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주능선(성삼재~노고단~천왕봉~중산리) 당일 종주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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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구름의 산행이야기/산행2014

지리산 주능선(성삼재~노고단~천왕봉~중산리) 당일 종주 산행

by 정산 돌구름 2014. 9. 21.
지리산 주능선(성삼재~노고단~천왕봉~중산리) 당일 종주 산행

 

○ 산행일자 : 2014년 9월 21일 (토)

○ 기상상황 : 구름 조금 맑음(새벽 별이 총총한 맑은 가을 날씨, 오후에 차차 흐려짐 15~25℃)

○ 산행인원 : 광주토요산악회(31명) - 회비 45,000원

○ 산행코스 : 성삼재~노고단~삼도봉~연하천~벽소령~세석~장터목~천왕봉~법계사~중산리(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산청, 함양)

○ 구간별소요시간 : 약35.0km(GPS 33.8km), 14시간35분 소요

  성삼재(02:50)~노고단대피소(03:25)~노고단고개(03:35)~돼지령(04:10)~피아골삼거리(04:18)~임걸령(04:25)~노루목

  (04:55)~삼도봉(05:10~15)~화개재(05:34)~토끼봉(06:02)~1,463m봉(06:50)~연하천산장(07:08~20)~삼각봉(07:40)

  ~형제봉(08:05)~벽소령산장(08:40~50)~선비샘(09:35~40)~1576봉(10:00)~망바위(10:10~18)~칠선봉(10:28)~

  1,556봉(10:45)~영신봉(11:13)~세석산장(11:25~30)~촛대봉(11:47~12:15)~삼신봉(12:30)~1,678봉(12:50~55)~

  연하봉(13:07)~장터목산장(13:23~28)~제석봉(13:45)~통천문(14:05)~천왕봉(14:20~30)~개선문(14:50)~로타리대피소

  (15:30)~망바위(15:55)~계곡갈림길(16:20~30)~공원관리사무소(17:00)~중산리 주차장(17:25)

 <성삼재~2.5km~노고단~5.5km~삼도봉~8.6km~벽소령~6.3km~세석~5.1km~천왕봉~5.4km~관리사무소~1.6km~주차장>

○ 교통상황

  비엔날레(01:00~10)~88고속~순천-완주고속(35번고속)~화엄사~19번~861번~성삼재(02:30)

  중산리(18:05)~20번~시천면 금강산목욕탕~20번~단성IC~35번고속~88고속~담양IC~용가든(09:00~30)~비엔날레(21:55)

 

 

○ 산행지 소개

  지리산(智異山 1,915.4m)은 1967년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산으로 둘레가 800여 리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총면적이 440.4㎢로 전북에 107.7㎢, 전남에 87.9㎢, 경남에 244.7㎢ 분포하며, 계룡산의 7배, 여의도의 52배쯤 된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활처럼 굽은 25.5km 주능선은 서남서쪽에서 동북동쪽으로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제석봉(帝釋峰 1,806m), 촛대봉(1,703.7m), 연하봉(煙霞峰 1,651.9m), 영신봉(靈神峰 1,651.9m), 칠선봉(七仙峰 1,576m),

  덕평봉(德坪峰 1,521.9m), 명선봉(明善峰 1,586.3m), 토끼봉(1,533.7m), 반야봉(般若峰 1,732m), 노고단(老姑壇 1,507m)

  등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봉(中峰 1,875m), 하봉(下峰 1,781m), 싸리봉(1,640m) 등이 이어진다.

  지리산은 백두대간 남쪽 끝자락에서 훨훨 일어난 거대한 산괴로 단일산으로는 최장최대를 자랑하는 장엄한 넓이와 깊이를 지니고 있다.

  서쪽은 전남 구례, 북쪽으로 전북 남원,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과 산청,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에 접하는 국내 최대의 산악지대이다.

  경남의 산청∙함양∙하동 3개 군과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5개시와 군,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그 구역을 구분짓고 있다.

  행정구역상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해발 1915.4m, 지리영봉의 제1봉 천왕봉은 함양방면으로 칠선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토해내며, 산청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뤄 중산리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세갈래로 헤어졌다가 진양호에서 다시 한데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면서 경남의 젖줄이 된다.

  정상 표지석은 1.5m높이로 전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천왕봉은 정상의 신비함과 수려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기라도 하듯 뭇 인간들을 보내지를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天王日出)>과 <석양낙조(夕陽落照)>를 빚어내는 천왕봉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않은 이에게는

  천지개벽을 연상케 하는 일출광경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는 속설과 함께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지리산 등산지도를 처음 제작 배포했던 지리산산악회는 1972년 가장 대표적인 자연경관 10곳을 들어 "지리산 10경"으로 발표하였다.

  제1경으로 천왕일출(天王日出)을 꼽았으며, 제2경 노고운해(老姑雲海), 제3경 반야낙조(般若落照), 제4경 벽소명월(碧宵明月),

  제5경 연하선경(烟霞仙景), 제6경 불일현폭(佛日顯瀑), 제7경 직전단풍(稷田丹楓), 제8경 세석(細石)철쭉, 제9경 칠선계곡

  (七仙溪谷), 제10경 섬진청류(蟾津淸流) 등이다.

○ Prologue

  지난 2010년5월15일 이후 4년여 만에 시도해 보는 지리산 당일종주 산행이다.

  성삼재를 출발하여 노고단~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 25.5km를 당일 종주하고 중산리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보통 사람들은 등정과 하산거리까지 합치면 최소 35km이상에 1박2일 20~25시간 이상을 걸어야한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는 아마추어들에게는 <진자 산꾼>의 경지에 올라서는 관문 같은 코스이기도 하다.

  산악인으로서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 체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생각하며 도전한다.

  지리산 당일 종주는 별 무리없이 여러 차례 마무리 하였지만 최근 몇 년동안 30km가 넘는 장거리 산행을 해보지 않은 탓에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망설임도 있었지만 그래도 도전이라 생각하고 동료 3명과 함께 종주대열에 끼어들었다.

  장터목을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힘이 벅차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오를만 하였다.

  4년여만에 시도한 종주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나니 아직은 녹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1시가 조금 지나 비엔날레 주차장을 출발한 버스는 어둠을 뚫고 구불구불 861번 지방도를 따라 2시30분 성삼재에 올라선다.

구례에 위치한 성삼재(性三峙)는 지리산 능선 서쪽 끝에 있는 고개로 높이 1,102m이다.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주차장에서 간단히 찰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2시50분이 조금 지나 출발한다..

 

도로를 따라 도착한 노고단 대피소, 이른 새벽이라 아직은 고요하기만 하다..

 

대피소에서 가파른 오름길을 따라 노고단 고개에 올라선다..

 

드디어 천왕봉까지의 25.5km 주능선 종주가 시작된다..

 

노고단을 우회하여 출입이 금지된 왕시루봉 갈림길을 지난다..

 

돼지령을 지나 임걸령 샘터까지는 지리산 주능선 종주 코스 중 가장 완만하고 편안한 길이다..

 

우측으로 피아골로 내려서는 피아골 갈림길을 지난다..

 

어둠속에 시원한 바람이 능선을 타고넘는 임걸령에 도착한다..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3.2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320m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옛날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라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샘터에서 피아골쪽 암벽 밑에 막(幕)터가 있는데 이곳을 <황(黃)호랑이 막터>라고 부른다.

옛날에 약초를 캐는 황장사가 눈 내리는 겨울밤에 이곳에 천막을 치고 자다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6.25동란 때 빨치산들이 수없이 죽어 그 피로 골짜기가 붉게 물들었다하여 이름 붙여진 피아골로 내리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어둠속에 시원한 임걸령샘의 물 한모금을 마시고 노루목으로 향한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노루목..

좌측으로는 반야봉으로 으로는 길이며, 삼도봉은 반야봉 산허리를 따라 직진한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허리를 감아 일부 너덜지대를 지나고 우측의 소금자수 묘를 지나 오르면 삼도봉에 이른다.

삼도봉 정상에는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를 구분 짓는 삼각뿔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낫날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명명되고 정착된 것이다.

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할 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의 그늘에 가려 이름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있다.

<삼도봉~불무장등~통꼭봉~촛대봉~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등능선을 경계로 전남과 경남이 구분되며,

<삼도봉~토끼봉~명선봉~삼각고지~영원령~삼정산>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로 전북과 경남이 구분된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는 <삼도봉~반야봉~도계삼거리~만복대~다름재>로 이어간다..

 

지금까지의 전남 구례땅을 벋어나 주능선은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며 삼각봉까지 이어간다..

 

삼도봉에서 화개재 내리막길에는 탐방객 안전과 자연보호를 위해 목재데크가 정갈하게 설치되어 있는데

지난 99년 설치된 이 목재데크는 600계단이라고 하는데 폭 1.5m에 길이 240m로 543개 계단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어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가면 지리산 종주구간 안부중 가장 저지대인 화개재(1,315m)에 이른다.

화개재는 지리산 능선상에 있었던 장터로 경남에서 연동골(목통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화개재에서 계속 고도를 높이며 올라야하는데 주능선 중 가장 길게 오르는 오르막이다.

지루한 오름 끝에 헬기장이 있는 토끼봉에 올라선다...

 

토끼봉에서 바라본 반야봉, 그 너머로 노고단과 운해가 바라보인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봉우리가 토끼모양이거나 주변에 토끼가 많아서가 아니라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토끼봉은 정상 초원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 일명 <지보등>이라고도 불린다..

 

토끼봉을 지나 능선을 따라가는데 아직 일출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지나간다. 멀리 천왕봉은 운무에 가려있다..

 

능선상의 1,463m봉을 지나고..

 

명선봉을 우회하여 긴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연하천대피소이다..

 

본래 연하천대피소는 사설 위탁산장이었으나 지금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영 운영체제로 바뀌었다.

지붕에 집광판을 설치하여 태양열 발전시스템으로 전환함으로써 기존의 석유발전 조명을 100% 태양광 발전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지리산 주능선 샘 중 수량이 가장 풍부한 연하천..

 하늘을 가린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여 숲속 평지 연하천에 이르면 마치 요정들의 별천지에 온 듯하다..

 

연하천대피소를 지나면 좌측은 음정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이른다..

 

잠시 올라서면 삼각봉..

지금까지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는 도계는 삼정산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보내고 경남으로 들어선다..

 

삼각봉에서 바라본 노고단 너머의 운해는 아직도 가득하고, 바로 앞에는 토끼봉능선이 이어진다..

 

잠시 쉬어가며, 목포에서 올라온 동료들과 함께..

 

토끼봉 너머로 멀리 반야봉이 고개를 내민다..

 

반야봉 너머로 노고단과 운해..

 

멀리 천왕봉, 그리고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지리산 남부능선이 낙남정맥을 이루며 멀리 삼신봉으로 이어간다..

 

형제봉을 넘어서면 형제바위..

 

뒤돌아본 형제바위와 형제봉..

 

우측으로 오리정골은 빗점골로 합류되어 의신을 지나 화개천으로 스며든다..

 

길목에는 투구꽃이 만발하였다.. 뿌리에 강한 독성이 있는 투구꽃은 초오(草烏)라고 부르며 한약재로 쓰인다..

 

바위 협곡을 넘어서면..

 

음정마을 갈림길이 있는 벽소령에 이른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에 달하는 지리산 주능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고도가 낮은 고개이다.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을 연결하는 산령으로 유명하거니와 화개에서 마천까지 38km의 남북을 연결하는 횡단 군사도로가 있었다..

벽소령에서 우측은 덕평골을 지나 빗점골로 이어져 의신으로 내려서고, 좌측은 광대골을 지나 음정에 이른다..

 

벽소명월(碧霄明月)..

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예로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하였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 10경중의 하나다..

 

벽소령산장은 약 25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지금은 휴대전화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예전엔 전화가 설치되지 않아 비상시에는

무전기로 지리산국립공원동부관리소와 연락하였다고 한다..

 

군사도로를 따라가면서 뒤돌아본 부처바위..

 

우측으로 덕평골이 빗점골로 합류된다..

 

암벽에는 커다란 벌집이 붙어 있다..

 

군사도로가 끝나고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지나온 형제봉, 멀리 반야봉..

 

덕평봉을 우회하여 내려서면 조망이 트이는 선비샘..

 

널따란 공간의 이곳 샘터가 지금은 서서 물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물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수량은 비록 적으나 마르는 일이 없고 그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쉬어가기에 적합하다.

그 샘터 위에는 초라한 고분이 하나가 있었다 하는데 이 무덤과 샘에 얽힌 한 화전민의 서글픈 사연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옛날 덕평골 아랫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화전민의 자손으로서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가난에 쪼달려 평생을 살아야 하는 박복한 사람이었다.

러다보니 배우지 못하여 무식한 데다 얼굴마저 못 생겨서 그 인품이 몹시 초라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노인은 평생에 한번이라도 사람들에게 선비 대접을 받아 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늙어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죽거든 그 시체를 상덕평 샘터위에 묻어 달라고 아들 형제에게 유언을 했다.

성스런 아들들은 훗날 그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위에 매장했다.

그로부터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이곳을 지날 때 꼭 샘터에서 물을 마시게 되고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무릎 꿇고

절을 하게 되어 노인은 생전에 그리고 한이 되었던 선비 대접을 무덤 속에서 받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후일 이 동네 사람들이 노인의 불우했던 생전을 위로해 주기 위한 소박한 인정으로 이 샘을 선비샘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러나 지금은 무덤도 없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진 얘기로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잠시 가파르게 올라선 1,576봉을 넘어서고..

 

지리산 주능선을 따라 천왕봉이 조망되는 망바위에 이른다..

 

망바위에서..

 

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능선..

 

 

 

칠선봉...

선비샘을 지나 남쪽으로 대성골과 북쪽으로 한신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위치한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위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일곱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선봉을 넘어서면 건너편으로 우람한 암봉..

 

물들어가는 단풍, 고사목이 암봉과 어울어져 아름답다..

 

가파른 계단길이 한없이 이어진다..

 

가야할 능선, 그리고 멀리 천왕봉이 구름에 가려있다..

 

지나온 능선, 멀리 반야봉까지 조망된다..

 

한신계곡으로 이어지는 깊은 골짜기..

 

가파른 암릉지대를 지나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야생화가 만발하였다..

 

낙남정맥의 시작점 영신봉(靈神峰)..

영신봉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신사(靈神寺)는 지리산에 있다. 절 뒤 봉우리에 깎은 듯한 돌이 섰고, 그 꼭대기에 작은 돌이 평상처럼 놓여 있는데

좌고대(坐高臺)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1472년 지리산을 유람한 김종직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영신봉과 좌고대를 바라보니 여전히 멀리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영신봉을 내려서면 세석대피소..

 

석대피소는 공단이 23억원을 투입 96년1월1일 완공, 개장한 통나무식 대피소이다.

수용인원이 300명으로 지리산내 대피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운치가 뛰어난다.

2층 앞쪽으로는 주능선 남사면의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겸 휴게소가 있다..

 

세석대피소 아래의 샘터에서 물을 보충하고 촛대봉으로 향한다..

 

잔돌평전이라 하는 세석(細石)은 화개 땅의 영신봉과 산청 땅의 촛대봉사이의 1,600m 고지대에 있는 평야지대이다.

이곳에 있는 수만 그루의 철쭉이 되는 5월 하순은 요염한 철쭉의 붉은 색과 등산객들의 오색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세석대피소에서 촛대봉으로 오르는 길은 언제나 힘이든다.

오르는 길목에는 산오이풀, 구절초, 쑥부쟁이 등 야생화가 만발하였다...

 

촛대봉은 정상이 촛대처럼 생겼다하여 촛대봉이라 불리며, 해발 1,703m로 설악산 대청봉(1,708m)보다 5m 낮은 높이다.

리 천왕봉이 팔을 뻗치면 손에 잡힐 듯이 바라보이고 촛대봉에서 보이는 세석의 묘미는 사뭇 대자연의 신비가 느껴지는 듯하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세석대피소와 영신봉(1,651.9m)..

철쭉의 아름다움과 함께 영신봉화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화개동천의 선경을 연출하며 화개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에서 낙남정맥(落南正脈)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으로 영신봉에서 뻗어나간 능선이 삼신봉, 외삼신봉, 묵계치로 이어간다.

낙남정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동강 남쪽을 가로지르며 김해 분성산까지 약 300km에 이르는 산줄기로써 영신봉~삼신봉~외삼신봉

~태봉산~실봉산~와룡산~무선봉~봉대산~양전산~백운산~천황산~대곡산~무랼산~백운산 ~덕산~필두봉~용암산~깃대봉~여항산

~서북산~봉화산~광려산~대산~대곡산~무학산~천주산~정병산~대암산~용지봉 ~신어산~동신어산으로 이어진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한신계곡과 백무동..

 

촛대봉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선다..

 

잠시 내려섰다가 올라선 삼신봉에서 바라본 촛대봉..

 

가야할 영신봉, 그너머로 천왕봉은 운무에 잠겨있다..

 

1,678봉에서 바라본 촛대봉, 그 너머로 반야봉..

 

1,678봉을 넘어선다..

 

잠시 능선을 따라가면 연하봉과 일출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하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곡점능선으로 일명 일출봉능선이라고도 불리며 중산리로 이어진다..

 

지리산 10경, 연하선경(煙霞仙境)...

천왕봉 일출광경과 신비한 반야봉 낙조를 영겁의 세월동안 간직한 채 대자연의 섭리를 알 듯 말 듯 인간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연하봉은 늘 그렇게 변함없이 지리산에 있다..

 

전망바위를 내려서 연하봉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도장골이 이어진다..

 

연하봉을 넘어선다...

 

뒤돌아본 연하봉, 그 너머로 삼신봉과 촛대봉..

 

연하봉을 넘어서면 새롭게 리모델링 중인 장터목대피소가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많은 등산객이 모이는 종주 능선의 마지막 산장이다..

 

장터목은 옛날 천왕봉 남쪽 사천주민과 북쪽 마천주민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하던 곳이다.

덕산이나 인월에서 등짐을 지고 올랐던 사람들에게는 그 거리가 더욱 멀고 힘이 들었을 것이다..

 

장터목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가파르게 제석봉으로 오른다..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뒤돌아본 연하봉..

 

장터목을 출발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서면 제석봉 고사목지대이다.

예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였다고 한다..

 

탐욕에 눈이 먼 인간이 저지른 자연파괴 행위가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 군락지를 만들어 놓고 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는 중봉(1,875m) 다음가는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옛날 산신제단인 제석단이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이다.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의 초원에 고사목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이곳은 전나무, 구상나무들의 고사목 군락지로 고사목 자체가 귀중한 자연경관이다.

곳의 고사목들은 해발 1,700m 이상 높은 곳에서도 재질이 뛰어난 나무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50년대의 지리산의

아픔을 60여년째 침묵의 증언을 하고 있는 것에도 많은 뜻이 있다.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잣나무·구상나무로 숲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정권말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리고 거목들을 무단으로 베어냈고, 이 도벌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불을 질러 현재의 고사목 군락이 생겼다고 한다..

 

제석봉에서 천왕봉은 아직도 1.1km..

 

제석봉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면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데 하늘로 올라가는「통천문」이다.

통천문은 자체가 천연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금은 철제사다리를 놓아 등반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통천문의 위용은 시인 고은의 말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신선들조차도 이 관문을 거쳐야 할 정도이니 우리 인간들은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비탈길과 대원사에서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으나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으니 천왕봉은 쉽게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통천문에서 바라본 제석봉.. 

 

멀리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바라보인다..

 

다시 가파른 암벽이 이어지고 철제계단과 암벽을 잇따라서 올라서면 <국립공원특별보호구 안내>판이 있는 칠선계곡 갈림길에 이른다.

칠선계곡 등반 시기는 5~6월, 9~10월에만 운영하는데 월,목요일에 오르막길, 화,금요일에는 내리막길을 가이드와 함께 운영한다...

 

아! 드디어 정상 천왕봉이 다가온다..

 

민족의 영산, 한민족의 가상이 발원되는 천왕봉...

지리산 천왕봉은 언제 찾아도 웅장한 모습을 달리 하고 있다.

때로는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함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칠 때면 속인들의 분탕질에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천왕봉은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 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

 

정상에는 82년 경상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있는데,

전면에는「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표지석을 세우는 날, 천왕봉에서 쓰레기수거작업이 열렸는데 경남도내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되어 천왕봉 일대 쓰레기 수거작업을 했고,

도지사 등 일부인사는 헬기로 천왕봉에 도착했다고 한다.

날은 마침 휴일이어서 일반등산객들도 많이 몰렸는데 천왕봉에 많은 인파로 일시에 뒤덮은 것으로는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대한 바위를 예로부터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로 천주라 불렀음인지 서쪽암벽에 천주(天柱)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남명선생이 일찍이「萬古天王峰 天嗚猶不嗚」이라며「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로 장엄함을 찬탄했듯 그 위용은 아직도 변함없다.

 

천왕봉은 반야봉과 노고단 등 1백10여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가 바로 천왕봉과 마주하며 서있는 중봉...

려한 산세와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며 지리산의 제일에 해당하는 절경을 간직하고 있으나 천왕봉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봉은 천왕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려 다시 하봉(下峯)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써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형성한다.

써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다시 국수봉으로 연결돼 구곡산까지 계속된다.

이 능선은 이른바 <황금능선>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산세가 매우 험난한데다 울창한 산죽들로 인해 등산로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 일반 등산객들은 잘 찾지 않는다..

 

 

 

 

 

천왕봉에서 내려선다..

 

아래로 까마득히 중산리계곡이 바라보인다.. 

 

천왕봉을 뒤로 하고 가파른 내리막 계단길을 내려서면 천왕샘에 이른다.

곳의 천왕샘은 서부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이다.

천왕샘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르게 된다.

 

선바위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

 

개선문에 이른다.

개선문은 원래 좌우로 두개의 바위기둥이 서있어 위용을 자랑했는데 한쪽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

하늘을 여는 문이라 하여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선문(개천문), 남서쪽으로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는 곳이다..

 

잠시 내려서면 널따란 암반의 전망대에 이르는데 건너편으로 문창대가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문창대(文昌臺)는 고운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에 자주 왕래를 하면서 이곳에 올라 멀리 서편에 있는 향적대의 바위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므로 이곳을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라고 하였다가 최치원이 사후에 받은 문창후

(文昌候)의 시호(諡號)를 따서 문창대로 개칭하였다 한다.

문창대는 1617년 조선 중기 진주 선비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의 유두류산시(遊頭流山詩)에 의해 세간에 알려 졌다고 한다.

최치원의 높은 인품과 학문을 추앙하여 그의 얼을 길이 새겨 보고자 후세에 유생들이 바위에 글을 새김으로써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운은 지리산 산신령이 되어 영생한다는 전설이 있을만큼 지리산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데 그 발자취는 화개동천에 집중돼 있다..

 

잠시 내려서면 하늘하래 첫 사찰 법계사...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緣起)조사가 전국을 두루 다녀 본 후 천하의 승지(勝地)가 이곳이라 하여

천왕봉에서 약2㎞ 떨어진 현재의 터에 법계사를 창건하였다한다.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산세는 좌우로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여 있으니 동틈과 함께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이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이성계에 패배한 왜군에 의해 소실된 법계사는 조선시대 태종 즉위 5년인 1405년에 정심선사가 중창했으나,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다시 소실되어 방치되다 1981년 겨우 절다운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법계사 3층석탑은 보물 제473호로써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바로 아래의 로타리대피소에 이르는데 예전 같으면 사람들로 붐볐지만 늦은 시간이라 별로 없다..

 

중산리까지는 3.4km의 가파른 내리막.. 

 

헬기장에서 바라본 천왕봉.. 

 

당겨본 천왕봉..

 

황금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망바위를 지나.. 

 

장터목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되는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칼바위가 나타난다.

칼바위는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의 큰바위 밑에서 은거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 자를 찾아서 목을 베어 오라고 명한다.

지리산을 헤매다 지금의 칼바위가 위치한 곳에서 약2km 떨어진 곳에 이르러 큰 바위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내리쳤다.

그런데 바위는 갈라져서 홈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지면서 이곳까지 날아와 꽂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의 바위로 변하여 이름을

칼바위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길게도 느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재난안전관리단이 있는 도로에 내려선다.. 

 

이어 국립공원 중산리탐방안내소를 지난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는 길도 2km가 넘는다..

 

물소리 바람소리 펜션을 지나..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산청을 출발하여 담양 용가든에서의 뒤풀이..

오리고기와 소맥한잔..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4년만에 다시 이룩한 지리산 당일종주..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힘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으로는 보람을 느낀다..