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법성포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와 숲쟁이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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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법성포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와 숲쟁이꽃동산..

by 정산 돌구름 2018. 5. 23.

영광 법성포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와 숲쟁이꽃동산..

불기 2562년 5월 22일, 부처님 오신 날, 영광 불갑사에서 점심 공양을 하고 인근의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인 법성포를 찾았다.

숲쟁이꽃동산 주차장에서 숲쟁이꽃동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자연스럽게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와 연결된다.

 

법성진 숲쟁이는 고려 이래 전라도에서 가장 번창한 포구였던 법성포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법성진성(法聖鎭城) 및 숲이다.

법성포는 삼국시대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중국, 일본과의 해상교통로 상에 위치한 우리나라 서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였을

뿐 아니라 서해에서 조기가 잡히는 칠산 앞바다에서 들어오는 조기배로 파시를 이루었기 때문에 영광 법성으로 돈 실러 가세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많은 보부상들이 모여들어 매우 번창했던 포구였다.

숲쟁이는 법성포 마을에서 홍농 방향의 지방도로 고개 마루 부분에 좌우측으로 산 능선을 따라 약 300m에 걸쳐 조성된 숲으로

쟁이란 재, 즉 성()이라는 뜻으로 숲쟁이란 숲으로 된 성을 의미한다.

숲쟁이는 법성포구와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 역할을 해 왔으며, 예로부터 파시로 몰려드는 보부상들이 이 숲에서 단오행사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용왕제와 단오날 선유놀이 등 지금의 ‘영광 단오제’와 각종 민속행사가 이곳에서 열려왔다.

법성포(法聖浦)는 침류왕 1년(384년)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다.

 

법성포의 법()은 불교를, 성()은 성인인 마라난타(摩羅難陀 Mālānanda)를 뜻한다.

영광 법성포의 좌우두 일원에는 백제불교의 최초 도래를 기념하기 위해 13,745평 부지에 부용루(芙蓉樓), 탑원, 간다라 유물

전시관, 4면 대불상 등을 건립하였다.

반도에는 고구려가 소수림왕 2년(372년) 전진에 보낸 승려 순도(順道)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불교가 전파되었다.

백제불교의 전래는 전해진 경로와 최초도래지가 불확실하였으나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 존자’가 영광의 법성포로 들어와

불법을 전하고 불갑사를 개창하여 백제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구전되어 왔다. 

1998년 영광군의 동국대학교를 통한 학술고증으로 영광이 백제불교의 최초 도래지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법성포 좌우두는 인도의 마라난타 존자가 384년에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관광명소로 개발하고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秋七月 遣使入晉朝貢 九月 胡僧摩羅難陁自晉至 王迎之致宮內 禮敬焉 佛法始於此

“가을 7월에 사신을 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9월에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陁)가 진나라에서 왔다.

왕이 그를 맞이하여 궁궐 안으로 모셔 예우하고 공경하니, 불교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 난타벽제(難陀闢濟)조에는 백제본기(百濟本記)를 인용하여, 백제 제 15대 침류왕 즉위 갑신

(甲申, 동진 효무제 태원(太元) 9, 384년)에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진()에서 오자 맞이하여 궁궐 안으로 모셔

예우하고 공경하였고, 이듬해 을유(乙酉)에 새 도읍 한산주(漢山州)에 절을 짓고 열 사람이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으니,

이것이 백제 불법의 시초라고 하였다. 또 아신왕 즉위년(392) 2월에 교서를 내려 불법(佛法)을 믿어 복을 구하라고 하였으며,

마라난타는 번역하면 동학(童學)이라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각훈(覺訓)의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석마라난타(釋摩羅難陀)조에는 스님 마라난타는 호승(胡僧)이다. 신이(神異)

감통(感通)이 그 경지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교화하는 데 뜻을 두어 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옛 기록에 따르면, 본래 인도 간다라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법을 전하고 향의 연기를 증거로 하여 벗을 불러 들였다.

위험에 부딪히고 험난한 일을 겪었지만 어려움과 괴로움을 무릅쓰고 인연이 있으면 따라 나서 아무리 먼 곳이라도 밟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백제 제 15대 침류왕(枕流王) 즉위 원년(384) 9월에 진()으로부터 오니 왕이 교외에 나가 영접하여 궁중으로

맞아들이고 공경히 받들어 공양하며 그의 설법을 들었다. 윗사람들이 좋아하므로 아랫사람들도 교화되어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켜 함께 칭찬하고 받들어 행하였다. 이에 마치 파발을 두어 명령을 전달하는 것과 같이 빨랐다.

2(385) 봄에 한산(漢山)에 절을 창건하고 승려 10명을 출가시키니, 법사를 존경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는

고구려 다음으로 불교를 일으켰다. 거슬러 헤아려보면 마등(摩騰)이 후한(後漢)에 들어온 지 280여 년이 된다.”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