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한바퀴, 신안 다이아몬드제도 코스 - 2. 반월·박지도 소망의 다리
남도한바퀴 신안다이아몬드제도 코스 여정은 신안 압해 송공항에서 도선을 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0시15분, 신안 압해 송공항을 출발한 신안농협페리 7호는 10시40분, 팔금면 고산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에 내리면 미리 대기하고 있는 45인승 버스와 해설사를 만나게 된다.
버스를 타고 팔금도에서 연도교인 신안1교를 건너 안좌도로 들어서고, 20여분 후 두리마을에 도착한다.
안좌 본섬의 두리마을에서 박지도와 반월도를 연결하는 소망의 다리를 만나게 된다.
소망의 다리는 안좌면 두리마을에서 박지도 구간 547m와 박지도~반월도 구간 915m를 연결하는 보행도로이다.
이 구간을 왕복하고 12시5분, 다시 버스를 타고 안좌읍 읍동마을 섬마을식당에서 중식을 한다.(12:15~50)
박지도와 반월도는 섬 속의 섬으로 두 개의 섬이 나무다리로 연결돼 있다.
안좌도 본섬에서 박지도로, 박지도에서 반월도를 이어준다.
한 번의 여행으로 걸어서 세 개의 섬을 돌아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미지의 섬 박지도와 반월도는 전남도가 '가고 싶은 섬' 가꾸기 대상지로 선정하면서 떠올랐다.
박지도는 마을이 박(바가지)의 형국이고, 반월도는 섬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이름 붙었다.
썰물 때면 갯벌로 둘러싸이고 모래 해변은 없으며,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반월·박지도를 잇는 소망의 다리..
2008년 완공된 이 다리는 자동차는 다닐 수 없고. 사람과 자전거, 오토바이만 오갈 수 있다.
소망의 다리 주변 다도해 절경을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데다 섬을 일주하는 자전거 투어도 즐길 수 있다.
안좌도에서 연결되는 박지도-반월도 소망의 다리는 서해바다의 해풍을 맞으면서 갯벌에 함유되어 있는 게르마늄의 약리작용과
산소운반을 호흡할 수 있어서 색다른 체험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안좌도에서 박지도로 연결되는 547m 구간은 <천사의 다리>라고 불리는데 박지선착장에서 이어지는 박지도 해안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박지도 돌담길과 박지당 우실샘 혹붙은 예덕나무(이당나무)가 나온다.
해안선 길이 4.6km, 섬 정상이 130m인 박지도는 형상이 바가지 형국이어서 바기섬, 배기섬 이라고 불리다가 박지섬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마을 뒷산 정상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당제를 지내고 중노두 전설이 전해오는 박지도 앞 갯벌은 가시파래라고
불리는 감태 자생지이다.
박지도를 지나 반월도로 이어지는 천사의 다리 소망의 다리를 건너면 반월도 천사공원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쪽은 토촌으로, 왼쪽으로 가면 안마을이 나오는데 안마을 가는 길인 0.95km 지점에 반월도 당숲이 있다.
섬면적 2.54㎢의 반월도는 섬 형상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으로 반드리라고도 불린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1450년에 말40여필을 관리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입도시켰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섬의 중심에 있는 반월도 당숲은 2013년 유한킴벌리, 생명의숲 국민운동본부, 산림청 주최 제14회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한 명소이기도 하다.
당숲에는 돌담을 중심으로 1982년12월3일에 신안군 보호수를 지정된 높이 15m, 나무둘레 355cm로 300여년 된 팽나무
3그루를 비롯하여 후박나무, 느릅나무, 동백나무, 송악, 마삭줄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반월도에는 마을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스타렉스 공영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안좌도 두리항을 연결하는 도선이 운행되고 있어
섬을 나올 때는 배를 타고 나올 수도 있다.
섬의 중앙에 견산(199.1m)이 솟아 있으며, 젖골바위 골짜기를 씹새미고랑이라고 한다.
이 고랑은 반월도 마을 뒷편 젖과 물이 흐르는 지명인 젖골바위 위 골짜기로 그곳에 가면 여자의 성기처럼 생긴 바위모양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씹새미 고랑이라는 샘터가 있다.
그곳 모양이 꼭 여자의 생식기처럼 생겨서 씹새미고랑이라는 곳으로 마을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지명으로 불린다.
그곳에 가면 자연의 신기하고 오묘함을 느낄 수 있는 지형이 꼭 여자 생식기처럼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숲이 우거져서 들어가기가 곤란할 정도이지만 군에서 등산로를 낼 예정이라고 한다.
옛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어린애가 생기지 않던 마을 새색시가 이 물을 먹고 임신이 되어 아들 딸 잘 낳았다고 전한다..
숲속 암자에 살았던 스님에 얽힌 애틋한 이야기, 중노두길..
옛날 박지도의 숲속 작은 암자에 젊은 비구가 살았고, 건너편 반월도에는 비구니가 살고 있었다.
두 스님은 얼굴을 본 적 없었지만, 멀리서 아른거리는 자태만으로도 사모하게 됐다.
연정으로 가득 찬 비구는 망태에 돌을 담아서 반월도 갯벌에 붓기 시작했다.
반월도의 비구니도 광주리에 돌을 담아서 박지도 쪽으로 쏟아 부었다.
세월이 흘러 쏟아 부은 돌이 쌓여 노두가 만들어지고, 그 사이에 스님들은 중년이 됐다.
서로 사모하던 두 스님은 이 노두를 따라가서 처음 만났다.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바닷물이 밀려드는 줄도 몰랐다.
두 스님은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밀려드는 바닷물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이 노두를 스님이 쌓았다고 '중노두'라 불리게 되었고, 지금도 중노두의 흔적이 남아있다.
박지마을에서 박지선창으로 가는 길의 왼편 바닷가에 있으며, 바닷물이 빠지면 중노두를 통해 두 섬을 오갈 수가 있다..
점심식사를 한 섬마을 식당이다..
편안하고 풍성한 땅, 수화 김환기의 고향, 안좌도(安佐島)..
안좌도는 역사가 시작되는 고조선과 삼한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군락(방월리), 백제시대의 석실고분(읍동리), 선돌(대리) 등의 문화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목포항여객선터미널과 신안 압해도 송공항터미널에서 신안농협페리를 통해 연결되는 안좌도~팔금도~암태도~자은도는
연도교로 이어져서 차를 타고 돌아보면서 신안 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약 21㎞ 떨어진 안좌도는 신안군 14개 읍면의 중앙에 위치한다.
면적은 59.87㎢로 신안군 14개 읍면 중 3번째이고, 우리나라에서는 14번째로 큰 섬이다.
목포에서 뱃길로 연결되는 안좌면은 안좌도·상사치도·하사치도·내호도·외호도·반월도·박지도·부소도·자라도·요력도 등
유인도 6개, 무인도 53개 등 89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으며, 해안선은 91.4㎞에 이르고 있다.
동쪽은 다도해, 서쪽은 서해에 면하고, 남쪽은 장산도, 북쪽은 팔금도와는 신안 제1교로 이어져 있다.
부소도·내호도와는 방조제로 연결되어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 물아부에,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에 딸린 섬이었다.
1896년 기좌면이라 하여 지도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지도군 폐지로 무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1969년 다시 무안군에서 분리되어 신안군에 속하게 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구전에 따르면 마(馬)씨와 차(車)씨가 기좌도 한운리에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 뒤 1690년(숙종 16년) 무렵 김해김씨가 해남에서 들어와 각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안좌도는 본래 얕은 수로(水路)에 의해 서쪽의 기좌도(箕佐島)와 동쪽의 안창도(安昌島)로 나뉘어져 있었다.
간척사업으로 연륙되어 안창도의 "안(安)"과 기좌도의 "좌(佐)"를 합하여 안좌도라 칭하였다.
섬의 북서쪽 끝에 솟아있는 봉산(182m)이 최고점이며, 남쪽에는 큰산(151m)·후동산(151m) 등이 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비교적 복잡하며,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간조시에 부속섬들과 연결되기도 한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쌀·보리 이외에 고구마·콩·마늘·참깨 등이 많이 생산된다.
연근해에서는 숭어·멸치·갈치·낙지·문어·참조기 등이 잡히며, 굴 양식과 제염업이 소규모로 이루어진다.
산이 많고 넓은 평야는 없으나 간석지를 막아 염전과 해태양식 등의 어업소득으로 주민소득은 높은 편이다.
문화유적으로는 김환기가옥(전남도기념물 제146호), 방월리 지석묘(문화재자료 제117호)가 있다.
구비전승으로는 좃바위, 벼락바위 전설과 사촌형노래, 모내기노래 등의 민요가 전해지고, 아직 당제를 모시고있는 마을이 많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안좌가 낳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수화 김환기선생의 작품 명제이다.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선생은 193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하였고,
1936년 귀국하여 3∼4년 동안 고향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46∼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때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하여 새로운 창작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한국적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실현시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로서 한국 추상화의 개척자이며, 우리나라 화단의 거목이었고 한국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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