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기행] 사적 제87호, 익산 쌍릉(雙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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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기행] 사적 제87호, 익산 쌍릉(雙陵)..

by 정산 돌구름 2018. 11. 3.


사적 제87호, 익산 쌍릉(雙陵)..



2018년 10월 31일(수), 전북여행 둘째날은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장을 떠나 쌍릉으로 향한다.

쌍릉은 한창 발굴중이라 대왕릉과 소왕릉만 잠시 외관으로 볼 수 있다.


사적 제87(1963121)로 지정된 익산 쌍릉(雙陵)은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 말기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2개의 봉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쌍릉(雙陵)이라 불린다.

북쪽의 것을 대왕묘’, 남쪽의 것을 소왕묘라 하는데 기준왕릉(箕準王陵) 또는 무강왕릉(武康王陵)이라는 전설이 있다.

1915년 일본인 다니이(谷井濟一)에 의해 보고되었다.

대왕묘는 지름 30m, 높이 5m 정도이고, 소왕묘는 지름 24m, 높이 3.5m 정도의 원분(圓墳)이다.

내부는 각각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 모두 부여 능산리고분 돌방과 같은 형식의 판석재 굴식돌방이다.

대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꼭대기로부터 7.2m 아래에 위치한다.

널방(玄室)의 규모는 남북 장축의 장방형 평면으로서 길이 3.80m, 너비 1.78m, 높이 2.27m이다.

남면 중앙에 널길(羨道)이 설치되었고, 널문(羨門)은 너비 1.0m, 높이 1.5m이고, 널길의 길이는 1.0m 정도이다.

널문과 널길 입구는 판석을 세워 막았고, 전장은 4.98m이다.

네 벽, 바닥, 천장을 모두 다듬은 판석으로 조립하였다.

양측벽과 천장 사이에는 장대석을 안으로 기울게 끼워 단면 육각형을 이뤘다.

이러한 형식은 부여 능산리나 완주 둔산리고분에서 볼 수 있다.

바닥 중앙에는 1장의 석재로 된 널받침(棺臺)이 한 단 높게 놓였으며, 널받침은 길이 2.71m, 너비 0.85m이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도굴된 기사가 있고, 1917년에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유물은 조사 당시 도굴되어 있었으나 나무널(木棺)은 복원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실측도에 따르면 나무널은 뚜껑 윗단면이 호형이며 관못과 관고리가 있다.

관고리에는 8() 연꽃형의 밑동쇠(座金具)가 있다.

나무널의 크기는 길이 2.4m, 너비 0.76m, 높이 0.7m이다.

소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윗면으로부터 5.5m 아래에 위치한다.

돌방의 형식과 석재 등은 대왕묘와 같고, 널방의 규모는 길이 3.2m, 너비 1.3m, 높이 1.7m로서 약간 작다.

돌방의 특징은 백제 말기인 부여시대, 7세기 전반의 형식이다.

그러나 부근의 미륵사(彌勒寺)가 백제 무왕 때 창건된 것을 감안하면 이는 무왕과 왕비의 능묘일 가능성이 짙다.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며, 백제 무왕(武王)과 선화비(善花妃)의 능이라고 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