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탐방, 부드러운 능선 유명산과 용문산 산행
○ 산행일자 : 2018년 8월 19일(일)
○ 기상상황 : 맑음(구름 조금의 무더운 날씨. 양평 22~32℃, 용문산 정상 17~19℃)
○ 산행코스 : 농다치고개~소구니산~유명산~대부산~배너미고개~용문산~마당바위~용문사(경기 가평, 양평)
○ 거리 및 소요시간 : 약17.77Km(트랭글GPS), 7시간40분소요
농다치고개(09:15)~660.4m봉(09:45)~선어치 갈림길(09:55)~소구니산(10:00~05)~갈림길(10:30)~유명산(10:35~40)~갈림길
(10:45)~페러글라이딩장(10:50~30)~대부산 입구(11:05)~대부산(11:15~20)~입구(11:25)~외딴집(11:40)~설매재(배너미고개
12:10~40)~도로(13:35)~장군봉 갈림길(13:55)~용문산(14:35~50)~마당바위(15:50)~용문사(16:30~35)~주차장(16:55)
○ 주요봉우리 : 용문산(1,157.1m), 유명산(863.9m), 소구니산(801.3m), 대부산(743.8m)
○ 산행지 소개
경기 가평 설악면과 양평 옥천면 경계에 있는 유명산(有明山 863.9m)은 소구니산(801.3m), 중미산(834.1m), 통방산(649.9m)
으로 이어지며, 동쪽으로 용문산(1,157.1m), 서쪽으로 청계산(656m), 남쪽으로 대부산(743.8m)·편전산(377.9m)과 연결된다.
정상 부근에 나란히 자리한 세 개의 바위는 삼형제바위라 불린다.
유명산에서 이어지는 계곡은 기암절벽과 작은 폭포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절경으로 가평 8경 중 제8경 유명농계(有名弄溪)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 정상에서 말을 길렀다고 해서 마유산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이름은 ‘말을 방목했다’는 뜻에서 마유산(馬遊山)이라고 하였다고 전하나 모든 지형도 상에 그 이름이 기재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의 이름은 1973년 엠포르산악회가 국토자오선 종주를 하던 중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산을 발견하고 산악회 대원 중
홍일점인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 유명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산악 잡지에 기재된 이후 지금은 유명산으로 통칭되고 있다.
『여지도서』에는 ‘마유산은 군의 북쪽 20리에 있다. 북쪽의 용문산(龍門山)에서 이어져 마현산(馬峴山)의 주맥을 이룬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 마유산이 표현되어 있다.
정상에 서면 돌을 쌓아 만든 돌탑이 서있고, 페러글라이딩의 명소이기에 하늘에 떠있는 페러글라이더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유명산은 산 자체보다는 자연휴양림, 유명계곡으로 더 유명하다.
용문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와 합쳐져 생긴 유명계곡은 입구지계곡이라고도 하는데 동북쪽은 5km이나 3km까지 등산로가
이어진다. 자연 흑암으로 이루어진 계곡마다 대부분이 작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곡의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지만 너덜지대 같은 대부분 돌길이다.
선어치 쪽으로 가는 도중에는 삼림욕장을 비롯하여 체력단련장·캠프장 등을 갖춘 1989년 개장된 유명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계곡의 소와 담은 크지 않지만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지닌 용소, 박쥐소, 마당소 등 소와 담이 있다.
소구니산(801.3m)은 유명산과 중미산을 잇는 능선 한가운데에 솟아 있으며, 하늘이 서너 치 정도 보인다는 뜻의 선어치
(서너치) 고개를 사이로 하고 유명산과 연결되어 있다.
유명산은 능선이 완만하고 부드러우며, 수량이 풍부한 계곡과 기암괴석 및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100대 명산』에 선정되어 있다.
또한, 유명계곡의 수량이 풍부하여 봄과 여름의 계곡산행을 즐길 수 있는 가족 산행지로 유명하여 『한국의 산하 100명산』중
42위에 랭크되어 있다.
양평의 영산 용문산(龍門山 1,157.1m)은 기암괴석과 고산준령을 고루 갖추고 있는 산으로 신라 때 용문사(龍門寺)가 창건된
이후 본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었다.
그런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등극한 이후 용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전해진다.
용문산은 그 나름대로 사계의 풍광을 자랑하지만 가을에는 수려한 산세와 계곡이 어울려 산자수명의 정취를 자아낸다.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3m), 명지산(1,253m), 국망봉(1,167.2m)에 이어 네번째로 높은 용문산은 양평군 노랫말 첫 머리가
‘용문산 높은 메에 흰 구름 가고 / 남한강 굽이쳐서 기름진 땅은…·’으로 시작될 정도로 양평을 대표하는 영봉(靈峰)이다.
『신증여지동국여지승람』에는 ‘양평이 용문에 의지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두대간 두로봉(1,422m)에서 갈라진 한강기맥은 오대산을 넘어 계방산~삼계봉~대학산~금물산~갈기산~싸리봉~폭산으로
이어진다. 폭산에서 북으로 봉미산을 분가하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한강기맥이 2.5km 거리에 들어 올린 산이 용문산이다.
용문산에서 약1km 이어진 한강기맥은 1,150m봉에서 남쪽으로 백운봉을 분가시키고, 방향을 서쪽으로 잡아 배너머재~대부산
~유명산~소구니산~청계산~두물머리(양수리)에 이르러 여맥들을 북한강과 남한강에 가라앉힌다.
용문산은 노송군락 어우러진 암릉 사이로 제법 깊고 긴 협곡들이 발달되어 있다.
여기에 산 전체가 울창한 천연수림으로 뒤덮여 산세가 웅장하다. 또, 이 산은 명산이 갖추어야할 겨울 설경, 봄 철쭉, 여름 계곡,
가을 억새와 단풍 등 철따라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또, 산자락에 용문사, 사나사, 상원사, 윤필암터 등 천년 고찰들을 품고 있으며, 특히 은행나무로 이름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또, 용문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1937년 신자 300여 명을 살해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백백교 사건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이 산에서는 한강기맥 북쪽 북한강과 남쪽 남한강은 물론, 인천 앞바다가 보일 정도로 사방 100km 거리가 막힘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로도 유명하다.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때 몽고군 침입 당시 이곳 주민들이 숨어 살았고, 6.25전쟁 때에도 피아간에 군단 병력이 목숨을 건 밀고
밀리는 격전을 치룬 전략요충지다.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정상에는 군부대가 상주하고 있다.
용문산 은행나무는 현재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수령 1,100여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높이 60여m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3m를 넘어 동양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이 그의 스승인 대경대사를 찾아와서 심은 것이라 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한다,
또,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경주 최씨들은 최치원이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옛부터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리어질 만큼 기암괴석과 고산준령을 고루 갖춘 경관이 뛰어난 산이며, 특히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용문사와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은행나무가 있는 등 역사·문화적 가치를 고려하여 『산림청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다.
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용문사 은행나무로 잘 알려진 용문산은 산세도 수려하여 10월에 많이 찾지만 가을, 봄에도 인기 있어
『한국의 산하 100명산』중 28위에 랭크되어 있다.
○ Prologue
오랜만에 산악회를 따라 장거리 산행에 나선다.
4시30분에 광주 각화동농산물공판장 앞을 출발한 버스는 새벽을 가르며 달려 입장휴게소에서 간단한 김밥으로 식사를 한다.
9시15분, 한강기맥이 지나는 농다치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삼각점이 있는 660.4m봉을 올라선다.
무더위가 한 풀 꺾였는지 그렇게 많은 땀은 흘리지 않는다.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져 선어치고개에서 오르는 능선과 합류하여 소구니산을 지나고 다시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오른다.
한강기맥에서 약간 비켜있는 유명산은 많은 인파가 몰려 사진을 찍는데도 잔사진을 이룬다.
다시 200여m를 되돌아와 한강기맥을 따라가면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을 내려서고 우측의 대부산을 다녀온다.
대부산에서 내려와 임도를 우측에 두고 능선을 따라 올랐다가 내려서면 사람이 살지 않는 오래된 통나무집을 지난다.
다시 임도를 따라 한없이 이어가 배너미고개에 이르면 포장마차가 있어 일행들을 민니 막걸리와 함께 점심식사..
다시 오르는 길은 참으로 힘이 들었고 군사시설이 있는 능선봉을 우회하여 용문산에 올라선다.
용문산에서 마당바위로 이르는 골짜기를 따라 내려서는데 길이 정비되지 않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고여있는 소들이 보이지만 시간이 없어 눈으로만 보고 지나쳐야 한다.
용문사를 둘러보고 한참을 내려서 주차장에 이르러 산행을 마무리한다.
오는 길에 용문 운요천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일죽IC 근처의 대송휴게소에서 돌솥안정식뷔페로 저녁식사를 한다.
오랜만에 만난 산친구와 함께 나눈 한잔 술도 좋았지만 광주에 도착하니 11시, 집에 이르니 11시30분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산악회를 따라 함께 한 긴 산행길이었지만 그래도 땀흘린만큼 보람이 있는 기분좋은 산행이었다.
~^^~
산행 초입지인 농다치고개..
한강기맥이 지나는 농다치고개는 양평 옥천면에서 청평으로 넘어가는 옥산과 소구니산 사이에 있는 고갯길이다..
『동국여지지』 양근군에 "노다령(勞多嶺)이 군 북부 이십리에 있고 노다치(勞多峙)라고도 칭한다."는 내용이 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노다치(老多峙)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한말지형도』에 농다치현(農多峙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 고읍면 복동리에 위치한 농현(籠峴)으로 수록되어 있다..
지금은 포장된 2차선 도로이지만 그 옛날에는 겨우 사람들이 통행 할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그 예날, 고갯길이 너무 좁아서 결혼한 새색시가 장롱을 짊어진 짐꾼들을 앞세우고 넘어 올 때면 좁은 길에 장롱이 길 옆의
바위에 부딪칠까봐 '농 다칠라' '농 다칠라' 조바심을 했다.
그래서 농다치 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계단에서 내려다본 농다치고개..
한참을 오르면 헬기장을 지나고..
이어 삼각점이 있는 660.4m봉을 지난다..
660봉을 지나면서 길은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
활엽수로 가득한 부드러운 길을 지나..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선어치고개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능선에 이른다..
선어치고개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선이 남한강에서 고기를 낚아 설악면 장락으로 가던 길에 고개를 넘던 중 갑자기 고기가 살아나서, 즉 선어(鮮魚)가 되어서
소구니산을 넘고 유명산 뒤의 산으로 날아가 내려앉았다고 하며, 그 후 고기가 내려앉은 산을 어비산(魚飛山)이라 했다고 한다..
잠시 능선을 따라가면 소구니산..
소구니산은 유명산과 중미산을 잇는 능선 한가운데에 솟아 있다.
하늘이 서너 치 정도 보인다는 선어치(서너치) 고개를 사이로 하고 유명산과 연결되어 있다..
소구니산에서 유명산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다가 오른다.
갈림길에서 유명산까지는 340m라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00m도 채 되지 않는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에 있는 유명산..
정상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줄을 서서 겨우 인증샷을 날린다..
건너편으로는 가야할 용문산 능선이 바라보인다..
그 옆으로는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가얄 능선과 대부산..
정상을 뒤로 하고 오던 길로 내려선다..
다시 돌아온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내려서면..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다..
지나온 소구니산, 그리고 삼형제바위..
활공장으로 들어선다..
창공을 날으는 페러글라이더, 그 너머로 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멀리 용문산 능선..
대부산 능선..
오색찬란한 페러글라이더..
여전히 한강기맥을 따라간다..
잠시 내려서면 우측으로 대부산 갈림길..
500m 거리에 있는 대부산으로 향하여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대부산..
산허리를 따라 이어지는 길, 멀리 용문산..
임도를 버리고 숲길 한강기맥 능선을 따라가면..
우거진 숲속에 이정표..
대부분 사람들이 임도를 따라가지만 능선을 따라 간다..
능선봉을 넘어서면..
유명산ATV체험길이다..
능선을 오르면 외딴집..
사람이 살지않는 판자집이다..
멀리 용문산을 향하여 내려선다..
잠시 후 임도가 나타나 배너미고개까지 이어진다..
유명산ATV 길이다..
배너미고개에 이른다..
조그만 포장마차에 일행들이 있어 합류한다..
막걸리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용천4리 표지석 옆 숲길로 들어 가파르게 로른다..
식사를 마친 후라 숨이 차고 힘이 든다..
휴양림 갈림길을 지난다..
전면으로 조망이 트여 남한강과 양평군 옥천면소재지가 바라보인다..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폐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조그만 능선봉을 넘어서면..
군사시설로 오르는 도로에 이른다..
우측 용문산 이정표를 따라 이어간다..
군사시설로 인하여 우측으로 길게 우회한다..
지나온 능선..
바로 앞 장군봉이 솟아있다..
장군봉을 다녀올까 망설이다가 포기한다..
긴 우회길을 따라가면 용문사 갈림길에서 계단을 따라 정상으로 오른다..
계단에서 바라본 용문사 시설지구..
드디어 정상에 올라선다..
함께 한 요산님들과..
용문봉 능선..
정상 아래 정자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내려선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 너덜길은 참으로 힘들고 더디다. 마당바위에 내려선다..
곳곳에 맑은 물이 고여있는 소가 있지만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에 내려선다..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에 속해 있으며, 신라 신덕왕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
고려 우왕 때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다.
태조4년(1395년) 조안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세종29년(1447년)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원찰로
삼으면서 보전을 다시 지었다.
조선 초기에는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907년에 왜군의 병화로 전건물이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취운(翠雲)이 소규모로 재건하여 유지해 오던 중
그마저 6·25전쟁 때 파괴되어 3칸의 대웅전과 관음전·산령각(山靈閣)·종각·요사(寮舍) 등만 남게 되었다.
1982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조선 전기의 정지국사(正智國師)부도 및 정지국사탑비가 있는데, 부도와 탑비는 함께 보물 제5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경내에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는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연기념물 제30호(1962년12월3)일 로 지정된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 1,100년이 넘고 동양에서 유실수로는 가장 오래된 용문산 은행나무로 이름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높이 60여미터에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3m를 넘어 동양에서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일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이 그의 스승인 대경대사를 찾아와서 심은 것이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또,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경주 최씨들은 최치원이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경내를 둘러보고 내려선다..
산행을 마치고 용문 운요천 천연탕에서 몸과 마음을 씯어내고.
일죽 대송휴게소에서의 뒤풀이..
오랜만에 만난 산행친구, 그리고 요산님들과의 한잔..
이렇게 모처럼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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