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사천 봉명산 다솔사(多率寺)와 보안암(普安庵)..
5월 23일 봉명산 산행길에 만난 다솔사와 보안암..
다솔사(多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686년(숙종 12년) 복원하였다.
1748년(영조 24년) 당우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758년 명부전·사왕문·대양루 등을 중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대양루를 제외하고 1914년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재건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83호 대양루, 경남 문화재자료 제148호인 극락전과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인 응진전,
대웅전·나한전(羅漢殿)·천왕전(天王殿)·요사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대양루(大陽樓)는 1749년(영조 25년) 건립된 2층 맞배집으로서 건평 106평의 큰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에 전체 건물 길이가 13m에 이르는 2층 누각 맞배지붕으로 육중하면서도 고졸한 멋이 눈길을 끈다.
1658년에 중건하고, 1986년에 수리하였으며, 2000년 1월에 다시 보수를 마쳤다..
1978년 2월 8일에 있었던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改金佛事)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됨에 따라 이 절에서는
익산 미륵사지석탑을 본뜬 높이 23m, 30평 정도의 성보법당(聖寶法堂)을 탑 안에 설치하여 적멸보궁사리탑(寂滅寶宮舍利塔)을
건립하였다.
적멸보궁은 본래 대웅전이었는데 1979년 응진전에 모신 아미타여래불상 속에서 불사리 108과가 나오자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증개축한 뒤 불사리를 적멸보궁에 모셔놓았다고 한다.
적멸보궁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열반에 들기 직전의 부처님 모습인 와불상이 모셔져 있다..
경남도문화재자료 제148호(1985년 11월14일)로 지정된 다솔사 극락전은 1680년(숙종 6년)에 중건되었지만 1748년(영조 24년)
불에 탔고 1914년에 다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에 복구하였다.
법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구조는 익공계에 속한다.
가구(架構)는 대개 지대석 위에 마루가 없으며 기둥 사이에 넉살문이 셋이고 주심포식 건물이다.
단층 맞배지붕이며 정면 좌우 측간의 창호, 마름, 벽체가 특이하게 설치되어 있다.
극락전은 정토종 계통의 절에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아미타불을 모셔둔 법당이다.
아미타불좌상을 안치하고 양쪽에는 극락 정토에서 부처의 교화를 돕는다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경남도문화재자료 제149호(1985년11월14일)로 지정된 응진전은 16나한을 모셔 놓고 있어 나한전으로도 불린다.
636년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오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1680년(숙종 6년) 죽파대사가 중건하였다가 건물의 노후로 1930년 한용운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구조 맞배지붕의 주심포 2익공 형식으로 천장은 격자첝장으로 마감되어 있다.
극락전과 같은 규모와 수법으로 지어져 비슷한 시기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멸이 심한 마애불(磨崖佛)과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인 보안암석굴(普安庵石窟),
부도군(浮屠群) 등이 있다.
다솔사 보안암석굴(普安庵石窟)은 경남유형문화재 제39호(1972년2월12일)로 지정되었다.
인공으로 마련된 대지 위에 판형(板形)의 사암질(沙岩質) 자연석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분묘형(墳墓形) 석굴로 앞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목조가구를 짜올렸다.
석굴 입구에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2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정사각형에 가까운
주실(主室)이 있다. 천장은 장대석(長大石) 2개를 동서로 걸치고 다시 그 위에 또 하나의 장대석을 걸쳐놓았다.
이러한 내부수법은 횡혈식(橫穴式) 석실묘(石室墓)의 수법과 비슷하다.
석굴 안에는 결가부좌한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좌상 뒤에는 아주 작은 돌을 쪼아 만든 16구(具)의 나한상(羅漢像)이
각 8구씩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전실의 목조가구수법은 전통적인 방식을 보여주고 있어 토함산 석굴암 구조를 따른 고려시대의
석굴이다.
보안암은 원래 서봉사(栖鳳寺)에 딸린 암자였으나 서봉사가 폐지됨에 따라 다솔사로 귀속되었다.
일명 미륵암(彌勒庵)이라고도 했으며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1336년경 이곡(李穀)이 쓴 기록에 ‘서봉사 남쪽 천령(天嶺) 위에 석굴을 만들어 미륵석상을 봉안한 것은 신라 신문왕 때의
두 왕자에 의해서이다.’라고 되어 있고, 또 17세기 중엽의 최응천(崔應天)도 미륵봉의 석실 안에 장륙석불(丈六石佛)이 봉안되어
있다고 서술했다. 이들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보안암석굴의 창건연대를 신라시대로 추정한다.
있는데,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부도군에는 도명(道明)·낙화(樂華)·성진(聖眞)·풍운(風雲)·세진(洗塵) 등 5인의 부도가 있다.
이 절은 일제 때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며, 소설가 김동리(金東里)가 『등신불(等身佛)』을 쓴 곳이기도 하다.
다솔사로 오르는 길에는 어금혈봉표(御禁穴封標)가 있는데 다솔사 경내와 인근에는 묘지를 쓸 수 없다는 어명을 새긴 비석이다.
세종과 단종의 태실지가 인근에 있기에 승려들의 상소로 명당 터가 많은 봉명산에 묘소를 쓰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절 주위에서 재배되는 죽로차(竹露茶)는 반야로(般若露)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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