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타고 남도여행 남도한바퀴, 신안 다이아몬드제도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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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타고 남도여행 남도한바퀴, 신안 다이아몬드제도 코스

by 정산 돌구름 2017. 3. 20.

버스타고 남도여행 남도한바퀴, 신안 다이아몬드제도 코스..

 

2017년 3월 19일, 일요일, 봄기운을 느끼며 부부가 함께 남도한바퀴를 떠난다.

날씨는 맑았으나 미세먼지로 조망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남도로 떠나는 여행은 항상 즐거움이 있다.

 

기쁨과 힐링의 경험, 남도여행, 버스로 떠나는 남도한바퀴는 주중 9, 주말 12개 총 21개 코스로 운행하고 있다.

318일부터 운행하고 있으며, 출발은 광주버스터미널과 송정역이다.

319, 주말에만 운행하는 남도한바퀴 신안다이아몬드제도 코스로 떠난다.

 

08:10, 광주버스터미널(유스퀘어)을 출발하여 08:35, 광주송정역(KTX)을 경유한다.

9시45분, 압해도 송공항에 도착하여 지금까지 타고왔던 광주고속에서 내려 선착장에서 철선으로 갈아탄다.

1015, 신안 압해도 송공항을 출발한 신안농협페리 7호는 10시40분, 팔금면 고산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에 버스와 해설사가 대기하고 있어 바로 버스에 올라 안좌도 소망의 다리로 향한다.

소망의 다리는 안좌면 두리마을에서 박지도 구간 547m와 박지도~반월도 구간 915m를 연결하는 보행도로이다.

이 구간을 왕복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안좌읍 읍동마을 섬마을식당에서 중식을 한다.

중식 후 이어서 자은도 백길해수욕장으로 향하는데 길을 잘못들어 마리포사리조트를 둘러보는 행운을 얻었다.

마리포사리조트에서 나와 13:40, 백길해수욕장에 도착한다.

널따란 세모래 해수욕장이 한눈에 펼쳐지고 마치 망망대해를 연상케 한다.

14:00, 백계해수욕장을 떠나 14:10, 분계해수욕장의 송림 여인송숲을 둘러본다.

14:30, 분계해수욕장을 떠나 14:55, 암태도 서각박물관에 도착한다.

15:30, 서각박물관을 출발하여 15:40, 암태도 오도선착장에 도착한다.

15:45, 버스에서 내려 신안농협페리 3호에 승선하여 16:00, 오도선착장을 출발한다.

갈 때는 팔금도 고산선착장이었지만 올 때는 암태도 오도선착장을 떠나 다시 압해도 송공항으로 돌아온다.

25여분 항해를 한 배는 16:25분, 송공항에 도착한다. 10여분간 버스를 기다려 16:35, 금호고속 버스에 탑승한다.

약 5분을 버스로 달려, 17:40, 압해도 천사섬 분재원에 도착, 30여분 둘러본다.

18:10, 분재원을 출발한 버스는 압해대교를 지나 목포유달산 노적봉에 도착한다.

당초는 유달산 조각공원을 관람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주차관계로 노적봉을 둘러본다고 한다.

18:35, 유달산 노적봉주차장을 출발한 버스는 목포역을 경유하여 19:40, 광주버스터미널(유스퀘어)에서 마무리한다.

이용요금은 버스투어 9,900원에 선박운임과 현지버스 10,000원을 포함하여 19,900원이다.

 

 

 

 

 

 

 

 


목포의 북서쪽에 위치한 압해도는 우리나라 서남단 다도해 중에서 목포와 가장 가까운 섬이다.

신안의 다른 여느 섬보다 육지와 가깝지만, 섬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압해도의 이 곳, 저 곳을 다니다 보면 섬 특유의

압해도만이 갖는 독특한 정서를 맛볼 수 있다.

압해도는 유인도 7, 무인도 71개의 크고 작은 78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에 인매산(忍梅山 138m)과 서쪽 끝에 섬내의 최고봉인 송공산(宋孔山 234m)을 중심으로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섬의 중앙와 동남쪽에는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100m 내외의 구릉지로 되어 있다.

목포에서 연결되는 2번 국도가 섬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77번 국도는 섬을 남북으로 관통한다.

압해도는 지세가 낙지 발 모양으로 되어 있어 압해라 불렀다고 한다.

또는 섬 전체가 바다[]를 누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백제시대에 아차산현에, 신라시대에는 압해군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에 속하였다.

1896년에 지도군 압해면이 되었다가 1914년에 무안군으로 이속되었다.

196911일에 무안군에서 신안군이 분군됨에 따라 신안군 압해면이 되었다.

근해에서 조기·민어·숭어·세발낙지 등이 어획되고, 남서 연안에서는 굴·김 양식과 제염업이 활발하다.

·포도··세발낙지는 압해도의 특산품이다.

송공리에 있는 송공산성(宋孔山城)은 삼한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 군마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당나라의 대승상인 정덕성(丁德盛)이 압해로 귀양살이를 와서 우리나라 정씨(丁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압해도는 20084월에 개통한 압해대교를 통해 목포와 연결된 연륙도이다.

목포에 있던 신안군청이 20114월에 압해도의 신장리로 이전하였다.

201312월에 개통한 김대중대교를 통해 무안군과 연결되고, 20109월에는 암태도를 잇는 새천년대교가 착공되었다.

 

 

압해도 서쪽 끝 송공항에서는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를 오가는 여객선을 탈 수 있다..

 

 

 

 

 


연도교로 소통하는 섬, 팔금도(八禽島)..

팔금도 주위에 매도, 거문도, 거사도, 백계도, 원산도, 매실도, 일금도 등 8개의 섬이 있는데 새처럼 생긴 금당산(130m)

이 섬들을 거느리고 있어 여덟 팔자와 새 금자를 따서 팔금도라 했다고 전해진다.

또는 날짐승의 이름이 들어간 8명당이 있다하여 팔금도라 하였다고도 하며,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8개 섬에 날짐승 지명이 많아 ()’()’을 합쳐 팔금이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다.

북쪽의 암태도와는 중앙대교를 통해 연결되고, 남서쪽의 안좌도와는 신안1교를 통해 연결된다. <!--[endif]-->

중앙에 금당산(金堂山 130m)이 솟아 있고 서쪽에 채일봉(160m)이 있다.

해안은 사빈해안이 대부분이고 북쪽과 남쪽 해안에 염전이 많다.

원래 주변에 흩어져 있던 작은 섬들 사이에 있던 간석지가 간척되어 하나의 섬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평지가 넓게

분포하고, 곳곳에 저수지가 많다.

읍리에 있는 3층석탑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1호로 옛날에 당신(堂神)이 있었다 하여 매년 음력 정월보름날 제사를 지내고

악신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빌고 즐겼다고 한다.. 

 

편안하고 풍성한 땅, 수화 김환기의 고향, 안좌도(安佐島)..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약 21떨어진 안좌도는 신안군 14개 읍면의 중앙에 위치한다.

주위에는 상사치도·하사치도·내호도·외호도·반월도·박지도·부소도·자라도·요력도 등 유인도 10, 무인도 53개로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북쪽에 있는 팔금도와는 신안 제1교로 이어져 있고, 부소도·내호도와는 방조제로 연결되어 있다.

구전에 따르면 마()씨와 차()씨가 기좌도 한운리에 처음 들어와 살았으며,

그 뒤 1690(숙종 16) 무렵 김해김씨가 해남에서 들어와 각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본래 안창도와 기좌도 두 섬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연륙되어 안창도의 ""과 기좌도의 ""를 합하여 안좌도라 칭하였다.

섬의 북서쪽 끝에 솟아있는 봉산(182m)이 최고점이며, 남쪽에는 큰산(151m)·후동산(151m) 등이 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비교적 복잡하며, 해안선은 91.4에 이르고 있다.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간조시에 부속섬들과 연결되기도 한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보리 이외에 고구마··마늘·참깨 등이 많이 생산된다.

연근해에서는 숭어·멸치·갈치·낙지·문어·참조기 등이 잡히며, 굴 양식과 제염업이 소규모로 이루어진다.

높은 산이 많고 넓은 평야는 없으나 간석지를 막아 염전과 해태양식 등의 어업소득으로 주민소득은 높은 편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라는 작품명제로 유명한 수화 김환기는 안좌가 낳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선생은 193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하였고,

1936년 귀국하여 34년 동안 고향에 살며 작품활동을 하다가 1946194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때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하여 새로운 창작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목교, 갯벌체험형 관광지 소망의 다리..

걸어서 육지를 건너고 싶은 할머니의 소망을 담아 만든 두리~박지~반월도를 잇는 1,462m의 목교이다.

두리항에서 박지도까지 547m, 박지도에서 반월도까지 915m로 2006년 12월에 착공해 2010년2월24일 완공된 목교이다.

다리 아래에는 감태파래도 보이고 갯벌에서 서식하는 많은 개 종류와 짱뚱어도 볼 수 있다.

특이 이곳 갯벌에 함유되어 있는 게르마늄은 신비의 약리작용과 함께 산소 운반의 매개체 역할을 해 체내에 풍부한 산소를

공급하고 자연 치료제인 엔돌핀의 생성을 도와준다.

다리 중간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팔각정과 낚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밤이 되면 소망의 다리는 더욱 빛이 난다.

암흑이 드리워진 곳에 소망의 다리만의 환한 불빛을 비추고 다리 아래로는 바닷물이 가득 찬다..

 

 

 

 

 

 

 

박지도(朴只島)..

최고점 130m의 기복이 심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해안은 대부분 암석 해안이고,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다.

썰물 때는 기좌도, 안좌도, 반월도 등과 연결된다.

남쪽 해안 일부는 방조제를 축조해 경작지로 이용하고, 취락은 남동쪽 해안 반포마을과 북쪽해안 문서구지에 주로 분포한다.

북쪽의 기좌도(箕佐島), 서쪽의 반월도(半月島), 남쪽의 부소도(扶所島)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둘레는 8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25호이다."는 기록이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섬이 묘사되어 있다.

250년 전 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하여 섬 이름도 그의 성을 따라 '박지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섬의 지형이 '' 모양이라 하여 '바기섬' 또는 '배기섬'이라고도 한다.

신세타령 민요가 전해오고 마을 뒷산 정상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 때 당제를 지낸다...

 

 

 

 

 

 

반월모양의 섬, 반월도(半月島)..

면적 2.05㎢, 해안선길이 6.7km, 목포항에서 서쪽으로 32㎞, 안좌도에서 남쪽으로 10km에 있다.

섬 모양이 어디에서 보아도 반달모양으로 보여 반월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300여년전 처음으로 이씨가 들어와 살았다 전한다.

최고점은 견산(202m)이며, 경사가 완만하다. 해안은 사질해안이 대부분이고, 동쪽 해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나, 농업에 더 많이 종사하여 주요농산물은 보리이고, 쌀·콩·마늘·참깨·고추 등이 소량 생산된다.

근해에서는 잡어가 잡히며, 자연산 돌김이 난다. 취락은 남쪽 해안가 반월마을과 북쪽 해안가 토촌마을에 분포한다.

상여소리가 구전되며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풍어와 무사를 위해 당제를 지낸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둘레는 12리이다. 호적에 편성된 민호는 27호이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지도군 기좌면 지역으로 1914년 퇴촌 마을을 합하여 반월리라 하여 무안군 기좌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 안좌면에 편입되고, 1969년 신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에 속한 반월도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종실록 지리지>에 보면 1450년 전라도 나주목 영광군에 현입되어 있었고 그 당시 반월도에 암수말 40필이 정부에서

관리 시키며 사람이 정착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 13년(1789년) 안좌면 인구 통계와 함께 반월도에 거주했던 호수는 31가구에 남자 46명 여자 31명 총 77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1913년12월29일(부령 제111호) 공포로 지도군에 편입되었다가 무안군 기좌면에 속해있다.

면소재지로부터 남으로 약 6Km 떨어졌으며, 동으로는 박지도와, 서로는 우목도가 이웃해 있고 섬의 오른쪽은 어깨산(견산)이,

왼쪽은 큰산(대덕산)이 자리하고 있다.

안마을은 인동 장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가 살고 퇴촌 마을은 김해김씨가 살고 있다.

 

 

 

 

 

 

 

 

 

 

 

 

 

 

 

 

 

 

 

 

 

 

 

 

 

 

 

 

 

 

 

 

 

 

 

 

 

 

 

 

 

 

 

 

 

 

 

 

 

 

 

 

 

 

 

 

 

 

 

 

 

소작농의 애환이 서린 섬, 암태도(岩泰島)..

목포에서 서쪽으로 약28.5km, 서남단 해상에 위치한 암태도는 섬 한복판에 승봉산(355m)이 늠름한 기백을 자랑한다.

원래는 3개의 섬이었는데 토사의 퇴적으로 인해 하나로 연결되었다.

암태도는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은 저산성 산지이며, 남쪽에 추봉(159m), 동쪽에 박달산(197m), 서쪽에 승봉산(356m) 등 산지가 발달하였다.

섬의 중앙은 대체로 평지를 이루어 논으로 이용되며, 주변에는 간석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9개의 큰 해수욕장이 있는 이웃 자은도와 달리 변변한 모래사장 하나 없어 내세울 것이 마땅치 않은 암태도는 본래 쌀 한톨

구경하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다. 그러다가 마명방조제를 쌓아 드넓은 갯벌이 옥토로 바뀌게 되었다.

북쪽의 자은도와는 은암대교로, 남쪽의 팔금도와는 중앙대교로, 남서쪽의 추포도(秋浦島)와는 방조제로 각각 연결된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참깨··마늘·고추·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특히 한약재로 사용되는 택사(澤瀉)는 전국 생산량의 20%를 차지하고 쌀보리와 마늘이 유명하다.

연안에서는 민어·송어·멸치·갈치·낙지·문어·전어 등이 어획되며, ·미역··전복의 양식과 제염도 활발하다.

가뭄이 심할 때에는 산마루에 있는 모래주머니 모양의 큰 바위 아래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자은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가 3개의 연도교로 연결되어 있다.

3개의 다리 중 가장 먼저 개통한 다리는 신안 1교인데 1990년에 안좌도와 팔금도를 연결한 길이 510m의 콘크리트 다리이다.

그 다음으로 1996년에 개통된 은암대교(675m)는 자은도와 암태도를 잇는다자은도와 암태도의 글자를 딴 다리명칭이다.

마지막으로 2005년도에 암태도와 팔금도를 잇는 중앙대교(600m)가 개통되면서 4개 섬이 하나의 권역으로 묶이게 되었다.

그 결과 육지인 압해도와 가장 가까운 암태도 오도항이 11개 섬의 관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암태도는 압해도 송공항에서 차도선이 하루에 10번 다니며 소요시간은 25분 정도 걸린다..

 

 

 

 

 

 

 

 

 

 

 

 

 

 

 

 

 

 

 

 

 

 

 

 

 

 

 

 

 

 

 

 

 

 

 

 

 

 

 

 

 

다도해의 아름다운 바다정원, 송공산 분재공원..

송공산 분재공원은 다도해의 아름다운 5천만평의 바다정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송공산 남쪽 기슭 10ha의 부지에 분재원,

쇼나조각, 야생화원, 미니 수목원, 생태연못, 잔디광장, 화목원, 유리온실, 산림욕장, 미술관 등을 조성하였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분재와 미술작품을 보며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조성한 자연친화적공원이다.

분재원에는 소나무, 주목, 소사나무, 모과나무, 먼나무, 팽나무, 금솔, 향나무, 금송, 피라칸사 등 1,000여 점의 명품 분재와

신안출신 우암 박용규 화백의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순신장군의 호국혼이 담긴 노적봉(露積峯)..

노적봉은 해발 60m의 바위산에 불과하지만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호국혼이 담겨있다.

정유재란 때 12척의 배로 불가능해 보였던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전열을 재정비 하는 동안 조선의 군사와 군량미는

턱없이 부족하여 바로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함락 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때의 노적봉은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목포 앞바다에 왜적의 배가 진을 치고 조선군의 정세를 살피고 있을 때 이순신장군은 노적봉을 이용하여 위장전술을 펼쳤다.

노적봉 바위를 이엉(볏짚)으로 덮어 마치 군량미가 산처럼 많이 보이게 하고 새벽에 바닷물에 백토를 풀어 밥 짓는 쌀뜨물처럼

보이게 하여 왜군들이 군사가 많은 줄 알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로 이 봉우리를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노적봉 큰바위얼굴..

이순신장군이 호령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큰바위 얼굴은 맞은편 이순신 동상과 함께 서남해안의 관문인 목포를 수호하고 있다.

노적봉의 기를 받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여 다산목과 함께 소원을 빌기 위해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다산목(多産木)의 전설..

새우젓의 60%를 전국에 공급해 오던 전남 신안군 임자도 전장포의 한 어부 가족이 있었다.

어부의 아내는 18세에 시집온 후 무려 16명의 자식을 두었다.

식솔이 너무 많아 먹고 살기 힘들자 남편과 사위 한명이 돈을 잘 벌 수 있는 홍어 잡이를 위해 흑산도로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홍어를 만선하여 돌아오는 도중 거센 풍랑에 배가 침몰하여 둘다 죽고 말았다.

비보를 접한 어부의 아내와 죽은 사위의 배필인 딸은 각각 남편들이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처음엔 딸의 한쪽 다리가 성치 못해 어머니 혼자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유달산 노적봉 옆

언덕에서 어선들이 돌아오는 고하도 쪽 길목을 지켜보았다. 남편이 올까 사위가 올까 몇날 몇일을 기다리다 지친 그녀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고 얼마 후 기괴한 여인의 모습을 한 여인나무(어미목)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남편을 기다리던 딸은 어머니마저 돌아오지 않자 아픈 다리를 붙들고 길을 나섰다.

결국 어미목이 있는 곳에 이르러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딸은 그 자리에서 한스러운 세상과 여인의

모든 수치심을 버린채 생을 포기하고 현재의 기괴한 모습으로 죽고 말았다.

딸은 어미목(여인나무)에서 뻗어 올라 자라온 새끼목이 되었는데, 이 나무를 오늘날 다산목(多産木)이라 부른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사위를 죽어서까지 지금도 두 모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비로운 모습의 다산목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두 여인의 진정한 사랑의 마음, 가정의 편안을 기원하는 애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분명치는 않지만 1900년대 유달산 아래 목포시 죽교동의 한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 나무의 사연이 구전되어 오고 있는데

원래 이 나무는 맨 처음 발견된 어미목을 일컫는 말로 여한목(여한목, 한스러운 여인나무)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1910년 여한목에서 뻗어 나온 새끼목을 다산목(多産木)이라고 하였다.

2000년부터 목포시청이 이 기괴한 모습을 한 새끼목을 여인나무라 부르다가 전해오는 설화에 따라 다시 2007년 공식적인

나무 이름으로 다산목(多産木)이라고 정하여 현재 목포의 관광자료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