 전설에 의하면 조선 후기 정여립()이 역적으로 몰렸을 때 그 일당이 관군과 이 성에서 싸웠다고 전해진다.

축성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송판서굴과 할미굴위 갈림길이기도 하다..

 

 

넓은 공터가 있는 훈련터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훈련터에서 지능선을 따라 할미굴로 향한다..

 

 

조망이 트이는 전망대, 아래로는 가막리와 금강 물줄기가 바라보인다..

 

 

 

 

거대한 바위를 돌아서 내려서면..

 

 

가막마을과 할미굴 갈림길..

 

 

오른쪽으로 잠시 오르면 할미굴이 바라보인다..

 

 

이 굴은 깊이 약 5m 정도의 자연적으로 생겨난 굴로써 장정 5~6명이 쉴 수 있는 크기이며 한줄기 물길이 흐르고 있다.

이 물은 안질에 좋다는 약수로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 굴이 할미굴이라고 이름지어진 것은 송파서굴의 주인공인 송보산 선생이 송파서굴에서 은거하면서 내외동침을 금하기 위해

부인을 이곳에 기거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송판서의 부인이 기거하던 곳이라 하여 할미굴이라 하였다고 한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와 암봉에 올라서면 전면으로 조망이 트여 아름다운 풍경이 바라보인다..

 

 

 

 

아래로 바라보이는 금강 줄기, 한가로운 가막마을 풍경..

 

 

다시 돌아온 전망대 갈림길..

 

 

훈련터에서 자시 송판서굴로 향한다..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고..

 

 

능선에 서면 우측으로 조망이 트여 구양천이 바라보인다..

 

 

송판서굴 갈림길..

 

 

좌측으로 들어서 긴 나무계단을 내려선다..

 

 

송판서굴, 안에는 샘터가 있다..

 

 

송판서굴은 바위굴 2개가 15m간격을 두고 서북쪽으로 쌍굴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큰 굴의 깊이는 약 7m, 작은 굴은 약 5m쯤 된다.

큰굴은 장정 10여명 정도가 쉴 수 있는 크기이며, 바위 틈에서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은 위장병에

좋은 약수로 전해진다.. 

 

 

굴의 주인공인 송판서는 연안송씨 송보산(宋寶山)선생으로 아호는 퇴휴재(退休齋)이다.

세종 20년(1438년) 도승지에 올랐고, 세종31년(1449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1456년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장수군 계남면 방아재로 낙향하였다.

이조판서를 지내다 먼저 낙향한 김남택과 교류하며 도학과 제자백가를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키다 1484년 세상을 떠났다.

송판서는 세상의 죄악을 씻으려고 이곳에 은거 수도하였으며, 부인은 같이 입산하여 건너편의 할미굴에 기거하였다고 한다.

또한, 송판서가 이 굴에서 수도할 때 하루 세끼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데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어느 여인이 식사를 날라오는 것을 보고 송판서가 연유를 물었으나 천리밖에서 왔다고만 말하고 떠나갔다고 한다.

송판서의 위패는 현재 장수 월강사(月岡祠)와 진안 마령의 구산사(龜山祠)에 묘셔져 있다.

또한, 이 굴은 죽도선생 정여립이 대동계원을 거느리고 병마를 훈련하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올라서 갈림길로 돌아온다..

 

 

두 바위 봉우리를 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어넘었다는 뜀바위에 올라선다..

 

 

뜀바위에서 바라본 장전마을과 고산..

 

 

금강의 물줄기..

 

 

건너편으로는 독재봉 능선, 그리고 멀리 마이산..

 

 

뜀바위 건너편..

 

 

 

 

 

 

잠시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진다..

 

 

아래로는 금강과 죽도..

 

 

부드러운 숲길을 따라가면..

 

 

구양천이 금강으로 스며드는 죽도 입구에 이른다..

 

 

행정구역상 진안읍 가막리에 속하는 이곳은 장수와 장계에서 내려오는 천천과 무주군 안성면에서 동향면을 거쳐 흘러오는

구량천이 합수하여 ‘Ω’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서 산이지만 마치 섬처럼 생긴 곳이다.

게다가 육지로 이어지는 곳은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길이라 사실상의 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죽도와 육지가 이어지는 지역에는 날카로운 암릉이 있는데 지역 주민들은 그 모양이 병풍같다고 하여 병풍 바위로 부르거나

닭의 벼슬을 닮았다 하여 베슬 바위라고 불렀다..

 

 

1960년대까지 죽도에는 약 20여 호의 인가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촌 상태이다.

1970년대 이 지방에 살던 노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 지역을 직강() 공사를 통해 농경지로 개간하고자 하였다.

그는 병풍바위를 발파·절개하여 냇물을 직접 하류로 흐르게 하면 나머지 하천 부지가 농경지가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 결과 지금의 폭포가 만들어졌으나 당초 목표했던 농경지 조성에는 실패하였다고 한다..

 

 

흐르는 물줄기에 잠시 몸을 씻고 떠난다..

 

 

구량천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구량천(九良川)은 덕유산에서 발원을 하여 무주군 안성면을 거쳐 진안으로 들어와 동향면 성산리 부근에서 금강으로 유입된다.

구량천의 지류로 상노천과 수침천이 있으며, 49번 지방도가 구량천을 따라 지나간다.

 

 

구량()이라는 이름은 본디 구리가 나는 고장[]이라 해서 구리향이라 불렀는데 이 음을 한자로 적은 것이다.
동향면은 조선시대 운봉현 동면 지역이었고 고려 때부터 구리를 생산하는 특수부락 '동향()'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지금도 동향초등학교 북쪽에 '구리향리'라는 마을 지명이 남아 있다.

구량천 이름도 이 '구리향에 있는 하천'이라 하여 '구리향천'이라 하다가 변한 것이다.

 

 

강가의 아름답게 핀 며느리밑씻개..

 

 

구량천을 지나 도로에 올라선다..

 

 

 

 

장전마을 도로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장전마을에서 진안읍으로 이동하여 뒤풀이를 한다..

 

 

무더운 날씨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항상 뒤풀이는 화기애애하다..

 

 

17시50분, 긴 뒤풀이를 마무리하고 광주로 향한다..

 

 가을나그네<소리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