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 날아서 힘든 고개 문경새재, 그리고 조령관문..
본문 바로가기
길따라 트레킹/발길 머무는 곳에

새도 날아서 힘든 고개 문경새재, 그리고 조령관문..

by 정산 돌구름 2018. 11. 26.


새도 날아서 힘든 고개 문경새재, 그리고 조령관문..



2018년 11월 23일(금), 경북으로 떠난 4박5일 둘째날은 조령산 산행에 이어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마무리한다.

조령산 산행을 마치고 이화령에서 조령관문이 있는 문경새재로 내려와 2,000원의 주차료를 내고 주차장에 자리한다.

늦가을에 평일이라서인지 주차장은 한가롭기만 하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은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의 새재를 중심으로 198164일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문경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한다.

풀이 우거진 고개(草岾)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사이재)'로 했다는 설과

새로(新) 생긴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로 지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1966년 문경관문이 사적 147호로 지정된 뒤 1974년에는 주흘산(1,106m)과 조령관문 일원이 경북지방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다.

1979년 경상북도 제1호 국민관광지, 1982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1997년 문경새재박물관을 개관한 데 이어, 2000년과 2002년에 각각 KBS 촬영장과 문경새재 야외공연장을 개장하였다.

문화유적으로는 조령산불됴심표석(경북문화재자료 제226), 옥소권섭영정(문화재자료 제349), 조령원터, 동화원터, 해국사,

용화사지, 보제사지, 안정암지, 은선암지, 충렬사, 교귀정, 대궐터, 군막터 등이 있다.

또 하늘재·이화령·주흘산·조령산·부봉, 여궁폭포·용추폭포·조곡폭포, 기름틀발위·마당바위, 조령약수·조곡약수 등 산봉과 폭포,

계곡과 기암, 약수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밖에 KBS 드라마 촬영장, 민속박물관, 유스호스텔, 사계절 썰매장이 있고, 인근에 문경온천, 문경석탄박물관, 관광사격장,

활공랜드 등 다양한 볼 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어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ndif]-->

문경새재는 일대 주변이 명승 제32(20071217)로 지정되었다.

태종 14(1414)에 개척한 관도로 영남에서 백두대간 준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며, 정상 높이 642m의 고개이다.

주흘산과 조령산이 이루는 험준한 지형은 국방상으로 중요한 요새이며,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임진왜란 이후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부속성, 관방시설 등을 축조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으며,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다녔던 과거길이 남아있다. <!--[endif]-->

문경새재는 한 해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지금도 아름다운 옛길로 각광받고 있다.

널찍한 길을 500m 정도 걸으면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라는 주흘관(主屹關)이 턱 하니 나타난다.

문경새재 세 개의 관문 중에서 제일 웅장하기도 하거니와 옛 모습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다.

문경새재 과거길이라고 쓰인 바위 앞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선정된 동판이 있다.

문경새재는 태종 때 이후로 약 500여 년 동안 한양과 영남을 잇는 가장 번듯한 길이었다.

당시 한양에서 동래까지 가는 고개는 추풍령과 문경새재, 죽령 등 3개의 고개가 있었으나 문경새재가 열나흘 길로 가장 빨랐다.

반면 추풍령은 보름길, 죽령은 열여섯길. 하루 이틀 사이였건만 문경새재는 과거시험 치는 선비들이 유독 고집했다.

당시 선비들 사이에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 문경새재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 고갯길이 아직 비포장으로 남아있게 된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덕이라 한다.

1970년대 중반 문경을 순시하다 무너진 성벽 위로 차량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고 차량통행금지를 명령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문경새재가 흙길로서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1관문(주흘관)은 사적 제147호로 새재 입구에 있는 성문이다.

숙종 34(1708)에 축조하였고, 영조 때에 조령진이 설치되어 문경현감이 수성장을 겸하였다.

한말 항일의병전쟁 때에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에 다시 지었다.

주흘관은 정면 3, 측면 2,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3.4m, 길이 5.4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3.56m, 두께 11cm이다.

좌우 석성은 높이 4.5m, 3.4mm, 길이 188m이고, 부속산성은 높이 13m, 24m,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쪽이 400m이다.

개울물을 흘려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가장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2관문(조곡관)은 선조 27(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하였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은 영성(3관문)과 초곡성(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을 설치하였다.

1907년 훼손되어 1978년에 복원하고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이라 개칭하였다.

누각은 정면 3,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 3.6m, 길이 65.8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3.56m, 두께 11cm이다.

좌우 석성 높이는 4,5m, 3,3mm, 길이 73m이고, 좌우 부속된 산성 높이는 2m, 23m, 길이는 동측 400m, 서측 100m이다.

3관문(조령관)은 새재 정상에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 때 쌓고 숙종 34(1708)에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에 홍예문과 석성, 그리고 누각을 복원했다.

조령관을 기준으로 남쪽은 경상북도 문경땅이고 북쪽은 충청북도 충주땅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마폐봉을 지나 북암·동암문·부봉·주흘산으로 가고 남쪽으로는 깃대봉·조령산 공산진·이화령으로 이어진다.

정면 3,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3.88m, 2.98m, 길이 6.12m이며,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3,2mm, 길이 185m이다.

부속산성의 높이는 23m,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다.

대문의 높이는 3.9m, 높이는 3.9m, 3.56m, 두께 19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