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기행]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사적 제55호,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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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기행]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사적 제55호,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by 정산 돌구름 2019. 7. 29.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사적 제55호, 영주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2019년 7월 28일(일), 7박8일 캠핑여행 7일차는 이른 아침 평창 육백마지기에서 영월로 향한다.

 

첫번째 코스는 영월로 들어서 영주로 가는 길에 선돌을 둘러본다.

두번째 코스는 영주로 이동하여 먼저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에 이른다. 세찬 빗줄기가 오락가락한 날씨이다.

세번째는 부석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소수서원에 도착하여 소소서원과 선비촌 등을 보고 떠난다.

마지막 코스는 소수서원에서 약 30km를 달려 무섬마을에 도착한다.

 

사적 제55호,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

1541년(중종 36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이듬해 이곳 출신 유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를 설립하였고, 1543년 유생 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1544년에는 안축()과 안보()를 추가 배향하였다.

1546년(명종 1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안현()은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 방책을 보완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사문입의()를 마련하여 서원의 향사()에서부터 학전()과 서적의 운용 및 관리, 노비와 원속()의 관리

등 서원의 운영·유지에 필요한 제반 방책을 마련하였다.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과

국가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1550년 ‘소수서원()’이라 사액되었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또한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에게 명하여 『사서오경()』과 『성리대전()』 등의 서적을 하사하였다.

이러한 조처를 통해 소수서원은 공인된 교육기관으로서, 이후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는 서원이 단순한 향사와 교육 기능 수행만이 아닌, 지방 사림()들의 정치·사회 활동에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포괄하고 있어, 소수서원의 설립과 발전 내용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액을 받기 이전까지 백운동서원은 풍기 사림들의 호응을 받지 못 했다.

그 이유는 서원이 풍기에 세워지긴 했으나 경상도 내 각 군현 유생들에게도 교육 기회가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액을 받고, 국가에서 인정한 사학()의 위치를 굳힘에 따라 풍기의 사림들도 적극적으로 서원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소수서원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향촌 사림의 정치적·사회적 기구로 정착되자 이후 전국에

서원들이 설립, 운영되어 조선시대 사학의 중심기관으로 발전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년)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서원의 지나친 건립과 부패로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문성공묘()·명륜당()·일신재()·직방재()·영정각()·전사청()·지락재(

학구재()·서장각()·경렴정()과 탁연지()·숙수사지 당간지주(宿竿 보물 제59호) 등이 있다.

그 밖에 국보 제111호인 회헌영정(), 보물 제485호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殿), 보물 제717호인

주세붕 영정()이 소장되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서장각에는 141종 563책의 장서가 있다.

서원의 배치는 강학()의 중심인 명륜당이 동향, 배향의 중심 공간인 사당()이 남향이며, 기타 전각들은 어떤 중심축을

설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자리 잡고 있어 곧바로 명륜당의 남쪽 측면으로 출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중앙의 대청과 온돌방 및 마루방으로 되어있고, 대청·온돌방·마루방 주위로

툇마루를 둘렀다.

기단은 장대석()을 바른 층 쌓기 하여 높게 만들고, 그 위에 초석을 놓아 두리기둥[]을 세웠다.

또한 기둥 윗몸에 앙서[] 하나를 내어 기둥머리인 주두()와 결구시킨 초익공()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앞뒤 평주() 위에 걸고, 동자기둥을 세워 마룻보를 받쳤으며, 그 위에 파련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일신재와 직방재는 각각 동재()와 서재(西)로서 다른 서원에서는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서원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채로 건립하여 편액()을 달아 구분하고 있다.

이 동서 양재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 및 협실 앞의 툇마루로 되어 있다.

기단은 정면에는 다듬은 장대석을 바른 층 쌓기 하였으나, 후면에는 거친 사괴석()들을 바른 층 쌓기 하였다.

기단 위에 놓인 막돌 초석 위에는 방주()를 세웠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앞뒤 평주 위에 걸고 간결한 동자기둥을 세워 마룻보를 걸었으며, 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팔작기와지붕을 이루고 있다.

문성공묘는 명륜당의 서북 측 따로 쌓은 담장 속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맞배집으로 장대석의 낮은 기단 위에 원형의 주좌()가 있는 다듬은 초석이 있고, 그 위에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또한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밑면에 초각한 첨차와 소로, 그리고 끝이 날카로운 쇠서를 내어 결구한 초익공식을 이루고 있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전면 고주와 후면 평주 위에 걸고, 첨차로 짜인 동자기둥을 놓아 마룻보를 받친 후, 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의 양측 박공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한 풍판()을 달았다.

그 밖에 서고·전사청·고직사() 등은 모두 사당 담 밖에 세워져 있다.

소수서원은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여행 1001’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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