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재의 보고, 청풍호반의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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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재의 보고, 청풍호반의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by 정산 돌구름 2019. 6. 26.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재의 보고, 청풍호반의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2019622(토), 충북으로 떠난 캠핑여행길에 만난 청풍명월의 청풍문화재단지...

무료 주차장이 넓게 갖추어져 있으며, 입장료는 성인 3,000원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재의 보고, 청풍문화재단지(淸風地)

청풍은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을 건설하면서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충북도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해 단지를 조성했다.
단지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를 옮겨 놓았는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보물 제528호)와 청풍 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호) 등 보물 2점과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인 팔영루(충북유형문화재 제35호), 조선시대 청풍부 아문인 금남루(충북유형문화재 제20호), 응청각(충북유형

문화재 제90호), 청풍향교(충북유형문화재 제64호) 등 건축물 및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다.
한벽루에서 충주호가 한눈에 보이며 주변에 비봉산, 구담봉, 옥순봉, 능강구곡, 금수산, 단양팔경, 월악산국립공원, 수안보온천

등의 관광지가 있다.

 

* 보물 제 528호, 제천 청풍 한벽루(寒碧樓)
 고려 충숙왕4년(1317년)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 보물 제546호,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

 충주댐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 충북 유형문화재 제90호, 제천 청풍 응청각(閣)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 15년(1637년)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 37년(1900년)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 제천 청풍 금병헌(錦屛軒)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로 
이 건물은 숙종 7년(1681년)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후 숙종 31년(1705년)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 2년(1726년)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고,권돈인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고종 37년(1900년)에 부사 현인복이 전면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3칸의 팔작집으로 일명 명월정(明月亭)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淸風官)'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 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제천 금남루(錦南樓)
 이곳은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순조 25년(1825년)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고종 7년(1870년)에 부사 이직현이, 고종 37년(1900년)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이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 제천 후산리 고가
 이 집은 본래 청풍면 후산리 105번지에 있었던 민가였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말기에 지어진 ㄱ자형의 팔작 기와집으로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하여 동남을 향하고 있다.

 대청의 우측에 2칸 크기의 건너방과, 툇마루를 높이 하고 그 밑에 함실 아궁이를 두고 있다.

 대청은 좌측으로 웃방이 있고 웃방에서 동쪽으로 꺾어 대청의 좌측으로 후퇴를 후보하여 제사방으로 꾸미고 있다.

 전체적인 내부의 배치가 특이한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제천 도화리 고가
 이 집은 본래 청풍면 도화리에 있었던 민가였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ㄷ자형의 우진각 기와집이다.

 중앙에는 3칸 크기의 대청을 이루고, 좌측 간살은 방, 부엌, 광으로, 우측 간살은 방2칸과 2칸 크기의 부엌으로 되어 있다.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살자창옆의 관솔을 피워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산간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본래 이전하기 전의 흔적으로 보아 앞쪽에는 바깥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 청풍 황석리 고가
 이 집은 본래 청풍면 황석리 164번지에 있었던 민가였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 지금의 자리로옮겨 복원한것이다.

 집의 구조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겹머리 기와집이다.

 조산말기의 건축물로 좌측(서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을 나란히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아랫방과 웃방 앞에는 길게 툇마루를 두고, 사랑방 퇴는 부엌으로 구성하였다.

 툇마루와 사랑부엌 사이의 퇴주(각주) 이름이 특이하며,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이다.

* 연리지와 연리목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라고 한다.

 두몸이 한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으며, 알기쉽게 '사랑나무' 라고도 부른다.

 나무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가끔 볼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 닿을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전설상 새와 나무인 비익조와 연리목에서 유래된 비익이라는 새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나란히

 한몸이 되어서 난다한다.

 연리라는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서로연결되어 나무결이 상통한다는데서 남녀간의 깊은 정분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나라 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그린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비익조)가되고 땅에서는

 연리지(연리지)가 되도다라고 읊었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제천 청풍 팔영루(八詠樓)
 조선시대에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이다.

 아래는 문이고 위에는 누각의 형태로 되어 있다.

 고종 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충주댐 건설로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서 복원했으며,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이다.

 안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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