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2년 2월 22일
○ 소재지 :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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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 백비(朴守良 白碑) 소개조선 중기 중종·인종·명종 때 문신 박수량(朴守良 1491~1554)의 묘 앞에 놓인 호패형 빗돌 비석으로 글이 써있지 않은 백비(白碑)이다.
2001년 12월 13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98호로 지정되었으며,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33-1번지에 소재해 있다.
박수량은 1546년(명종 원년) 청백리에 올랐던 인물로,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장례도 치르지 못할 만큼 빈곤하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이때 그의 청백한 행적을 글로
찬양한다는 것이 누가 될 수 있다 하여 글을 쓰지 않고 상징적으로 백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당대는 물론 후세에도 귀감이 되는 청백리의 상징적 유물로서 그 의미가 깊다.
박수량의 본관은 태인, 자는 군수(君遂), 시호는 정혜(貞惠), 김개(金漑)의 문인으로 1513년(중종 8) 진사가 되고, 151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광주향교의 훈도를 지냈다.
이듬해 부정자를 거쳐 전적, 예조좌랑, 충청도도사를 지내고, 1522년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525년 고부군수로 나갔으며, 그 뒤 헌납, 장령 등을 역임하고, 1531년 보성군수를 거쳐 사예, 군기시정 등에 임명되었다.
1534년 함경도 경차관으로 지방 관아를 순시하고 돌아왔으며, 다시 나주목사로 임명하자 삼공(三公)이 박수량은 대간이나 시종이
될만한 인재이므로 외직이 아닌 내직에 임명할 것을 청하기도 하였다.
1536년 통정대부에 봉해지고, 의항공사의 찰리사로 파견되었다.
1537년 동부승지로 특진하고, 전위사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전송하였다.
호조참판, 공조참판 등에 이어 1539년 오위도총부부총관, 예조참판를 역임하고, 1546년(명종 1) 춘추관 동지사로서 <중종실록>,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곧 자헌대부에 오르고 또 형조판서, 우참찬을 지냈으며, 이듬해 좌참찬에 올랐다. 그뒤 전라도 관찰사로 전직, 노모를 봉양하였다.
1552년 우참찬에 재임명, 이듬해 한성부판윤, 중추부지사에 이르렀다.
주세붕과 깊이 교유하였고 유림 사이에서 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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