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감동이 있는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본문 바로가기
길따라 트레킹/발길 머무는 곳에

소설의 감동이 있는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by 정산 돌구름 2018. 11. 19.


소설의 감동이 있는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2018년 11월 17일(토), 오후,,

오늘은 고흥 연홍도, 녹동항을 보고 보성 벌교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을 찾았다.


소설의 감동을 찾을 수 있는 곳,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벌교를 배경으로 여순사건에서부터 한국전쟁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은 소설 속 배경지를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코스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이야기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인물들 간의 갈등이 우리 역사의 실제이기에 소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태백산맥 문학거리 주차장에 차를 두고 길을 걷는다.

잠시 내려서면 동아책방이 있고, 바로 건너편에 구 보성여관이 있다.

구 보성여관은 1935년 건립된 일본식 2층 건물로 일식 목조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보전가치가 큰 건축물이다.

소설과 영화에서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머무는 ‘남도여관’의 실제모델로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등재되었다.

2008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보성여관을 매입하여 2011년 훼손된 보성여관의 복원공사를 마쳤다.

특히 ‘구 보성여관’은 드물게 남아있는 한옥과 일식이 혼합된 일본식여관으로 근대건축사적 가치와 생활사적 가치도 높은 건물이다.

건축물로써만이 아니라 벌교의 근현대 역사문화환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거점으로써의 가치 또한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여관과 상가 등으로 사용되다가 2004년 근대건축사적, 생활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돼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다.

‘술도가’는 일제강점기부터 벌교일원에 막걸리를 공급해 오던 도가집으로 소설 태백산맥의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정하섭의

본가이며, 하섭과 소화 간의 애정한 인연의 배경이다.

 

소설에서 지식인 청년 정하섭과 지역 유지인 아버지 정형동 사이의 갈등은 해방정국에 벌교에서 벌어졌던 이념갈등의 전형적인

예로 묘사되어 있다.

‘벌교금융조합’은 일본의 건축양식이 그대로 반영된 근대 건축물로서 2005년 12월 9일 등록문화재 제226호로 지정되었다.

1918년 벌교금융조합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26년 ‘농촌지도소 벌교지소’, 벌교지역 ‘농민상담소’ 등으로 활용되었다. 

나지막한 부용산공원으로 오르는 길목은 차분한 느낌의 길 위에 갑작스레 금곡 영화골의 화사한 그림이 펼쳐진다.

친구같이 불쑥 반기는 토토로, 시짓고 있는 윤동주 등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벽에 그려져 있다.

최근에는 전국대학생 벽화대회가 개최되어 더욱 화려한 벽화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점점 낙후되어 가는 월곡마을에 하나둘 생겨난 영화 속 주인공은 동네 주민들에게도 새로운 활기를 주고 있는 듯하다.

부용산 오리길을 따라 부용산 공원에 올라서면 벌교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공원에서 내려서면 채동선 생가가 반긴다.

채동선(蔡東鮮 1901∼1953)은 보성 출생으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에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독일 베를린슈테른쉔음악학원에 입학, 바이올린과 음악이론을 전공한 뒤

1929년에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악리()와 실기를 가르쳤다.

1924∼1939년에 4회에 걸친 독주회를 가진 바 있으며, 광복 후에는 작곡에 전념하였다.

고려음악협회장·작곡가협회장·국립국악원 이사·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하는 등, 음악관련 활동을 하면서 작곡도 게을리하지 않아

많은 독창곡을 지어냈다. 특히, 성악곡 가운데 ‘조국’과 ‘한강’의 교성곡이 있고, ‘현악4중주곡 제1번’과 바이올린독주곡도 있으며,

우리 민요도 채보()한 바 있다.

노래집으로 『채동선가곡집』(1964)이 있는데, ‘추억’, ‘동백꽃’, ‘그리워’ 등 10곡으로 엮어져 있다.

1980년에 출판된 『채동선가곡집』 속에 있는 ‘망향’이 가장 애창되는 가곡이다. 1979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홍교는 무지개형 아치형 다리로 벌교천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729년에 지어졌다.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는 우리나라에 지어진 홍교 중 아름답기로 손에 꼽혀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벌교 곳곳에 남아 있는 소설 속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먼저 벌교읍내로 들어가다 보면 홍교 옆으로 김범우의 집을 찾을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빨갱이로 몰려 순천경찰서에 갇힌 김범우를 구하기 위해 김사용 영감이 문중회의를 열었던 곳이다.

김범우의 집을 나서 벌교천을 따라 내려가면 소화다리를 볼 수 있다.

‘부용교(芙蓉橋)’라는 원래 이름 대신 일제의 연호인 ‘소화(昭和)’라는 이름으로 불린 다리로 원래는 광주에서 순천을 잇는 국도

2호선의 다리였으나 지금은 인도교로 이용되고 있다.
다리를 지나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현부자집과 소화의 집이 나오는데 소화의 집은 그 터만 남아 있다.

현부자집인 이곳에서 소설이 시작하는데 정하섭이 소화의 도움을 받아 이 집 제각에 몸을 숨기는 내용이다.

소설에서 자애병원으로 묘사된 옛 후생병원 건물이 있으며, 금융조합 건물도 일제 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 바로 옆엔 아담한 소화의 집이 자리한다.

집 둘레로 낮은 토담이 쌓여 있고, 뒤에 대숲이 집을 보듬고 있다. 

길 건너편의 현부자네집은 한눈에 보아도 좋은 터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는 집이다.

그 자리는 더 이를 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제석산 자락에 지어진 집은 대문과 안채는 한옥이지만 곳곳 일본식 건축양식이 엿보인다.

천장과 누각, 단청 장식 등이 낯설다. 특히 대청에서 바라보이는 대문채 2층 누각과 마당 한가운데 화단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지금은 오를 수 없지만 2층 누각에서 중도방죽이 내려다보인단다.

지금은 벌교여자중학교로 사용되고 있는 북초등학교를 찾을 수 있는데 반란사건이 진압된 후 인민재판을 벌이던 곳이다.

이 밖에도 벌교읍내에는 소설 속에 배경으로 등장하던 곳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에 포함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