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고찰, 포항 내연산 보경사(寶鏡寺)..
2018년 8월 12일, 영덕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내연산 자락의 보경사를 찾았다.
천년고찰 보경사(寶鏡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25년(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603년 창건되었다.
지명은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내연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보경사라 하였다.
성덕왕 22년(723년)에는 각인과 문원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5층석탑을 조성하였다.
경덕왕4년(745년) 철민이 중창하였고, 고종1년(1214년) 주지 원진국사가 승방4동과 정문 등을 중수하고 종·경(磬)·법고 등도
완비하였다.
숙종 3년(1677년)에는 도인 등이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 가을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
그때 초한(草閑)이 시주를 얻어 금당을 중건하였고 관음전은 도의(道儀), 명부전은 석일(釋一), 응향전(凝香殿)은 국헌(國軒)이,
향적전(香積殿)과 국사전(國師殿)은 학열(學悅)이, 열반당은 신특(信特)이, 국사전 정문과 사천왕각 및 식당은 비구니 총지(摠持)
와 신원(信遠)이, 팔상전은 지총(志聰)이, 종각은 영원(靈遠)이 각기 분담하여 중건, 중수하였다.
또한, 그와 동시에 도인은 청련암을 창건하고 탁근(卓根)은 서운암을 창건하였다.
영조1년(1725년) 성희와 관신이 명부전을 이건하고 단청하였으며, 성희는 괘불을 중수하였는데 이때 사세가 가장 컸다고 전한다.
1916년부터 1922년까지는 장욱(壯旭)이 많은 사재를 내어 전당(殿堂)과 탑을 중수하였고 홍수로 파손된 제방을 쌓았으며,
교량을 시설하고 전답을 사찰에 헌납하였다.
1917년10월 태인이 명부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대웅전과 상지전을 중수하였으며, 1975년 이후 약간의 단청불사를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신 적광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와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16나한 등을 배열한 영산전, 팔상시현을 나타낸 팔상전이 중심 당우로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도 명부전·산신각·원진각·일로향각·동로각·누각·수월당·천왕문·일주문·원진국사비각·설산당비각·창고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52호로 지정된 보경사 원진국사비와 보물 제430호로 지정된 보경사 부도가 있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된 오층석탑, 경북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다.
숙종이 이곳의 12폭포를 유람하고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시를 지어 남겼다는 어필의 각판이 있다.
부도로는 동봉(東峯)·청심당(淸心堂)·심진당(心眞堂) 등 11기가 있다.
현존하는 산내암자로는 동쪽 50m 지점의 청련암과 서쪽 100여m 지점의 서운암, 보경사 창건과 동시에 건립되었다는 문수암
(文殊庵)과 보현암(普賢庵)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이 절의 주변에는 상태사·성도암·계조암·내원암·대비암 등의 유지가 있다.
내연산 보경사 일주문..
천왕문..
적광전(寂光殿)..
1990년 경북유형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전각이다.
보경사 금당탑비에 보면 1677년에 금당과 법당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 근거해 1677년에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곧 금당은 적광전, 법당은 대웅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포계 양식으로 천장은 뼈대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다포양식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연등천장으로 만든 점 등은 옛 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기단은 외벌대로 아주 낮게 조성하였는데 기단 위에 전돌을 깔고 원좌가 있는 사각형 주초를 놓았다.
주초 위에는 원주를 세웠는데 우주의 안쏠림과 귀솟음이 뚜렷하다.
앞면 중앙 칸의 하방 양쪽에는 동물 형상을 한 둔테목을 설치하였다..
공포는 내외 2출목이며, 주두 위쪽을 봉두(鳳頭)로 장식하였다.
특이한 점은 기단부 석재가 모두 옥석(玉石)이라는 점인데, 다른 전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재질이다.
연두색을 띤 이 옥석은 지금도 내연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정면 어칸(御間)의 하방 양쪽에는 동물 형상을 한 신방목을 설치하였다..
안에는 비로자나 삼존불좌상과 후불탱이 불단에 봉안되었고,
그 밖에 조선 후기에 만든 원패 2점과 1981년에 조성한 신중탱이 있다..
오층석탑(五層石塔)..
1985년 경북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된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부르는 석탑으로 적광전 앞에 있다..
'보경사금당탑기'에 1023년(현종14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조성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중요한 고려초의 오층석탑이다.
기단의 네 면과 각 층 탑신부의 양쪽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우주를 조각하였고,
모서리가 살짝 들려 있는 옥개석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오층 옥개석 위는 상륜부로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주어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옥개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탑에는 문고리가 달린 문비형(門扉形)을 탑신석에 섬세하게 새겨 넣었다..
범종각..
보경사 대웅전..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조선 후기의 건물로 1990년 경북문화재자료 제231호로 지정되었다..
보경사 금당탑비를 보면 숙종 3년(1677년)에 법당을 중창하였다고 되어 있고, 1932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건물 안쪽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가운데칸 뒷부분에는 불단을 마련하여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
불단위에 금동 삼존불좌상과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삼존상은 대웅전 창건시 조성하였고, 후불탱은 1778년(정조 2)에 조성하였다..
불단에는 근대에 만든 원패(願牌) 두 점이 놓여 있고,
그밖에 최근에 조성한 삼장탱·신중탱·독성탱과 근대에 조성한 동종 1구가 있다...
보경사 괘불탱(掛佛幀)..
보물 제160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숙종34년(1708년)에 조성되었지만, 17년 뒤인 영조1년(1725년)에 중수하였다.
화원은 의균·석민·성익·지붕·체환·쾌민·삼학인데, 모두 대구 팔공산 동화사와 파계사의 불화 조성에 참여하였다.
10m에 이르는 대형의 화면에 연꽃줄기를 든 보살형의 여래만을 단독으로 그렸는데, 의균의 작품 중에서 최대의 역작이다.
대형화폭에 단독의 존상만을 그려 매우 단순하지만 홍색과 녹색, 청색계열의 색만을 이용해 조화와 대비를 훌륭하게 처리했다.
여래가 입고 있는 가사의 조(條)에 금 바탕에 녹색으로 문양을 내는 장식이나 끝단의 세부 문양 등 세부장식에도 소홀함이 없다.
보경사 괘불탱같이 5여래가 표현된 화려한 보관과 연꽃을 들고 있는 괘불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경상도지역에서
유행한 괘불형식으로 괘불 도상의 계승을 연구하는 데 의미 있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보경사 명부전(冥府殿)..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전각으로 1887년에 짓고 1917년에 중수하였다..
안에는 지장보살상과 후불탱, 그리고 도명존자·무독귀왕상이 협시하고 있다.
시왕상·판관상이 불단 좌우로 둘러서 배치되어 있다..
영산전(靈山殿)..
정면3칸, 측면1칸의 맞배지붕 전각으로 조선 후기에 지었다..
안에는 조선 후기에 봉안한 금동 석가여래좌상과 최근에 봉안한 문수·보현보살, 그리고 16나한상과 사자상(使者像) 등이 있다..
원진각(圓眞閣)..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전각으로 원진국사의 상과 영정을 중심으로 고승 16명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봉안된 영정은 전부 1980년과 1981년 사이에 조성하였는데, 원진국사를 비롯하여,
지명법사(智明法師)·청허선사(淸虛禪師)·송계선사(松溪禪師)·사명대사(四溟大師)·환허선사(喚虛禪師)·오암선사(鰲巖禪師)·
마점조사(摩岾祖師)·연파선사(淵坡禪師)·신파선사(神坡禪師)·설산선사(雪山禪師)·영월선사(影月禪師)·은처선사(隱處禪師)·
동봉화상(東峰和尙)·설월선사(雪月禪師)·영호선사(暎湖禪師) 등이다..
산령각(山靈閣)..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20세기 초의 건물이다..
안에는 근대에 조성한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팔상전(八相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전각으로 조선 후기에 지었다..
안에는 근대에 조성한 석가여래좌상과 좌우로 문수·보현보살상, 그리고 후불탱이 있다..
좌우측에 4폭씩 팔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팔상도는 석가세존의 일대 생애중 가장 극적인 장면 여덟가지를 그린 탱화이다..
보경사 승탑(僧塔)...
보물 제430호로 지정되어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이다..
기단부의 아래·중간·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윗단에만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겨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모서리에서 뻗어나가는 곡선의 끝마다 꽃장식이 조그맣게 솟아있다.
처마의 곡선은 양쪽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고, 추녀는 두터워 보인다..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으로는 활짝 핀 연꽃받침 위에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을 올리고, 연꽃조각이 새겨진 돌을 놓은
다음, 보주(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서 마무리 하였는데 보존이 잘 되어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이며 너비도 좁아 안정감이 적다.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한 감이 들고 밋밋하다.
부도의 조성 연대는 짐작하기 어려우나 고종11년(1224년) 원진국사비을 통하여 서로의 연관성을 추정 해 볼 수 있다..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
1963년 보물 제252호로 지정되었으며,
고려 중기에 보경사를 중창한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하여 1224년(고종11년)에 세웠다.
비석은 귀부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가 없는 간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신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규수형(圭首形)이라 부르는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비신의 상단에는 ‘원진국사비명(圓眞國師碑銘)’을 전자체(篆字體)로 횡서(橫書)하였으며,
비문은 ‘고려국보경사주지대선사증시(高麗國寶鏡寺住持大禪師贈諡) 원진국사비명병서(圓眞國師碑銘疊序)’로 시작되고 있다.
널찍한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마다 ‘왕(王)’자를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신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신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의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년)으로 원진국사가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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